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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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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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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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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 폭풍(Storm) (3-1)

DUMMY

-3-


이틀 후,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작전 사흘 전이자 「해왕성Neptune」 작전 개시 사흘차인 1988년 5월 6일 금요일 21시 8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북도 곡산군 동남쪽 약 15km 지점(목표지점까지 약 80km)


진행은 순조로웠다. 치밀한 계획 아래 시작된 이동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다. 어느덧 중간지점을 돌파했고 이제는 절반 정도만 남은 상태였다.


“후우.”


정은정 과장이 짧은 숨을 내뱉으며 쌍안경을 내렸다. 마스크 아래로 굳은 얼굴이 드러났다. 산 아래로 어둠에 잠긴 작은 도시가 희미하게 보였다. 자세를 낮춘 그녀는 주변 능선을 유심히 관찰했다.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녀가 왼손을 들고 주먹을 쥐자 뒤쪽에서 들리던 발자국 소리가 잦아들었다. 역시 자세를 낮춘 채 정은정 과장 옆으로 온 선우현 대리가 속삭이듯 물었다.


“뭐 있습니까?”


그녀는 대답 없이 손을 들어 좌우로 길게 뻗은 도로 한 곳을 가리켰다. 도로변이었지만 동쪽으로 조금 벗어난 곳이었다. 거기에는 장막처럼 펼쳐진 어둠의 한 구석을 뚫고, 멈춘 차량에서 헤드라이트 빛이 은은하게 나오고 있었다. 다만 거리가 있기에 쌍안경으로도 겨우 형체만 구분될 정도였다. 선우현 대리가 쌍안경을 비켜들었다.


“저걸까요?”

“그런 것 같아.”


차량이 멈춘 장소는 북한 현지 공작원을 통한 중간보급을 계획한 곳이었다. 침투조는 이곳에서 식량과 식수, 그리고 작전 진행에 필요한 각종 중화기류를 보급받기로 했다. 예정시간은 아직 20분 후였다. 왼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본 정은정 과장이 조심스럽게 자세를 일으켰다.


“가자.”


이제 세 사람은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산은 듬성듬성 죽은 나무만이 박혀있는, 민둥산에 가까웠다. 녹화사업으로 울창해진 대한민국의 산과는 달리, 북한의 산은 그야말로 민둥산을 넘어 황무지에 가까웠다. 건조해진 흙은 조금만 건들어도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급조하긴 했는데... 도움이 되네요.”


이러한 먼지는 작전 초부터 그들을 괴롭혔다. 피어오르는 구름은 금방 시선을 잡아끌었다. 결국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법칙 하나를 급조했다. 발이 바닥에 닫는 순간 발생하는 와류를 상쇄하는 법칙이었다. 법칙은 효과적이었고 이동경로를 감출 수 있었다. 흡사 공중을 살짝 떠가는 느낌과도 비슷했다. 윤민서 대리가 정은정 과장 옆으로 와서 말했다.


“그런데... 정말로 예지가가 없는 걸까요?”

“있었다면 이렇게 곱게 나두지 않았겠지.”


예지가의 존재는 볼리셔니스트를 활용한 작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특정한 구역 - 영지(靈地)라고 불리는 - 내라면 상대 볼리셔니스트의 움직임과 목적을 알아낼 수 있다」로 얘기되는 예지는, 방어 측면에서 엄청난 메리트를 제공했다. 그에 반해 감지 당한다는 사실을 알 수 없는 공격자는 기습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북한 내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적 예지가의 유무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행이 상어가 제공한 정보가 있었다. 북한 내 볼리셔니스트 조직의 역사와 구성, 검은색 나무 준동 이후의 현재 상황의 자세하다 못해 편집증까지 느껴지는 정보는 작전 구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정보의 핵은 역시 북한 내에 위협적인 예지가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코드명 비올레타 - 채휘 구출을 위한 천왕성 작전에서 참가했다는 - 가 예지가라는 정보는 있었지만, 북한 도착 시기를 생각하면 북한 전역을 영지(靈地)로 획득하는 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렇다면 단탈리온의 영지는 부산이라는 뜻이겠군요.”

