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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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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50,042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5.11.23 01:58
조회
759
추천
10
글자
7쪽

23화 만복사저포기(18)

DUMMY

어디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내 휴대전화 벨소리다. 멍한 의식 속에서 손으로 머리 위쪽을 더듬어 보지만 이상하게도 휴대전화가 있어야 할 곳에 없다. 바지 주머니에 뭔가가 들어 있는 느낌이 난다. 휴대전화인가보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전화를 꺼냈다. 찡그린 채 살짝 한쪽 눈을 떠 화면을 보니 친구 녀석이다. 아침부터 게임하자고 하는 모양이다. 전화를 받아 본다.


“야 이 너 내가 오늘 아침까지 옷 가져오라 했지. 왜 안 가져와. 너 땜에 지금 세탁기를 못 돌리고 있잖아.”


이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잘 모르겠다. 무슨 옷을 얘기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몸을 일으켜 지금 입고 있는 옷을 본다. 내 옷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한테 옷을 빌린 게 기억이 났다. 하지만 왜 빌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 미안 금방 갖다 줄게.”


“빨리 와라.”


전화를 끊고 휴대폰 화면을 보니 일요일 아침 11시다. 주변을 둘러본다. 나는 절에서 자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곳에서 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머리도 아프고 몸도 이상하다. 온 몸이 가벼운 화상을 입은 것처럼 후끈거리고 따끔거린다. 뭔가 소중한 것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그런데 그게 뭐였는지 잘 떠올려지지 않는다. 멍한 상태로 기숙사에 돌아간다. 버스에서도 계속 아무생각 없이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기숙사 건물에 도착하여 내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친구의 방으로 향한다. 계속해서 마음속의 답답한 기분과 온 몸의 불쾌한 통증 때문에 괴롭다. 친구의 방에 노크를 하니 친구가 문을 열어준다. 여전히 지저분한 방이다.


“왜 이렇게 늦게 와. 빨리 옷 내놔.”


“미안”


“피곤해보이네. 얼른 들어가서 쉬어.”


그의 방을 나와 다시 내방으로 향했다. 내방 문을 열려고 문손잡이를 잡았는데 내 손목에 하얀 팔찌가 보인다. 머릿속을 답답하게 덮고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걷히고 모든 일이 떠올랐다. 신과의 내기도 만복사도 그녀와의 만남도 그리고 그녀가 사라져버린 마지막 순간까지도 머리가 맑아지면서 모든 게 선명해졌다.


그녀가 사라졌다. 그녀는 점점 희미해지며 사라져버렸다.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믿을 수가 없다.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나버린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어느 봄날에 꾼 짧지만 행복했던 꿈이라고 하기에는 지금 내 손목에 걸려 있는 이 팔찌를 설명할 방도가 없다. 그녀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고 싶지만 그녀의 번호도 사는 곳도 몰라 연락조차 할 수가 없다.


혹시나 그녀의 번호가 남아 있을 수도 있어 방 안에 들어와 중3때의 연락처를 찾아보았지만 그녀의 이름 옆에는 번호도 주소도 없었다. 대신에 그녀의 연락처를 알 수도 있는 그녀와 가까웠던 친구에게 연락을 해봤다.


“여보세요?”


“미진아 오랜만이야. 나 중3때 같은 반이었던 양생인데 기억나?”


“응 기억나는데 네가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했어? 모임도 한 번도 안 나오더니.”


“뭐 좀 물어보려고”


“뭐를?”


“혹시 지연이 연락처 알아?”


“아니 잘 모르는데. 왜? 뭐하려고?”


“아무것도 아니야. 시간 뺏어서 미안해. 끊을게”


“그래 가끔은 연락도 좀 하고 모임도 나와.”


“알았어.”


전화를 끊고 다른 얘들에게도 다 전화를 해 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연락처나 주소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무지 단서가 없다. 그저 그녀는 이 팔찌와 행복했던 기억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까와는 다른 답답함이 가슴을 콱 막는다. 아까는 기억이 나지 않아 답답했었다면 지금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다.


한참을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 마지막 장면만 머릿속에서 반복되었다. 그녀의 눈물과 미안하다고 말하는 입모양을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 상태로 몇 시간을 계속 생각을 해봐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몇 시간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배가 고픈 걸 느끼지 못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다. 그녀가 사라져서 다시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절망감만 깊어간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그녀와 만났던 곳들을 다시 가면 뭔가 알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따끔거리는 몸을 이끌고 다시 그 곳으로 향했다.


