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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님의 서재입니다.

악역 레벨 9999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크랭크
작품등록일 :
2020.07.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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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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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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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뜻밖의 침략자 9

DUMMY

고립된 라인하텐의 병사들의 상황을 요약하자면 이거다.

춥고, 배고프고, 졸리다.

거기에 더해서 적진에 고립됐다는 심리적 압박감.

저 눈 덮인 구릉지대 위에 야만인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게다가 전진 기지를 구축하기 위한 물자들을 가득 실어 오다보니, 방비 자체는 단단하지만 식량이 극도로 부족하다는 치명적인 상황까지.

애초 가지고 온 식량은 150명이 먹을 2일치 식량뿐이었다. 식량은 뒤이어 곧바로 보급받기로 했는데 협곡이 무너졌으니 방법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변 눈을 녹이면 식수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해결된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다. 협곡을 막은 바위는 치운다고 치워질게 아니니까.

그리고 이런 위기 상황에서 병사들을 다독이고 통솔한 것은 레니 하이만이 아닌 디아나였다.

레니 하이만은 말 그대로 쓸모가 없었다.

대외적으로 레니 하이만은 팔칸에서 벌어진 사건. 마족과 악마가 나타나 도시를 불태운 그 사건을 해결한, 유능하고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제국 역시 그렇게 말했고 홍보했다.

하이만 공작가의 위세는 정말 대단했다. 거기에 더해서 폰트 하이만 공작의 젊은 시절의 위업이 선전도구로써 가시 한번 알려졌다.

그런데 지금. 그 대단했던 말들은 다 어디로 가고 여기 남은 것은 어찌할 줄 모르는 그냥 사람 한 명.

지휘관이 이니라 그냥 귀족가의 자제. 그냥 그뿐.

전두 지휘 하며 병사들과 기사들을 독려하는 게 아니라 대체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애송이.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이 위헙하고도 긴급한 상황에서 레니 하이만을 대신해 나온 것은 다름 아닌 디아나였다.

진지를 구축하고 가지고 온 물자들도 목재 방벽을 둘러친다. 그 목재 방벽 뒤에 화로를 두고 불을 피운다. 그리고 거기에 병사들이 망루를 세운다.

이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디아나가 망루를 세우는 것은 막아섰다.

“망루는 세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망루를 세우지 말라니요?”

병사들이 의문스럽게 묻자 디아나가 말했다.

“이 하얀 벌판 위에 망루를 세우면 오히려 눈에 띌 겁니다.”

“하지만 먼저 봐야 그에 대비를···.”

“지금은 대비가 아니라 들키지 않는 게 더 중요합니다. 먼저 수인들을 본다고 한들 우리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 차라리 망루를 세울 재료는 땔감으로 쓰거나, 목책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데 쓰는 게 좋겠군요.”

망루를 세우라는 건 레니 하이만의 명령이었다.

하지만 디아나의 말이 일리가 있으니, 결국 병사들은 망루를 세우는 걸 그만두고 그 재료로 목책을 더 보강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레니 하이만이 그걸 가지고 지랄했다는 점이다.

주변을 감시하고 지키라는 명령만 내려두고 천막 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갑자기 나와서는 망루가 없다며 내 명령을 무시하냐는 거냐며 난리를 쳤다.

심지어는 군법으로 다스리겠다며 망루를 만들지 않은 병사들에게 채찍질을 가했다.

이것은 디아나가 없는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디아나가 기사 몇 명과 부족한 식량을 찾기 위해 사냥이라도 하려고 주변을 정찰하는 동안 벌어진 일.

그걸 막으려고 레니 하이만의 부관으로 따라온 로반 베니오가 설득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레니 하이만은 실세중의 실세. 그 대단한 하이만 공작가의 적자인 반면 로반은 별볼일 없는 남작가의 아들이다.

여기 오게 된 이유는 다른 쟁쟁한 귀족들이 그저 여기 오기 싫어했기 때문에. 어거지로 오게 된 것일 뿐이다.

그러니 디아나가 돌아와 보게 된 것은 지금 상황에 채찍질을 당한 병사들이다. 그것도 자기가 내린 명령 때문에.

