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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곰곰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 고인물이 업적을 다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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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무곰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2
최근연재일 :
2024.07.05 22:00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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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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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1
글자수 :
344,003

작성
24.06.0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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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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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
12쪽

낙제생이 힘을 숨김 3

DUMMY

교실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거부할 수 없는 중력이 나를 덮쳤다. 책상에 철푸덕 엎어지자마자 입에서 튀어나온 건 심장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온 한숨이었다.


“하아······.”


짧아도 너무 짧았던 일주일의 방학 후 나는 다시금 교실에 왔다. 보충수업을 듣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그 일주일마저도 검술 수련에 바짝 힘썼다 보니까 쉰 것 같은 기분도 안 드네.

그나마 방학 중에도 교실에 냉기 마법 정도는 돌려주는구나. 참 게임할 때에는 알 수 없었던 디테일이라고 할지······, 이런 것까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고 할지.


차가운 바람 아래에서 흘렀던 땀이 천천히 식어가는 중이었다. 조금 더 그러고 앉아있자 속속들이 낙제생들이 도착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보충수업의 커리큘럼은 하루에 전공 하나와 필수 교양 하나. 학기 중엔 보통 선택 교양 수업까지 진행하게 되니 그나마 하나는 빼준 거긴 하지만, 그래도 오후 시간까지는 꼼짝없이 이 아카데미에 붙잡혀 있어야 했다.

거기에 더해 학기 중엔 어느 정도 내가 수업을 골라서 들을 수 있는 데에 반해 보충수업은 완전히 지정제였다. 보충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생 자체가 적으니 할당되는 교수 자체가 적은 것이다.


3학년을 가르치는 검술 교수만 해도 네 명이나 되었지만 이 보충수업에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 이름을 보자마자 한숨부터 튀어나왔었지.

그리하여 대망의 보충수업 첫날 1교시. 검술 전공인 내가 들어야 하는 전공 수업.


드르륵.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진 건 전투화 철컥이는 살벌한 소리였다.

책상이 아닌 교단으로 걸어간 그 소리는 이내 입을 열어 걸걸한 목소리를 내뿜었다.


“그래 낙제생들. 다 모였나?”


고개를 들자 교단엔 익숙한 얼굴이 비쳤다.

게임을 플레이했던 내게는 무척 낯익은 얼굴.


“오늘부터 너희 낙제생들의 검술 교육을 담당하게 될 빅터다.”


하이어 게일 빅터 카를로스. 퇴역 기사 출신이며 최전선에선 오랫동안 ‘조장’을 맡았을 정도로 실력은 출중한 인물.

하얗게 덮인 수염 사이로 언뜻 비치는 수많은 흉터가 살아온 삶을 증명하는 이, 였지만.


그를 보자마자 내 얼굴은 자연스레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흠,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이군. 그래 그렇겠지. 이 빅터님이 가르친 녀석이 낙제 같은 걸 할 리는 없으니.”

“······.”


귀족 출신 학생들은 어지간해선 이 교수의 강의를 찾아듣지 않는다.

이유로는 첫째로 교수가 귀족 대우를 안 해준다. 교수 본인이 나름 이름 있는 귀족 집안 출신인데다 기사로서의 명성도 있다 보니, 가르치는 학생이 평민이든 귀족이든 신경을 안 쓴다.

그리고 둘째로는, 수업 스타일이 너무 막무가내였다.


“그래 패배자들아. 오늘 이 시간부로 나약한 자신은 버려라!”


빅터 교수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시대적 강의론을 설파하는 인간이었다.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빅터 교수가 내게 익숙한 건······, 스토리상 칼라일과 자주 엮이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성격이 호방한 만큼 재능 있는 학생들에겐 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러니 뭐든 시키면 곧잘 하는 칼라일에게 아주 눈동자를 반짝이며 달라붙는 NPC기도 했지.


“뭐해, 얼른 일어서! 이딴 좁아터진 교실에서 칼 같은 걸 휘두르겠냐! 나가면 가장 먼저 운동장 열 바퀴다!”


물론 아즈일인 지금의 나한테는 그저 피곤한 인간일 뿐이고.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때였다.


“······라고 말하고는 싶으나, 그보다 먼저 소개할 사람이 있다.”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던 학생들이 빅터 교수의 눈치를 살폈다. 나도 뭔가 싶어 보고 있으려니 그가 입가에 시원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덧붙였다.


“기뻐해라. 오늘은 특별한 일일 강사가 너희를 위해 찾아와주었다. 이 몸의 능력 있는 후배지.”

“······?”


일일 강사라니? 보충수업엔 그런 것도 있나.

그 점은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곧 빅터 교수가 두터운 팔뚝을 쭉 펴며 앞문을 가리켰다.


“들어오도록, 기사 벡스.”


그리고······, 열린 문 안으로 거대한 몸을 구겨 넣듯 들어온 인물이 있었다.

게임에 등장하는 완성형 캐릭터이자 지금 당장 교수들과 싸워도 전혀 밀리지 않을 NPC.


“반갑습니다. 벡스 베인입니다.”

