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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곰곰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 고인물이 업적을 다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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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곰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2
최근연재일 :
2024.07.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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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091

작성
24.06.0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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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글자
12쪽

엑스트라 스토리 4

DUMMY

루펠카리야는 미래를 볼 수 있다.


이는 과장도 무엇도 아니었다. 그녀가 여신에게 받은 가공할 축복인 <예지안>은 언젠가 도래할 미래를 직접 그 눈으로 볼 수 있게 한다.

모두가 그런 황녀의 능력을 찬양하고 찬미했다. 그녀의 능력은 이 제국에 영구한 부흥을 가져다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그 힘으로. 루펠카리야는 제국의 멸망을 보고 만다.

이 땅에서 모조리 축출된 줄 알았던 드래곤이 나타나 제국을 재로 되돌리는 두렵고 끔찍한 풍경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미 황가 안에는 그녀의 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그녀의 두 언니가 황가 내의 권력을 양분해가며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으니까.

제3황녀에게까지 찾아올 인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가 두 거인에게 빌붙을 뿐. 침소에 누운 황제에게 찾아가 멸망에 대해 읍소해 봐야 코웃음도 치지 않으리라.


그녀가 아카데미에 발걸음한 것은 그 때문이다.

바로 이곳에서. 황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교육의 장에서.

멸망을 막아설 자신만의 군대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허나.


“정말 송구하오나, 잠들기 이전의 기억이 흐릿합니다. 시간을 좀 더 주신다면 떠올려보려 노력하겠으나······.”


또 하나의 인물이 그녀에게서 벗어나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를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허무하게도 빠져나갔다.


“······그게 사실인가?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단 말인가?”

“제가 어찌 황녀 저하께 불충을 저지르겠습니까?”

“······.”


가벼운 협박이라도 시도해보려다가 루펠카리야는 말을 멈췄다.

그녀가 가진 축복은 <예지안>이지 <심미안> 같은 게 아니었다. 미래를 볼 수는 있어도 사람 마음속을 파헤칠 수는 없는 것이다.


“구명의 은혜에 이렇게 아무런 보답도 못 드린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겁습니다.”


그런 그녀가 눈여겨보았던 인물. 숲의 북쪽 끄트머리에서 발견했던 자.

아즈일은 너무나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고 있을 뿐.


긴 침묵 끝에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온 건 나지막한 한숨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구나.”


벌써 3학년도 1학기가 다 지났는데 그녀의 곁엔 인재가 없었다. 그나마 한 가지 성과가 있었다면 언니인 제2황녀의 첩자 네드빌을 쫓아 보냈다는 것 정도일까.

허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무리 봐도 시간이 맞지 않았다.

아카데미 졸업 학년이 되었을 때 찾아올 거대한 멸망. 그것을 막기 위해선 발 빠르게 사람을 수배해도 모자랄 지경이었으나.


급하게 해서는 될 일도 풀리지 않는 법. 루펠카리야는 고개를 가볍게 젓고서 들고 있던 컵을 탁자에 내려두었다.

흘러내린 모래를 쥐려 해 봐야 소용없을 뿐이다. 기억을 잃었다는데 그에 대고 다그치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차라리 여기서는 자그마한 호의를 쌓아두는 편이 장기적으로 볼 때 나을 테니, 대신 그녀는 감춰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이어지는 건 교섭과 거래,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사소한 일상에 대해서였다.


“자작공자. 그대가 잠들어 있는 이틀간 이런저런 인물들이 그대를 찾아왔다.”

“······예?”

“맨 처음은 그대의 시종이었다. 이름이······, 그래. 모라티의 레일리아였지. 걱정이 가득해 보이더군.”


시종을 걱정시키는 건 주인으로서 못 할 짓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장난스러운 어조로 묻자 아즈일의 얼굴이 새파랗게 바뀌었다. 큰일이라도 난 표정이었다.


그 점마저도 루펠카리야에게는 신기했다.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시종에게도 격의 없이 대한다는 뜻이 아닌가. 소문의 그 아즈일이.

도대체 네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루펠카리야는 그런 것을 묻지는 않았다. 그저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다음엔 반데가르 공작영애와 기사 벡스, 그 둘이었다.”


벡스는 몰라도 피리스가 찾아온 것은 의외였다. 루펠카리야는 그때의 일을 천천히 회고해봤다.


- 오, 죽지 않아서 다행이네.

- 참 나, 기사씩이나 돼서 이딴 걸 걱정하고 있냐?

- 그런 너도 소식 듣고는 걱정했잖아 피리스.

- 내가 언제 이 자식아. 맞을래?