어쩌겠는가. 이미 맞은 매질을 되돌리는 수는 없으니 디아나는 신성력으로 그 병사들을 치유해주었다. 물론 신관이 아니기에 그들만큼은 못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로반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

사건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채찍질을 하고 그 다음 날, 막사안에 들어가 나오지도 않던 레니 하이만이 디아나와 로반을 불렀다.

그리고는 술과 음식을 준비한 것이다.

지금 상황이 안 좋지만 우리가 잘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밖에 병사들은 식량이 모자라 빵 한 조각도 쪼개가며 먹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로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디아나는 그저 안 좋은 표정으로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결국 일이 터졌다.

“술 좀 따라주지.”

레니 하이만은 디아나에게 술을 따르라 말했다.

룬하임의 성전사장이면 낮은 직급이 아니다. 하지만 레니 하이만은 정신을 못 차리는 듯했다.

“취하셨군요.”

디아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먼저 자리를 일어나 버렸다. 레니 하이만이 뭐라 말했지만 들을 필요는 없었다.

로반은 절로 숙여지는 고개를 차마 올리지 못했다.

그 이후 별다른 일 없이 시간이 흘렀다. 물론 별다른 일 없다는 게 춥고 배고픈 최악의 상황이지만, 적어도 레니 하이만의 패악질은 없었다는 뜻이다.

병사들은 계속 굶고 있고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지원군은 언제 올지 기약이 없다.

따뜻한 동쪽에서 살던 제국군이 여기 북쪽에 오니 지독한 감기도 쉽게 걸린다.

그래도 아직 사망자는 없다. 기침을 심하게 하거나 좀 위험하다 싶으면 디아나가 신성력으로 치유해주었으니까.

이렇게 배고프고 추운 10일이 지나자 디아나는 이제 기사와 병사들에게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지휘관은 레니 하이만이지만 애초에 싫은 걸 억지로 온 기사들과 병사들이다. 게다가 지휘관이라는 놈은 하는 게 없고 디아나가 전두 지휘해서 식량도 구해보려고 하고 정찰도 하고 같이 근무도 서고 아픈 사람도 간호해주니 이제 이곳 군사들에게 디아나는 성녀보다 더 성녀같은 존재가 되버린 것이다.

15일째. 슬슬 아껴먹고 쪼개 먹던 식량도 바닥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날. 그토록 기다리던 지원군이 도착했다.

물론 원하던 형태는 아니었다. 지원군이라고 온게 겨우 한 명이었으니.

커다란 배낭을 몇 개나 짊어지고 높게 쌓인 협곡의 바위 위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착지하자 눈들이 온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살이다. 잘 훈련된 기사라도 저 위에서 떨어지면 자살이라고 밖에 볼수 없다.

그러나 태연하게 뛰어내리고, 황망한 눈을 한 기사들과 병사들을 바라본다.

디아나와 로반이 뛰어왔다.

그리고 디아나가 말했다.

“아니, 어떻게?”

그리고 나는 온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서로 묶어 맨 배낭 10개를 풀어 안에 가득 눌러 담긴 음식들을 꺼내며 말했다.

“병사들과 기사들에게 나눠 줘. 겨우 이것뿐이지만 아무것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음식들이 나온다. 그러자 로반이 당황하면서도 기사들과 병사들을 통제했다.

극도로 부족하지만,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보다도 더 소중한 음식이다.

그렇게 음식을 전부 나눈 뒤, 나. 디아나. 그리고 로반. 이렇게 셋이 따로 모였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먼저 물은 것은 로반이다. 그리고 나는 디아나의 시선을 받으며 혀를 차며 말했다.

“상황이 안 좋아. 일단 협곡을 뚫으려고 하는 중인데, 그게 쉽지가 않아.”

“그 말씀은···.”

“협곡을 무너뜨린 건 그 악마놈이야. 디아나, 너도 알텐데.”

디아나는 인상을 썼다. 그 악마. 증오라거나 경멸이라는 단어로도 어떻게 표현이 안 되는 그놈.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협곡으로 보급을 보내려고 해도 놈이 방해하니 쉽지가 않아. 결국 기사들과 병사들이 놈을 견제하고 그동안 한 명이 이렇게라도 옮기기로 했지.”

“그럼···.”

“보다시피 그게 나야. 그리고 여기 인원들을 구출하는 건 일단 지금 상황으로는 힘들 것 같군. 게다가 나도 다시 저 위로 올라가기는 힘들 것 같고.”

