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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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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50,028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5.11.15 19:04
조회
839
추천
10
글자
6쪽

14화 만복사저포기(9)

DUMMY

꿈도 없이 편안히 잠에서 깬 뒤 습관적으로 휴대폰 화면을 켠다. 어제 남은 두 문제가 조금 복잡해서 1시 정도에 잠들었는데 다시 1시다. 장장 12시간을 푹 자버렸다. 전날 잠을 충분히 못 잔 것도 있고 하루 종일 바빠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 기숙사 식당의 점심시간이 이미 끝나버려서 밖에서 먹어야한다. 샴푸와 수건을 챙겨 머리를 감고 대충 드라이기로 말린 뒤 바람막이 하나를 걸치고 밖으로 나간다.


싸고 배를 쉽게 채울 수 있는 컵밥을 선택한다. 컵에 담겨진 맛은 그냥 평범한 볶음밥인데 대학생이 끼니를 때우기에는 굉장히 싸고 양도 적절하다. 마음 같아서는 돈가스를 사먹고 싶지만 용돈을 그렇게 많이 받는 건 아니니 싸게 싸게 먹어야한다. 그래도 추가로 얹는 계란프라이는 내가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사치이다.


대충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니 이제 2시이다. 등불행사는 5시부터 제대로 시작하니 4시까지는 어디서 시간을 때워야한다. 동기들과 함께 PC방에 가서 게임 한판정도 하고 싶었지만 내가 이번 학기 수강신청을 망하는 바람에 시간표가 전부 달라져 공강인 나와 다르게 그들은 현재 수업중이다.


혼자서 심심하기도 하니 먼저 절에 가있어야겠다. 방으로 다시 돌아가 제대로 옷을 갖춰 입고 주사위를 챙긴 뒤 지도어플을 이용해 만복사로 가는 버스를 알아 봤다.


버스 정류장에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면서 기다리다 만복사로 가는 버스가 와서 올라탔다. 버스에 앉아 40분정도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만복사는 산 한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입구에서부터 걸어 올라가야 한다. 다행히 경사는 거의 평지 수준으로 완만하다.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에 가까운 느낌이다.


만복사로 가는 길목에는 노점상들이 갖가지 간식거리를 팔고 있었다. 얼린 물, 찐 옥수수, 뻥튀기, 번데기, 솜사탕 등등 축제 같은 것이 열리면 언제나 같이 따라오는 그런 흔한 노점상들이다. 아직은 행사가 시작하기 전이라 손님들이 별로 없어 상인들은 느긋하게 쉬고 있다.


상인행렬을 지나 만복사의 입구에 도착한다. 입구에는 다른 절들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목상 4개를 볼 수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천왕이다. 귀신을 내쫓는 역할을 한다고 들었다. 언제 봐도 저 사나운 눈은 사람을 두렵게 만든다. 문을 통과할 때는 그 4개의 불상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절 안은 행사준비로 분주하다. 절 건물들의 지붕과 지붕사이에는 몇 갈래의 줄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줄에는 조롱박이 열린 것처럼 등불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아직은 해가 이 곳을 밝게 비추고 있지만, 해가 저문 후에는 이 등불들이 사람들의 소망과 함께 이 곳을 밝게 비출 것이다.


절 곳곳에는 등불들이 놓여 있었다. 나중에 이 곳에 방문한 손님들을 위한 등불일 것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절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한 쪽 건물에서 등불을 만드는 체험행사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할 것도 없었기에 이 행사에 참여했다.


먼저 뼈대를 만들기 위해 가늘고 기다란 나무막대를 휘어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원들을 지탱시키기 위해 지구본의 경도에 해당하는 축을 붙여준다. 뼈대의 겉을 한지로 덮어주면 기본적인 모양은 나온다. 그리고 그 위에 여러 가지 장식을 하고 마지막으로 등불 밑바닥에 초를 붙인다. 이제 불만 붙이면 등불 완성이다. 불은 나중에 붙이기로 한다.


