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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님의 서재입니다.

악역 레벨 9999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크랭크
작품등록일 :
2020.07.01 16:04
최근연재일 :
2020.11.2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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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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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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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너. 마왕 하고 싶지? 1

DUMMY

“야, 야만인이다.”

야만인이다. 가죽 털옷을 입고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병사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다. 끝이다. 저놈을 가서 잡을 수 없으니, 저놈은 곧 다른 야만인들을 끌고 올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야만인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밤새 근무를 서고 화롯가에서 잠깐 몸을 녹이던 로반은 겨우 몸을 일으켰다. 눈꺼풀을 억지로 열고, 나오지도 않는 메마른 목소리로 소리치며 기사들과 병사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힘을 내라! 하루 이틀 뒤면 지원이 온다! 어제도 지원이 왔었다! 이미 여기서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 곧, 지원군이 도착한다!”

계속 돌아다닌다. 그리고 병사들의 손에 직접 무기를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일어나라! 우리가 엎어져 있으면 저놈들은 우릴 무조건 죽인다! 하지만 서 있으면, 함부로 못 달려든다! 버티고 서 있어라!”

로반이 목소리를 내며 소리치자 거기에 힘을 받고 기사들과 병사들이 일어섰다. 오기로라도 일어선다.

힘이 없다 못해 뱃가죽과 등가죽이 들러붙은 것 같지만 그래도 죽기는 싫으니까.

어제 애매하게 먹은 음식 때문에 배가 난리가 났지만, 그걸 한 번이라도 더 먹어보려면 일어나야 한다.

“씨팔, 이런데서는 못 죽어.”

어떤 병사가 중얼거렸고 그게 퍼져나갔다.

“뒤져도 여자 위에서 뒤질 거야.”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는 병사가 있었고 거기에 작은 미소가 퍼져나갔다.

여기서는 못 죽는다. 이렇게는 안 된다.

죽을수는 없으니까. 죽기 싫으니까.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 몸을 움직인다.

그때, 서둘러 나온 디아나가 로반 옆에 서며 말했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요.”

“예?”

이상하다는 말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로반은 목을 돌려 그 야만인을 바라보았다.

사실 뭐가 이상하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이미 일어서 그 야만인을 보는 기사들과 병사들도 눈치채고 있었다.

“백기?”

그 야만인이 나무를 들고, 위에 백기를 내걸고 있는 것이다.

그걸 보란듯 좌우로 흔들고 있다.

“백기? 백기를 흔들다니? 아니, 함정이다! 저건 함정입니다.”

야만인을 지금 처음 봤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 백기를 흔들면 누가 봐도 수상쩍지 않은가.

하지만 저기서 계속 흔들고 있다.

그렇게 한참을 흔들다가, 백기를 눈 위에 꽂아두더니 등에서 뭔가 풀어 땅에 내려둔다. 그리고는 돌아가 버렸다.

“뭐, 뭐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해괴한 행동에 디아나와 로반. 그리고 기사들과 병사들 모두 수군거렸다.

그리고 나는 잠시 후에 밖으로 나와, 눈 위의 백기를 보며 말했다.

“내가 가보지.”

먼저 앞으로 나섰다.

“예? 아니, 하지만.”

로반이 당황해 묻지만, 앞으로 걸어가며 답했다.

“그나마 내가 힘이 있으니까. 저게 함정이어도 내 몸은 건사할 수 있거든.”

그리고 성큼 걸어간다.

디아나가 뭐라 말하지만, 그보다 빨리 앞으로 걸어갔다.

물론 위험할 것 없다. 물론 이들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야만인. 수인이 놔두고 간 커다란 가죽 보따리를 들고 유유히 돌아왔다.

“뭐지?”

“뭐, 뭡니까?”

디아나와 로반이 동시에 묻는다.

그리고 그걸 풀어 보여주자, 안에서 구운지 얼마 안 된 고깃덩어리가 튀어나왔다.

“이건?”

“고기?”

디아나와 로반이 놀라며 물었다. 주변의 기사들도 다가와 그것을 확인했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방금 만든 듯 아직 김이 피어나는 고깃덩이에 주변에는 정체 모를 동글란 열매인지 뭔지 모를 것들이 있다.

“도, 독, 아닐까요?”

로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입에서는 진작에 마른 줄 알았던 침이 고인다.

고기 냄새가 퍼진다. 사실 냄새 자체는 누린내가 나고 지방도 붙어있다. 민감한 사람이면 코를 막고 찡그릴 것이나, 지금은 그럴 형편이 아니다.

음식을 본 몸이 제발 저걸 먹으라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모두가 마찬가지다.

그때, 다시 병사들이 소리쳤다.

“야만인이다!”

메마른 목소리로, 거의 쥐어 짜내는 듯한 목소리. 그리고 저기, 수많은 야만인들이 나타났다.

꽤 많은 수였다. 얼추 봐도 100은 넘는다.

아니, 저기는 지대가 높으니 그 뒤로 뭔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끝이다. 지원은 오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뒤쪽에서 지원군이 나팔을 울리며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까처럼 분위기가 아주 가라앉지는 않았다.

