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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님의 서재입니다.

악역 레벨 9999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크랭크
작품등록일 :
2020.07.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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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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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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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또 시작 1

DUMMY

검은 성채에서 최대한 멀리. 한달음에 북쪽의 산까지 왔다.

“끝인가? 진짜 죽인거야?”

라티스의 말을 들으며 지시했다.

“꺼내 봐.”

그러자 거대한 뱀이 속에 든 것들을 모조리 게워내기 시작했다.

우르르. 혹은 우수수 쏟아지는 덩어리들.

거기에 바일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바일이 아니라 한때 바일이라 불렸던 그냥 고깃덩어리다.

불과 몇분 전까지는 살아 움직였는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죽었다. 죽여버렸다. 뒤져버린 것이다.

소설에서처럼 만나는 일은 없었다. 마지막에 와서 서로 마주해 간단하면서도 사상을 검증하는 철학적인 대화 이후 검을 맞대는 영화같은 시나리오 따위는 없다.

싸우고 나서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며 맞이하는 장렬한 죽음 따위는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건 소설도, 영화도 아니다. 그냥 현실이다.

사람 죽는데 영화같은 연출 따위는 필요 없다. 장렬한 죽음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전쟁통에 죽으면 그건 그냥 개죽음이다. 장렬하고도 영웅적인 죽음? 그는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을 겁니다?

개소리. 살아 있는 놈들이 자기는 살았다는거에 눈물흘리며 안도하면서 죽은놈 포장하는건 영화나 현실이나 똑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따위 죽음을 맞이할 생각은 없다.

“퉷.”

남아 있는 바일의 시체들에 침을 탁, 뱉어낸다. 이 개같은 놈을 죽이기 위해 그간 얼마나 애썼는가.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 내가 직접 죽일지, 아니면 멀리서 남들 다 죽더라도 놈만 죽이는 잔인한 방법을 쓸지.

결국은 이렇게 됐다. 신이 넘겨준 거의 80%는 쓸모없는 것들을 가지고 여기까지 왔다.

“다시 먹어. 이 개똥같은 새끼를 진짜 똥으로 만들어 버리라고.”

그러자 뱀이 다시 시체들을 삼킨다.

이제 끝이다. 정말로 끝이다. 장례식 따위는 없다. 슬퍼해줄 놈은 당연히 없다.

그리고 테티스가 말했다.

“약속을 지켜.”

테티스와의 약속은 바일이 죽은 후에 인간들을 데리고 깔끔히 물러난다는 거였다.

그건 당연하다. 눈 덮힌 산은 군인 때 한번 보면 끝이다. 아니, 그때도 좆 같았다. 이따위 곳은 TV로 볼때나 경이로운 자연이지 직접 와서 서 있으면 한없이 개 같을 뿐이다.

“그건 걱정할거 없어.”

인간들을 여기서 내보내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할게 있다.

이런날 술과 여자가 빠질수 있겠는가?

라티스. 그리고 테티스. 내가 조종하고 있는 레스티안의 몸도 포함하면 셋.

나는 바일을 잡아 죽였다는 고양감. 다소 허무하긴 하지만 이제 다 끝났다는 안도감. 그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 흥분과 미미한 분노를 그대로 라티스에게 쏟아냈다.

좋은 술은 없지만 좋은 여자는 있다. 그대로 손을 뻗어 라티스의 어깨를 잡아 뒤로 돌린다.

몇번이고 보는 뒷모습. 뒤태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 등 뒤에서 보는데 옆으로 나온 가슴이 보일 정도니 어느 수준인지 알수 있다.

그리고 그 가슴을. 한손에는 들어 차지도 않는 몇번이나 맛본 가슴을 쥐어짜듯 움켜쥐었다.

“읏.”

좋아서 흘리는게 아니라 아파서 흘리는 신음이지만 상관 없다. 라티스 역시 이제 이런거엔 익숙했다. 그러니 그녀 역시 여유를 부렸다.

바로 옆의 테티스를 바라보며, 별다른 것도 없이 마치 짐승처럼, 당한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라는 듯 뽐낸 것이다.

믈론 테티스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고 그 기억 때문에 몸이 반응한 것이다.

그때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됐는지.

“아, 으, 응.”

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고, 라티스. 여동생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테티스는 다리를 슬쩍 오므리며 바위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 살짝 짜증이 났다.

안그런척 태연하게 있었지만 저 다음 차례는 자신이라는 사실에 몸이 절로 반응한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차례. 자신이 뒤로 밀렸다는 사실에.