“······.”

“빅터 교수님의 양해를 구하고 오늘 하루, 여러분의 일일 지도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벡스가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죽 둘러봤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둘러본 시선의 끄트머리에는······, 내가 있었다.


* * *


“져, 졌습니다.”


또 한 명, 눈앞에서 낙제생이 처참히 패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런 낙제생의 목에 검을 들이밀었던 벡스는 무표정하게 검을 거두고 목례했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정확히 8초였다.


일일 강사라는 게 도대체 뭔가 했더니 그냥 하나하나 붙잡고 대련이나 해주는 거였다.

물론 관점에 따라서는 영광일 수 있지. 현역 기사인 데다가 심지어 제국 역사상 최연소에 서임 받은 살아있는 전설인 벡스가 직접 검을 맞대준다니. 어찌 보면 낙제생 입장에선 다신 없을 기회겠다만은.


근데 8초 만에 얻어갈 수 있는 게 있긴 한 건가? 배움이고 나발이고 그냥 개털어버린 거 아닌가?

아니 다 떠나서. 이걸 해서 벡스가 얻는 게 도대체 뭐길래?


운동장으로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날 쳐다본 이유가 도대체 뭔데?


“다음, 거기 금발.”


눈살을 찌푸린 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남은 학생들을 둘러보던 빅터 교수가 이윽고 날 지목했다.

어차피 모든 낙제생들이 다 처맞는 구조라 피할 수는 없었겠지. 속으로 한숨이나 내뱉고서 앞으로 나섰다.


“쟝 드 아즈일 브리오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


이전에도 모든 학생들이 그랬듯이 나도 대련 전에 인사했는데 정작 저쪽에서 돌아와야 할 대답이 없었다.

이상한 마음에 고개를 들자 벡스는 조금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잠시 딴생각이라도 했나.


“아. 기사 벡스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사가 오갔으면 그 다음엔 대련을 시작할 차례였다.

허리에 찬 검집에서 천천히 검을 뽑으면서는 벡스를 가만 눈에 담았다.


원래 게임에서 벡스는 방패를 주무기로 들었지만, 그렇다고 검을 못 쓰지는 않을 거다. 최연소 기사 서임을 받을 정도면 아마 모든 전위 무기에 능통하고 그 중에서 그저 방패를 선택했을 뿐이겠지.

그러니 지금 검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리 이상하지는 않았다. 처음 보는 모습이지만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내가 이 대련에서 이길 가능성? 검을 대볼 필요도 없겠지.

벡스는 설정부터가 괴물이었다. 그가 가진 마력 혐오증이라는 특이 체질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세상을 구할 영웅은 칼라일이 아니라 벡스였을지도 모른다.


고작해야 엑스트라 따위가 싸워볼 상대는 결단코 아니었다.

하지만, 시험 정도는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어느 정도일까? 그간 나름대로 열심히 했던 수련의 성과는 과연 어떨까.


지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러나 1분.

저 벡스에게서 1분을 버틸 수 있다면 당장 내 검술이 써먹을 수준이 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


중단세로 검을 쥔 채 벡스를 자세히 살폈다.

이전까지의 그는 선공을 양보한 후, 그 공격을 고스란히 받아치고 다음 수에 반격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그랬다.


일단은 그걸 부수는 게 첫 번째.


“흡!”


거리를 좁히면서는 곧바로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초식을 선보였다.


───


[스킬]


<산화비천검散花飛天劍>

- 꽃이 지는 것을 아쉽다 여기지 말며 새가 나는 것을 부럽다 여기지 말라.

- 때가 되면 꽃잎도 깃털도 땅에 닿을 뿐이니, 아름다운 것은 찰나라.

- 아직 당신의 성취도가 낮습니다. 스킬을 수련하고 구결을 해방하세요!

- 현재 당신의 성취도 : ■■◆□□◇□□◇


───


바로 어제 손에 <산화비천검>의 3성을 열고 손에 넣은 새 구결. 그에 따라 새로운 초식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검이 닿는 거리에 들어가자마자 몸을 깊숙이 숙였다.

이어진 건 거의 발목을 노리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낮은 횡베기.


게임에선 견제기 겸 디버프 기술로 쓰이는 초식이었다. 맞은 적에겐 이동 속도 저하와 받는 대미지 증가 이중 디버프를 걸었다.

물론 ‘견제기’라는 건 검술 부자 칼라일한테나 해당되는 소리고, 지금은 엄연히 내가 가진 최강의 공격 기술이었다.


스킬의 도움을 받아 마나가 담긴 검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바닥을 휩쓸 듯 벡스를 향했다.

물론이지만 위험할 거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이걸로 벡스를 이긴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이 정도는 우리 집 시종 레일리아도 코웃음 치면서 막는다.


“······!”


하지만 막는 것 자체가 피곤한 검술이라는 거지.

격투 게임 용어를 가져오자면, ‘상대가 막아도 내가 이득’이다. 낮은 검을 막기 위해 벡스도 검을 낮게 보낼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검과 검이 부딪치기 직전에 나는 검의 방향을 살짝 틀었다.

