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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곰곰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 고인물이 업적을 다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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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곰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2
최근연재일 :
2024.07.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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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557

작성
24.05.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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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라우레아의 밤 3

DUMMY

돈은 다른 데에서도 바꿀 수 있다. 여기가 가까워서 먼저 왔을 뿐.

하지만 빈 병은 여기 말고는 구할 수가 없었다. 대장간이나 요리주점을 가서 병 달라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음, 아닌가? 어쩌면 주점에서는 빈 술병 정도는 줄 수도. 그러면 돈도 아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게임에서는 그런 기능이 없었고.

굳이 모험해보진 말자 그래. 빈 병 그거 얼마 하지도 않는데.


애초에 빈 병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펑펑 벌레>였다.

잡화점답게 줄리아는 별 희한한 걸 다 팔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벌레들이었다.


<반짝이는 돌>이 미궁 돌파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이 게임에선 자그마한 물건들에도 다 각자의 효용이 있었다. 단순히 도감 수집을 위해서 존재하는 건 없었고, 그건 벌레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식물들이 연금술의 재료로 쓰이는 것처럼 대부분의 벌레들은 연금술에 특정한 효과를 더해줄 촉매로 쓰였다. 없어도 무언가를 만들 수는 있지만 있으면 좀 더 좋아지는 것이다.

그 외의 용도도 없진 않은데 <펑펑 벌레> 같은 건 워낙 단순해서 좀 한정되어 있다. 캐릭터나 몬스터를 소리로 놀래키는 그 정도.


아무튼, 빈 병과 촉매.

그걸 사겠다는 건 뻔하지.


안전한 기말고사를 위해 일단은 보스 약화 물약을 만들 생각이었다.


“······.”


다만 줄리아는 여전히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벌레 찾는 사람이 그렇게 드문가? 어차피 게임에서 벌레 파는 건 잡화점인 얘뿐인데.


“병도 팔아주기 좀 그래? 그 뭐냐, 물건의 주인이 이 보석 도로 가져갈까 봐? 필요하면 거래 증서라도 남겨줄까?”

“아, 아뇨 손님!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거기까지 말하자 줄리아는 황급히 자신의 창고로 향했다.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보석의 주인이 찾아올 일은 없을 거다. 던전에서 명을 달리하셨으니까.

그렇긴 한데 뭐,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남은 금은보화들은 그러면 어디서 처분하나 그런 걸 고민하던 찰나였다.


“오래 기다리셨죠 손님!”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줄리아는 양손에 물건들을 든 채 돌아왔다. 빈 병은 나름대로 튼튼하게 만들어졌는지 가판대에 툭 내려놔도 깨지거나 하는 것 같지 않았다.


“확인해보시죠!”


줄리아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것처럼 확실히 병에는 문제가 없었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옆, 자그마한 유리병 속에 갇힌 날벌레들로 쏠렸다.

반딧불이와 닮은 그 작은 벌레를 담은 병을 손에 들어보자 자연스럽게 정보가 떠올랐다.


[도감에 새로운 개체가 추가되었습니다.]

[도감을 펼쳐봅니다.]

[ >>> ]


───


[아이템]


<펑펑 벌레>

- 날아다니며 펑, 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난다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주로 밤의 호숫가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벌레입니다.

- 연금술 촉매로 쓰면 <불안정>의 효과를 부여합니다. 모험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딱이겠네요.


───


“문제 없네.”


다 살펴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병을 가판대에 다시 내려두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훨씬 좋은 촉매인 <황금충>이나 <자정의 요정>을 손에 넣고는 싶었지만······, 애초에 그런 레어 벌레는 상점에서 파는 것들도 아니었다. 돈이 있어도 못 구하지.

지금 단계에서 구할 수 있는 촉매 중에선 이만한 게 없다. 특히 만든 포션을 내가 먹을 게 아니라 어디 뿌릴 거면 더더욱.


거래는 성사된 듯하니 유리병들이 깨지지 않게 자루에 집어넣었다.

아니 근데 다시 생각해봐도 웃기네. 뭔 놈의 NPC가 물건의 출처 같은 걸 의심하고 앉았냐는 말이야. 환장하겠다 진짜.

속으로 혀를 차며 돌아가려던 그때였다.


“저 손님!”


줄리아가 급하게 날 부르길래 고개를 돌렸다. 의문을 표하고 있으려니 이내 그녀는 마음을 굳힌 듯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증서 써주실 건가요?”

“뭐야. 다시 생각해보니 필요해? 그래 뭐 까짓 거.”


고작해야 빈 병과 벌레 따위에 거래 증서 써주는 것도 웃기긴 하다만, 일 확실하게 해둬서 나쁠 건 없지. 우리 이제 하루 이틀 볼 것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며 품에서 펜을 꺼내고 있을 때였다. 줄리아는 작게 고개를 젓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툭 말을 내뱉었다.


“그러면 전부 매입할게요.”

“······?”


