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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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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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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6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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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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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 폭풍(Storm) (3-2)

DUMMY

그렇게 정은정 과장을 비롯한 침투조가 곡산을 우회하여 산악지대에 들어갔을 무렵이었다. 평양의 조선노동당 1호 청사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불이 켜진 창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였다. 칠흑 같은 밤하늘 아래로 붉은색 깃발만이 펄럭일 뿐이었다. 하지만 청사건물 1층 가장 오른쪽 창 뒤로,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창 뒤쪽 집무실에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넓지만 단출한 집무실이었다. 집기류는 깔끔했지만 방에 비하면 구성이나 숫자가 모자라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앙의 책상 뒤로는 날카롭다 못해 베일 것 같은 분위기의 남자가 앞의 부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가지고 오라.”


이내 두 장으로 된 보고서 한 부가 남자의 손에 쥐어졌다. 보고서를 받은 「리승배」 상장이 의자에 거칠게 앉았다. 내용은 간단했다. 현재 실시 중인 평양 외곽 순찰 보고서였다. 「상어」의 탈출과 거기에 호응한 남조선 괴뢰들의 조국 침투 이후, 그는 주요 도로망에 대한 순찰을 대폭 강화했다.


“......”


조심스럽게 내용을 읽어나간 그였다. 특별한 내용은 보이지 않았지만, 리승배 상장은 버릇처럼 그것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부관에게 보고서를 다시 건네면서 말했다.


“가자우.”


두 사람이 한참을 걸어 청사를 가로질렀다. 목적지는 예전 대외정보조사부가 있던 자리였다. 그곳은 지금 검은색 나무가 사무실로 사용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검은색 나무의 수장인 「버건디」에게 순찰 결과를 직접 이야기할 예정이기도 했다. 상장이나 되는 자신이 어쩌면 하찮은 정보를 직접 전달하는 이 행위는, 생각 외로 많은 의미가 있었다. 리승배 상장이 부관에게 물었다.


“특이동향 없네?”

“곡산 인근에 배변으로 멈춰있던 차를 발견한 것 외에는 없습네다.”

“음.”


「상어」의 탈주 이후 북한 내부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간 승승장구하던 미지의 조직 「검은색 나무」에 대한 견제가 시작되었다. 특히 영토 내에 적이 흙발을 들이밀었고 그것을 막아내지 못한 것은 대역죄에 버금갔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최고권력자의 호감을 사고 있었기에 숙청까지 가지지 않았지만, 지원은 대폭 감소되었다. 결국 일시적이긴 하나 포탈 - 게이트 공사가 멈췄다. 거기에 직접적인 감시망이 추가되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리승배 상장이 지금 이야기할 평양 외곽을 포함한 인적 순찰이었다. 잠시 뒤, 리승배 상장과 부관은 명패조차 없는 문 앞에 섰다. 그가 가볍게 노크하자 문이 열렸다. 틈 사이로 애쉬의 모습이 보였다.


/(이하 노어)오셨습니까./


애쉬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리승배 상장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의자에 앉은 버건디와, 그 뒤로 병풍처럼 서 있는 그레이가 있었다. 리승배 상장을 본 버건디가 일어서며 그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리 상장./

/최근 순찰 결과를 주러 왔소./

/뭘 이런 것까지 주러 직접 오시나요. 아랫것들 시키시잖고./


버건디의 반응은 교태(嬌態)에 가까웠다. 그녀는 리승배 상장이 내민 보고서를 받고는 짧게 훑듯이 읽어 내려갔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항상 감사드려요. 리 상장./


물론 이러한 인적 순찰이 검은색 나무를 감시하는 목적만 있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버건디에게 별도의 감시체계 - 예지망이 닿지 못하는 곳에 - 구축을 제시한 건 리승배 상장 자신이었다. 버건디는 이것이 자신들에게 빚을 지워두고, 감시하는 목적이 있음을 단박에 알았다. 하지만 명분이 확실했기에 거부하지 못했다. 더구나 허울뿐인 행위도 아니었다. 나름 체계 잡힌 순찰 구조와 합리성 있는 루트 설정 등은 그가 나름대로 신경 쓰고 있음을 얘기하고 있었다.


/불순분자를 잡는 데에 효과적이겠지./

/맞아요. 좋은 협력 사례가 될 거 같군요./

/이따 올 건가?/

/그래요./


그녀의 긍정적인 대답에 리승배 상장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그는 곧 부관을 데리고 버건디의 집무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걸 본 버건디가 짧은 한숨을 끊어내며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보고서를 책상 위에 던지듯 내려놓으며 애쉬에게 말했다.


/포탈 쪽은 어때?/

/이 주일 정도 있으면 가동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주일? 그나마 다행이군.../


멈췄던 포탈 공사가 재개되었다. 하지만 한 번 중단된 탓에 공정속도는 대폭 느려졌다. 공정상 남은 기간은 일주일 남짓이었지만, 지금 속도로 보면 이 주일은 더 걸릴 것으로 보였다.


/신경 써 줘./

/알겠습니다./


애쉬와 그레이가 밖으로 나갔다. 버건디는 머리에 손을 짚고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이 나라의 권력은 이쪽의 파악을 끝낸 듯, 리승배 상장을 앞세워 거침없이 자신들의 공간을 치고 들어왔다. 동유럽이나 남유럽을 상대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뭔가 통제할 수 있는 느낌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손닿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가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었다. 공산권 특유의 집단지도체계(혹은 적어도 그것을 형식적으로라도 따르는)와는 비교할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제일 가까울 것이라 - 같은 독재체제이기에 - 생각한 루마니아와도 달랐다. 일신숭배에 가까운 권력체계는 이상함을 넘어 기괴할 정도였다. 어쩌면 이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처음의 자신감은, 오판이 아니었을까.