들려온 소식은 그리 좋지 않았다. 게다가 무너진 협곡이 악마의 소행이며, 그 악마가 방해하고 있다고 하니 더더욱.

그러자 이번에는 디아나가 물었다.

“하지만 어떻게?”

“뭐가.”

“아니, 그 위에서. 그 위에서 뛰어내린···.”

디아나의 말에 별거 아니라는 듯 손에서 푸른 마나를 일으킨다. 그리고 금방 꺼트린다.

대답은 이걸로 충분하다.

“서, 설마.”

놀라 뒤로 넘어가려 하는건 로반이다. 디아나 역시 놀라긴 했지만.

“아무튼 나도 여기 있어야 돼. 저 뒤에서 최대한 빨리 구하러 올테지.”

너무나 속 편한 말이었다. 로반은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표정이었고 디아나 역시 꽤나 놀란 표정이었다.



***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디아나와 따로, 막사 안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상황이 안 좋은걸.”

디아나의 말을 들어보면 그냥 예상한 대로의 상황이다. 하긴 그런 상황이 안 나오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춥고 배고프다. 따뜻한 곳에 살던 사람들이라 이런 곳에 오니 콧물과 기침을 달고 산다.

게다가 먹을 것도 없다. 오늘 먹은 것은 정말 간에 기별도 안 갈 테니까.

게다가 물. 그냥 눈을 녹여 먹는다고 하는데 그게 탈이 안날 수가 없다. 이미 저 한쪽은 병사와 기사들이 질질 쏟아낸 것들도 엉망이다.

“게다가 레니 하이만. 그놈이 그런 미친 짓을 했다고.”

내 말에 디아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알아서 명줄을 재촉하는 중이다.

어차피 내일이면 바라크의 수인 부족이 이들을 인수할 거다. 이미 눈 아래에서 감시하고 있는 중이니까.

그때 레니 하이만은 처리한다. 아니면 열 받은 기사들이 처리할 수도 있고.

“그런데 너는, 언제부터지?”

“뭐가?”

“소드 마스터. 그렇게 짙은 마나는 본적이 없는 거 같은데.”

“엄한 아버지 아래에 있다 보면 안될 것도 되는 법이지.”

거짓말이지만 적절한 대답이다. 그러자 디아나는 금방 납득했다.

하긴, 레볼턴 발렌할 후작 아래에서 배우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니까.

그러자 또 다른 질문을 한다.

“정말 대단하군. 그런데 너··· 후방으로 빠지지 않았었나?

“후방?”

디아나의 질문에 슬쩍 머리를 긁적였다.

“그랬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니 어쩌겠나. 손 하나라도 부족하다는데 도와야지.”

“그래서 직접 온 건가?”

“많이는 못 들고 왔지만.”

그리고 여기서 육포를 꺼냈다.

“그건?”

“고기지. 꽤나 고급스러운.”

“···.”

“저 밖의 병사나 기사들한테도 육포에 빵이 돌아갔지만, 이건 그것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거야.”

그리고 다시 하나 꺼낸다.

이건 술이다.

“술?”

“몸 덥히는데 술만 한 것도 없으니까.”

“···.”

“이런 상황에 밖에서 고생하는 기사와 병사들 몰래 이런 걸 먹으니 실망했다는 표정인데, 그건 아주 잘못된 생각이지.”

“뭐?”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날 먼저 챙기고 해야지. 당장 내일 야만인들이 쳐들어왔는데 지휘해야 할 자들이 죄다 힘이 없어 소리도 못 지르면 기사와 병사들이 믿고 따르겠나?”

“···.”

“아까 잠깐 보니 레니 하이만. 그놈은 그냥 없는놈 취급이더군. 기사와 병사들은 널 바라보고 있어. 아는지 모르겠는데 야만인들은 지휘관을 먼저 노리는 습성이 있지. 놈들이 쳐들어오면 널 먼저 노릴거고. 그러니 널 챙기라고. 보나 마나 너한테 배급된 것도 남한테 줬을 게 뻔하니.”

정곡이다. 디아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음식마저도 다른 이에게 양보했었다.

기사와 병사들은 먹어야 하지만, 자신은 신성력으로 그래도 버틸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걸 알아내고 여기 이렇게 챙겨온 것이다.