비록 그 질문이 있기도 전에 피리스는 주먹부터 뻗고 있었기는 했지만.


뭐가 됐든 피리스와는 숲의 중심부에서 생사를 함께 넘은 사이였다. 만일 피리스가 너무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루펠카리야는 그녀에게도 ‘영입’을 제안해볼 예정이었다.

공작영애 피리스에게 어마어마한 재능이 잠재되어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녀를 아군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추후 대단히 든든할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피리스는 도대체 왜 이 아즈일의 병문안을 왔던 것일까.

실습에서 둘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 아즈일은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그 뾰족한 피리스를 다듬었을까.


그리고, 기사 벡스는.

숲의 북쪽 끄트머리에서 루펠카리야를 맞이하고, 아즈일을 직접 등에 업은 채 이곳으로 달려온 그는.


- 부탁드립니다 황녀 저하.

- ······.

- 그 자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디 그 자를 살려주십시오.


벡스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길래 자신에게 그런 부탁을 했을까.


“······그대의 처지를 들으면 기사 벡스도 안타까워하겠군.”

“어어, 예?”


허나 벡스의 물음이 무엇이었든 아즈일에게 기억이 없어서야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얼빠진 표정을 짓는 아즈일을 보다가 루펠카리야는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으로 말해두어야 할 인물이 있었다.


“끝으로.”

“······?”

“칼라일 그리미어. 그 자도 그대를 찾아왔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즈일보다도 더욱 영문을 알 수 없는 자.

좀처럼 종잡을 수 없고, 때로 어떤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으며, 무엇보다.

그 또한 숲의 북쪽 끄트머리에 있었는데도.

아즈일의 목숨을 구해준 듯이 검을 쥔 채 서 있었는데도, 아무런 말도 없이 그 자리를 떠났던.


칼라일은 이곳에 병문안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것을 과연 병문안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그 자는 찾아와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

“그대의 얼굴만 보고선 입 한 번 열지 않고 돌아갔다. 뭘 묻고 자시고 할 새도 없더군.”


칼라일 또한 루펠카리야에게 있어선 인재 영입 후보였다. 그 중에서도 제법 순위가 높다고 할 수 있었다.

문무양면으로 빼어난 데다가 루펠카리야를 어려워하지 않는 자.

그와 함께라면 설령 역경이 닥치더라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근거 같은 것은 전혀 없었음에도.


허나, 칼라일은 루펠카리야에게 거리를 뒀다.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지 않았다. 어려워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가 이 아카데미에 발걸음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아직은.


“여기까지가, 그대가 잠들어 있던 이틀간의 이야기다.”


모르더라도 이야기는 진행되는 법이니, 아즈일은 앉은 채로 루펠카리야에게 예를 다했다.


“송구하옵니다 황녀 저하. 저하께서 베푸신 크나큰 아량, 평생토록 잊지 않겠습니다.”

“무어, 본인이야말로 상처가 다 아물지도 못한 이에게 너무 몰아붙이기만 한 것 같아 미안할 따름이네.”

“과한 걱정이십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미안함도 무엇도 집어던진 채 이곳에 잡아두고 싶으나.”

“그······, 예?”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짓는 아즈일을 보다가 루펠카리야는 피식 웃었다. 그런 표정을 지어도 어차피 시간제한은 진즉에 넘어있었다.

루펠카리야가 서 있는 창가로부터 서서히 방이 밝아지는 중이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커튼을 가볍게 걷자, 그곳엔 새벽이 물러가고 해가 떠오르는 중이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본인은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자. 사사로운 욕심에 눈이 멀어 일과를 물릴 수는 없는 법이니, 오늘은 그대를 이만 보내주도록 하겠다.”

“화, 황송하옵니다 저하.”

“다만 한 가지. 이것만큼은 묻지 않고 지나칠 수 없을진대.”


창밖에서부터 조금씩 쏟아지기 시작하는 햇빛이 백은색 머리카락에 반사되어 주변에 영롱한 빛을 흩뿌렸다.

그 사이에서.


루펠카리야는 담담한 어조로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그대가 이 학원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언젠가의 칼라일에게 물었던 것과 똑같은 의문.

이 아카데미에 어찌하여 진학하였으며, 무엇을 위해 학업을 정진하는지.

아즈일의 목표란 도대체 무엇인지.


루펠카리야의 분위기에 전염된 것인지 아즈일 또한 그때만큼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 긴장이 풀어진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무사히 졸업하는 것뿐입니다, 저하.”


문답은 거기까지였다. 루펠카리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서 등을 돌려 방을 나섰다.

그 다음 방에 들어온 건 루펠카리야의 시종들이었다. 손에는 남학생의 교복 한 벌을 들고 있었다.


