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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50,031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5.11.22 03:54
조회
608
추천
8
글자
7쪽

22화 만복사저포기(17)

DUMMY

“넌 왜 안 먹어?”


“아 만들면서 맛보느라고 좀 먹었더니 배불러서 나 신경 쓰지 말고 다 먹어.”


그녀 말대로 그녀 몫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잿빛 하늘은 거뭇거뭇하게 변하면서 점점 주변이 어두워져 갔다. 그러자 그녀는 가방에서 성냥을 꺼내어 등불을 밝혔다. 등불은 저번 일을 떠올리게 만들며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어 줬다. 성급하다는 것을 아는데도 그 분위기에 취했는지 아니면 믿고 있지도 않던 신이란 존재를 믿게 되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갑자기 용기가 났다.


“있잖아 지연아.”


“응 왜?”


“내가 옛날에 너 좋아했던 거 알았어?”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알았을 걸?”


“그럼 지금도 좋아하고 있는 건?”


“당연히 알고 있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한테 데이트를 신청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 넌 날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물어보자 그녀는 대답대신 갑자기 가방에서 뭔가를 찾더니 하얀 실로 엮어 만들어진 팔찌를 꺼내었다. 그리곤 즐거운 표정으로 내 팔에 묶어주며 말했다.


“내가 남자친구생기면 주려고 미리 만들어 놨어.”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소매를 살짝 걷으며 팔을 내보였다. 그녀의 팔에는 그녀가 내게 묶어줬던 팔찌와 같은 것이 묶여있었다. 새하얗고 오밀조밀 잘 엮인 그런 팔찌였다. 나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행동에 멍하니 있었다.


“짜잔 커플 팔찌. 어때 맘에 들어?”


“으응.”


“뭐야 맘에 안 드는 거 같은데?”


“아니. 엄청 좋은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뭐야 갑자기 고백한 건 자기면서.”


“그럼 우리 지금부터 사귀는 거야?”


“당연하지. 지금 커플팔찌까지 받아놓고 그런 소릴 하는 거야?”


너무 좋다. 조금 놀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해서 심장이 터질 거 같은데 너무 좋다. 너무 좋아서 현실감이 없다. 이렇게 좋은 기분이 든 적도 처음이다. 꿈속에 잠겨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 꿈같은 기분에 잠겨 그녀가 준 팔찌를 보고 있을 때 물 한 방울이 내 손등 위로 떨어진다. 내 머리 위로도 떨어진다. 계속해서 차가운 물방울이 하나 둘씩 하늘 위에서부터 떨어져 내려온다. 계속 비가 올 거 같더니 결국 이런 타이밍에 오고야 만다.


“어 비 오네. 이거 빨리 정리해야겠다.”


그녀는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등불이 만들어낸 화사한 분위기도 이 꿈같은 기분도 점점 굵어지는 차가운 빗방울에 씻겨 내려가 버린다. 나와 그녀는 서둘러 주변정리를 하였다. 정리를 다 마치고 나는 가지고 왔던 우산을 펼쳐 비를 막았다.


그녀는 비를 맞지 않기 위해 내게 꼭 달라붙었다. 나는 그녀가 비를 조금이라도 덜 맞게 하기 위해서 그녀 쪽으로 우산을 기울였다. 예전에도 그녀와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녀와 처음 만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그 때도 지금처럼 비가 오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그녀가 학교 건물 앞에서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때 난 작년에 수학선생님께서 재미삼아 얘기해줬던 것을 떠올렸다. 비가 오는 날 맘에 드는 여자가 우산이 없어 난처해하고 있을 때는 우산을 같이 쓰고 가는 것보다 우산을 주고 혼자서 뛰어 가는 게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는 이야기였다. 듣기에 그럴 듯해서 언젠가는 한 번 써먹어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이 와버렸다. 그래서 그 때 난 그녀에게 우산을 건네며 “이거 쓰고 가”라고 말하고 뛰어갔다.