“맞아.”


반면 악마 단탈리온이 예지가라는 추측은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히페리온과 포에베 작전에서의 빠른 반응은, 그것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예지가 가능해지겠지. 그 전에 모든 걸 끝내야 해.”


점차 도로가 가까워졌다. 밤이지만 두 어 대의 차량이 도로 위를 지나갔다. 이제 멀리 있던 헤드라이트 불빛이 두 줄기로 구분될 정도가 되었다. 비탈면이 끝나가는 지점에서, 솟은 바위에 몸을 숨긴 정은정 과장이 지도책과 정면의 지형을 번갈아보았다.


“평양원산 고속도로군.”


남서에서 북동으로 길게 뻗은 도로를 보면서 그녀가 지도책을 접었다. 약속한 위치가 점차 가까워졌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작은 강을 건너 곡산 시가지 동쪽 약 2km 지점까지 도달했다. 민둥산인 주변과는 다르게 몇 그루의 나무가 몰린, 엄폐하기 좋은 곳이었다. 여기서 세 사람은 배낭을 내렸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선우현 대리가 뭉친 어깨를 돌리면서 말했다. 정은정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자세를 낮추고 법칙의 강도를 올렸다. 그러자 사람의 외곽선이 희미해지면서 풍경에 녹아 들어갔다.상어가 선보인 광학위장 법칙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했지만, 야밤이라면 충분히 효과를 발휘했다. 그렇게 선우현 대리가 차량 뒤편을 향해 다가갔다. 한 남자가 승용차 펜다에 몸을 기대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깡마른 몸매에 신경질적인 표정이었다. 그의 뒤쪽 헤드라이트 옆 공기흡입구에는 사선 형태의 은색 줄이 그어져 있었다. 선우현 대리가 법칙을 조심스럽게 풀면서 능청스럽게 말했다.


“밥 먹었네? 북두칠성이 성하디?”

“......”


그의 물음에 남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끌 뿐이었다. 그리고 운전석으로 가 시동을 끄고는, 곧장 트렁크로 자리를 옮겼다. 불 꺼진 사각형의 테일 램프가 희미한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트렁크를 열자 공간을 가득 채운, 커다란 나무 상자가 나타났다.


“확인해 보라우.”


박스를 트렁크에서 꺼낸 선우현 대리가 자세를 낮췄다. 신중하게 봉인을 걷어내고 뚜껑을 열자 수류탄을 비롯한 각종 중화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전차지뢰에 RPG-7까지 있었다. 소련제 전투식량과 물도 준비되어 있었다. 북한 내 휴민트 연결과 물자 조달은 특수테러대응단의 몫. 그들은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 선우현 대리는 C4 덩어리와 신관을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만족한 듯 웃음 지었다. 그리고 자리를 뜨기 위해, 나무상자의 뚜껑을 닫으며 인사를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고맙...”


그때였다. 갑자가 표정이 바뀐 남자가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향했다. 그의 행동이 말하는 건 한가지였다. 선우현 대리는 곧바로 상자를 차량 밑으로 밀면서, 자신 역시 차량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남자의 시선을 잡아끈 발자국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버적거리는 군화 소리 뒤로 군장과 총기 특유의 잡음이 섞여 있었다.


“...!!”


군인이었다. 그것도 두 명. 선우현 대리는 신중하게 소음제거 법칙을 가동하며 차량 아래 깊숙한 곳까지 기어갔다. 여차하면 밖으로 튀어나가 적 군인을 잡아챌 요량이었다. 잠시 뒤 남자와 군인의 대화가 이어졌다. 아마도 순찰 중에 멈춰있는 차를 발견하고 다가온 것 같았다. 군인이 보닛을 두 어 번 두드리며 물었다.


“여기서 뭐하내?”

“동무 기다립네다.”

“뭔 동무?”

“똥 싸러 갔지비.”


남자가 멀리 바위를 가리키며 능청스럽게 대답하자, 군인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시선만 줬을 뿐,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러다 차 뒤쪽으로 간 군인이 열린 트렁크를 보며 말했다.


