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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곰곰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 고인물이 업적을 다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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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곰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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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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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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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기말고사의 에이스 2

DUMMY

드넓은 아카데미의 운동장에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옹기종기라고 말이야 했는데 운동장이 넓어서 그렇게까지 많아 보이진 않았다. 실제로도 한 학년에 이백 명 안팎이었나 했을 거고.


“······다 모인 것 같군.”


그렇게 3학년들을 한데 모아두고서 저 앞에 교수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글주글한 주름이 여기저기 피어있는 민머리. 눈두덩은 깊게 파여있고 볼도 홀쭉하게 들어간 데다 피부색도 병적으로 창백해서 어딘가 위험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기 성 가브리엘 아카데미의 설립 멤버 중 하나였다.


고등 변이 학파 교수, 탈라스 브림블.

나야 검술 전공이었으니 아카데미에서 마주칠 일이 많이 없겠지만 메인 스토리에선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교수였다.


유령도 두려워 떨 만큼 음산한 목소리로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 자네들을 이곳에 모은 건. 한 달 후에 있을 외부 실습에 함께 할 조 편성을 위해서다.”

“······.”

“전위 둘. 후위 둘. 그렇게 넷이 한 조가 될 거다. 추첨은 완전히 무작위지만 지금부터 호명하는 인원은 예외니 앞으로.”


그리고 루펠카리야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불려 나갔다. 이 흐름은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불려 나가는 예외는 전위나 후위, 그렇게 명백하게 나눌 수 없는 경우였다. 마법과 검술 복수 전공생이라든가, 당장 탈라스 교수가 가르치는 <변이 학파> 전공생이라든가. 경우에 따라 전위와 후위 둘 모두 설 수 있는 케이스들이다.

그런 인물들은 조 추첨이 끝난 후 빈 자리에 들어가게 된다······, 뭐 그런 설정이 있긴 한데. 지금 당장에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마찬가지로 예외로 불려 나간 제3황녀 루펠카리야. 그녀가 이번 에피소드의 트리거가 될 거다.


“잠깐. 다른 애들은 그렇다 쳐.”


그때껏 조용히 있던 인물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정령사 피리스. 군중 속에 있던 그녀는 탈라스 교수 앞에 나와서 루펠카리야를 삿대질로 가리켰다. 무려 그 황녀를 말이다.


“황녀 나리는 왜 예외인데?”

“······이의 사항은 추후에 받는다. 들어가도록.”

“싫은데. 설명이나 해, 왜 황녀는 예외로 빠진 건지.”


운동장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피리스는 교수에게 정면으로 대든 것으로 모자라 이젠 황녀를 향한 예의조차 지키지 않고 있었다.


“······정령 전공 피리스.”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

탈라스 교수는 원래도 험악한 얼굴에 눈살까지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이의는 추후에 받는다고 말했다. 들어가도록.”

“그니까.”


그리고 뭐, 피리스가 고작 그런 협박에 굴할 인물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래도 되는 신분이었다.


“싫다고 대머리 자식아.”


일시에 무관하게 황제에게 직언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은 이 제국에 단 세 명. 만민이 경의를 담아 칭하기를 ‘삼공작’이다.

그들 중에서도 황제의 오른편에 가장 가깝다고 불리는 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대공’ 반데가르였으며, 그 반데가르 대공의 슬하엔 자식이 딱 한 명 있었다.

늦게 본 외동딸이어서 엄하게 대하고 싶어도 그러질 못했다. 오냐오냐 키우다 보니 어려서부터 두려움이 없이 자랐다.


마리 엘레노어 르 피리스 몽트 반데가르.

그것이 공작영애 피리스의 풀네임이었다.


이 카탈마이어 제국의 권력 피라미드 최상위에 위치한 존재면서, 동시에 성 가브리엘 아카데미 안에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할 인물.

······이어야 했지. 그녀보다 더 높은 신분이 아카데미 입학을 결정하지만 않았더라도.


“보나 마나 또 황녀한테 특혜나 주려는 거잖아? 내 말이 틀려? 꼴에 교수라는 게 아주 학생들을 개X으로 알아.”


원래도 한 성깔하는 피리스는 이 아카데미에 들어와서 더욱 사나워졌다. 교수부터 학생들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특히 그 눈엣가시 중 최고봉은 역시 루펠카리야였다. 계획에도 없던 동갑내기 황녀가 아카데미에 들어온 바람에, 최고의 자리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끝도 없이 그녀와 비교되기까지 했다.

황녀 저하는 고귀하신데 공작영애는 그렇지 않으시다더라.

황녀 저하는 성실하신데 공작영애는.


불만이 쌓여도 가득 쌓일 수밖에 없었다. 꾹 눌러 참아왔던 그 화가 폭발하는 게 바로 이 조 추첨 에피소드였다.

피리스는 물러서지 않을 거다. 신분도 신분이고 배경도 배경이지만, 다른 것보단 역시 그 불같은 성격 때문에.


