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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50,039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5.11.10 21:50
조회
1,326
추천
31
글자
5쪽

4화 서장(4)

DUMMY

꿈이라고 믿고 싶다.

아직 꿈에서 안 깬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직 꿈을 꾸고 있을 때에는 온 세상이 비현실적이라 아무리 실제 같은 느낌이라도 이 곳이 꿈속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을 안 했지만, 꿈과 현실이 뒤섞인 지금의 이 상황은 이해하려고 해도 혼란만 남을 뿐이다.


죽음에 너무 가까이 간 탓일까? 어째서 이런 환상이 보이는 걸까? 방금 전까지 벌어진 일들은 어떻게 된 일일까? 그리고 아직도 가슴에 타오르는 이 느낌은 뭘까? 대답이 나올 리 없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데도 이제 지치기 시작한다.


사실 그 꿈은 현실이 아니었을까?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설명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저승 같은 게 이 세상에 존재할 리 없다. 사람은 죽으면 무(無)로 돌아간다. 저승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은 증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옥 같은 건 논리에 어긋난 것이다.


사람들이 사후세계를 믿는 이유는 그저 소중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걸 인정하지 못해 만들어낸 가짜세계다. 악행을 저지르고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은 단지 질서를 위해 지어낸 거짓된 사실이다. 조금이라도 더 악행을 저지른 자에게 두려움을 주어 악행을 막기 위해 만든 거짓이다.


그러나 그 경험이 꿈이라고 하기에는 모순점이 있다. 꿈은 애초에 내 기억을 기반으로 재구성 된다. 내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는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곳의 경험은 아무리 평생의 기억을 되돌아 봐도 기존의 기억으로는 구성 될 수 없는 새로운 것들이었다.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도 비슷한 걸 경험한 적이 없다. 게다가 환상이 이렇게 뚜렷한 감각으로 이루어 질 리가 없다.


이렇게 나 혼자 계속 자문자답하는 것으로는 끝이 없을 것 같아 그들에게 말을 걸어 본다.


“저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줄 수 있겠니?”


“차사님은 육체가 살아있는 채로 영혼이 명부에 오랜 시간 머물러있다 인간계로 돌아오신 탓에 안 그래도 힘이 불안상태였는데 감정적인 요인으로 힘이 폭주를 한 듯 보입니다. 그래서 저와 주악동자가 진정시켜드린 것입니다. 살아 있는 인간의 영혼이 차사의 힘을 가진 것도 드문 일인데 힘을 가진 채로 영혼이 육체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극히 드물어 대왕님께서도 이런 일은 예상 못 하신 모양입니다.”


내가 차사가 된 듯하다. 꿈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는 그 기억에서 나는 분명 저 동자들이 대왕이라고 부르는 존재에게 무언가를 받았다. 그게 아마 차사로서의 힘인가 보다. 자기 자신의 뒤를 이어달라는 부탁은 받았어도 이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아이를 구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염라대왕을 만나고 저승사자가 되어 명부의 일을 돕는 무슨 판타지 만화에나 나오는 클리셰같은 이야기가 내게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꿈이라고 생각했기에 쉽게 수락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 때 그런 큰 부탁을 받았을 때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이런 귀찮은 일 같은 건 안 일어났을 텐데 말이다.


그나저나 아직도 가슴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게 거슬린다.


“혹시 이쯤에서 뭔가 타는 것 같은데 이것도 뭔지 아니?”


내가 내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주선동자에게 묻자 주선동자는 손가락으로 따분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던 주악동자를 쿡쿡 찔렀다.


“거참 귀찮게 구네.”


불평을 하면서 주악동자는 품 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땅에 펼치고 무언가 어려운 글씨가 잔뜩 쓰여 있는 종이에 손을 집어넣는다. 그 종이는 아까 병원 바닥이 그랬던 것처럼 물결같은 것이 일렁이며 주악동자의 손을 삼켰다. 주악동자는 그 종이 속에서 서서히 거울을 꺼내 든다. 나는 저 거울을 알고 있다.


업경(業鏡).


이 거울에 죽은 자의 영혼을 비추면 생전에 그자가 한 선행과 악행을 보여준다. 또는 대상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고도 한다.


“직접 보시는 게 더 이해하기 쉬울 것 입니다.”


주악동자에게 업경을 건네받은 주선동자는 거울을 내 쪽을 향해 비추며 말했다. 나는 아까와 달리 한결 자유로워진 몸을 일으켜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속에는 분명 짧은 머리를 하고 호흡기를 찬 인상 나쁜 평범한 청년이 환자복을 입고 있어야 하는데 거울 속의 나는 사뭇 달랐다. 인상이 나쁜 것은 예상대로지만 거울 속의 청년은 검은색 도포를 입고 추가적인 갑옷과 투구를 장비하고 있었다. 저승세계에서 본 차사들의 복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그 청년의 가슴 한가운데에는 타오를 듯 빛을 발하는 새빨간 홍옥이 있었다.


“차사님의 심장에 있는 그 홍옥은 염마의 증표입니다. 차사님이 차기 염라대왕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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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만복사저포기(16) 15.11.21 763 10 8쪽
20 20화 만복사저포기(15) 15.11.18 632 10 5쪽
19 19화 만복사저포기(14) 15.11.17 841 10 5쪽
18 18화 만복사저포기(13) 15.11.16 693 11 6쪽
17 17화 만복사저포기(12) 15.11.16 739 2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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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만복사저포기(10) 15.11.16 504 1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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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 만복사저포기(8) 15.11.15 927 36 5쪽
12 12화 만복사저포기(7) 15.11.14 667 12 5쪽
11 11화 만복사저포기(6) 15.11.14 786 12 5쪽
10 10화 만복사저포기(5) 15.11.13 840 14 5쪽
9 9화 만복사저포기(4) 15.11.12 973 22 5쪽
8 8화 만복사저포기(3) 15.11.12 964 21 4쪽
7 7화 만복사저포기(2) 15.11.12 1,224 19 5쪽
6 6화 만복사저포기(1) 15.11.11 1,233 23 5쪽
5 5화 서장(5) 15.11.10 1,348 21 6쪽
» 4화 서장(4) 15.11.10 1,327 31 5쪽
3 3화 서장(3) 15.11.10 1,403 27 5쪽
2 2화 서장(2) 15.11.10 1,653 30 6쪽
1 1화 서장(1) +2 15.11.10 2,500 4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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