***



“그러니까 성녀님의 말씀은, 그 바일이라는 마족보다 더 강한 마족이 있다. 그 말씀이시군요.”

그 소동이 있고난 뒤, 성녀는 긴급하게 회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테이 타크란의 말에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바일이라는 마족은 그 마족과 대척점에 서 있던 마족이다. 놈이 죽음으로, 이제 그 마족. 룬하임을 공격하고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킨 그 마족이 승리했다. 그리고 우리는, 놈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간결하지만 핵심만 담아 상황을 정리한다. 테이 타크란은 여기까지 말하고 턱을 만졌다.

표정은 아주 심각했다. 말을 안할수가 없었다.

“우리가 이용당했다는 말씀이시군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 앉았다.

바일을 죽였다.

위대한 제국의 기사들이?

아니다. 마족이 죽였다. 어쩌면 악마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사악한 존재가 바일을 죽였다. 그것도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성녀의 말은 이거였다. 그 마족. 혹은 악마가 바일을 죽이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고 계획해 왔으며, 그 계획중 하나가 바로 제국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걸 안 물어볼수가 없다.

“전쟁을 시작한 건 제국입니다. 그리고 북쪽을 토벌하라 말한 것은 공주님입니다. 성녀님은, 공주님과 제국이 그 마족에게 놀아났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제국의 사람이라면 상당히 기분 나쁜 말이다. 말도 안되는, 그야말로 헛소리였다.

그리고 성녀는 가슴을 옥죄는 무언가 때문에 쉽게 말하지 못했다.

상황이 그렇다. 제국은 강대한 나라고 이미 수많은 나라들이 제국의 협박같은 외교에 군사를 보내고 물자를 보냈다.

룬하임도 마찬가지다. 당장 성전기사단과 신관들 다수가 여기 와 있지 않은가.

상황이 이렇다. 이런 상황에 제국이 마조그이 손에 떨어졌다는 그 비슷한 얘기를 하면, 사실상 대륙이 망했다는 소리와 같지 않은가.

그러나 성녀는 그렇게 말했다.

“자세히 알아봐야 합니다.”

물론 이것도 나라간의 상황에 맞춰 말한 것이다. 원래대로 말하자면 당장 공주와 황제를 조사해야 한다고 해여겠지만.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도 테이 타크란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제국의 사람이므로.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바일을 죽이지 못했지만, 분명 승리했고 검은 대지를 점령했습니다. 게다가 마족들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족속들이라 하는데, 그놈도 그런게 아니겠습니까?”

다소 편하게 생각한 말이지만, 그렇다고 틀린말도 아니다. 이러니 성녀는 답답할수 밖에 없었다. 마치 심장을 사슬로 묶어두고 철구를 메달아 놓은 것처럼 갑갑한 것이다.

제국의 황제와 공주를 조사한다?

누가?

어떤 자가 그걸 할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성녀에게는 아주 다행스럽게도, 테이 타크란은 그리 앞뒤 막힌 사람은 아니었다.

“일단 성녀님 말씀은 알았습니다. 저도 그 마족과 악마가 굉장히 신경 쓰이니 한번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게다가 제국 내에는 신관들이 많으니, 나중에 성녀님이 귀족들 하나 하나 직접, 전부 확인하셔도 됩니다. 황제 페하는 불가능하겠지만 공주님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제가 도와드리죠.”

테이 타크란의 말에 사슬들이 그나마 풀리는 것 같았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여기서 한발 더 나갈수는 없으니 성녀 역시 물러났다.

“알겠습니다.”

그때, 저 밖에서 병사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괴, 괴물이다!”

“마, 막아! 아니 피해!”

다급한 비명에 성녀와 디아나. 테이 타크란과 부관들이 모두 일어나 밖으로 급하게 빠져 나왔다.

그리고 저 위. 검은 성채의 위에 내려 앉은 괴물의 모습을 보았다.

날개를 뻗어 올려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고, 목을 틀어 내려다 보는 괴물의 모습.

하지만 성녀는 저게 괴물이 아님을 곧바로 알아챘다.

“···드래곤?”

그녀 뿐만이 아니다. 부관들. 그리고 꽤 많은 수의 기사들 역시 알아차렸다.

진짜 드래곤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오래전에 쓰여진 책들에 그림으로 묘사된 드래곤의 모습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드래곤은 바일과 싸웠던 그 검은 성채의 꼭대기에 잠깐 앉아 주변을 둘러본 뒤, 정확히 인간들의 언어로 말했다.