육포를 주욱, 찢는다. 그걸 넘겨주고, 술도 한잔 따라 넘긴다.

“설마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무시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디아나는 그걸 받지 않았다. 그러니 한마디 더 해줬다.

“네가 아이린 성녀를 위해 희생하듯, 남들도 그렇게 하는거야. 그런게 싫다면 일탈이라 생각해도 상관없어.”

“···.”

결국 디아나는 육포를 받았다. 그리고 먹고 마셨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음식에 몸이 절로 반응한다.

침이 돌며 음식이 넘어가자 몸이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신성력으로 버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음식과 술이 들어가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진다.

레니 하이만을 씹는다. 육포도 씹고 무능한 놈도 씹어준다.

성녀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여길 나가면 뭘 할지에 관한 이야기도 잠깐 나눈다.

그러다 보니 육포 덩이가 사라지고, 술 한병도 전부 비워버렸다.

“후.”

디아나는 더운 숨을 뱉어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신성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였다.

자신을 위해서만 썼다면 더 버텼을 것이나 지금 여기에는 아픈 병사와 기사들이 너무나 많았다.

정말 심한 사람에게만 쓴다고 해도 수가 많았고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 기미가 없으니까.

이렇게 먹으니 이제 잠이 몰려온다. 물론 엎어놓고 잘 정도로 물렁한 정신은 아니지만, 졸리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까 그러던데. 이름이 뭐더라. 로만 이었던가? 로잔?”

“로반.”

“그래. 그 친구가 오늘 밤에는 나오지 말라고 하더군.”

“음?”

“듣자니 하루도 안 빼먹고 밤마다 경계를 했다고 하던데.”

“그랬··· 지.”

“그래서 오늘은 눈을 좀 붙이라고 하더군.”

“···.”

“그럼, 자라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나가려던 순간, 디아나가 말했다.

“잘곳은 있나?”

대담하다. 사실 노리고 온 거지만 이렇게 할줄은 몰랐다.

아니, 생각해보면 소설에서도 이런 식이었다. 아이린 성녀와 잘 돌아다니니 그걸 뒤에서 바라보면서 혼자 부러워하다가 갑자기 대담하게 들이대는 거.

차려진 밥상이다. 숟가락도 다 놓여있고 심지어 떠서 입을 벌리라고 하는 중이다.

“···마땅치 않지.”

“그럼···.”

“그럼 하룻밤 실례하지.”

나가려던 몸을 돌려 다시 들어온다. 물론 여기에 침대 같은건 없다. 그냥 바닥에 짐승 가죽을 몇 겹으로 깔고 모포에 침낭을 얹어둔 게 전부다.

그 모포도 1인용이고 침낭도 1인용이다. 이 막사 자체도 그리 크지 않으니까.

그런데 별 상관은 없을듯싶었다.

여기 와서 한번도 벗지 않은 갑옷을 벗는다. 그러나 땀 냄새 따위는 나지 않는다.

신성력이란게 좋은 이유가 이거다.

그리고 디아나는 자기가 먼저 침낭안에 들어가, 옆으로 돌아누웠다.

자기는 침낭을 쓸 테니 너는 모포를 써라. 일단은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병신도 아니고 여기서 모포를 뒤집어 쓰는 놈은 없다.

그러니 당당하게 벗어 던지고, 이미 한 명 들어간 모포 안으로 발을 집어넣었다.

움찔, 하고 떨리는 몸이 너무나 쉽게 보인다.

하지만 뭐하는 거냐고, 너는 모포나 쓰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좁은 침낭안에 결국 두 명이 들어간다. 떨어질래야 떨어지기도 힘드니 서로의 체온이 그대로 느껴진다.

아니, 체온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사소한 움직임. 숨을 쉬는 것까지도 느껴진다.

여전히 디아나는 등을 보이고 있지만, 상관 없다.

내가 몸을 돌린다. 그리고 그 좁은 침낭 안에서 뒤에서 껴안듯 잡았다.

“아.”

놀란거라 보기도 힘든 평탄한 목소리. 게다가 키 차이가 나서 뒤가 아니라 더 아래. 허벅지 사이로 닿는다.

좁으니 불편하다. 생각한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은 경우도 있다.

