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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사탕의 책장입니다.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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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사탕
작품등록일 :
2014.06.28 12:48
최근연재일 :
2015.10.05 14:53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11,210
추천수 :
63
글자수 :
141,630

작성
14.07.19 03:15
조회
310
추천
2
글자
10쪽

첫 번째 이야기 (5)

DUMMY

*


거리는 온통 시끄러웠다. 하루 뒤면 추모제가 열린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고 즐거운 축제였다. 리지도 그 축제의 한복판에 끼어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녀가 슬픔을 잊어갈수록 축제는 더욱 즐겁고 화려해지는 것 같았다. 때때로 사라진 사람들을 생각하며 우울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이안은 생각했다. 인간들이란 언제나 저런 방법으로 살아간다고. 리지와 얘기를 나누며 그의 고향을 너무 많이 떠올린 탓일까, 옛날의 일들이 자꾸 떠올랐다.


양옆으로 예쁜 장신구나 군것질거리를 파는 노점이 줄 지어 서있고 종종 거리 가장자리에서 종이연극이나 마법을 이용한 환상이 사람을 붙들어 매고 있었지만 정작 그를 사로잡은 것은 이제는 그의 머릿속에서만 볼 수 있는 옛 이야기들 이었다.


이야기를 건너다니며 죽음과 삶이 의미가 없어지기 시작할 때부터 그의 이야기 속에서 그가 싸워왔던 이유는 거품처럼 사라졌다. 평생에 걸쳐 쌓아왔던 것들도 사라졌고, 그를 따르던 수많던 권속들도 모두 의미를 잃었다.


검을 들이밀던 적도 이제는 퇴색해 옛 기억으로만 남아 있었다. 전투에 승리하던 쾌감도, 두려움에 떠는 이를 베던 즐거움도….


“이안!”


추억 속을 유영하던 그를 다시 이 세계로 불러들인 것은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그의 아내였다. 그녀는 이미 한손에 튀긴 과자를 들고 있었지만 이번에 또 다른 먹을거리를 발견했는지 그를 부른 것 이었다. 물론 튀긴 과자 이전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이번엔 뭔데?”


이안은 옛 상념을 다시 한구석으로 밀어 넣고 남편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려 했다. 어떤 게 그녀의 입으로 들어가는지 정도는 제 눈으로 봐두려 했지만, 아쉽게도 이쪽 길가에는 음식을 파는 노점이 없었다.


“저거 봐봐.”


그녀가 추위 덕택에 발개진 뺨을 하고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좀 더 길 안쪽을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인형극이 상영되고 있었다. 나무판자를 몇 개 깔아놓은 무대에서 예쁜 옷을 입은 인형들이 마치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위에 분명 실이 달린 핸들이 인형을 조종하고 있는데 핸들을 잡고 있는 인형사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인지 어린애들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주변에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별을 박아놓은 것처럼 반짝거리는 흰 드레스를 입은 인형이 허리를 굽히며 관객에게 인사했다. 이제 막 이야기가 끝난 참이었다.


“아, 끝났네.”


그녀는 아쉬움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한손에는 과자를 들고 장갑 낀 손으로나마 작게 박수를 치고 있었지만, 또 공연해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형은 무대의 바깥으로 사라졌고,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은 과자를 한입에 털어 넣고 과자를 쌌던 종이는 구석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어디선가 남자가 나와 무대를 정리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그녀도 이안의 손을 이끌어 다시 거리로 향했다.


“이봐! 비켜!”


시끄러운 거리에서 조금 더 큰소리가 난다 싶더니 말발굽 소리와 사람들이 시끄럽게 외치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거기 아가씨! 빨리 가장자리로!”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가 리지를 거칠게 길 가장자리로 밀쳤다. 그녀는 거의 넘어질 뻔 했지만 다행히 이안이 붙들어주었다. 그녀를 밀친 남자는 사과도 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들을 밀치고 있었다.


“뭐지?”

“마차가 지나가려나 보다.”

“축제기간동안은 금지잖아.”


그녀는 뾰로통해 중얼거렸다.


“뭐든 예외는 있는 법이지.”


이안이 나긋하게 답했다. 그의 예상대로 마차 몇 대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길을 지나갔다. 은색과 연한 녹색으로 장식된 화려한 마차가 두 대 먼저 지나갔다. 사람들은 마차를 보더니 더러는 눈을 감고 무어라 중얼거렸다. 몇몇은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은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었다. 리지만이 사람들 사이에서 의아해 했다.


“뭐야? 다들 뭐 하는 거야?”

“저 마차는 교단의 마차니까. 축복받은 은으로 만든 날개장식이 붙어 있잖아.”


멀어져가는 마차를 바라보니 아닌 게 아니라 천사의 날개 같은 게 마차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예쁜 모습이었다. 흐응,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자 이안이 몇 가지 더 설명 해주었다.


제국에 둘째로 큰 교단이라는 것과 죽은 자들을 인도하는 역할의 여신을 따르는 교단이라는 것. 그 여신의 이름은 루쉐, 달을 탈것으로 삼는 검은 머리 여신이었다.


“그럼 가장 큰 교단은?”

“당연히 태양이지. 태양마차를 이끄는 라샤. 죽어가던 세계를 살린 가장 위대한 신이야.”

“와. 신기하다. 여기 종교들은 굉장하네.”