“돌아가라.”

단 한마디. 왜 돌아가야 하는지 이유도 없이 그저 돌아가라는 한마디 뿐이다.

그러나 머리에 박혀버렸다.

귀로 들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 머리에 직접 말하는 듯한 목소리.

인간으로써는 감히 거역하기도 어려운 힘이 담긴 목소리에 병사들. 기사들.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어버렸다.

테이 타크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머리를 붙잡고 무릎을 꿇으며 신음을 흘렸다.

“성녀님.”

디아나 역시 흔들리는 몸이었다.

그리고 성녀는, 주변에 신성력을 뿌려 쓰러진 테이 타크란과 부관들을 부축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돌아가야겠군요.”



***



레스티안은 인간들을 바라본 뒤, 바로 발 아래를 바라보았다.

피와 먼지. 무너진 돌무더기들. 그리고 그 틈으로 널려 있는 시체.

마차에 밟혀 죽은 시궁쥐의 시체도 저거보다는 형체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레스티안은 그 시체의 일부를 바라보았고 거기서 혼을 불러냈다.

혼을 불러내는 사악한 흑마법이다. 물론 레스티안에게는 사악하다는 개념도, 흑마법이라는 개념도 없이 그냥 마법의 하나였다.

그리고 거기에 질문했다.

“네 이름이 뭐냐.”

그리고 혼이, 허탈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일.’

“너는 어디서 왔지?”

‘다른 세계.’

“다른 세계. 널 여기로 누가 보냈나.”

‘신.’

신이라는 말에 레스티안은 인상을 썼다. 그리고 다시 질문했다.

“신께서 널 여기로 왜 보냈지?”

‘세계를 구하기 위해.’

“세계를 구한다? 누구로부터?”

‘그자. 이름은 알수 없는 존재. 신께서 예언으로 알려 주셨다.’

너무나 모호한 말이었다.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다.

이름을 알수 없는 그자. 하지만 레스티안은 그게 누군지 알것 같았다.

그리고 바일의 말이 이어졌다.

‘원통하다. 세게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듣고 왔음에도 실패하다니. 나는, 내가, 죽은 건가? 내가 죽다니? 내가, 내가? 이럴수는 없다. 이럴수는 없어!’

투명하던 혼이 점점 까맣게 물들기 시작한다. 점점 사악한 악령이 되가는 것이다.

그리고 레스티안은 까맣게 변해가는 바일의 혼을 잡아, 그대로 태워버렸다.

아무런 비명도 없이 혼조차 소멸해 버린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레스티안은 몸을 돌려, 아랴의 인간들에게 다시 말했다.

“돌아가라.”

그리고 날개를 뻗어, 하늘 위로 날아 올랐다.

그놈. 이름을 알수 없는 그자.

그놈은 북쪽에 있었다.



***



눈을 떠보니 새카만 공간이다.

“어?”

그리고 눈 앞에 여자가 있었다.

새카만 옷을 입었다. 아니, 일단은 옷이다. 몸에 걸쳤고 가릴건 다 가렸으니 일단은 옷은 맞다.

머리에는 가시로 만든 왕관 같은걸 쓰고, 그 뒤는 아주 은은하게 빛같은게 비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음울하고 어둡지만 박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차갑지만 순수한 느낌.

그리고 그 여자가. 신이 말했다.

“저는···.”

“야이 씨발.”

“···?”

그러나 나는 욕. 그것도 쌍욕부터 냅다 박아버렸다.

뇌에서 입으로 연결되는 필터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당연했다.

“또 지랄이지. 또 무슨 개지랄이야?”

“아니···.”

당황한 듯한 표정. 그러나 거침 없다.

“아니? 아니? 아니이? 이 시발, 해도 해도 너무하는거 아니냐? 한참 재미 보는데 그 중간에 끌고 온다고?”

그렇다.

한참 박는 중인데 눈떠보니 갑자기 여기다.

세상에 신이라고 해도 경우가 있지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내 눈앞에 있던건 나란히 흔들리던 네개의 가슴이었지 이 칙칙하고 시커먼 공간이 아니다.

그러자 신 역시 자신의 잘못은 인정했다.

“그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일이.”

“안 중요해. 안해. 못해. 좆까라 그래.”

천박함이 언어의 형태로 튀어나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니가 누군지는 몰라. 엘린과 같은 그 염병할 신이겠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어. 나한테 일 시키고 싶지? 지금 그럴려고 부른거지? 맞지? 맞아 안맞아, 딱 말해.”