“트렁크는 왜 열어놨네?”

“닦을 게 없어 처박아논 신문지 찾을라고 그랬소.”

“신문? 똥꼬 찢어질거라우.”


군인은 트렁크에서 신문지 쪼가리를 들어보이며 킬킬거렸다. 그러고는 긴장감 없는 모습으로 차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다른 한 명은 차량과 거리를 두고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다행히 차량 아래를 살펴볼 생각은 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군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한참 동안 자리를 지켰다. 그러다가 커다란 바람이 한 번 지나간 후였다. 차량 옆에 섰던 군인이 말했다.


“똥 오래 싸네.”

“변비가 심하요. 고놈이 오래간만에 고개를 내밀었으니, 힘 좀 줘야지 않갔어?”

“......”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하지만 병사들은 차량 근처를 떠나지 않고 빙글빙글 돌 뿐이었다. 일 분이 십 분처럼 느껴졌다. 기다림은 진창처럼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으면서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러다 병사 한 명이 차량 지붕을 탕 치면서 말했다.


“똥 시원하게 싸라 전해 주라우!!”


군인들은 이내 총을 들쳐 메고는 다시 도로를 향해 움직였다. 곧 군용 지프의 엔진소리가 점차 멀어져갔다. 이윽고 선우현 대리가 차량 밑에서 나왔다. 그는 놀란 얼굴로 차량소리가 사라진 장소를 바라보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 넘기셨군요.”

“......”


남자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없이 멀리 바위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 바위 뒤에서 두 명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은정 과장과 윤민서 대리였다. 두 사람을 본 남자가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이질적인 움직임이었지만, 인사임이 분명했다. 그렇게 다가온 세 사람을 향해 남자가 말했다.


“요새 순찰이 부쩍 늘었소. 조심하시오.”


그리고 차량 트렁크를 닫은 후에 운전석에 타고는, 그대로 출발해 버렸다. 정은정 과장이 흙먼지를 날리며 도로로 들어가는 승용차를 보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무뚝뚝하네.”


옆의 윤민서 대리도 양손을 으쓱했다.


“그렇네요. 그래도 임기응변은 좋더군요.”

“그런데 순찰이 늘었다라... 뭔가 있다는 건가.”

“일단은 조심해 봐야죠.”

“그래. 선우 대리. 물건은?”


선우현 대리는 이미 배낭을 열고 장비 일부를 넣고, 나머지 물건이 든 나무상자를 배낭 위쪽에 단단히 결속 중이었다. 그가 만족한 얼굴로 대답했다.


“기대 이상입니다. 철저한데요.”

“좋아. 출발하자.”


이제 목표까지 남은 거리는 70km. 곡산을 기점으로 북북동으로 15km 정도를 이동하여 대동강 지류인 남강 상류에 접근, 강을 따라 목표지점까지 직진하는 루트였다. 물자를 나눠받은 정은정 과장이 걸음을 내딛기 전 하늘을 바라보았다. 광해(光害) 없이 맑은 하늘 위로 별들이 쏟아질 것같이 흐드러져 있었다. 최근 대한민국에서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별이었다. 채휘와 한강진과 함께 보고플 정도로 멋진 장면이었다. 그러나 아직 할 일이 남았다. 갈 길이 멀었다. 그녀는 시선을 내려 곡산 동쪽을 통과하는 루트를 떠올리며, 어깨를 파고드는 배낭끈을 잡아당겼다.


작가의말

오래간만에 당직서고 왔습니다.ㅎㅎ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고 다음 주도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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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11화 : 폭풍(Storm) (4-3) 23.04.16 26 0 19쪽
240 11화 : 폭풍(Storm) (4-2) 23.04.10 18 0 11쪽
239 11화 : 폭풍(Storm) (4-1) 23.04.02 14 0 13쪽
238 11화 : 폭풍(Storm) (3-5) 23.04.02 18 0 9쪽
237 11화 : 폭풍(Storm) (3-4) 23.03.26 1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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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11화 : 폭풍(Storm) (2-5) 23.03.12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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