“네 원래 세계에도 있잖아? 종교 같은 건.”

“그렇긴 하지만, 난 무교였거든.”


이안은 잠깐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곤 스스로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네가 있던 시대는 직접 나타나지 않는 시대군.”

“응?”

“신화라는 것도 결국에는 이야기의 종류니까.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 신들이 사라진 시대에는 확실히 믿지 않겠지만 신화 속 시대에는 무교라는 게 있을 수 없잖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쩐지 조금 난해한 내용이라 그리 가슴 깊은 곳에서 까진 납득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모든 신화에는 창세와 세계의 구원, 전쟁 그리고 종말 같은 게 나오지만. 뭐, 상관없는 이야기야.”


이안도 어깨를 한번 으쓱하는 것으로 얘기를 끝맺었다. 굳이 그녀가 이해해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교단의 마차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도로를 비워놓고 있었다.


“아직 더 기다려야 되나?”


리지가 지루함에 저 멀리를 바라보려 기웃댔지만 사람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 뭔가가 지나가려 한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었다. 아까의 교단과는 사뭇 다른 기운이었다.


크지도 않은 말발굽 소리가 시끄러운 축제의 거리를 단숨에 장악했다. 사람들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조용히 무언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교단의 마차를 보며 축복의 말을 던지거나 기도를 올리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갑옷을 입은 기사 네 명이 길을 앞장섰다. 비싸 보이는 은색의 갑옷이었다. 심장에는 푸른 불꽃에 감싸진 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뒤를 느릿느릿 지나가는 마차는 조의를 표하는 검고 푸른색으로 장식되어 있었지만, 어쩐지 사람들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자.”


이안도 리지에게 속삭이며 마차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리지도 덩달아 바닥을 쳐다보게 되었다.


“뭔데? 왜 그러는 거야?”


리지가 낮은 목소리로 물어보자 마찬가지로 이안도 조용히 대답했다.


“아주 무서운 대 귀족이야. 맘에 안 든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를 죽여도 문제되지 않을 사람들이지.”


리지는 입을 떡 벌렸다.


“교단 사람들은?”

“종교적인 이들은 그래도 온화한 편이니까.”


그녀는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곧 그가 말하는 내용을 알아챘다.


“그러니까, 그런 적이 있는 사람들 이란거지?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을 잡아다 죽였던?”

“그래.”


이안은 짧게 대답한 후 더 말하지 않았고, 리지도 더 묻지 않았다. 자세히 귀를 기울여 보니 주변의 사람들도 목소리를 낮춘 채 조용히 떠들고 있었다.


“절연한 후계자가 이번 흉사에 죽었다는 소문이 정말인가 보군.”

“대도시도 여럿 망했으니까 말이지.”

“나는 새도 떨어트릴 공작가지만 꼴좋구먼.”

“절연한 후계자라니까? 쫓아냈더니 잘 죽었다고 좋아할 수도 있지. 피도 눈물도 없기로 유명한 분들이래도.”


작게 들리는 말 중 호의를 담고 있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말 발굽소리와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멀어지고 나서도 한참이나 싸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다시 시끄러운 축제의 공기가 돌아오고 나서 리지는 매우 피곤함을 느꼈다. 겨울 특유의 건조하고 찬바람이 체력을 뺏어 가는 것도 한몫했지만 그동안의 부실한 식사와 수면이 그녀의 기본 체력을 많이 갉아놓았던 것이 더 큰 원인이었다.


그 사이 이안을 졸라 결국에는 사낸 캐러멜 애플을 손에 쥐고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지만, 이미 눈이 반쯤 풀려있었다.


축제를 위한 야시장은 아직도 성대했지만, 이안은 이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 도시에 들린 이유는 내일 있을 위령제 때문이다. 아무리 저녁에 열린다 하더라도 점점 잊혀질 그들을 위해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안의 지론이었고, 이미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뜨고 있던 그녀도 쉽게 수긍했다.


다시 좁은 여관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이안은 싸늘한 방을 위해 난로부터 켰다. 그리고 물을 데우곤 씻을 물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녀는 코트도 벗지 않은 채 난로 앞의 의자에 앉아 잠에 들어 있었다.


이안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한 채 팔짱을 꼈다. 잠깐 벽에 기대어 그의 아내를 바라보더니 곧, 그는 리지의 코트를 벗겨 벽걸이에 걸어놓곤 가볍게 그녀를 안아들어 침대에 내려놓았다.


“옷까지 정리할 필요는 없겠지.”


무엇보다 다음날 아침 그녀의 표정이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신발을 벗긴 다음 가볍게 이불을 덮어주는 것으로 그는 일을 마무리 지었다. 검게 물들인 그녀의 머리카락이 약간 빛이 바랜 이불 아래 사르륵 거렸다.


그리고 이안은 공기를 데우는 난로 옆 의자에 풀썩 소리가 날정도로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언제나 혼자 떠나던 여행에 누군가가 함께 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큰 기력을 소모하게 했다. 다음부턴 주인공의 자리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피곤함이 마치 마수처럼 그를 덮쳤지만 그는 잠에 드는 대신 책을 펼쳤다. 옛날, 아주 먼 옛날. 세계가 죽어가기 이전에 존재했던 가장 위대했던 왕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론, 이것마저도 이 세계 누군가의 손을 빌린 아더의 작품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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