“어··· 맞습니다.”

“맞아? 맞아? 그게 입으로 튀어 나와?”

주먹을 쥔다. 다행이라 해야할지 지금 말고 전의. 그 엘린이라는 년한테 받은 힘들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신한테 주먹을 휘두를수는 없다.

동시에 여기서 난 못한다고 배째라를 시전해도 소용없다는 것도 이성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 이성적으로는.

다만 인간은 그리 이성적인 생물이 아니다. 나는 특히나 그렇다

그러니 최대한 그 감정을 수그려 가며,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말했다.

“너, 엘린이랑 아는 사이지?”

“예. 엘린은 제 언니입니다.”

맞댄다. 그걸 또 맞다고 그런다. 그냥 찔러본건데 답이 술술 나온다.

그것도 언니라고 한다. 자매가 신인데 쌍으로 지랄맞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이름이 뭐야?”

“저는 엘리엔입니다.”

“엘리엔? 아무튼 잘됐군. 시킨일 했으니까 보상을 줘.”

“보상이라면?”

“아, 뭐든 줘야할거 아니야. 은퇴한 사람 불러서 일시키고 일 치루는데 불렀으면 어? 뭘 줘야 할거 아니야. 엘린이 네 언니라며? 언니가 일 시키고 모른척하면 네가 줘야지.”

“그럼···.”

고민한다. 그러다가 신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니. 이게 아니고. 크, 크흠. 지금부터 당신은···.”

“대줘.”

“···예?”

“누굴 호구로 아나. 아무것도 안 주고 일 시킬라고 하는거 같은데, 나한테 일 시키려면 그래···.”

그리고 쳐다본다.

위아래. 발끝부터 위로 슥 올라와서 훤히 드러난 종아리와 허벅지를 쳐다보았다.

그 다음 남자라면 시선이 안갈수가 없는 허벅지 사이의 굴곡에서 5초 가량 머물러주고 아랫배를 거쳐 조금 더 위의 배꼽.

거기서 더 위, 가슴 언저리에서 한쪽당 4초씩 도합 8초 머물러준 뒤 목선을 따라 시선을 더 올려 그제야 검은색의 천으로 조금 가린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노골적인 시선.

하지만 이건 내 나쁜 습관이 아니다.

일부로 한거다.

물론 엘린이나 지금 눈 앞의 엘리엔이나 둘다 남자로써 한번만 안아 봤으면 하게 생겼다.

그러나 아니다. 신이 시킨 일을 할 생각은 없다. 차라리 죽고 말지 정말로 하기 싫었다.

머리로 피가 쏠렸고 그러니 소리를 질렀다.

“일 시키려면 보수를 줘야지. 근데 나는 돈도 싫고 권력도 싫고 명예도 싫어. 나는 남자니까 여자로 받고 싶은데 여기 여자는 너뿐이군.”

“···.”

“만약, 해주면 일을 해주지.”

비릿하게 웃어준다. 세상 이렇게 비열한 웃음이 없을 정도로.

그리고 이건 불가능하다.

미친년도 아니고 신이란게 그럴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내 귀에 들려온 소리는 그야말로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소리였다.

“좋습니다.”

“어?”

“해드릴테니, 제가 시킨일을 해주십시오.”

“어?”

너무나 담담한 목소리.

“그럼, 뭘 해야 합니까?”

“어? 아니, 잠깐 뭐라고? 해준다고?”

“예.”

“···왜?”

대체 왜? 대체 무슨 일을 시키려고?

대체 뭔데 신이란게 몸을 준다고 한단말인가. 이번에는 우주라도 정복하려는 미친 마왕이 있는데 그걸 잡아 우주를 구하라는 그런 미친 소리를 하려고 하나?

그러니 다시 물었다.

“왜?”

“그래야 일을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너무 당연한 말로 답한다. 심지어 가까이 다가오기 까지 한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뇌 한켠에서 병신처럼 신을 따먹는 거면 나쁘지 않지, 라는 생각을 해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왜? 무슨 일을 시키려고?”

물어봐야 한다. 알아야 한다. 무턱대고 할수는 없었다. 이제는 무섭기까지 했다.

“말해. 무슨 일이야. 대체 뭘 시키려고 그러는거야.”

그리고 가까이 온 신이 말했다.

“세계를 멸망 시켜야 합니다.”

“뭐?”

멸망?

“무슨 세계를 뭘 멸망시켜?”

그리고 엘리엔이 말했다.

“제 언니. 엘린이 만든 세계입니다.”

“엘린?”