/‘......’/


남한도 사정은 비슷했다. 1세계 서방국가라고 보기에는 이질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일본과도 또 달랐다. 특히 저돌적이고 빠른 대응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결국 겨우 잡은 주도권이 신기루처럼 흩어지기 직전이었다. 지금 믿을 것은 포도스트로마의 한 타 싸움뿐이었다. 그것도 위험성이 매우 큰.


/시발./


그녀는 욕지기를 내뱉었다. 이제는 버릇이 될 정도였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저 포토스트로마의 작전이 성공하여 승기를 굳히기를 바랄 수밖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에 연결된 샤워실로 향했다. 오늘 밤에는 리승배 상장을 찾아가야 했다. 이내 머리 위로 물줄기가 힘없이 쏟아졌다. 잠시 뒤, 샤워를 마친 버건디가 가벼운 옷을 입고 집무실을 나섰다.


낮은 조명의 복도 사이사이로 병사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힐끗힐끗 버건디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리승배 상장의 방을 향했다. 그렇게 방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안쪽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버건디는 잠시 노크를 위해 들었던 손을 내리며 귀를 기울였다.


“남조선에서 요원?!”

“네. 그렇습네다.”


북한에 체제한지 어느덧 사 개월이 흘렀다. 통역이 붙긴 했지만 초반에는 불편이 이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간단한 대화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애당초 버건디가 사용하는 이곳의 말 - 영어나 불어, 노어 - 은 모두 이곳에 와서 새로 배운 것이었다. 언어를 배우는 데에 거부감은 없었다.


/‘남조선에서 요원?’/


게다가 방금 들은 두 단어는 매우 익숙했다. 아마도 가장 많이 들어본 단어일지도 몰랐다.


/리 상장. 저예요./


노크와 함께 버건디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를 본 리승배 상장이 보고서를 뒤집으면서 표정을 급하게 숨겼다. 버건디가 들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가볍게 물었다.


/「남조선」에서 뭔가 일이 생겼나요?/

/....../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면 좋을 텐데요./


리승배 상장은 잠깐 고민하더니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보고서 끝자락이 흔들릴 정도였다. 잠깐의 시간을 두고 그가 포기한 듯 말했다.


/그래. 남조선에서 요원이 잠입해 왔지. 지금 접선책을 심문 중이고./


* * * *


두 시간 후, 1988년 5월 7일 토요일 00시 25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조선노동당 1호 청사.


반역분자는 곡산 동쪽에서 잡혔다. 처음에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보낸 병사들은, 곧바로 추격하여 차량을 세웠다. 그에게는 용변 중이라던 동료도 없었고 제대로 된 통행증도 없었다. 트렁크에서는 나무 상자 - 군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 조각이 나왔다. 곧바로 인근 부대로 끌고 가 심문이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남자는 아무런 정보도 불지 않았다. 결국 손가락 열 개를 다 꺾고 손톱을 뽑은 후에야 두 가지 정보를 실토했다. 바로 남조선에서 두 명 이상의 요원이 침투해 올라왔고, 차량을 타고 온 그들과 만나 식수와 음식을 전달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이상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죽었기 때문이었다. 고문 중 잠깐 감시가 약해진 틈을 타, 남자는 이 사이에 있던 시안화칼륨 캡슐을 깨물고 자결했다. 남조선의 정보원이 죽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받은 리승배 상장이 책상을 내리쳤다.


“제기랄.”


보고서를 가져온 부관이 움찔했지만, 옆에 선 버건디와 애쉬, 그리고 그레이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버건디가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발견 장소 인근 주요 도로망을 봉쇄하고 검문을 강화할 예정이다./

/잠입한 요원이 볼리셔니스트일 가능성은 없나요? 만약 그렇다면 도로를 막는 건 효과가 없을 거예요./

/그럴 수가 있나? 남조선의 볼리셔니스트는 그쪽에서 꽉 쥐고 있다고 했잖나./

/그렇긴... 하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인력이 부족한 「9국」이, 볼리셔니스트를 빼서 이곳까지 잠입시키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볼리셔니스트라면 사태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었다. 버건디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저희도 돕겠어요./

/아니. 괜찮아./


리승배 상장은 손을 들어 거부 의사를 명확히 보였다.


/가끔 있는 일이지. 남조선 간나들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니까./


남한과 북한이 서로에게 공작원을 보내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리승배 상장은 이번 건 역시 그것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굳이 검은색 나무가 활약할 장소를 마련해 줄 필요는 없었다. 버건디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혹시 손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물론./


대화를 마친 버건디와 애쉬가 방 밖으로 나왔다. 완전히 문이 닫히는 걸 본 애쉬가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버건디./

/일단은 기다려야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리승배 상장의 말처럼 볼리셔니스트가 아닌, 보통의 공작원이라면 끼어들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는 시간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포탈 건설이 마무리를 향해 가는 와중에 이루어진 적 공작원의 침입... 입맛이 썼다. 버건디가 1호 청사 복도를 걸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확률은 낮겠지만, 걱정을 한 번 키워 볼까? 일단 놈들은 아마 우리가 게이트와 포탈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야./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항상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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