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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50,037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5.12.02 05:04
조회
547
추천
9
글자
7쪽

28화 만복사저포기(23)

DUMMY

“뭐?”


“대왕님이 부르셔서 이번 재판에 참석 해주셔야합니다.”


“무슨 재판? 그때처럼 재판에서 날 시험하는 건 아니지?”


“대왕님께서 이미 결정을 내려 차사까지 되셨는데 무슨 시험이 또 필요하겠습니까. 이번에는 그저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한 증인으로서 참석하시면 됩니다.”


“그럼 아까 그 여자가 재판 받는 거구나, 근데 그 여자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재판까지 열린 거야?”


“그 여자의 죄에 대한 재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일단 아까 일에 대한 진상조사를 하고 차후 처분에 대해 결정하는 자리 일 것 같습니다. 시간이 급하니 질문이 더 있으시다면 가면서 얘기하는 게 어떠신지요?”


“그래. 근데 어떻게 저승으로 가지? 내가 문을 열어야하나?”


“아뇨. 차사님이 열 수 있는 문은 영혼이 지나가는 문입니다. 산 육체는 통과할 수 없습니다.”


“내 영혼이랑 육체를 분리하면 되잖아.”


“그 편이 편하기는 하나 차사님에게 박힌 홍옥은 이미 육체와도 연결이 강해져 차사님이 죽지 않는 이상 분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좀 가면서 하자고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주악동자는 반쯤 열린 금속 문 앞에서 불만 섞인 목소리로 재촉했다. 열린 문틈으로는 다홍색 빛이 새어 나온다. 주선동자와 얘기하는 동안 혼자서 뭔가를 하더니 저승으로 가는 문을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그를 더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 궁금한 것은 가면서 묻기로 하고 그들과 함께 문을 완전히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문 안에는 딱 버스 한 대만 지나갈 정도 너비의 외길이 펼쳐져 있었고 그 끝엔 다홍색 빛이 다시 보였다. 바닥의 흙은 금속 성분이 많이 함유되었는지 아주 붉었고 길의 양쪽은 거대한 불의 벽으로 막혀 있었다. 불은 끊임없이 밑에서 위로 솟아오르며 폭포가 쏟아지는 것 같은 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는 저 건너편의 빛이 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걸어가던 중 호기심에 불에 손가락을 대봤는데 불의 기세에 위로 빨려들어 가는 느낌이 들어 얼른 손을 뗐다.


“신기한 곳이네.”


“이 길은 예전에 강림님께서 살아있는 육체로 저승에 오기 위해 직접 만든 길입니다. 저승과 이승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업화를 칼로 베어버리고 이 길을 만들었죠. 참 인간이던 시절부터 대단하셨던 분입니다. 그 분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큰 영광입니다.”


“그럼 그 강림이라는 분은 저승사자 중에서도 제일 뛰어나신 분이겠네.”


“저승사자는 진작 관두셨고 지금은 염라대왕을 하고 계시지. 처음부터 그렇게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겨우겨우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네 놈 같이 약해빠진 놈이 바로 다음 후계자가 되다니 역시 이해가 안 된다.”


“어허 주악아, 대왕님의 선택이다.”


“칫”


손으로 잠깐 대기만해도 격렬함이 느껴지는 이 불길을 인간이었을 때 베어버린 대단한 분도 힘들게 올라간 자리다. 대뜸 아무것도 모르던 놈이 갑자기 와서는 다음 후계자로 결정됐으니 주악동자의 눈에 내가 못마땅한 건 당연할 것이다. 왜 그토록 나에게 악담을 퍼부었는지 이제 좀 알 것 같다. 역시 그런 큰 자리를 대뜸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다. 재판이 끝나면 도저히 못 하겠다고 말씀드려야겠다.


이 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야기가 나온 뒤로 분위기가 살짝 무거워져 아무 말 없이 출구부분까지 걸어서 도착했다. 눈앞에는 철로된 거대한 문이 있었고 문 안쪽에서부터 다홍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주선동자는 품 안에서 빨간 색 천과 붓을 꺼내어 천위에 하얀 글씨로 무언가를 썼다. 그리고 문에 붙이자 문이 열리면서 험악하게 생긴 문지기가 창과 쇠몽둥이를 들고 우릴 맞이한다.


“어서 오십시오 차사나리. 재판은 곧 시작하려 하니 서둘러주시기 바랍니다.”