“예.”

“아니, 자세히 말해봐. 엘리엔은 네 언니고, 너는 그 동생. 그리고 엘리엔이 만든 세계를 멸망시키라고?”

“그렇습니다.”

“왜?”

“왜냐면, 세계의 모든 것은 일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설마 그거, 약간 그리스 로마 신화, 뭐 그런거 같은데.”

신도 여러명이다. 그리고 신들은 지들끼리 싸우며 누구는 세상 만들고 누구는 파괴한다.

그걸 떠올렸다. 그러자 엘리엔이 말했다.

“더 복잡하지만,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보고 엘린이 만든 세계를 멸망시켜라? 그리고 엘린은 자기가 만든 세계를 지키려고 하고?”

“예.”

답이야 꼬박꼬박한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 너 혹시 바일이라고 알아?”

설마.

"알고 있습니다."

설마가 사람 잡았다.

이년이다. 이년이 바일의 뒤에 있던 년이다.

날 여기로 보낸 엘린은 지키려 하고, 눈앞의 이 엘리엔이라는 시커먼 거는 멸망시킬 한다.

그리고 신. 엘리엔 말했다.

“당신은 지금부터···.”

“아니, 잠깐.”

여기서 말을 끊는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뭘 줄건데.”

“아까 당신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 얘기다.

그리고 나는 엘리엔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남자 경험 없지?”

“···없습니다.”

“내가 뭘 요구한건지 모르지?”

“모릅니다.”

“남자 경험이라는 단어가 뭔지는 알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이 시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내가 바일을 죽여서 전에는 네가 실패한거네. 그렇지?”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 내가 네말 듣고 내려가면 엘리엔이 보낸 영웅이 날 죽이려 하겠네?”

“맞습니다.”

“어떤놈이?”

“성녀입니다.”

“성녀?”

“예.”

성녀. 정확히 어떻게 된건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내가 한 일이 들킨 모양이다.

아마 지금쯤이면 나는 대륙의 공적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럴지도 몰라서 일리안에게 미리 안배를 해두었다.

성녀 쯤이야. 그건 아주 쉬운 상대다. 룬하임 촌구석의 성녀가 신성력을 줄기줄기 뿜으며 달려들어 봤자, 할수 있는건 없을 테니까.

쉬운 일이다. 이렇게 보니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다.

‘쉽네. 하지만 맨입으로 해줄순 없지.’

생각을 정리한다. 엘리엔. 이년은 아무래도 세계를 멸망시키고 싶어하는거 같고 그러기 위해 날 쓰기로 한 모양이다.

아주 자매가 쌍으로 난리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했다.

결국 멸망이라는 것도 위에 왕이 인간의 왕인지 마족의 왕인지 차이 뿐이다.

내가 마왕이 된다면, 아래 마물들이 인간들 살점을 씹는 그런 세상은 아닐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엘린이라는 년에게 엿을 먹이고 싶었다.

여 보란듯 성녀를 따먹고, 한참 신음을 참아가며 엘린을 찾으면 그 엘린을 부정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음습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물론 맨입으로는 안된다.

“내가 이걸 다 끝내고 나면.”

“해주시는 겁니까?”

“그래. 염병할 해줄테니까, 내가 이거 끝내고 나면.”

“예.”

“날 다시 부르지 말고 니가 밤에 날 찾아와.”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시키는대로 해.”

“전부는 안되지만 할수 있는대까지는 해보겠습니다.”

순진한 애 꼬셔서 모텔 가는 느낌이 조금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기회고, 엘리엔이 주는 일은 정말 별거 아닌 일이었다.

그리고 공간이 일그러졌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다. 높은곳에서 떨어지는 듯,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자, 밝아진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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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너. 마왕 하고 싶지? 3 +12 20.10.26 4,107 156 15쪽
94 너. 마왕 하고 싶지? 2 +9 20.10.24 4,613 158 16쪽
93 너. 마왕 하고 싶지? 1 +15 20.10.23 4,626 182 12쪽
92 뜻밖의 침략자 9 +28 20.10.21 5,173 230 18쪽
91 뜻밖의 침략자 8 +6 20.10.20 4,989 175 13쪽
90 뜻밖의 침략자 7 +23 20.10.18 5,499 192 12쪽
89 뜻밖의 침략자 6 +23 20.10.16 5,488 238 12쪽
88 뜻밖의 침략자 5 +33 20.10.15 5,679 234 13쪽
87 뜻밖의 침략자 4 +24 20.10.14 6,158 23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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