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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님의 서재입니다.

악역 레벨 9999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크랭크
작품등록일 :
2020.07.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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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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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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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너. 마왕 하고 싶지? 5

DUMMY

마족 하나가 테티스를 잡았다.

이걸 믿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바일에게 밀리긴 했지만, 테티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위에 군림한 마족이었으며 스스로를 여왕이라 칭할 정도로 강대한 마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마족 하나가 테티스를 잡았다?

들어도 믿기 어렵고, 본다 하더라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렇기에 많은 마족들이 검은 성채로 몰려들었다. 이곳이 마왕의 거처였으며 검은 대지에서 가장 높고 견고한 곳이었다.

바일 역시 이곳에 있었다.

양쪽으로 수많은 마족들이 도열해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서서, 짧지만 아주 긴 시간을 거쳐 바일 앞에 설 수 있었다.

“네가 테티스를 잡았다고.”

바일의 목소리는 그리 대단치 않았다.

평범하다.

별거 없었다.

못생긴 건 당연히 아니고 당연히 잘생겼는데 약간 급식 먹는 반반하게 생긴 고등학생이 덩치 있는 친구들 이끌고 일진 놀이하는 그런 놈처럼 생겼다.

기생오래비 처럼 생겼다는 소리다.

하지만 눈은 그렇지 않다.

야수의 눈이었고 힘이 있었다. 연출로도 만들지 못하는 그런 눈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바일에게 서서 짧게 말했다.

“예.”

“어떻게 잡았지?”

“제가 테티스보다 강하기 때문에.”

그러자 주변의 마족들이 술렁거린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테티스는 강하고, 나에게서 느껴지는 마기는 보잘것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하라고 하기 어려운 것이, 마족들은 당연히 자신이 가진 힘을 전부 내보여주지 않는다.

숨겨둔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여기서 자신이 가진 걸 보여주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와 다를 게 없으니까.

그러자 바일은 웃으며 말했다.

“라티스의 도움도 받았겠지.”

여기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바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테티스를 잡은 공에 대한 상은 줘야겠지. 뭘 바라나?”

이거다.

바일이라는 놈은 내가 잡아 죽여야 할 놈이다. 이 주변의 마족들은 저 아래 인간들에게 그야말로 재앙같은 놈으로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보다도 더 끔찍한 놈들이다.

하지만 나사 빠진 소설로 봤을 때 마족들은 그냥 여기 사는 놈들이며, 저 바일이라는 놈도 그냥 이놈들의 왕이다.

다만 내가 바라는 세상은 마족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하늘에서 운석 떨어뜨리며 악마를 소환하는 그런 미친 세상이 아닐 뿐이다.

그 누구도 날 다스릴 놈이 독재자에 폭군에 실제로 학살을 자행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인 걸 원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바일은 죽어야 한다.

입에서 그럼 죽어라, 라는 말이 간질거리지만 그걸 참아내며 말했다.

“권력을 원합니다. 돈. 여자. 좋은 집. 아래에 깔아둘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군요.”

“권력?”

“테티스를 잡았으니 그 정도 쯤이야. 그리고 라티스는 제가 가지고 싶군요.”

젊은이의 패기처럼 보였다. 실제 주변의 마족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들의 사회에서 나이가 있다는 것은 강하다는 뜻이 아니다. 나이가 있다는 건 권력은 쥐었을지 몰라도 본인의 몸이야 늙고 병든 몸일 뿐이니까.

하지만 여긴 아니다.

여기서 나이가 많다는 것은 곧, 힘이다. 그만큼 오랫동안 살아남았음을 몸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으며, 이곳에서 강하다는 것은 곧 권력이다.

그러자 바일은 다시 한 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좋다. 하지만 권력은 내가 너에게 주는 게 아니야. 너 스스로 얻어내는 거지.”

지극히 마족다운 말.

바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라티스는 네가 가져도 좋다. 검은 대지에 온 걸 환영하지.”

그리고 나가버린다.

이게 바일과의 첫 조우다. 물론 소설에서의 첫 조우와는 지극히 다른 전개다.

그때는 적이었다. 물론 소설에서도 보자마자 다짜고짜 칼부림을 한 건 아니다.