전부라는 건 분명 금은보화 전부를 말하는 거렷다.

대체 창고에 다녀온 그 사이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줄리아는 그렇게 말을 바꿨다. 물론 나한테 나쁠 건 없었으니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내 눈앞에는 두 개의 문서가 놓이게 되었다.

하나는 이 거래가 둘 사이의 상호협약을 통해 맺어졌다는 증서.

하나는 그 거래로 지불될 현금의 어음. 물론 아직 금액란은 비어있었다.


“물건, 다시 보여주시겠어요?”


문서 작성을 끝마친 줄리아는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슬쩍 보니 문서에 뭐 문제 있어 보이진 않아서 나도 등에 멨던 자루를 다시금 내밀었다.

다만 건네주면서는 한 가지.


“근데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냐?”


그저 순수한 호기심으로서 그렇게 물었고.

게임에서 기억하던 그대로, 줄리아는 생긋 웃으며 이렇게 답할 뿐이었다.


“상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신용 아니겠어요. 그쵸, 선배?”


그런 다음엔 보석을 늘어놓고 주판을 빠르게 튕기는 줄리아가 있었다.

한 발자국 떨어져 서서는 보석 감정에 집중하는 그녀를 가만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이 게임의 모든 도감을 다 수집한 고인물이라지만, 그렇다고 게임의 모든 걸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난 플레이어일 뿐이지 제작자는 아니니까.

‘루트’가 있는 메인 캐릭터들에 대해서는 제법 많은 걸 알고 있다 자부할 수 있어도 NPC들은 아니었다. 게임을 아무리 깊게, 오래 판다고 한들 게임에 나오지도 않는 세부 설정까지 알아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래도 이 게임 [Goddess & Bravers]는 나름대로 디테일을 챙겨주는 편에 속했다. NPC와의 교류가 많아질수록 짤막한 스크립트 정도는 하나씩 던져주곤 했다.

이를테면 이 NPC, ‘상점’ 줄리아. 그녀가 파는 물건을 일정 수치 이상 사들이면 하나씩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이 몇 개 있었다.


풀네임은 줄리아 마일드.

규모 있는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변덕스러운 면이 있어 열다섯의 나이로 아카데미에 자진 입학.

아카데미 내부에서 은근슬쩍 상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교수들도 알고는 있지만, 그녀 특유의 방법으로 전부 ‘매수’함.

졸업하면 기사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음. 그렇다면 어째서 아카데미에 들어왔는지 물어보면 미소로 대답.

추측컨대, 그저 돈을 벌러 왔을 뿐.

뭐 그 정도.


“······.”


금은보화의 감정은 순식간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보물들을 채 10분도 걸리지 않아 전부 값을 매긴 줄리아는 미리 작성해둔 어음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곳에 빈 병과 벌레 값을 뺀 감정가를 적어서 내게 보여주었다.

그걸 보고서는 나도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상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용이라.


“앞으로 잘 부탁한다.”


어음에 적힌 금액은 내가 계산한 금액과 정확히 일치했다.


* * *


“······.”


금발의 3학년 남학생이 거래를 끝내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후.


줄리아 마일드는 생글생글 웃는 표정을 싹 바꾼 채 무표정하게 가판대에 턱을 괴었다.

그곳에 놓인 증서 한 장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 증서의 결론이 지금 그녀의 발치에 더럽고 해진 자루로서 놓여있었다.


이딴 증서가 정말로 거래를 지켜줄 수 있진 않을 거다.

줄리아도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당장 내일 또 다른 귀족이 찾아와 보석들을 내놓으라고 하면 증서고 나발이고 평민인 줄리아가 버틸 수 있는 재간은 없었다.

그렇기에 원래는 거래를 안 받으려고 한 거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찾아온 손님이 바로 그 아즈일이었으니까.


상인에게는 정보가 곧 생명이다. 잘못된 거래는 돈을 잃게 하지만 잘못된 정보는 목숨을 잃게 한다.

줄리아는 아카데미에 들어온 지 이제 1개월 된 신입생이었지만 이미 전교생의 얼굴과 가문과 성격과 소문까지 모두 다 기억하고 있었다. 상인이라면 그게 기본이라고 그녀는 믿었다.


하물며 아즈일의 평판을 주워듣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워낙 개판인 걸로 유명했으니까.

막말로 아즈일이 내놓은 이 물건들이 전부 장물이라고 한다면, 그런 걸 거래해버린 줄리아의 평판 또한 순식간에 끝장날 것이 분명했다.

소문만으로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아즈일은 돈에 허덕인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왔으니 어디서 나쁜 일을 벌였다고 해도 이상할 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줄리아는 거래를 받았다.

계기는 정말 별 거 없었다. 지금 그녀의 가판대 위에 증서와 함께 놓여있는 몇 개의 보석들. 아즈일이 별 것도 아닌 물건들을 요구하며 내놓은 그 귀퉁이 깨진 보석들 때문이었다.