침묵하던 탈라스 교수가 끝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검술 전공 루펠카리야 학생은 지난 중간고사 때 암살 미수를 겪었다. 그런 일이 재발한다면 누가 책임을 질 수 있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당연히 황녀 본인이 져야지.”

“틀렸다. 학생으로 입학한 이상 안전에 대해선 아카데미가 그 책임을 진다.”


근데 또 탈라스 교수도 만만치 않단 말이지. 상대가 대공의 외동딸이라고 해도 상관을 안 한다.

오히려 공작영애니까 이 정도 배려를 해준 거다. 원래라면 설명도 없었을 거다.


“정령 전공 피리스. 자네도 암살미수를 겪고 나면 같은 처사를 경험해볼 수 있을 거다.”

“······.”

“이해했으면 이제 들어가도록. 다음은 없다.”

“위험해서 감싸고 돌기나 할 거면 아예 시험도 치르지 말라고 하지 그래?”


물론 피리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이제 루펠카리야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귀중하신 몸이면 도대체 아카데미 같은 데엔 왜 들어온 거냐고. 뭘 위한 곳인데 여기가? 어?”

“······말을 듣질 않는군.”


그러면서 그는 피리스를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다음은 없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려는 것이다.

변이 학파 교수라는 직함에 걸맞게 탈라스는 상당한 실력의 마법사였다. 눈앞에 있는 학생 하나 따위는 순식간에 동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만큼.


드높은 공작영애가 한순간에 개가 되어버리는 그런 모습이 펼쳐질 수도 있었겠으나······.

거기서는 내 기억대로 정확한 타이밍에 끼어드는 인물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음험한 빛과 함께 탈라스 교수의 손가락 끝에서 마법이 발동했지만, 그 변신 마법은 둘 사이에 끼인 제3자의 존재로 곧 무산되었다.


“숙부님께서 부탁하신 일이 있어서, 벌이라면 차라리 제가 받겠습니다.”


2미터가 넘는 장신에 떡 벌어진 어깨. 온몸에 가득 차 있는 근육까지.

NPC로 등장하는 벡스 베인은 이 게임에 몇 안 되는 ‘완성형 캐릭터’다.

지금 당장의 무위로도 아카데미 내에 적수를 찾아보기 어려울 수준인데, 그에 더해 그에겐 특수한 체질마저 하나 가지고 있었다.


“······흠?”


벡스를 바라보던 탈라스 교수가 이 자리에 와 처음으로 흥미를 보였다.

이 거구의 남학생에게는 자신의 마법이 전혀 통하질 않았다.


“마력혐오증인가?”

“어, 예. 그렇습니다.”


선천적으로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높게 태어난 인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수련이나 비약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어지간한 마법은 맨몸으로도 튕겨내는 지극히 희귀한 특수체질.

다만 그건 체질인 동시에 병이기도 했다. 좋은 효과만 있다면 ‘혐오증’ 같은 이름은 붙지 않았을 것이다.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는 건 다르게 말하자면, 이로운 마법의 효과마저 누리지 못한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벡스는 앞으로도 평생 그 어떤 버프 마법이나 포션, 심지어는 여신의 축복마저 안지 못한 채 살아가리라.

허나 그에겐 꾸준히 기른 신체 능력이 있었다. 천부적인 전투의 재능도 있었다.


“그렇군. 자네가 그 기사 벡스 베인인가.”


그것이 벡스가 열한 살이라는 경이적인 나이에 <기사>가 될 수 있었던 방법이었으니.


“자네의 얼굴을 봐서 이번은 넘어가 주지.”

“감사합니다 교수님.”

“허나 루펠카리야 학생에 관한 것은 아카데미에서 결정한 사안이다.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다.”


탈라스 교수는 피리스를 향해 시선을 던지더니 곧 고개를 돌렸다. 그것으로 볼일은 모두 끝이라는 것처럼.

벡스도 다시 한번 탈라스 교수에게 고개를 숙이고서 반쯤 억지로 피리스를 밀었다.


“들어가자 피리스. 이번엔 네가 심했어.”

“······흥!”


마음에 안 드는 것투성이긴 했지만 피리스라고 그 상황이 되어서 더 물고 늘어질 수는 없었다. 결국 그녀도 탈라스 교수와 루펠카리야를 번갈아 노려보다가 새침하게 한쪽으로 빠졌다.


“······.”


그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나는 눈에 띄지 않는 한쪽 구석에 있었다.

거기까지 지켜보고 나자 안도의 한숨마저 나왔다.

그 어떤 변수도 이변도 없었다. 정확하게 나의 기억대로였다.


이 다음에는 조 추첨이 이루어지고, 그리고 잠시 예외로 빠져 있던 루펠카리야는 중간고사에서도 덕을 봤던 칼라일의 조로 편입이 될 거다.

피리스는 그 모습을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노려보겠지만 당장은 다른 조로 시작을 하고······.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셋이 함께 움직이겠지. 보스를 잡기 위해서.


이제 중요한 건 정말로 나뿐이네. 과연 내 조가 어떻게 될지.


탈라스 교수는 소란의 정리를 끝낸 후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침묵 속에서 그가 허공에 손가락을 한 번 휘젓자 모두의 머리 위로 커다란 환영이 피어올랐다.