바일은 이런저런 설득을 시작했고 주인공은 듣지 않았다.

그럼 이제, 일단은 환영한다고 했으니 여기서 지낼 생각이다.

주변의 마족들중 관심을 가지고 날 바라보는 자들도 있고 그냥 돌아가는 자들도 있다.

그리고 바일이 앉았던 자리를 잠깐 바라보았다.

만약 그 신이라는 년이 날 여기로 불러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내가 매니저가 갖다 준 그 역겨운 소설을 보고 그걸 마지막 작품으로 하기로 했다면, 분명 바일이라는 놈을 연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원래 내가 맡아야 할 배역이었으니까.

‘생각해보니 신이라는 년이 왜 바일을 직접 처리 못하는지도 의문이군.’

신인데. 자기가 만든 세상인데.

아니, 이제와서 이런걸 따지면 뭘 하겠는가.

나는 이미 여기 와 있고 스스로 생각해도 미친 짓. 정말 위험한 짓을 하고 있으니까.

바일을 마주했으니까.

하지만 바일이 소설에서 처럼 강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때, 마족 하나가 접근해 왔다.

“네놈. 여기서 뭘 하는 거냐.”

누군가 하고 봤더니 하딘이다. 테티스가 잡혔다는 소식에 헐레벌떡 뛰어온 모양이다.

물론 표정은 없다. 저번의 그 검은 갑옷이니까.

그러니 하딘에게 말해주었다.

“뭐긴. 테티스를 잡아다 바일에게 넘겼지.”

“뭣?”

“바일이 지금 테티스를 만나러 간거 같은데, 아무래도 네 계획은 실패한 거 같군.”

“···.”

하딘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잠깐 주변을 둘러본 뒤 말했다.

“자리를 옮기지.”



***



자리를 옮긴다. 검은 성채를 나오면 마족들이 사는 도시가 나오고 그 도시의 한쪽에 하딘의 저택이 있었다.

거기에 하딘. 검은 갑옷이 아니라 진짜 하딘이 있었다.

전처럼 갑옷으로 만든 골렘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리고 내가 투박한 소파에 앉자마자, 하딘이 말했다.

“네놈은 대체 뭘 원하는 거냐.”

“바일의 목.”

“바일의 목? 그런데 테티스를 잡아다 바쳤다고?”

하딘의 말에 웃으며 말해주었다.

“테티스를 만나 거래를 했지. 테티스는 자기가 가진 것들을 되찾고 싶어 하고 나는 그렇게 해주기로.”

“헛소리. 네놈이 지금 테티스를 잡아 바쳤다고 하지 않았나?”

“그 정도는 해야 여기로 올 수 있으니까.”

“허.”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하딘.

그리고 나는 아주 은밀히, 뭔가 중요한 것을 말하는 듯,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 사실은, 테티스를 잡아온 게 아니야.”

“뭐라고?”

“정확하게는 ‘테티스님’ 이지. 내가 뭐가 있어서 그분을 잡아올 수 있겠나. 이건 테티스님이 스스로, 제 발로 걸어들어온 거 뿐이야.”

“···무슨 소리지?”

“테티스님은 네가 바일을 배신할 걸 알고 있어. 다른 녀석들도 바일을 그리 따르지 않는걸 알고 있지. 그걸 알고 계시니 여길 제발로 걸어 오신거다. 그렇다면 이게 뭘 뜻하는 거겠나.”

“···무슨.”

인상을 쓴다.

그리고 여기서 쐐기를 박았다.

“아직도 모르겠나 하딘?”

“뭐?”

“나와 라티스가 누굴 모시는지. 누가 몰렉과 베린을 죽였는지. 그 본 드래곤들이 무엇인지. 인간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쳐들어 왔는지.”

순간 하딘은 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듯한 표정을 했다.

실제로도 그렇게 느꼈다.

테티스. 이놈과 라티스가 테티스를 주인으로 모신다?

그렇다면 테티스가 몰렉을 죽이고 베린도 죽였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인간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바일에게 패배해 서쪽 늪지대로 밀려난 테티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하딘은 부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무조건은 없다.

만약, 정말로 테티스가 자기 부하들을 보내 바일의 계획을 저지하고, 인간들의 왕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였다면?