오므려 밀착한 허벅지 사이로 파고든다. 손을 뻗어 허리를 감싸 내 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긴다.

머리를 등과 목의 경계에 파묻고, 한쪽 허리를 감싸던 손을 점점 더 위로 올린다.

옷을 입었으니 그 아래로 손을 올린다.

탄탄하게 굴곡진 배를 지나 점점 더 위로.

그걸 막아보려고 디아나가 몸을 움찔거리지만, 오히려 그게 더 자극을 준다.

그리고 전에 한번 만져 보았던. 무거운 갑옷에 눌릴 일 없어 마음껏 자신을 드러낸 가슴을 가볍게 쓰다듬듯 만진다.

이어서 허리를 감싸던 손을 바지와 함께 아래로 내린다.

“자, 잠깐.”

이제와서 그렇게 말해본들. 하지만 여기서 내 할것만 하는것도 재미없다.

“싫으면 밀어내지그래. 성전사장이면 그 정도 힘은 있을 테니.”

이 좁은 데서 밀어낼 방법은 없다. 그러니 디아나는 더는 아무 말 하지 못하고, 혹시 밖의 누군가 들을까 입술을 억눌러 참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그 탄탄한 몸 아래 깔려서도 눈을 감고, 난생처음 느끼는, 아래에서 위로 관통하는 듯한 고통을 신성력으로 억눌러 가며 참아냈다.

자신이 위에 올라타 팔에 감싸져 위아래로 흔들릴때도.

다시 옆으로. 서로 마주 본 채 서로의 숨소리를 바로 코 앞에서 느끼며 온몸을 밀착하고도.

그러다 아랫배가 몇 번이고 따뜻해지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거기에 손을 갖다 대며 신성력으로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

모든 룬하임의 어머니들이 그렇게 하듯. 뱃속의 생명을 축복하기 위해.

그리고 아침이 되자, 디아나는 자심이 가슴에 머리를 대고, 옆에 껴 안긴채 깨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옷은 당연히 반정도 벗겨 나가져 있다. 동시에 다리 사이에서 어제의 그 여운이 그대로 남아 전해졌다.

“아, 으아···.”

“일어났나?”

그리고 자신이 더 늦게 일어났다는걸 안 순간.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물론 그래봐야 변하는건 없지만.

그때, 밖에서 병사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만인이다!”

디아나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나 역시 거기 따라주었다.

물론 그 야만인들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으니 급하게 하지 않았다.

다만 디아나는 급했기에, 그녀가 몸을 추스르고 갑옷을 서둘러 입는걸 도와주며 말했다.

“어제 먹어두길 잘했군.”

“아, 아··· 그래.”

디아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고, 같이 막사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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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패배자의 전쟁 5 +25 20.11.19 2,461 103 12쪽
107 패배자의 전쟁 4 +13 20.11.15 2,896 100 12쪽
106 패배자의 전쟁 3 +25 20.11.13 2,680 116 13쪽
105 패배자의 전쟁 2 +14 20.11.12 2,639 97 14쪽
104 패배자의 전쟁 1 +15 20.11.08 2,997 123 11쪽
103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6 +9 20.11.07 2,803 112 15쪽
102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5 +15 20.11.05 2,987 121 17쪽
101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4 +5 20.11.04 3,049 120 11쪽
100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3 +19 20.11.02 3,167 134 12쪽
99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2 +11 20.11.01 3,452 131 12쪽
98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1 +12 20.10.30 3,804 138 15쪽
97 너. 마왕 하고 싶지? 5 +31 20.10.28 4,112 159 17쪽
96 너. 마왕 하고 싶지? 4 +6 20.10.27 3,989 134 14쪽
95 너. 마왕 하고 싶지? 3 +12 20.10.26 4,106 156 15쪽
94 너. 마왕 하고 싶지? 2 +9 20.10.24 4,613 158 16쪽
93 너. 마왕 하고 싶지? 1 +15 20.10.23 4,625 18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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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뜻밖의 침략자 8 +6 20.10.20 4,988 175 13쪽
90 뜻밖의 침략자 7 +23 20.10.18 5,498 192 12쪽
89 뜻밖의 침략자 6 +23 20.10.16 5,488 238 12쪽
88 뜻밖의 침략자 5 +33 20.10.15 5,678 23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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