사각형의 틀과 학생들의 이름만 주욱 나열되어있는 모습이었다. 미적 감각이라고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는 그 광경을 두고 탈라스 교수가 한 번 더 손가락을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 후,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의 손 안에 마법으로 만들어진 공이 하나씩 들렸다. 이걸 열면 내 조가 어디인지, 누구와 함께하는지 결정되는 식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학생들도 하나둘씩 그 공을 열어 결과를 확인했다. 공이 열리면 그 즉시 하늘에 떠 있는 이름이 해당된 조로 들어가게 된다.

모두가 고개만 들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빠르고 간결한 게 탈라스 교수다웠다.


“후······.”


스토리대로 칼라일의 이름이 1조에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한 후, 나도 긴장된 마음으로 공을 열었다. 적혀있는 숫자는 13이었다.

느닷없이 스토리가 바뀌어서 1조가 되거나 한 건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13이라.

어딘가 익숙한데. 묘하게 본 것 같은데. 뭐더라.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내 이름. 쟝 드 아즈일 브리오트.

그 바로 아래. 같은 13조.


마리 엘레노어 르 피리스 몽트 반데가르.


“······.”


순간 섬뜩한 소름이 돋아 돌아봤다가 저 먼 곳에 서 있던 피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한참이나 무표정하게 날 쳐다보다가······, 곧 영문을 모르게 히죽 웃었다.


······혹시 이거 X됐나?


* * *


“어 그래. 나 모르는 놈 없지?”


조 추첨도 다 끝나고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이 쭈볏쭈볏 같은 조원의 얼굴을 확인하며 어색한 인사를 나눌 때.


피리스는 인사고 뭐고 생략한 채 사악한 얼굴로 리더마냥 먼저 입을 열었다. 뭐 신분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리더를 맡을 자격은 충분할 거다.

사소한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음. 리더께서 조금 많이 감정적이시라는 점이겠지.


“내가 1등을 바라는 건 아니야. 근데 황녀 있는 조는 무조건 이기고 싶거든?”


그 황녀 있는 조가 기말고사 1등이 될 겁니다만······.

그런 말을 꺼내지도 못한 채 피리스는 내 쪽을 돌아봤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정확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너. 저번 중간고사에서 5등 했댔지?”

“예?”

“맞아 틀려. 똑바로 말해.”

“그, 그렇긴 한데요.”


불안한 예상은 빗나가질 않는다던가. 피리스는 다시 한번 히죽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난 우리 에이스만 믿는다. 응?”

“······.”


작전회의고 뭐고 없었다. 그걸 끝으로 피리스는 먼저 운동장을 떠나버렸다.

남아있는 조원 둘과도 잠깐 얘기를 나눠봤는데, 둘 다 낙제생 턱걸이 수준이었다. 적어도 전력이 되어주길 기대할 사람들은 아니었다.


기말고사에서 학사 경고라도 받으면 끝인데 조원 셋중 둘은 능력이 없고 남은 하나는 공작영애.


“하.”


돌겠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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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엑스트라 스토리 1 +4 24.05.31 1,954 82 13쪽
25 반데가르의 피리스 4 +6 24.05.30 2,008 79 15쪽
24 반데가르의 피리스 3 +3 24.05.29 2,041 84 14쪽
23 반데가르의 피리스 2 +10 24.05.28 2,134 81 14쪽
22 반데가르의 피리스 1 +6 24.05.27 2,179 85 13쪽
21 기말고사의 에이스 4 +3 24.05.26 2,279 92 13쪽
20 기말고사의 에이스 3 +4 24.05.25 2,339 91 13쪽
» 기말고사의 에이스 2 +6 24.05.24 2,384 8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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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라우레아의 밤 5 +5 24.05.22 2,475 97 13쪽
16 라우레아의 밤 4 +1 24.05.21 2,603 92 14쪽
15 라우레아의 밤 3 +3 24.05.20 2,561 100 12쪽
14 라우레아의 밤 2 +2 24.05.19 2,665 93 12쪽
13 라우레아의 밤 1 +2 24.05.18 2,778 101 13쪽
12 호수가 그래봐야 6 +6 24.05.17 2,775 100 13쪽
11 호수가 그래봐야 5 +1 24.05.16 2,776 95 13쪽
10 호수가 그래봐야 4 +4 24.05.15 2,841 102 14쪽
9 호수가 그래봐야 3 +4 24.05.14 2,916 97 12쪽
8 호수가 그래봐야 2 +5 24.05.13 2,955 115 13쪽
7 호수가 그래봐야 1 +1 24.05.12 3,054 105 13쪽
6 스토리, 그 전 5 +3 24.05.11 3,155 110 13쪽
5 스토리, 그 전 4 +4 24.05.10 3,288 1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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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토리, 그 전 2 +6 24.05.08 3,625 120 13쪽
2 스토리, 그 전 1 +8 24.05.08 3,978 130 12쪽
1 그냥 죽는 엑스트라 +10 24.05.08 5,453 13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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