바일이 말하는 인간들의 세상을 정복해 우리가 차지하자는 그 말을 이미 테티스가 이뤄냈다면?

그렇다면 이제 생각을 잘해야 한다.

하딘은 자신의 앞에 앉은 마족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쳐다본다고 뭘 알아낼 수 있겠는가. 결국 하딘은 뒤로 슬쩍 물러나며 말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 증거가 있어야지.”

“증거?”

“그래. 증거. 네가 라티스와 함께 테티스의 부하다. 그건 맞다고 해도, 그게 테티스가 인간들을 지배했다는 사실이 되지는 않아.”

“좋아 증거를 보여주지.”

숙였던 몸을 뒤로 젖혀 편하게 기댄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제국의 차기 황제를 데리고 오지.”

“제국의 차기 황제? 라인하텐의?”

“그래. 물론 여기로 데리고 올수는 없어. 지금 은빛산맥의 협곡에 지어지는 요새. 거기 너머 설원으로 차기 황제를 데리고 올테니 직접 확인해.”

“내가 가라는 건가?”

“여기로 데리고 올수는 없지. 제국을 집어 먹으려고 들인 공이 얼만데. 게다가 네가 날 의심하듯 나도 널 의심하거든.”

“···좋아.”

하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또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황제가 거기로 오는게 증거가 되지는 않아. 우연찮게 그냥 온 거일 수도 있으니.”

“제국의 황제가 수인들이 사는 설원으로 올리가 없는데. 그것도 못 믿겠다고?”

“의심은 하면 할수록 좋은거지.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럼 뭘 어쩌라는 거지?”

“그 제국의 황제가 네 앞에 무릎을 꿇고 발이라도 핥으면 믿지. 그 어떠한 마법도 없이.”

“겨우 그건가?”

“겨우 그거라고?”

“아주 쉽군. 얼마든지.”

까다로운 조건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이다.

그 어떠한 마법도 없이 제국의 황제가 마족 앞에 꿇고 발을 핥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너무 시원하게 말했다.

하딘이 움찔, 하고 놀랄 정도로.

너무나 쉬운 일이고 너무나 별거 아닌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나만 일리안을 불러내 그렇게 하는건 계산이 안 맞으니 역시 조건을 내걸었다.

“내가 증거를 보이면 너도 거기 맞는 성의를 보여야지.”

“성의?”

“바일을 배신하는건 당연한거겠지?”

“테티스가 정말로 그 정도라면 바일 따위는 신경 쓸 가치가 없어.”

이건 진심일 것이다.

“그렇다면 테티스를 위해 한가지 별거 아닌 일을 해도 되겠군.”

“들어보고 결정하지.”

“별거 아니야. 그냥 네 아래 부하들을 조금 쓸 뿐이니까.”

여기까지 말하고 순간 커피가 땡겼다. 하지만 커피 같은 편리한 물건은 없으므로, 그냥 침만 조금 삼키며 말했다.

뭘 해야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것을 전부 듣고 난 뒤, 하딘은 전에 말했던 것을 다시 말했다.

“뱀 같은 놈이로군.”

그러고는 자신을 지켜주는 골렘들을 둘러본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잘도 바일 앞에 나와서 그런 요구를 하다니.”

이 말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나도 내 실력에는 자신이 있다.

맞붙어 싸우는 거면 모를까 도망이라면.

게다가 도망갈 장소까지 있으니 얼마든지.

바일은 누굴 쳐다본다고 그놈이 억! 하고 죽는 전지전능한 놈이 아니다.

“아무튼 잘해보자고. 너나 나나 바일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그건 네놈이 증거를 보이고 난 이후의 이야기지.”

하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말했다.

“일주일이다. 일주일 안에 제국의 황제를. 곧 황제가 된다는 그 여자를 꿇려놔. 어떠한 마법도 없이.”

“얼마든지.”

너무나 쉬운 요구이기에 고개를 끄덕여준다.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



하딘을 만나고 난 후, 곧바로 요새 건설지점으로 돌아왔다.

물론 마기는 가라앉히고 조용히 들어온다.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이미 나이아나 힐다에게 내가 잠깐 후방으로 빠진다 말해두었으니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니 편안하게 편지를 써서 보낸다.

