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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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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50,015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5.11.10 06:40
조회
1,652
추천
30
글자
6쪽

2화 서장(2)

DUMMY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어떻게 다뤄야 할 줄 몰라 나는 나 자신을 원망해본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던 걸까하고 말이다. 나는 내 노력을 배신했다. 그 중요한 시험을 위해 투자한 시간들을 이렇게 한 순간에 날려버린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나 자신을 비난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나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런 행동을 한 것을 후회하려 해도 내가 그 소녀 대신에 희생한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마치 이 것 외에는 길이 없는 듯 내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외길이었다.


눈앞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는 슬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앞에서 어린 자식이 죽도록 내버려둘 만큼 무정해 지는 것은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긴 했어도 타당한 선택이었다.


차에 치일 경우 그 가녀린 아이보다는 내가 생존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실제로 이렇게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 소녀의 남은 인생과 내가 이 사건으로 낭비한 인생의 가치를 비교해 보더라도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따질 필요도 없이 소녀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


게다가 설령 사고로 내가 죽었다 하더라도 나 때문에 눈물 흘릴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남겨져서 슬퍼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인이나 친한 친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옳은 선택을 한 나를 원망할 수 없다.


나는 그 소녀를 원망해본다. 아무리 어린 아이이더라도 학교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는 아무리 파란불이라도 좌우를 살피는 기본적인 행동정도는 바른생활 교과서에 분명히 적혀 있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집중만 했어도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그 소녀를 원망하는 것은 부질 없는 짓이다. 그 소녀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규칙을 어긴 것도 아니며 어떤 악의를 가지고 나에게 피해를 입힌 것도 아니다. 그저 그 나이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참을성과 주의력이 부족한 탓이다.


사실 그 꼬마는 피해자에 가까울 것이다. 자기를 구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차에 치이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사람이 실제로 차에 치이는 장면은 영상이라 해도 어린이에게는 못 보여줄 만큼 끔직한데 그걸 라이브로 봤으니 어쩌면 큰 트라우마로 남았을 지도 모른다. 아무 잘못도 없는 소녀를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운전기사를 원망한다. 나는 그 운전기사의 몰상식한 행동에 분노한다. 어째서 길어봤자 10분인 신호를 기다리지 못해 그런 위험한 일을 저질렀을까.


그 작은 시간을 아끼려는 욕심 때문에 무한한 잠재력을 품고 있는 아이의 생명을 꺼트릴 뻔했고 한 청년이 꿈을 위해 바쳐온 시간과 노력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그 운전자가 어떤 사정을 가지고 그런 짓을 저질렀는가는 고려할 가치도 없다. 어떠한 사정이 있더라도 그 운전자가 저지른 죄의 무게는 더 가벼워지거나 하지 않는다.


작년에 시험을 보지 못했을 때도 이렇게 억울하고 화나지는 않았다. 그 때는 하늘도 무심했고 전적으로 충분히 예기할 수 있던 사항을 고려하지 않은 내 실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올해처럼 길을 가다가 차에 치일 번한 초등학생을 구하고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누구도 고려하지 못할 사항이지만 작년엔 정말 나의 실수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원망하고 반성하는 것으로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나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에는 전혀 내 실수가 아닌 다른 사람의 욕심 때문에 발생한 비극으로 인해 또 시험을 치루지 못했다는 점에 너무 화가 난다. 지금 운전자를 향한 이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힐 수가 없다. 분노도 분노지만 억울함과 서러움이 함께 가슴을 죄여오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 해소할 수 없는 감정들로 인해 가슴이 답답하다. 심장위에 누군가 무거운 돌덩이를 얹은 듯 정말 답답하다. 답답하기만 하다면 그래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해소할 수 없는 원망과 분노로 인해 가슴 안에 뜨거움이 몰려든다.


가슴이 타는 듯이 아프다.


이렇게 감정이 복잡할 때는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좀 진정시킬 수 있다고 들었지만, 눈물 흘리는 법 같은 건 이미 오래전에 잊어 버렸다. 작은 불꽃은 소량의 물로도 끌 수 있지만 나에게는 다람쥐도 목을 축일 수 있을 만한 작은 샘마저도 없이 이미 오래전에 다 말라버린 것 같다.


가슴 속에서 피어오른 불결하고도 조그마한 불길은 타오르는 고통을 주며 점점 커져간다. 이 불은 점점 가슴속뿐 아니라 몸 안 전체로 천천히 번지더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통을 주기 시작한다.


믿기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그저 감정에 지나지 않을 텐데 이렇게 괴롭다니 말도 안 된다. 실제로 몸 안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후끈거리고 고통스럽다. 어릴 적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식탁으로 들고 가던 중 넘어져서 물을 허벅지에 쏟은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화상 때문에 겪었던 고통스러운 통증과 같은 느낌의 아픔이 온 몸을 휘저으며 다닌다.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몸부림도 칠 수 없었다. 몸은 이미 나의 통제를 벗어난 느낌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조차 요청할 수 없게 돼버렸다.


이렇게 열이 나고 타는 듯한 고통을 받으면 몸에 이상이 생겨 나의 생명을 나타내는 지표에도 비상이 걸려 의사나 간호사가 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모니터는 전과 같이 아무런 이상도 나타내지 않았다.


그저 거의 규칙적으로 ‘삐빅-’ 하는 소리만 내고 있다. 내 몸은 이전과 비교해 의학적으로 전혀 다른 점을 나타내고 있지 않다. 하지만 감정의 문제만으로 이렇게 아플 리가 없다.


내가 필사적으로 이 고통스런 상황의 해결법을 찾고 있던 중 내 침대 옆 바닥에 이상한 일렁임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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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만복사저포기(10) 15.11.16 503 1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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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 만복사저포기(8) 15.11.15 926 36 5쪽
12 12화 만복사저포기(7) 15.11.14 666 12 5쪽
11 11화 만복사저포기(6) 15.11.14 785 12 5쪽
10 10화 만복사저포기(5) 15.11.13 839 14 5쪽
9 9화 만복사저포기(4) 15.11.12 973 22 5쪽
8 8화 만복사저포기(3) 15.11.12 963 21 4쪽
7 7화 만복사저포기(2) 15.11.12 1,223 19 5쪽
6 6화 만복사저포기(1) 15.11.11 1,232 23 5쪽
5 5화 서장(5) 15.11.10 1,348 21 6쪽
4 4화 서장(4) 15.11.10 1,326 31 5쪽
3 3화 서장(3) 15.11.10 1,402 27 5쪽
» 2화 서장(2) 15.11.10 1,653 3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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