아즈일은 조금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다가도 결국 시종들에게 몸을 맡겼다. 따뜻한 수건으로 온몸을 새로 닦고 옷이 입혀지면서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그러고 보면 <발락>의 불길에 의해 새까맣게 불탔던 피부였다. 그랬을 터인데 지금 피부엔 상처나 흉터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


시종들마저 전부 떠나 다시금 혼자가 된 방.

새 것처럼 빳빳한 교복을 차려입은 채 아즈일은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정도는 할 걸 그랬나.”


* * *


다만 아즈일도 어설프게 생각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방심한 것이다. 모든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해서. 몇천 시간이나 게임을 반복하는 동안 루펠카리야에 대해 다 알았다고 여겨서.


“······.”


루펠카리야는 다른 방에 가서도 곧바로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편한 옷차림 그대로 어두운 방에 앉아서는, 잠시 손으로 턱을 괸 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염된 숲의 주인>을 토벌하자마자 루펠카리야는 칼라일의 기척을 쫓아 숲의 북쪽 끄트머리로 달려 나갔다. 그곳에서 만난 건 검을 든 채 마수 앞에 서 있는 칼라일과 쓰러진 아즈일, 그리고 기사 벡스였다.

그녀는 벡스에게서 사건의 전말을 대강이나마 전해 들었다. 그는 전투의 양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눈에 담았고, 아카데미에 잠들어 있던 고대의 괴수를 무력화시킨 건 벡스도 칼라일도 아닌 아즈일. 그 자였다고.


- 저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재능입니다, 저하.


벡스는 제국의 역사상 최연소로 기사 서임을 받은 자였다. 그의 재능이란 말하는 것이 입 아플 지경이었다.

그런 그가 직접 그렇게 말했다. 아즈일을 두고 천재라고.

그게 아니면, 악마일 수밖에 없다고.


그렇다면 루펠카리야로서도 손을 써두는 수밖에.


아즈일은 중요한 걸 놓쳤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도대체 아즈일은 ‘새까맣게 불탔던 피부’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었을까. 교복으로 덮여있어야 할 피부가 왜 눈에 들어왔을까.

그런 와중에, 자신의 교복이 자연스럽게 세탁되어 돌아온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일까.


아즈일이 받은 교복은 루펠카리야가 그를 위해 특별히 새로 제작해준 것. 그곳에 ‘이런저런’ 마법 정도는 담겨있을 수 있는 법이니.

잠시 후 그녀의 귓가에서 나지막한 목소리 하나가 울려 퍼졌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정도는 할 걸 그랬나.’


그건 이 자리에 없는 아즈일의 혼잣말이었고.


마법의 정상 작동을 확인한 루펠카리야는 나긋하게 눈을 감았다.

목표가 무사 졸업이라면, 반대로 말하자면 졸업 때까진 이 아카데미를 떠나지 않으리란 뜻일 테니.


기이한 동급생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갈 시간은 아직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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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엑스트라 스토리 3 +8 24.06.02 2,032 82 12쪽
27 엑스트라 스토리 2 +2 24.06.01 2,055 80 14쪽
26 엑스트라 스토리 1 +4 24.05.31 2,101 84 13쪽
25 반데가르의 피리스 4 +6 24.05.30 2,154 81 15쪽
24 반데가르의 피리스 3 +3 24.05.29 2,186 86 14쪽
23 반데가르의 피리스 2 +10 24.05.28 2,286 84 14쪽
22 반데가르의 피리스 1 +6 24.05.27 2,328 87 13쪽
21 기말고사의 에이스 4 +3 24.05.26 2,427 94 13쪽
20 기말고사의 에이스 3 +4 24.05.25 2,488 93 13쪽
19 기말고사의 에이스 2 +6 24.05.24 2,531 90 12쪽
18 기말고사의 에이스 1 +5 24.05.23 2,615 89 13쪽
17 라우레아의 밤 5 +5 24.05.22 2,636 99 13쪽
16 라우레아의 밤 4 +1 24.05.21 2,769 94 14쪽
15 라우레아의 밤 3 +3 24.05.20 2,728 102 12쪽
14 라우레아의 밤 2 +2 24.05.19 2,846 95 12쪽
13 라우레아의 밤 1 +2 24.05.18 2,956 103 13쪽
12 호수가 그래봐야 6 +6 24.05.17 2,955 102 13쪽
11 호수가 그래봐야 5 +1 24.05.16 2,956 97 13쪽
10 호수가 그래봐야 4 +4 24.05.15 3,024 104 14쪽
9 호수가 그래봐야 3 +4 24.05.14 3,103 9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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