최대한 빨리 오라고.

내용도 별거 없다. 그냥 일주일 안에 여기로 오라고만 보냈다.

그리고 일리안은 일주일도 아니고 6일만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다. 겨우 하루 일찍 온 거지만 이것도 대단한 거다.

일리안이 가진 지위. 그리고 거리를 생각해보면 사실 일주일도 좀 빡빡하지만, 그녀라면 금방 올 걸 알았다.

제국의 차기 황제. 사실상 황제가 도착하니 당연히 리텐에서는 엄청난 수의 호위를 붙이고 라인하텐 역시 무서운 숫자의 호위들을 붙였다.

일리안이 여기로 온 이유는 표면적으로 말하자면 ‘인류를 지켜줄 요새의 건설 현장을 보고 싶어서’ 이며 실제로는 그냥 내 편지 때문이다.

그리고 왔으니, 이제 뭘 해야 할지 말해준다.

“마족을 만나고 왔어.”

“예?”

개인 막사에서 둘만 만나 조용히 얘기한다.

“마족이라고 하시면···.”

“하딘이라는 마족이지. 그놈이 바일을 배신했어.”

“바일. 바일··· 이군요.”

바일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이미 몇 번이나 회의에서 거론된 이름이므로.

“그럼, 마족들이 그 바일이라는 자를 배신했다는 말씀이시군요.”“일이 잘 풀리면 마족들은 놈을 끌어내릴거야. 그 뒤에 또 다른 자가 마족들을 이끌겠지만, 분명 평화롭게 있을테지.”

“평화.”

평화. 참으로 좋은 말이지만 쉽게 입에 담기는 어렵다.

지금이 평화로운 시대라고 말할 수 없다.

그저 밭을 가는 농부는 자신의 삶이 평화롭다 할수 있겠지만, 위에 선 자로써는 결코 평화롭다 할수 없을 것이다.

그 어떤 지도자도 평화는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며 말한다 하더라도 거짓일테니까.

하지만 평화롭다.

“그럼, 바일. 그 마왕을 잡을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잡기 위해 준비해야지. 그래서 널 부른 거야.”

“절···.”

“군대를 준비하고 언제든 막아낼 수 있게. 지금 지어지는 요새가 완공되면 마족들도 쉽게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할 테지. 어쩌면 마족들과 평화 협정을 맺을지도 모르고.”

물론 마족과의 평화 협정은 입발린 소리다.

평화는 그냥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내가 죽은 뒤에는 모른다. 천년만년 평화로울 수는 없으며 방법도 없다.

그러니 내가 살아 있는 동안만 평화로우면 된다.

물론 일리안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일리안은 그야말로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있다.

누가 감히 마족과의 평화 협정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못하는 일이다.

하지만 드래곤이기에 가능하다.

어쩌면 지금 시대가 훗날 역사가와 시인들. 악단들에게 영원토록 회자되고 찬송 받을 그 찬란한 시대일지도 모른다.

평화의 시대.

거기에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나는 당분간 북쪽에서 움직일 테니 앞으로 보기 힘들겠군. 아마 모든 게 끝나면 볼 수 있겠지.”

“아···.”

“그리고 하나 부탁하자면.”

“부탁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아니, 그래도 부탁하자면, 얼마 안 지나 레이튼이라는 이름이 알려질 거야. 배신자로. 악마에게 영혼을 판 마족으로.”

“그건···.”

“바일을 잡기 위해 필요한 일이지. 아마 꽤 많은 사람들이 날 욕할테고. 그렇게 되면 네가 날 변호를 해줬으면 하는데.”

“예!”

당차게 말하지만 여기서 더 하면 울 것 같아서 그냥 여기까지만 했다.

‘일단 빠져나갈 구석은 만들었고, 그럼 해야겠군.’

망설임 없이 손을 뻗는다.

추운 곳이기에 두텁게 입었다. 이렇게 막사안에 들어와 있어도 옷이 없으면 춥다.

하지만 상관없다. 신성력을 불어넣으면 금세 따뜻해지니까.

그러니 옷을 거침없이 잡아 내리고, 곧 드러난 하얀 몸을 들어 안았다.

“아···.”

