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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금오신화(金鰲新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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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작품등록일 :
2015.11.10 05:34
최근연재일 :
2016.05.21 01:37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50,044
추천수 :
708
글자수 :
273,904

작성
15.11.30 23:29
조회
487
추천
9
글자
7쪽

27화 만복사저포기(22)

DUMMY

날아간 사슬은 왼쪽 다리에 맞고 그대로 양다리에 휘감겼다. 달려오던 놈은 그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졌고 어깨에 메고 있던 그녀도 놔버렸다. 놈이 다리를 못 쓰니 상황은 괜찮아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를 놓게 되면서 양팔이 자유롭게 된 그놈은 지면에 양손을 짚고 팔을 구부린 뒤 땅바닥을 뒤로 밀어내듯이 박차고 내 쪽으로 날아온다. 사슬은 이미 놈의 다리를 감싸고 있어 사용할 수 없는데다가 방심하고 있던 터라 갑작스러운 공격에 적절히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당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놈이 나에게 거의 근접했을 때 무언가에 맞은 듯이 땅으로 곤두박질 쳤다. 쓰러진 그 놈 주위에 오각형이 그려져 있고 동자들은 주문 같은 것을 왼다.


[志 鬼 心 中 火 : 지 귀 심 중 화]


지귀의 마음 속 불이


[燒 身 變 火 神 : 소 신 변 화 신]


제 몸 태워 불귀신이 되었으니


[流 移 滄 海 外 : 유 이 창 해 외]


창해 밖으로 쫓아내어


[不 見 不 相 親 : 불 견 불 상 친]


보지 않고 친하지도 않으리라.


동자들이 주문을 마치자 오각형안에서 물이 솟아오르며 검은 불꽃을 씻겨냈다. 놈은 이제 하얀 재의 사람형상만 남아 검은 불길 대신 회색빛 연기만 조금씩 피어오른다. 그 흰색 재는 바람과 함께 서서히 가루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힘이 빠진 나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고 동자들은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잘 버티셨습니다. 꽤나 오래 전에 기록된 놈이라 준비하는데 오래 걸렸습니다.”


“그나저나 저 놈은 뭐야?”


“불의 신 지귀입니다. 이미 1400년 정도 전에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졌는데 왜 이제 와서 나타난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기록에 나온 주사(呪詞)로 급한 불은 끄긴 했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귀가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니 저 여인은 저희가 직접 명부로 데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많지만 일처리를 해야 해서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동자들은 여인이 있는 곳으로 가서 여인과 함께 그들의 불꽃에 휩싸였다.


“어이 신참 조금 이따 다시 보자.”


불이 꺼지고 주악동자와 주선동자는 사라졌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죽은 여인을 산 사람으로 착각해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하고 그 사람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고 죽은 여인을 저승으로 보내려다가 갑작스럽게 공격을 받고 나서 지귀라는 놈과 싸웠다. 싸우는 동안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이긴 했지만 내 신체능력이 그렇게 뛰어날 리가 없다. 취미삼아 운동을 좀 하긴 했어도 그런 속도로 날아오는 주먹을 평범한 인간이 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성인 남성을 한 손으로 잡아 던진 걸 보면 힘도 보통 수준은 아니다. 실제로 내가 달라진 걸 몸으로 체험하고 나니 차사가 된 것이 조금 실감이 난다.


내가 아까 던져버렸던 남자의 상태가 걱정되어 확인해보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인다. 아마 이대로 두면 그 동안의 기억을 잃은 채로 알아서 깨어날 것이다. 이 사람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주고 싶지만 아까의 싸움 때문에 너무 힘들기도 하고 배도 많이 고파 적당히 그늘진 곳에 눕혀두고 아파트를 나왔다.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평화로워 보인다. 얼마 전만 해도 나도 저 사람들 같았는데 지금은 꽤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런 허무감도 배가 텅 비었기 때문에 심해지는 것 같으니 맨 처음 집을 나올 때부터 정해두었던 목적지로 서둘렀다. 익숙한 거리를 걸어 그 곳에 가까워졌을 때 나는 큰 불안감에 휩싸였다. 분명히 영업하고 있을 시간인데도 가게의 불은 꺼져있고 문 앞에 웬 하얀 종이가 붙여져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개인적인 사정으로 오늘 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뭣 때문에 집에 나와서 그런 고생을 했는데 오늘 영업을 안 한다니 오늘은 안 되는 날인가보다.


어쩔 수 없이 이 근처에서 대충 늦은 점심을 먹고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렸다. 지쳐서 대충 아무거나 만들어 먹을까 했지만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제대로 된 돈가스가 먹고 싶어서 돼지고기 안심과 굵은 빵가루를 사서 집에 왔다.


