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서장(4)
꿈이라고 믿고 싶다.
아직 꿈에서 안 깬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직 꿈을 꾸고 있을 때에는 온 세상이 비현실적이라 아무리 실제 같은 느낌이라도 이 곳이 꿈속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을 안 했지만, 꿈과 현실이 뒤섞인 지금의 이 상황은 이해하려고 해도 혼란만 남을 뿐이다.
죽음에 너무 가까이 간 탓일까? 어째서 이런 환상이 보이는 걸까? 방금 전까지 벌어진 일들은 어떻게 된 일일까? 그리고 아직도 가슴에 타오르는 이 느낌은 뭘까? 대답이 나올 리 없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데도 이제 지치기 시작한다.
사실 그 꿈은 현실이 아니었을까?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설명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저승 같은 게 이 세상에 존재할 리 없다. 사람은 죽으면 무(無)로 돌아간다. 저승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은 증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옥 같은 건 논리에 어긋난 것이다.
사람들이 사후세계를 믿는 이유는 그저 소중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걸 인정하지 못해 만들어낸 가짜세계다. 악행을 저지르고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은 단지 질서를 위해 지어낸 거짓된 사실이다. 조금이라도 더 악행을 저지른 자에게 두려움을 주어 악행을 막기 위해 만든 거짓이다.
그러나 그 경험이 꿈이라고 하기에는 모순점이 있다. 꿈은 애초에 내 기억을 기반으로 재구성 된다. 내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는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곳의 경험은 아무리 평생의 기억을 되돌아 봐도 기존의 기억으로는 구성 될 수 없는 새로운 것들이었다.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도 비슷한 걸 경험한 적이 없다. 게다가 환상이 이렇게 뚜렷한 감각으로 이루어 질 리가 없다.
이렇게 나 혼자 계속 자문자답하는 것으로는 끝이 없을 것 같아 그들에게 말을 걸어 본다.
“저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줄 수 있겠니?”
“차사님은 육체가 살아있는 채로 영혼이 명부에 오랜 시간 머물러있다 인간계로 돌아오신 탓에 안 그래도 힘이 불안상태였는데 감정적인 요인으로 힘이 폭주를 한 듯 보입니다. 그래서 저와 주악동자가 진정시켜드린 것입니다. 살아 있는 인간의 영혼이 차사의 힘을 가진 것도 드문 일인데 힘을 가진 채로 영혼이 육체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극히 드물어 대왕님께서도 이런 일은 예상 못 하신 모양입니다.”
내가 차사가 된 듯하다. 꿈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는 그 기억에서 나는 분명 저 동자들이 대왕이라고 부르는 존재에게 무언가를 받았다. 그게 아마 차사로서의 힘인가 보다. 자기 자신의 뒤를 이어달라는 부탁은 받았어도 이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아이를 구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염라대왕을 만나고 저승사자가 되어 명부의 일을 돕는 무슨 판타지 만화에나 나오는 클리셰같은 이야기가 내게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꿈이라고 생각했기에 쉽게 수락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 때 그런 큰 부탁을 받았을 때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이런 귀찮은 일 같은 건 안 일어났을 텐데 말이다.
그나저나 아직도 가슴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게 거슬린다.
“혹시 이쯤에서 뭔가 타는 것 같은데 이것도 뭔지 아니?”
내가 내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주선동자에게 묻자 주선동자는 손가락으로 따분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던 주악동자를 쿡쿡 찔렀다.
“거참 귀찮게 구네.”
불평을 하면서 주악동자는 품 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땅에 펼치고 무언가 어려운 글씨가 잔뜩 쓰여 있는 종이에 손을 집어넣는다. 그 종이는 아까 병원 바닥이 그랬던 것처럼 물결같은 것이 일렁이며 주악동자의 손을 삼켰다. 주악동자는 그 종이 속에서 서서히 거울을 꺼내 든다. 나는 저 거울을 알고 있다.
업경(業鏡).
이 거울에 죽은 자의 영혼을 비추면 생전에 그자가 한 선행과 악행을 보여준다. 또는 대상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고도 한다.
“직접 보시는 게 더 이해하기 쉬울 것 입니다.”
주악동자에게 업경을 건네받은 주선동자는 거울을 내 쪽을 향해 비추며 말했다. 나는 아까와 달리 한결 자유로워진 몸을 일으켜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속에는 분명 짧은 머리를 하고 호흡기를 찬 인상 나쁜 평범한 청년이 환자복을 입고 있어야 하는데 거울 속의 나는 사뭇 달랐다. 인상이 나쁜 것은 예상대로지만 거울 속의 청년은 검은색 도포를 입고 추가적인 갑옷과 투구를 장비하고 있었다. 저승세계에서 본 차사들의 복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그 청년의 가슴 한가운데에는 타오를 듯 빛을 발하는 새빨간 홍옥이 있었다.
“차사님의 심장에 있는 그 홍옥은 염마의 증표입니다. 차사님이 차기 염라대왕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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