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만복사저포기(14)
뭐가 문제일까? 내가 제대로 설명도 하지도 않고 결과를 말해버려서 그런가? 아니다. 여기서 더 깊게 설명을 했다면 지금보다 더 심각했을 거다. 아마 모처럼 즐겁게 행사를 즐기고 예쁜 풍경을 보고 있는데 별이 이미 죽어 있을 수도 있다는 씁쓸한 얘기를 해서 그런 것 같다. 어쨌든 빨리 내가 망쳐버린 이 분위기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
나는 뭔가 다른 이야기 거리를 찾기 위해 이리 저리 둘러보았다. 그러다 밤하늘에서 유독 눈에 띄는 눈부신 은색 빛의 별을 발견했다. 고등학교 시절 과학과목은 전부 좋아했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지구과학시간에 공부했던 것도 다 기억이 났다. 봄 하늘 남쪽에서 가장 빛이 밝아 쉽게 찾을 수 있는 있는 별이라면 분명 스피카다. 스피카를 발견했으니 쉽게 처녀자리를 알아 볼 수 있었다.
처녀자리. 아름다운 봄 처녀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지금 내 옆에 있는 그녀와 잘 어울리는 별자리다. 이 별자리가 누구를 뜻하는 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페르세포네라고 한다.
저 별자리에 얽힌 이야기를 대충 이야기 하자면 아름다운 처녀 페르세포네를 탐한 저승의 왕이 그녀를 자신이 사는 곳으로 데려가 버렸고 일 년에 절반 봄부터 여름까지만 이 세상에 오는 걸 허락받았다고 한다. 그 시기가 별자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와 보이지 않게 되는 시기가 일치해서 가장 많이 믿어지는 것 같다.
이 별자리 이야기라면 이 분위기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지연아 저기 저 별 좀 봐봐.”
“어디?”
“저기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데서 제일 밝은 별.”
아무리 밝은 별이라도 넓은 하늘에서 그냥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고 특정별을 찾기란 매우 힘든 모양이다. 그래서 그녀는 더 정확한 방향을 알기 위해 내가 가리키는 팔에 왼쪽 뺨을 대었다. 또다시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한다. 심장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그녀에게 들려버릴 것만 같았다.
“어 찾았어. 근데 저 별이 무슨 특별한 별이야?”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조금 깊게 들이 쉬고 그녀에게 처녀자리를 소개했다.
“저 별이 스피카인데 저 게 처녀자리에서 여인이 왼손에 들고 있는 곡식이래. 그리고 이렇게 해서 이 쪽 방향 따라서 가면 여기가 여인의 머리가 되고 이렇게 크게 돌아서 가면 여인이 입고 있는 치마가 그려져.”
내가 처녀자리의 여인을 그리기 위해 팔을 이리저리로 서서히 움직일 때마다 지연이는 내게 딱 붙어 그 방향을 따라서 같이 움직였다. 그녀의 이런 행동은 매번 나를 설레게 한다. 처녀자리의 별들을 손가락으로 이어준 뒤 이 별자리에 담긴 이야기도 해주었다.
“진짜로 사람 모습이 보이긴 보이네. 진짜 신기하다. 그나저나 넌 어떻게 이런 걸 다 알고 있어?”
“아니. 뭐 그냥 관심 있어서 찾아보다가.”
그녀의 칭찬에 나는 신나서 봄의 대삼각형이던가 목동자리던가 사자자리 등등 여기서 볼 수 있는 몇몇 별자리를 소개해 주었다. 설명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쭉 내게 딱 달라붙어 있어 상당히 두근거렸지만 좋았다.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동쪽에서 기웃거리던 보름달도 어느새 하늘 높이 올랐다. 시간을 확인하니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와 여기서 계속 있고 싶지만 등불에 있는 초도 이제 다 타들어 가고 있었다. 언덕 같은 산이라고는 해도 빛없이 내려가는 일은 위험하고 버스시간도 걱정되고 하니 하던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그녀에게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우리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할 것 같아.”
“그래?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 아쉽다. 좀 더 얘기 듣고 싶었는데. 뭐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정리를 하고 천천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두웠던 탓도 있지만 좀 더 같이 있고 싶기에 발걸음이 무거워 졌던 것 같다. 내려가면서 그녀와 나는 오늘 일에 대한 감상을 말하며 짧은 만남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렇게 산 아래에 있는 버스 정류장까지 내려왔다.
“집 어디야? 데려다 줄게.”
“여기서 금방이라서 안 데려다 줘도 돼.”
“진짜로?”
“응. 괜찮아. 너도 힘들 텐데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너 여기서 버스 타야 되지? 그럼 먼저 가볼게.”
“잘 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어서 이런 제안을 했지만, 아쉽게도 거절당했다. 그녀는 뒤돌아서 그녀의 집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이대로 보내면 여기서 끝이다.
“혹시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있어?”
그녀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 봤다. 그리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 지금 데이트 신청하는 거야?”
“응.”
“좋아. 근데 토요일이면 5시 이후에나 될 거 같아.”
“그럼 그 때 만나자.”
“그럼 토요일 5시 여기서 만나.”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다시 그녀의 갈 길을 갔다. 생각해보니 전화번호 물어보는 걸 깜빡했다. 그래도 시간이랑 장소 다 정해졌으니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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