저번과는 달리 매우 친절한 목소리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는 나를 거의 물어뜯으려고 하는 자세로 위협했는데 지금은 매우 온화해 보인다. 조금 기다리자 전에 나를 성까지 데려다 줬던 수레가 도착했다. 동자들과 수레에 오르니 수레는 금방 산 아래의 철성까지 데려다 주었다. 성 안에 들어가 여러 신하들의 안내를 받아 재판소로 들어가니 5명의 판관과 4명의 귀왕 그리고 염라대왕님이 있었다.


커다란 책상 가운데에 대왕님이 앉아 있었고 대왕님의 오른쪽에는 판관들이 책을 한 권씩 들고 서있었다. 귀왕들은 재판소 입구에 두 명 대왕님이 앉아계신 책상 양쪽에 두 명이 창을 들고 서있었다.


“자 다 모였으니 재판을 시작하겠다. 동자들은 어서 박지연을 데려오도록 해라.”


“네.”


동자들이 그녀를 데리러 가자 대왕님이 나를 보고 자신의 바로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선생께서는 이 쪽에 앉아주시길 바랍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봤을 때부터 그는 나를 저런 호칭으로 불렀다.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인데 저승의 대왕이 왜 나를 선생이라고 부르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자리에 앉고 잠시 뒤 동자들이 박지연을 데려와 재판소 한 가운데 앉혔다. 그녀는 이 곳의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조금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아까 옥상에서 내가 무장한 모습을 보고 두려워했을 때보다는 훨씬 차분하다.


“그럼 업경을 준비 하여라.”


동자들은 또 어디론가 바쁘게 가서 거대한 거울을 둘이서 들고 등장한다. 동자들이 거울을 그녀의 앞에 놓자. 판관 한 명이 거울 옆으로 가서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그러자 그녀를 비추고 있던 거울에서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나온다. 그 빛이 내 눈에 들어오면서 순간 온 세상이 하얘지면서 아무것도 안 보이더니 잠시 뒤 재판소가 아니라 어느 병원의 병실이 보인다.


저번에도 겪었던 일이지만 이 업경으로 사람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방식은 적응이 잘 안 된다. 어느 한 시점을 통해 업경에 비춰진 사람이 과거에 했던 일들을 쭉 관찰한다. 지금 보는 일들은 전부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들이기에 내가 여기에 무언가를 할 수도 없고 그 상황으로부터 내가 어떤 영향을 받을 수도 없다. 나는 이 병실에 있지만 있지 않은 것이다.


병실에는 한 소녀가 누워있다. 아마 그녀의 어린 시절일 것이다. 소녀는 몸이 약해서 그런지 언제나 이 병실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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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화 만복사저포기(23) 15.12.02 548 9 7쪽
27 27화 만복사저포기(22) 15.11.30 487 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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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만복사저포기(19) 15.11.25 607 9 7쪽
23 23화 만복사저포기(18) 15.11.23 759 10 7쪽
22 22화 만복사저포기(17) 15.11.22 609 8 7쪽
21 21화 만복사저포기(16) 15.11.21 763 10 8쪽
20 20화 만복사저포기(15) 15.11.18 632 10 5쪽
19 19화 만복사저포기(14) 15.11.17 841 10 5쪽
18 18화 만복사저포기(13) 15.11.16 693 11 6쪽
17 17화 만복사저포기(12) 15.11.16 739 24 5쪽
16 16화 만복사저포기(11) 15.11.16 637 12 5쪽
15 15화 만복사저포기(10) 15.11.16 504 11 5쪽
14 14화 만복사저포기(9) 15.11.15 840 10 6쪽
13 13화 만복사저포기(8) 15.11.15 927 36 5쪽
12 12화 만복사저포기(7) 15.11.14 666 12 5쪽
11 11화 만복사저포기(6) 15.11.14 786 12 5쪽
10 10화 만복사저포기(5) 15.11.13 840 14 5쪽
9 9화 만복사저포기(4) 15.11.12 973 22 5쪽
8 8화 만복사저포기(3) 15.11.12 964 21 4쪽
7 7화 만복사저포기(2) 15.11.12 1,224 19 5쪽
6 6화 만복사저포기(1) 15.11.11 1,233 23 5쪽
5 5화 서장(5) 15.11.10 1,348 21 6쪽
4 4화 서장(4) 15.11.10 1,326 31 5쪽
3 3화 서장(3) 15.11.10 1,403 27 5쪽
2 2화 서장(2) 15.11.10 1,653 30 6쪽
1 1화 서장(1) +2 15.11.10 2,500 4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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