그녀와 처음 만났던 만복사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도 그녀에 관한 생각만 계속 했다. 버스가 도착하고 산을 올라 만복사에 도착했다. 입구에 서 있던 사천왕들은 여전히 부서진 무기를 들고 있었다. 절 안에는 아직 다 치우지 못한 등불이 걸려 있었다. 등불을 보자 그녀가 더 생각났다. 이 곳에서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만복사를 나와 산의 꼭대기까지 걸어갔다. 수선화는 여전히 그 곳에서 아름답게 피어 있지만 수선화를 닮은 그녀는 볼 수 없었다. 그 날의 추억만 더 선명해진 채로 산을 내려왔다. 다시 정류장에서부터 그녀에게 고백을 했던 공원으로 갔다.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공원에서 나온 다음 그녀가 사라져 버렸던 보련사로 향했다. 그 곳에 가면 그녀가 다시 나타나 줄 것만 같았다. 보련사에 도착해서 이곳저곳 둘러봤지만 역시 이 곳에서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허무한 마음에 돌아가려고 하였는데 절 한쪽 건물에서 사람이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인가 해서 가봤지만 그곳에는 슬픈 얼굴을 한 중년의 부부만 있었다.


그 부부가 가고 건물 안을 들어가 보니 많은 사람들의 영정사진이 보인다. 아마 절 안의 납골당인 모양이다. 그녀가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한 장의 사진을 보았다.


내가 아는 그녀가 사진 속에서 언제나 짓던, 아름다운 그 미소를 하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일 리가 없다. 그녀는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 같이 있었다. 내가 입을 맞추었을 때 느껴졌던 그 감촉이 거짓일 리 없다. 그녀와 그냥 좀 닮은 사람일 거라 생각하며 이 사진이 그녀라는 것을 계속 부정하였다. 그러다 사진 앞에 하얀 국화꽃과 함께 하얀 실로 엮인 팔찌가 있는 걸 보았다. 세상에 단 두 개밖에 없는 팔찌가 하나는 내 손목에 묶여져 있고 다른 하나는 이 곳에 있다. 그녀에게 있어야할 팔찌가 여기 이 사진 앞에 있다.


나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절망했고 분노했다. 이 복잡한 감정들을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울음 섞인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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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화 만복사저포기(24) 15.12.03 445 8 7쪽
28 28화 만복사저포기(23) 15.12.02 548 9 7쪽
27 27화 만복사저포기(22) 15.11.30 487 9 7쪽
26 26화 만복사저포기(21) 15.11.29 536 11 8쪽
25 25화 만복사저포기(20) 15.11.27 515 10 7쪽
24 24화 만복사저포기(19) 15.11.25 607 9 7쪽
» 23화 만복사저포기(18) 15.11.23 760 10 7쪽
22 22화 만복사저포기(17) 15.11.22 609 8 7쪽
21 21화 만복사저포기(16) 15.11.21 763 10 8쪽
20 20화 만복사저포기(15) 15.11.18 632 10 5쪽
19 19화 만복사저포기(14) 15.11.17 841 10 5쪽
18 18화 만복사저포기(13) 15.11.16 693 11 6쪽
17 17화 만복사저포기(12) 15.11.16 739 24 5쪽
16 16화 만복사저포기(11) 15.11.16 637 12 5쪽
15 15화 만복사저포기(10) 15.11.16 504 11 5쪽
14 14화 만복사저포기(9) 15.11.15 840 10 6쪽
13 13화 만복사저포기(8) 15.11.15 927 36 5쪽
12 12화 만복사저포기(7) 15.11.14 667 12 5쪽
11 11화 만복사저포기(6) 15.11.14 786 12 5쪽
10 10화 만복사저포기(5) 15.11.13 840 14 5쪽
9 9화 만복사저포기(4) 15.11.12 974 22 5쪽
8 8화 만복사저포기(3) 15.11.12 964 21 4쪽
7 7화 만복사저포기(2) 15.11.12 1,224 19 5쪽
6 6화 만복사저포기(1) 15.11.11 1,233 23 5쪽
5 5화 서장(5) 15.11.10 1,349 21 6쪽
4 4화 서장(4) 15.11.10 1,327 31 5쪽
3 3화 서장(3) 15.11.10 1,403 27 5쪽
2 2화 서장(2) 15.11.10 1,653 30 6쪽
1 1화 서장(1) +2 15.11.10 2,500 4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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