아즈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았지만 그때 줄리아는 놀란 표정을 숨기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 보석들의 값어치가 요구한 물건의 값과 정확하게 일치했던 것이다.


금화나 은화 같은 화폐로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물물교환이었다.

그 말은 달리 말하자면, 마모된 보석들의 감정가마저도 아즈일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채로 거래를 제시했다는 뜻이었다.

상업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돈 놀음해본 인간이 아니라면 흉내 낼 생각도 못 할 기예였다. 적어도 금전 감각 없는 귀족 자제들이 따라 할 일은 결코 아니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그저 손에 집힌 몇 개의 보석이 운 좋게 물건값과 맞아떨어졌던 걸까?

줄리아는 그런 걸 믿지 않았다. 우연과 미신 따위를 믿어서는 상인으로서 대성할 수 없었다.


저울 위는 오직 냉엄한 계산뿐. 금화를 손에 쥐고서는 부모형제자매도 믿지 말지니.

줄리아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아즈일은 거래로 묶어놓고 지켜볼 만하다.


소문과 아무리 거리가 멀더라도 줄리아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우선으로 믿었다.


“흠.”


다만 그렇게 결론 내려버리고 나면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이제는 자신의 귀로 들어오는 소문들 자체를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줄리아가 입학 한 달 만에 전교생의 모든 소문을 수집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돈이었다.

그녀는 ‘유료 소문’을 사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문의 신빙성이 흔들리는 지금이라면.


“‘귀’를······, 좀 바꿔야 하나.”


손가락 끝으로 가판대를 톡톡톡 두들기던 때였다.

사람이 아닌 것처럼 무표정하던 그녀의 얼굴이 순간 바뀌었다. 눈 깜빡할 시간이 지난 후엔 이미 만면에 미소를 장착한 뒤였다.


“어서 오세요, 줄리아의 ‘어디서든 상점’입니다!”


다음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줄리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돈은 끝없이 일하는 자에게 웃어주는 법이었으며.

그런 그녀의 가판대 앞에 선 건, 흑발이 인상적인 한 남자였다.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니며언, 귀여운 저를 한번 보고 싶어서?”


줄리아의 아양에도 남자는 관심 없다는 듯 가판대에 금화나 툭,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무표정하게 한마디 던질 뿐.


“사교도에 대해 아는 거 있나?”


황녀의 호위, 네드빌의 뒷목에 붙어있었어야 할 <혈각충>.

중간고사 때 칼라일 자신이 일부러 살려놓고 갔던 것.


심히 미심쩍게도,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떨어져 죽어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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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엑스트라 스토리 3 +8 24.06.02 1,887 79 12쪽
27 엑스트라 스토리 2 +2 24.06.01 1,910 78 14쪽
26 엑스트라 스토리 1 +4 24.05.31 1,953 82 13쪽
25 반데가르의 피리스 4 +6 24.05.30 2,007 79 15쪽
24 반데가르의 피리스 3 +3 24.05.29 2,040 84 14쪽
23 반데가르의 피리스 2 +10 24.05.28 2,130 81 14쪽
22 반데가르의 피리스 1 +6 24.05.27 2,177 85 13쪽
21 기말고사의 에이스 4 +3 24.05.26 2,278 92 13쪽
20 기말고사의 에이스 3 +4 24.05.25 2,333 91 13쪽
19 기말고사의 에이스 2 +6 24.05.24 2,378 88 12쪽
18 기말고사의 에이스 1 +5 24.05.23 2,455 87 13쪽
17 라우레아의 밤 5 +5 24.05.22 2,470 97 13쪽
16 라우레아의 밤 4 +1 24.05.21 2,597 92 14쪽
» 라우레아의 밤 3 +3 24.05.20 2,556 100 12쪽
14 라우레아의 밤 2 +2 24.05.19 2,660 93 12쪽
13 라우레아의 밤 1 +2 24.05.18 2,773 101 13쪽
12 호수가 그래봐야 6 +6 24.05.17 2,771 100 13쪽
11 호수가 그래봐야 5 +1 24.05.16 2,772 95 13쪽
10 호수가 그래봐야 4 +4 24.05.15 2,836 102 14쪽
9 호수가 그래봐야 3 +4 24.05.14 2,912 97 12쪽
8 호수가 그래봐야 2 +5 24.05.13 2,953 115 13쪽
7 호수가 그래봐야 1 +1 24.05.12 3,053 105 13쪽
6 스토리, 그 전 5 +3 24.05.11 3,153 110 13쪽
5 스토리, 그 전 4 +4 24.05.10 3,286 111 13쪽
4 스토리, 그 전 3 +4 24.05.09 3,443 114 14쪽
3 스토리, 그 전 2 +6 24.05.08 3,620 120 13쪽
2 스토리, 그 전 1 +8 24.05.08 3,970 130 12쪽
1 그냥 죽는 엑스트라 +10 24.05.08 5,450 13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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