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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50,021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5.11.10 16:53
조회
1,402
추천
27
글자
5쪽

3화 서장(3)

DUMMY

바닥의 일렁임은 두 개의 파원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고요한 호수에 누가 돌을 던진 것처럼 딱딱한 병원 바닥에 여러 개의 원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두 파동의 중심에서부터 각각 서로 다른 이상하리만큼 아름다운 불꽃이 서서히 '휘이익' 소리를 내며 피어오른다. 왼쪽의 파원에서는 눈부신 하얀 불꽃이 오른쪽의 파원에서는 담담한 검은 불꽃이 점점 자기 몸집을 불리고 있다.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보기 힘든 색깔이다. 그 불꽃들이 작은 씨앗에서 시작해 서서히 자랄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몸도 말을 듣지 않았고 불의 현혹적인 색깔 때문에 이 불을 꺼야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두 불꽃은 점점 커지더니 거의 1미터 가까이 되는 불기둥이 되었다. 불이 이만큼 커질 동안에도 누군가 눈치를 채거나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일 같은 건 없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이 불은 현실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불꽃은 내가 환각을 보고 있는 걸로 설명이 가능하다. 내가 왜 이런 환상을 보고 있는 걸까.


아마 원인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일 것이다. 사고 직후 끔찍한 경험을 다시 떠올린데다가 감정적으로 안정되어있지 않다. 따라서 이런 환각이 생긴 것이다. 나중에 정신진료도 받아야겠다.


일단은 어떻게든 이 통증 좀 가라앉히고 싶다. 너무 괴롭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여 고통과 환상을 부정해 본다. 어차피 내가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만들어낸 가짜다. 차분히 마음을 먹고 집중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계속 부정을 하는데 이번엔 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그치고 이번에는 한 술 더 떠 환청이 들린다. 비꼼과 건방짐이 묻어 있는 목소리다.


“에고~ 이래서 신참은 안 된다니까. 도대체 힘도 조절 못 하는 놈한테 다짜고짜 차사 직위를 내리시면 어쩌자 시는 건지. 그 현명하신 대왕님도 세월에는 못 이기시나 보다.

어휴 높으신 분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자기가 다 처리할 것도 아니면서 일을 벌려 놓는지 모르겠네. 결국은 또 나같이 아랫것들이 고생해서 마무릴 지어야 하는데 말이지.”


어디 아무 회사의 말단 직원이 늘여 놓을 만한 불평 뒤에 이 가벼운 입놀림을 꾸짖는 다른 누군가의 차분하고 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이놈 주악아, 내가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몇 번이나 경고를 주지 않았느냐. 너는 대왕님을 모시는 동자다. 도대체 너는 몇 년이 지나야 네 신분에 어울리는 언행을 갖출 것이냐. 저번에도 입을 잘못 놀렸던 게 대왕님 귀에 들어가 혼났던 걸 벌써 잊었느냐?”


“네이~ 네이~ 훌륭하신 주선동자 나리께서는 언제나 바른 품행으로 언제나 저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에후~”


기분 나쁘게 배배꼬인 주악동자의 대답에 주선동자는 포기하는 듯 한숨을 내뱉는다.


이런 대화가 너무 생생하게 들려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어 한쪽 눈을 뜨고 조심스레 쳐다봤다. 내가 아는 모습이었다. 분명 꿈에서 본 녀석들이다.


왼쪽의 하얀 불꽃이 있던 곳에는 옥빛도포를 걸친 주선동자가 오른쪽 검은 불꽃이 있던 곳에는 자줏빛 도포를 걸친 주악동자가 있다. 그 둘은 모두 머리의 왼쪽과 오른쪽에 쌍으로 상투를 틀어 마치 뿔이 달린 것처럼 보인다.


주악동자의 가는 눈은 그 꼬리가 위를 향하여 사납고 냉소적이게 보인다. 그는 자신의 몸과 비슷한 크기의 검은 깃털 위에 다리를 꼬고 무게중심을 뒤로 한 채 손을 짚고 앉아 있는데 그 깃털은 지상으로부터 50센티미터 정도 떠있는 상태다. 그 모습의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건방진 모습과 표정이다. 사춘기의 반항적인 청소년이 동년배의 앞에서 이렇게 하면 멋있어 보일 것 같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하는 그런 자세이다.


그 옆의 주선동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배꼽위에 올려놓았다. 얼굴에는 나이에 맞지 않는 온화함과 친절함이 잔뜩 묻어 있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연륜이 지긋한 어르신의 표정을 지으니 위화감이 든다. 나이에 비해 너무 차분하고 공손한 태도다. 주악동자와는 다르게 거대한 깃털은 타지 않고 등에 매고 있었다.


잠시 뒤 주악동자는 깃털에서 내리고 그 깃털을 주선동자처럼 등에 맨다. 그리고 그 둘은 함께 나에게 걸어왔다.


“시작하자. 주악아.”


그 둘은 나를 향해 팔을 뻗어 손바닥이 나를 향하게 한다. 그러자 내 몸에 흩어져 있던 아픔들은 서서히 진정되며 심장을 향해 흘러간다. 가슴에서 뻗어나가 온 몸을 돌며 나를 괴롭히던 고통은 이제 끝났다. 그러나 심장은 아직도 활활 타오른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타오른다. 전혀 고통스럽지 않다. 무엇이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도 구별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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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화 만복사저포기(17) 15.11.22 608 8 7쪽
21 21화 만복사저포기(16) 15.11.21 763 10 8쪽
20 20화 만복사저포기(15) 15.11.18 632 10 5쪽
19 19화 만복사저포기(14) 15.11.17 840 10 5쪽
18 18화 만복사저포기(13) 15.11.16 693 11 6쪽
17 17화 만복사저포기(12) 15.11.16 739 24 5쪽
16 16화 만복사저포기(11) 15.11.16 636 12 5쪽
15 15화 만복사저포기(10) 15.11.16 503 11 5쪽
14 14화 만복사저포기(9) 15.11.15 839 10 6쪽
13 13화 만복사저포기(8) 15.11.15 926 36 5쪽
12 12화 만복사저포기(7) 15.11.14 666 12 5쪽
11 11화 만복사저포기(6) 15.11.14 786 12 5쪽
10 10화 만복사저포기(5) 15.11.13 840 14 5쪽
9 9화 만복사저포기(4) 15.11.12 973 22 5쪽
8 8화 만복사저포기(3) 15.11.12 963 21 4쪽
7 7화 만복사저포기(2) 15.11.12 1,223 19 5쪽
6 6화 만복사저포기(1) 15.11.11 1,232 23 5쪽
5 5화 서장(5) 15.11.10 1,348 21 6쪽
4 4화 서장(4) 15.11.10 1,326 31 5쪽
» 3화 서장(3) 15.11.10 1,403 27 5쪽
2 2화 서장(2) 15.11.10 1,653 30 6쪽
1 1화 서장(1) +2 15.11.10 2,499 4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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