조금 뛰었더니 힘들어서 그냥 비를 맞으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누군가 뒤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였다. 그녀는 “바보야 같이 쓰고 가.”라고 말하며 우산을 씌어 주었다. 그 때도 우리는 지금처럼 우산을 같이 쓰고 걸어가고 있었다.


옛날 생각을 하며 길을 걷던 중 그녀는 멈춰 서서 내 소매를 당기며 말했다.


“여기서 비 좀 피하다 가자.”


그녀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보련사라는 이름의 작은 절이었다. 이 주변을 둘러 봤을 때 더 걸어가도 비를 피할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어 보이지 않아 그녀의 제안대로 절에 들어갔다. 만복사와는 다르게 특별한 입구도 없었고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우산을 접고 처마 밑에 걸쳐 앉아 비를 피했다. 피할 곳을 찾으니 방해꾼으로만 느껴졌던 비도 그 소리가 나름 운치 있게 느껴졌다.


우리는 빗소리를 배경삼아 서로를 바라봤다. 그녀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녀의 미소를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점점 그녀에게 빨려드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다가 결국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려 저질러버렸다. 눈을 살짝 떠보니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부끄러워서 서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녀와 입을 맞춘 탓에 가슴 속에서 자꾸 무언가가 타오르는 느낌이 든다. 이 타오름은 심장을 넘어서 온 몸으로 향하더니 점점 더 뜨거워져 갔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다. 분명히 나는 행복감에 젖어 있어야하는데 지금 이 타오름은 불길하고 새까맣다. 점점 더 이런 느낌이 심해지더니 만복사에서 내게 들어왔던 것과 같은 검은 불이 내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녀는 크게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지금 불에 휩싸인 내 모습이 보이는 모양이다. 이 불들은 점점 더 거세어지더니 한 번 확 솟구치고는 작은 불꽃으로 나뉘어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 검은 불꽃들이 다 사라지자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내 눈앞에 있던 그녀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다른 것들은 멀쩡한데 그녀만 희미해져 잘 보이지 않게 됐다.


“지연아.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네가 자꾸 희미해져가.”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입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다만 입모양으로 볼 때 계속 “미안해”라고 반복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계속 희미해지더니 결국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슬퍼할 틈도 없이 갑작스럽게 내 의식도 점점 희미해져가더니 결국 의식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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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화 만복사저포기(20) 15.11.27 514 10 7쪽
24 24화 만복사저포기(19) 15.11.25 607 9 7쪽
23 23화 만복사저포기(18) 15.11.23 759 10 7쪽
» 22화 만복사저포기(17) 15.11.22 609 8 7쪽
21 21화 만복사저포기(16) 15.11.21 763 10 8쪽
20 20화 만복사저포기(15) 15.11.18 632 10 5쪽
19 19화 만복사저포기(14) 15.11.17 840 10 5쪽
18 18화 만복사저포기(13) 15.11.16 693 11 6쪽
17 17화 만복사저포기(12) 15.11.16 739 24 5쪽
16 16화 만복사저포기(11) 15.11.16 637 12 5쪽
15 15화 만복사저포기(10) 15.11.16 504 11 5쪽
14 14화 만복사저포기(9) 15.11.15 840 10 6쪽
13 13화 만복사저포기(8) 15.11.15 927 36 5쪽
12 12화 만복사저포기(7) 15.11.14 666 12 5쪽
11 11화 만복사저포기(6) 15.11.14 786 12 5쪽
10 10화 만복사저포기(5) 15.11.13 840 14 5쪽
9 9화 만복사저포기(4) 15.11.12 973 22 5쪽
8 8화 만복사저포기(3) 15.11.12 964 21 4쪽
7 7화 만복사저포기(2) 15.11.12 1,224 19 5쪽
6 6화 만복사저포기(1) 15.11.11 1,233 23 5쪽
5 5화 서장(5) 15.11.10 1,348 21 6쪽
4 4화 서장(4) 15.11.10 1,326 31 5쪽
3 3화 서장(3) 15.11.10 1,403 27 5쪽
2 2화 서장(2) 15.11.10 1,653 30 6쪽
1 1화 서장(1) +2 15.11.10 2,500 4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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