하지만 여기 막사 안에서 할 생각은 없다.

신성력을 아낌 없이 불어 넣는다. 옷 따위가 없어도 몸이 따뜻해지게.

그리고 일리안에게 말했다.

“나가지.”

“에?”

나가자는 말에 일리안은 의문스러운 얼굴을 했다.

다 벗었는데 어떻게 나간단 말인가.

하지만 이미 밤이다. 게다가 밖에 나가도 춥지 않다.

소리를 들려줄 수 없으니 주변 호위들은 이미 일리안이 물려놓은 상태다.

그러니 밖으로 나갔다. 횃불이 없는 어둠을 틈타, 일리안을 안아 들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으. 아···.”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일리안은 작게 신음만 흘렸다.

그녀를 들고, 협곡 위로 뛰었다.

그리고 도착한 하얀 눈밭 위. 사방에 막힌 것 하나 없는 탁 트인 설원에 도착한다.

여기서 일리안을 안아 들었다.

일리안은 누가 볼까 몸을 움츠렸지만, 그렇기에 평소보다 더 헐떡였으며 나중에는 본인도 조금 즐기기 시작했다.

눈 덮인 야외라는 장소가 비교할 수 없는 쾌락을 안겨주는 것이다.

하얀 눈밭 위에 그대로 자국이 남는다.

피부는 조금 차갑지만 맞닿은 곳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워졌다.

심지어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제 내가 마족으로 활동하는 모습이지.”

마기를 일으킨다. 눈앞에서 사람이 마족으로 변하지만 일리안은 그리 무서워하지 않았다.

놀라기는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이 상태로 다시 시작했다.

일리안은 배덕감과도 비슷한 감정에 휩싸였다. 현실은 아니지만, 겉만 보자면 노출된 곳에서 마족에게 짐승처럼 범해지고 있는 것과 다를 게 없기에.

이곳에서 유일하게 검다. 그리고 평소보다도 더 컸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안이 꽉, 차오르는 감각에 허리가 절로 젖혀진다.

새하얀 눈밭 위에서, 새하얀 나신이 몇 번이고 물들었다.

덧씌워지듯 새하얗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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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또 시작 4 +11 20.11.27 2,503 84 8쪽
112 또 시작 3 +4 20.11.27 2,336 86 12쪽
111 또 시작 2 +33 20.11.26 2,722 107 18쪽
110 또 시작 1 +16 20.11.24 2,671 111 19쪽
109 패배자의 전쟁 6 +21 20.11.21 2,606 105 21쪽
108 패배자의 전쟁 5 +25 20.11.19 2,461 103 12쪽
107 패배자의 전쟁 4 +13 20.11.15 2,896 100 12쪽
106 패배자의 전쟁 3 +25 20.11.13 2,680 116 13쪽
105 패배자의 전쟁 2 +14 20.11.12 2,640 97 14쪽
104 패배자의 전쟁 1 +15 20.11.08 2,998 123 11쪽
103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6 +9 20.11.07 2,803 112 15쪽
102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5 +15 20.11.05 2,987 121 17쪽
101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4 +5 20.11.04 3,049 120 11쪽
100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3 +19 20.11.02 3,167 134 12쪽
99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2 +11 20.11.01 3,452 131 12쪽
98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1 +12 20.10.30 3,804 138 15쪽
» 너. 마왕 하고 싶지? 5 +31 20.10.28 4,113 159 17쪽
96 너. 마왕 하고 싶지? 4 +6 20.10.27 3,989 134 14쪽
95 너. 마왕 하고 싶지? 3 +12 20.10.26 4,106 156 15쪽
94 너. 마왕 하고 싶지? 2 +9 20.10.24 4,613 158 16쪽
93 너. 마왕 하고 싶지? 1 +15 20.10.23 4,626 182 12쪽
92 뜻밖의 침략자 9 +28 20.10.21 5,173 230 18쪽
91 뜻밖의 침략자 8 +6 20.10.20 4,988 175 13쪽
90 뜻밖의 침략자 7 +23 20.10.18 5,498 192 12쪽
89 뜻밖의 침략자 6 +23 20.10.16 5,488 238 12쪽
88 뜻밖의 침략자 5 +33 20.10.15 5,678 23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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