이 또한 레일리아에게 배운 것이다.


- 아무리 날고 기는 검의 명수라도 이미 나아간 검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주 조금 정도는 마음을 담을 수도 있지요.


자세와 방향이 정해진 검술의 초식이라 할지라도 의식만 하면 그 방향을 미세 조정할 수 있었다.

벡스는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아예 힘으로 검을 튕겨낼 작정이었겠지만, 그러기 전에 바꾼 내 검이 벡스의 검날을 타고 쭉 올라갔다.

그래봤자 크로스 가드에 막히겠지. 그게 내가 바란 거다.


마나가 담긴 나의 검은, 최종적으로 벡스가 든 검의 손잡이 부분을 강하게 타격했다.

그렇게 초식은 종료. 실렸던 마나도 흩어져버린 다음.

곧바로 검을 들어 이격을 이어갔다. 벡스의 검에 충격을 주어 낮은 곳에 고정해두고 그대로 높은 곳에서 내려 베려는 것······까지가 나의 계획이었는데.


“흠!”


붉은 궤적이 보인 것과 벡스의 숨소리가 들린 건 거의 동시였다.

다만 궤적의 크기와 모양을 보니 나도 도무지 공격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깔끔히 포기하고 잽싸게 뒷걸음질 쳤다.


직후 벡스는 옆으로 몸을 틀어 내게 어깨 밀치기를 시도했다. 철산고다.

대련이었으니 위력은 반감되었겠지만, 코 앞에서 멈춘 벡스의 철산고를 보니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맞았으면 10미터는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뭐.

그 일격으로 나는 모든 공격권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전에 짜둔 계획이 끊긴 이후엔 벡스가 주도권을 넘겨받았고, 그 정도 되는 인물이 한 번 잡은 기회를 놓칠 리는 없었다.

벡스에게 사정 없이 휘둘리고 도망치고 최대한 막아봤으나 역부족이었다. 일주일 벼락치기로 얻은 검술로는 임기응변까지 해볼 실력이 나오질 않았다.


그저 벡스의 공격 궤적이 보이니까 그거 보면서 최대한 버텼을 뿐. 그마저도 내 체력이 먼저 바닥나고 말았으니.


“헤엑, 흐악, 허어억······.”


58초.

끝내 1분을 버티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졌습니다, 같은 고상한 인사 같은 걸 할 체력이 내겐 남아있지 않았다. 검까지 손에서 놓친 채 대자로 드러누워 숨을 몰아쉬는 게 내 한계였다.

2초만, 진짜 그거 마지막에 검 딱 한 번만 더 막으면 되는 거였는데 그걸 못해서!


아쉬워서 눈을 질끈 감고 있을 때였다.


“아즈일.”


저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진 건 벡스의 무서울 정도로 굳어있는 무표정과······, 그보다 더 무뚝뚝한 한마디였다.


“너. 대체 뭐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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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낙제생이 힘을 숨김 1 +5 24.06.04 2,100 70 12쪽
29 엑스트라 스토리 4 +8 24.06.03 2,110 90 12쪽
28 엑스트라 스토리 3 +8 24.06.02 2,134 88 12쪽
27 엑스트라 스토리 2 +2 24.06.01 2,158 85 14쪽
26 엑스트라 스토리 1 +4 24.05.31 2,205 90 13쪽
25 반데가르의 피리스 4 +6 24.05.30 2,258 86 15쪽
24 반데가르의 피리스 3 +4 24.05.29 2,287 91 14쪽
23 반데가르의 피리스 2 +10 24.05.28 2,392 89 14쪽
22 반데가르의 피리스 1 +6 24.05.27 2,436 91 13쪽
21 기말고사의 에이스 4 +4 24.05.26 2,543 99 13쪽
20 기말고사의 에이스 3 +4 24.05.25 2,603 98 13쪽
19 기말고사의 에이스 2 +7 24.05.24 2,644 95 12쪽
18 기말고사의 에이스 1 +5 24.05.23 2,730 93 13쪽
17 라우레아의 밤 5 +5 24.05.22 2,748 104 13쪽
16 라우레아의 밤 4 +1 24.05.21 2,886 99 14쪽
15 라우레아의 밤 3 +3 24.05.20 2,843 105 12쪽
14 라우레아의 밤 2 +2 24.05.19 2,976 99 12쪽
13 라우레아의 밤 1 +2 24.05.18 3,084 107 13쪽
12 호수가 그래봐야 6 +6 24.05.17 3,085 107 13쪽
11 호수가 그래봐야 5 +1 24.05.16 3,086 101 13쪽
10 호수가 그래봐야 4 +4 24.05.15 3,155 109 14쪽
9 호수가 그래봐야 3 +4 24.05.14 3,242 104 12쪽
8 호수가 그래봐야 2 +5 24.05.13 3,277 124 13쪽
7 호수가 그래봐야 1 +1 24.05.12 3,384 114 13쪽
6 스토리, 그 전 5 +3 24.05.11 3,496 117 13쪽
5 스토리, 그 전 4 +4 24.05.10 3,641 11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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