“백기. 저 앞에 또 백기를 들고 있군요.”

디아나의 말을 주변의 기사들이 들었다. 다른 병사들도 그것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백기를 든 수인이 혼자 가까이 오더니 힘 있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희를 이끄는 게 누구냐! 앞으로 나와라!”

“···.”

“너희를 이끄는 족장이 누구냐! 나와라!”

다시 소리친다.

물론 여기 족장. 지휘관은 저 뒤쪽 천막 안에 있을 레니 하이만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아니, 지금 나왔다. 지금 천막에서 나오더니 앞으로 걸어온다.

움푹 패인 볼과 시커먼 눈을 하고는 앞으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검을 뽑으며 말했다.

“공격해라.”

“···?”

다들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재차 명령이 내려진다.

“공격해라. 가서 저 야만인들을 죽이란 말이다.”

미친 소리다. 지금 서 있기도 힘든데 저 야만인들을 대체 무슨 수로 공격하란 말인가.

“공격해라! 지금 뭣들 하는거냐! 저놈들이 여기까지 오도록 내버려두다니! 그러니 진작에 망루를 세웠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게 아니냐!”

굶어서 제정신이 아닌건지. 아니면 술을 퍼마시다가 뇌가 맛이 가버린건지.

차라리 그게 낫다. 만약 이게 제정신으로 말하는 거라면 그게 큰일일 테니까.

결국 로반이 달려왔다.

“공격은. 공격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목책 뒤에서 막아내야지 공격을 할 처지가 아니란 말입니다!”

“또 명령에 불복종하는거냐!”

“아니, 제발 좀···.”

“그래. 내가 아니라 저 룬하임의 저 여자 말을 듣겠다 이건가? 내가 모를 줄 알고? 여기 지휘권을 쥔 건 나다. 공주님이 나에게 준 거란 말이다. 그런데 네놈들이 감히, 그걸 무시한다고?”

“···.”

“공격해! 저 야만인들의 목을 가져와! 그러지 않으면 군법으로 다스리겠다.”

미쳤나 싶었다.

분위기는 험악해지다 못해 싸늘해진다.

그리고 레니 하이만은 더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날 바라보며 말했다.

“리텐 촌놈이 뭐 건질게 없나 싶어서 여기까지 왔나. 공주님이 네놈을 총애하는 것 같으냐?”

저런. 아무래도 이 불쌍한 놈은 자기가 어떤 입장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레니 하이만은 디아나를 바라보고는 몇 번인가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더니 말했다.

“룬하임의 창녀 같으니. 도도한척은 다 하더니 이런 놈하고··· 컥.”

그러나 말을 더 이어가지는 못한다.

배에 검이 틀어 박혔다.

내가 직접 배를 쑤셨다. 그놈이 들고 있는 검을 순식간에 빼앗아서 직접.

디아나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고, 주변 기사들 역시 움찔, 하고 몸을 떨었다.

레니 하이만을 따라오던 로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멈출 생각은 없었다.

배를 찌른 검을 위아래로 비틀어 당겨내듯 뽑는다.

내장들이 조금 딸려 나온다. 피가 쏟아진다. 레니 하이만은 무릎을 꿇고 엎어졌고 드러난 목 위로 가차 없이 검을 내리쳤다.

하얀 눈 위에 피가 쏟아지고 머리통이 떨어져 파묻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아무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후우.”

그리고 나는 얼굴에 튄 피를 슥, 닦아내고 주변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바라크에게 넘겨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말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어제 일에 대해 아는 것 같았다.

뒤에서 씹는 건 상관 안 하지만 앞에서 내뱉는 개소리는 가만 놔둘 생각 없다. 어차피 여기서 이렇게 죽여도 상관없는 놈이다.

누가 죽이건 간에.

그리고 생각외의 도움이 있었다.

“악마가 씌였군요.”

디아나가 침착하게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 말한다.

“레니 하이만은 악마에 씌였습니다. 하지만 여기 레이튼님이 처리했으니, 룬하임을 대신해 미리 감사드리죠.”

앞뒤도 없고 맥락도 없고 증거도 없는 너무나 뻔뻔한 말이었다. 아무도 레니 하이만이 악마에 씌였다는 디아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이 거짓말이라 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신경하게 레니 하이만의 시체를 바라볼 뿐.

그때, 기사 세명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두 명이 주인 잃은 몸통의 두 다리를 잡고 끌어냈고 남은 기사 한 명이 눈에 파묻힌 머리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든 기사가 말했다.

“악마에 씌였던 자입니다. 저기로 가서 불태우겠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기사 세명이 알아서 그렇게 했다. 병사들은 알아서 길을 비켰고 기사들은 구석진 곳으로 시체를 끌고 간다. 거긴 배가 아픈 병사들과 기사들이 아무렇게나 용변을 보던 곳이었다.

그리고 겨우 정신을 차린 로반이 말했다.

