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만복사저포기(11)
그녀가 어째서 이런 행동을 하는 지는 이해가 잘 안 갔다. 이럴 때 시선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 나를 살짝 밀어내고 재빨리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곤 언제나 나에게 보여주던 밝은 미소를 짓는다. 정말로 눈부시게 밝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는 정말 많고 복잡해서 스스로도 왜 이렇게까지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가는데 그녀의 이 미소를 볼 때마다 정말로 좋아하고 있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눈물을 보였던 게 약간 민망하였는지 그녀는 입을 연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왔어? 너는 신 같은 거는 안 믿는다고 했잖아. 등불축제 즐기러 온 거야?”
방 안에서 신세한탄을 하던 중 갑자기 신이 나타나 무조건 내가 이기는 내기를 제안해서 내기를 하러 여기에 왔다고는 대답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그 신께서 하사하신 선물이 서있다고도 말이다.
“그냥 학교에만 계속 있기도 따분하고 가끔씩은 이런 곳에 와서 소원을 비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해서 와봤어. 등불구경하는 것도 기분전환으로 나쁘진 않았고 혹시나 여기서 빈 소원이 이루어 질 지도 모르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명백하게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 거짓말 때문에 생긴 빈틈을 채우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생긴 빈틈을 또 거짓으로 채운다. 그러다가 결국 무너지게 된다. 거짓으로 인생을 채우다 인생을 망친 사람을 여럿 봐온 후 얻은 교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서 진실을 말하기엔 위험하다. 말해봤자 미친 사람 취급당하기 딱 좋은 이야기다.
그녀는 호기심 가득 한 소녀의 눈빛을 하고는 나에게 질문을 계속했다.
“그래서 무슨 소원 빌었어?”
이 질문도 역시 대답하기 난처하다. 여기서 빈 소원은 아니지만 내가 그 신에게 빌었던 소원은 여자친구를 만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것뿐이라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이루고 싶었던 것은 남들이 흔히 바라는 그렇게 평범한 소원이 아니었다. 그 신에게는 지금 외로우니 아무나 상관없이 그냥 만나고 싶다는 느낌으로 소원을 빌었지만, 나는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 이외의 여자를 만나는 건 생각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가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은 여자친구를 사귈 생각이 없다고 핑계를 대긴 했어도 본질적인 이유는 그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이다. 대학교에 온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회가 아주 적긴 했어도 어떤 여성과 관계가 발전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새 거리를 두고 있었다. 결국 마음속으로 깊이 바라고 있었던 내 진짜 소원은 내가 잊을 수 없었던,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던 내 첫사랑 박지연과 만나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란 것을 신도 신이라는 이름답게 전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제대로 소원을 이루어준걸 보면 말이다.
“음......”
사실대로 말하기엔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에 빨리 다른 소원을 생각해내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했다. 그리고 평소 습관처럼 어느새 내 뒷머리를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빨리 말해봐. 궁금하단 말이야.”
“음....... 이번 학기 학점 잘나오게 해달라고 빌었어.”
“풋~ 그게 뭐야~ 거짓말이지?”
쉽게 간파 당했다. 물론 학점이 잘 나오는 것은 내가 바라던 것 중에 하나이긴 하다. 모든 대학생들이 그렇듯이 나에게도 학점이 꽤나 중요했다. 내 앞으로의 인생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지만 당장 눈앞에 놓인 등록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학점은 필요했다. 그러나 충분히 내 노력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이걸 소원으로 빌었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너 그거 알아? 너는 거짓말할 때 얼굴에 거짓말 한다고 쓰여 있어. 진짜 소원 뭐야 빨리 알려줘.”
“안 돼. 소원은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효력이 떨어져서 잘 안 이루어진다 했어.”
“칫~ 너무해.”
겨우 잘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녀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웃는 얼굴만큼은 아니지만 살짝 삐진 얼굴도 귀엽다. 그렇다 해도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내가 빌었던 소원에서 화제를 돌리기 위해 그녀에게 왜 이곳에 왔는지 물었다.
“그나저나 넌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기로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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