완성된 등불을 보니 생각보다 잘 만들어졌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이런 만들기 종류에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공대에 들어오니 만들기를 요구하는 반드시 수강해야하는 강의가 있어서 그 강의의 과제를 하느라 손재주가 늘었다.


등불 만들기를 마치니 벌써 해가 마지막 빛을 태우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6시다. 밖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해가 완전히 저물자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소망을 담은 등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등불에 불을 붙이고 어울렸다.


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점점 줄고 절은 한산해 졌다. 나는 때가 됐다고 생각해 주사위를 들고 불당 앞에 섰다. 주머니에서 두 주사위를 꺼내어 던졌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검은 주사위는 역시 6이 나왔고 흰 주사위는 2가 나왔다. 나는 내기에서 이겼다.


“제가 내기에서 이겼습니다. 약속대로 제 소원을 들어주시지요.”


내가 이렇게 말하니 내가 던진 하얀 주사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하얀 주사위는 스스로 깨지더니 하얀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6이 나온 검은 주사위는 검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검은 그림자 같은 빛은 서서히 지면에서 떠오르더니 절을 빠르게 돌아다닌다. 그 검은 빛이 지나가자 그 주변에 있던 등불의 불이 꺼진다. 마치 사람들의 소망이 서린 불을 먹어치우는 것처럼 그 검은 빛은 다른 불빛이 꺼질 때마다 그 크기를 키워나간다.


검은 빛이 몇 바퀴를 돌자 사람들의 소망과 함께 절을 가득 채운 복으로 빛나던 만복사는 어둠에 먹혀버렸다. 마지막으로 그 검은 빛은 절의 입구로 갔다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여러 갈래의 빛으로 휘어져 내게 들어온다. 불길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다. 이걸로 소원은 이루어 질 것 같다.


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영문을 모른 채 어둠 속에서 이 상황 속을 헤매고 있었다. 나는 아까 그 검은 빛이 왜 입구까지 갔는지 궁금해서 그 곳으로 가보았다. 그 때 절의 입구에서 놀랄만한 것을 발견했다. 아까 처음에 들어 왔을 때와는 다르게 이 절을 지키고 있던 4개의 목상이 들고 있던 무기는 전부 부서져 있었다. 칼날과 창은 부러졌고 비파와 여의주는 금이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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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만복사저포기(18) 15.11.23 759 10 7쪽
22 22화 만복사저포기(17) 15.11.22 608 8 7쪽
21 21화 만복사저포기(16) 15.11.21 763 10 8쪽
20 20화 만복사저포기(15) 15.11.18 632 10 5쪽
19 19화 만복사저포기(14) 15.11.17 840 10 5쪽
18 18화 만복사저포기(13) 15.11.16 693 11 6쪽
17 17화 만복사저포기(12) 15.11.16 739 24 5쪽
16 16화 만복사저포기(11) 15.11.16 637 12 5쪽
15 15화 만복사저포기(10) 15.11.16 503 11 5쪽
» 14화 만복사저포기(9) 15.11.15 840 10 6쪽
13 13화 만복사저포기(8) 15.11.15 927 36 5쪽
12 12화 만복사저포기(7) 15.11.14 666 12 5쪽
11 11화 만복사저포기(6) 15.11.14 786 12 5쪽
10 10화 만복사저포기(5) 15.11.13 840 14 5쪽
9 9화 만복사저포기(4) 15.11.12 973 22 5쪽
8 8화 만복사저포기(3) 15.11.12 964 21 4쪽
7 7화 만복사저포기(2) 15.11.12 1,224 19 5쪽
6 6화 만복사저포기(1) 15.11.11 1,233 23 5쪽
5 5화 서장(5) 15.11.10 1,348 21 6쪽
4 4화 서장(4) 15.11.10 1,326 31 5쪽
3 3화 서장(3) 15.11.10 1,403 27 5쪽
2 2화 서장(2) 15.11.10 1,653 30 6쪽
1 1화 서장(1) +2 15.11.10 2,500 4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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