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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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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50,040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5.11.10 23:32
조회
1,348
추천
21
글자
6쪽

5화 서장(5)

DUMMY

거울 속의 내 가슴 한가운데에 있는 아름다운 빛을 계속 바라보았다. 진한 붉은빛깔이다. 정말 미묘한 빛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따뜻하게 빛나는 맑은 불꽃의 색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보이는 위협적이면서도 매혹적인 불꽃의 색이다.


그 홍옥이 뿜어내는 작은 불은 지금도 내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게 느껴진다.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참 낯설고 거슬리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이게 참 따뜻하게 다가온다. 맑은 봄날에 공원에서 돗자리 하나 깔고 평화롭게 즐기는 태양빛과 비슷한 느낌이다.


한 참을 멍하니 이 현혹적인 불꽃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병실의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들어온다. 간호사는 이쪽을 보자마자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짓는다. 설마 간호사에게도 내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 보이는 걸까?


그건 아닌 듯하다. 지금 이게 보였다면 저렇게 금방 다시 차분해질 리가 없다. 그저 내가 깨어나서 놀란 것 같다. 절대 깨어날 것 같지 않던 사람이 몸을 일으켜 자신 쪽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저런 표정을 지은 것 같다. 그리고는 의사를 부르러 갔다. 동자들은 간호사의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는 듯하다. 큰 소리로 문을 열며 들어왔는데도 한 번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희들 저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 거 맞지?”


나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저희는 본래 태생이 마(魔)이므로 살아있는 인간의 눈에 보일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가끔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나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자는 저희 같은 존재가 보이기도 합니다. 차사님께서는 이미 인간을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저희가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그들은 내가 인외의 존재라고 하지만 눈앞의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보고도 사실을 인정하기란 힘들다. 아직도 사실을 받아드리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덜 됐다. 주선동자는 혼란스러워하는 나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업경을 주악에게 다시 건넨 뒤 작별을 고한다.


“차사님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원래 설명 해드려야 할 것들이 많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저희와 이야기하시는 것은 차사님의 인간으로서 입장을 곤란하게 하는 것 같아 다음으로 미루는 게 나아 보입니다.”


말을 마친 주선동자는 정중히 허리를 숙이고 뒤로 물러난다. 그리곤 아까 그가 나올 때 봤던 하얀 불꽃에 휩싸이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주선동자의 공손한 인사가 못마땅한지 주악동자는 나를 향해 투덜거린다.


“아니 애초에 오늘 설명을 다 끝내야하는데 네 놈이 정신 똑바로 못 차려서 우리가 힘을 다 쓴 탓에 이렇게 된 거다. 좀 반성하고 있어라.”


업경을 두루마리에 집어넣고 두루마리를 다시 품에 주섬주섬 넣은 뒤 주악동자 또한 불이 되어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아까 놀란 표정으로 나간 간호사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와 함께 돌아왔다. 의사는 40대 중반으로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의사처럼 생겼다. 그 의사 역시 아까 간호사와 마찬가지로 일어나 있는 나를 보고 제법 놀란 듯 했다. 그리곤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저 환자분 기분은 어떠신가요?”


“평범합니다.”


“어디 아프거나 한 곳은 없나요?”


“네 피곤하다는 느낌 빼고는 다 정상적입니다.”


“혹시 기억에 이상이 생기거나 하진 않았나요?”


“네 멀쩡히 다 기억합니다.”


이 외에도 나의 상태를 묻는 질문 몇 가지를 더 했다. 계속 대답을 하는 데 입에 씌어 있는 마스크에 김이 차 불편해서 의사에게 물었다.


“저기 이 마스크 이제 벗어도 되나요?”


“네 이제 필요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다른 것도 이제 필요 없어 보이네요. 김 간호사 다 빼드려.”


의사의 지시에 간호사는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주었다. 주사가 빠진 상처에는 간호사가 지혈을 위해 거즈를 붙여준다. 한결 몸이 편안하게 느껴져 이리저리 움직이며 경직된 몸을 풀려고 하는데 의사가 못하게 한다.


“아직 자세히 검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몸을 무리하게 움직이는 걸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멀쩡하게 보이는 건 믿기지 않지만, 그런 큰 사고 이후이니 혹시 발견하지 못한 이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안정을 취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자세한 검사는 내일 진행할 테니 이만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마치고 의사는 돌아가려한다. 그나저나 얼마나 오래 자고 있었는데 내가 깨어난 걸 보고 놀라는 걸까?


“아, 저기 오늘 며칠이죠?”


“4월 2일입니다.”


대답을 마치고 의사는 간호사와 함께 방을 나섰다.


거의 한달 동안이나 의식이 없었다. 정확히는 27일 동안 의식이 없었던 거다. 저승에 있었던 시간은 겨우 3일이었는데 현실에서는 27일이나 흘렀다. 아마 현실의 9일이 저승의 하루와 같은가 보다. 이승과 저승의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은 익히 들었지만, 정말로 겪고 나니 신기할 일이다.


이제 생각하는 것도 지친다. 병원이란 장소도 마음을 진정하기에는 좋은 장소는 아닌가보다. 빨리 퇴원하고 싶다. 그래도 오늘은 일단 내일을 위해 자야겠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나는 의사의 말대로 혈액검사부터 엑스레이, MRI, CT 등의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딱히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퇴원수속을 밟았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 편하게 쉬고 있다. 역시 집만큼 편안한 공간은 없는 듯하다. 익숙한 공간에 오니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당분간은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이 지속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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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만복사저포기(10) 15.11.16 504 1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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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 만복사저포기(8) 15.11.15 927 36 5쪽
12 12화 만복사저포기(7) 15.11.14 667 12 5쪽
11 11화 만복사저포기(6) 15.11.14 786 12 5쪽
10 10화 만복사저포기(5) 15.11.13 840 14 5쪽
9 9화 만복사저포기(4) 15.11.12 973 22 5쪽
8 8화 만복사저포기(3) 15.11.12 964 21 4쪽
7 7화 만복사저포기(2) 15.11.12 1,224 19 5쪽
6 6화 만복사저포기(1) 15.11.11 1,233 23 5쪽
» 5화 서장(5) 15.11.10 1,349 21 6쪽
4 4화 서장(4) 15.11.10 1,327 31 5쪽
3 3화 서장(3) 15.11.10 1,403 27 5쪽
2 2화 서장(2) 15.11.10 1,653 30 6쪽
1 1화 서장(1) +2 15.11.10 2,500 4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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