“그··· 크흠. 불행한 사고로 지휘관이 죽었으니, 어쩔 수 없이 내가 지휘를 맡겠다.”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심지어 병사 몇 명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레니 하이만의 죽음은 순식간에 처리되었고, 아무도 지휘관의 죽음에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로반이 다시 말했다.

“그럼 두 분. 염치없지만 조금만 도와주십시오.”

아직도 저기서는 수인이 나오라 소리치고 있다.

그리고 로반이 다시 말했다.

“제가 갈테니, 제가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좀 부탁드립니다.”

로반은 힘들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결심한 듯 목재 방벽 뒤에서 나와, 야만인들에게 소리쳤다.

“내가 지휘관이다! 지금 갈테니 기다려라!”

그리고 홀로 눈 위를 걸어간다. 병사들이 활시위를 겨누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며 로반을 엄호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바라크와 로반이 마주했다.

“벵칼 부족의 바라크라 한다.”

“나는, 라인하텐 제국의 로반 베니오다. 그래서, 우리에게 무슨 볼일인가.”

로반은 이런 상황에서도 약해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바라크는 잠깐 시선을 돌려, 저기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며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우리 벵칼 부족은 너희 인간들을 돕기 위해 왔다.”



***



어차피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몇 시간 정도 회의를 거친다. 그리고 내려진 결정은 벵칼 부족의 지원을 받는 거였다.

지원군은 언제 올지 모른다.

그리고 당장 먹을게 없다. 오늘 하루나 내일 정도면 모를까 며칠 뒤면 진짜 아사자가 나올 것이다.

굶어 죽으나 독 있는 음식을 먹고 죽으나 그게 그거였다.

게다가 저 야만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쳐들어올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으므로.

결국 로반은 야만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니 바라크가 이끄는 벵칼 부족은 식량. 물. 그리고 자신들이 쓰는 두터운 몬스터의 가죽등을 지원해주었다.

물론 이것들은 공짜가 아니었다. 대가 없는 호의만큼 의심 가는 게 또 없으니까.

그렇기에 바라크가 요구한 것은 하나. 우리가 너희를 살려줬으니 너희도 우리 부족을 위협하는 타트 부족을 처리해 달라는 것.

타트 부족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그렇게 하겠다 약속했고 그 대가로 식량과 물. 그리고 따뜻한 가죽까지 받아올 수 있었다.

150명이 먹기에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래도 쫄쫄 굶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리고 진실을 말하자면, 이건 바라크가 이끄는 벵칼 부족과 고립된 라인하텐 군의 거래가 아니었다.

그렇게 보일 뿐이지 거래는 진작에 끝나있었다.

타트 부족은 이미 대다수가 죽어 엎어지고 살아남은 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바라크는 그냥 약속만 지키면 되는 거였다.

이미 뒤에서는 얘기가 다 끝나있다. 바라크는 선택을 했고 자신의 선택이 맞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 역시 위험하지만, 필요하다면 해야 하는 일이다. 이미 벵칼 부족의 사람들을 내보냈다.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었다. 말 몇 마디를 하고 목숨과 귀중한 식량을 주기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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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또 시작 3 +4 20.11.27 2,335 86 12쪽
111 또 시작 2 +33 20.11.26 2,722 107 18쪽
110 또 시작 1 +16 20.11.24 2,671 111 19쪽
109 패배자의 전쟁 6 +21 20.11.21 2,606 105 21쪽
108 패배자의 전쟁 5 +25 20.11.19 2,461 103 12쪽
107 패배자의 전쟁 4 +13 20.11.15 2,896 100 12쪽
106 패배자의 전쟁 3 +25 20.11.13 2,680 116 13쪽
105 패배자의 전쟁 2 +14 20.11.12 2,640 97 14쪽
104 패배자의 전쟁 1 +15 20.11.08 2,998 123 11쪽
103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6 +9 20.11.07 2,803 112 15쪽
102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5 +15 20.11.05 2,987 121 17쪽
101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4 +5 20.11.04 3,049 120 11쪽
100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3 +19 20.11.02 3,167 134 12쪽
99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2 +11 20.11.01 3,452 131 12쪽
98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1 +12 20.10.30 3,804 138 15쪽
97 너. 마왕 하고 싶지? 5 +31 20.10.28 4,112 159 17쪽
96 너. 마왕 하고 싶지? 4 +6 20.10.27 3,989 134 14쪽
95 너. 마왕 하고 싶지? 3 +12 20.10.26 4,106 156 15쪽
94 너. 마왕 하고 싶지? 2 +9 20.10.24 4,613 158 16쪽
» 너. 마왕 하고 싶지? 1 +15 20.10.23 4,626 182 12쪽
92 뜻밖의 침략자 9 +28 20.10.21 5,173 230 18쪽
91 뜻밖의 침략자 8 +6 20.10.20 4,988 175 13쪽
90 뜻밖의 침략자 7 +23 20.10.18 5,498 192 12쪽
89 뜻밖의 침략자 6 +23 20.10.16 5,488 238 12쪽
88 뜻밖의 침략자 5 +33 20.10.15 5,678 234 13쪽
87 뜻밖의 침략자 4 +24 20.10.14 6,157 23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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