저녁때까진 아직 시간이 있으니 고기를 냉장고에 넣고 어제부터 읽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경제에 관련된 상식을 적어 놓은 책인데 생각보다 돈 흘러가는 내용을 쉽게 설명해줘서 편하게 읽어 나간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책을 읽다보니 슬슬 배가 고파지려해 저녁을 준비하러 주방에 갔다. 계란을 그릇에 풀어놓고 밀가루와 빵가루를 준비했다. 그 다음 냉장고에서 안심을 꺼내 1센티미터 정도의 두께로 3조각을 잘라냈다. 두드리고 할까 아니면 그냥 할까 망설였지만 어차피 안심 자체가 등심보다 부드러우니 그냥 하기로 했다. 잘라낸 고기 위로 소금과 후추를 뿌려 간을 하고 밀가루더미에 파묻어 밀가루가 골고루 잘 묻도록 했다. 밀가루가 너무 뭉쳐 있으면 나중에 튀김옷이 고기와 따로 놀 수도 있기에 살짝 털어준 뒤 계란 물에 담갔다가 빼서 빵가루를 꾹꾹 눌러 묻혔다.


이제 튀기기 위해 냄비에 식용유를 가득 부어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주방정리를 조금 했다. 기름에서 연기가 조금 올라오는 것을 보니 온도가 높아진 모양이다. 온도를 확인하기 위해 밀가루에 물을 조금 묻혀 둥글게 작은 반죽을 뭉친 뒤 기름에 넣어보니 가라앉지 않고 바로 위에서 튀겨진다. 온도가 조금 높은 모양이다. 온도를 낮추기 위해 식용유를 꺼내 조금 더 부었다. 조금 기다렸다 밀가루 반죽을 다시 넣어보니 3초간 가라앉다가 떠오르는 걸보니 170도 정도로 돈가스 튀기기 적당한 온도가 된 것 같다.


돈가스를 냄비에 집어넣으니 쏴아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맛있게 튀겨지기 시작한다. 두께가 두껍기 때문에 5분정도 튀긴 뒤 접시에 키친타월을 깔고 돈가스를 세로로 놓아두었다. 잠시 기름이 빠지길 기다리는 것뿐인데도 눈부신 황금색 튀김옷과 고소한 냄새 때문에 참기 힘들었다.


기름이 어느 정도 빠지자 키친타월을 제거하고 포크와 나이프 그리고 돈가스 소스를 챙겨 식탁으로 왔다. 나이프로 돈가스를 잘라 단면을 보니 아주 잘 익었다. 그대로 소스를 찍어 한 입 먹으니 너무 행복했다. 오늘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원래 천천히 먹는 스타일인데도 불구하고 금세 다 먹어치웠다.


배도 부르고 몸도 피곤하니 서서히 잠이 온다. 설거지는 내일 아침으로 미뤄두고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침대에 누웠다. 이대로 편안하게 잠드는가 싶었는데 다시 두개의 불꽃이 솟구친다. 그리고 그 곳에는 처음 봤을 때와 같은 복장의 동자들이 있었다.


“차사님 저희와 명부로 가주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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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화 만복사저포기(24) 15.12.03 445 8 7쪽
28 28화 만복사저포기(23) 15.12.02 548 9 7쪽
» 27화 만복사저포기(22) 15.11.30 488 9 7쪽
26 26화 만복사저포기(21) 15.11.29 536 11 8쪽
25 25화 만복사저포기(20) 15.11.27 515 10 7쪽
24 24화 만복사저포기(19) 15.11.25 607 9 7쪽
23 23화 만복사저포기(18) 15.11.23 760 10 7쪽
22 22화 만복사저포기(17) 15.11.22 609 8 7쪽
21 21화 만복사저포기(16) 15.11.21 764 10 8쪽
20 20화 만복사저포기(15) 15.11.18 632 10 5쪽
19 19화 만복사저포기(14) 15.11.17 841 10 5쪽
18 18화 만복사저포기(13) 15.11.16 693 11 6쪽
17 17화 만복사저포기(12) 15.11.16 739 24 5쪽
16 16화 만복사저포기(11) 15.11.16 637 12 5쪽
15 15화 만복사저포기(10) 15.11.16 504 11 5쪽
14 14화 만복사저포기(9) 15.11.15 840 10 6쪽
13 13화 만복사저포기(8) 15.11.15 927 36 5쪽
12 12화 만복사저포기(7) 15.11.14 667 12 5쪽
11 11화 만복사저포기(6) 15.11.14 786 12 5쪽
10 10화 만복사저포기(5) 15.11.13 840 14 5쪽
9 9화 만복사저포기(4) 15.11.12 974 22 5쪽
8 8화 만복사저포기(3) 15.11.12 964 21 4쪽
7 7화 만복사저포기(2) 15.11.12 1,224 19 5쪽
6 6화 만복사저포기(1) 15.11.11 1,233 23 5쪽
5 5화 서장(5) 15.11.10 1,349 21 6쪽
4 4화 서장(4) 15.11.10 1,327 31 5쪽
3 3화 서장(3) 15.11.10 1,403 27 5쪽
2 2화 서장(2) 15.11.10 1,653 30 6쪽
1 1화 서장(1) +2 15.11.10 2,500 4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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