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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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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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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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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 폭격(Bombardment) (6-5)

DUMMY

네 개. 네 개였다. 폭주한 표막과 팔다리로 막아낸 손톱의 수였다. 하지만 마지막 손톱은 기어코 방어를 뚫고 그녀를 후려쳤다. 방금 전 악마가 날아갔던 것처럼, 이번에는 정은정 과장이 숲을 향해 날아갔다. 역시나 몇 그루의 나무가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크으으으.../


그러나 발바토스도 공격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타격을 주긴 했지만, 네 개의 손톱이 튕겨나간 반탄력에 자세가 무너진 탓이었다. 왼 무릎을 꿇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발바토스가 욱신거리는 손톱을 추스르며 다음 행동에 나섰다. 발바토스는 폭발물을 설치하는 볼리셔니스트에게 달려갔다. 그걸 본 선우현 대리가 설치를 멈추고 뒤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저절로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씨팔--!!”


저렇게 커다란데 저렇게 빠르다니. 상식을 뛰어넘는 속도에 선우현 대리가 다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나 그도 지금은 정신을 차린 상태. 선우현 대리는 숲으로 도망가는 대신, 널려있는 장비를 방패로 삼았다. 장비를 부술 수 없었던 발바토스의 공격이 움찔거리며 멈춰섰다.


/으어어어어!!!/


짜증나는 듯 발바토스가 소리쳤다. 귀를 꿰뚫는 외침에 다시금 공포가 선우현 대리의 마음을 먹어 들어갔다. 그는 식은땀을 걷어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치열하게 악마와 대치했다. 고작 장비 하나를 두고 선 거리. 죽음과 너무나도 가까웠기에 온몸이 마비될 정도였다. 먹이를 노리는 사냥꾼의 시선은 그것만으로도 적을 멈추게 만들 정도였다. 그렇게 굼떠진 선우현 대리의 움직임에 발바토스가 드디어 공격 기회를 잡았다. 채 피하지 못한 그의 옆을 잡은 것이었다.


“!!!”


칼날처럼 날아든 손톱이 그의 옆구리를 쑤시기 직전이었다. 갑자기 악마의 거체가 내동댕이쳐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동시에 크게 뛴 정은정 과장이 쓰러진 악마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지진과도 같은 충격파가 악마의 몸과 땅을 크게 흔들었다. 그녀가 선우현 대리를 향해 외쳤다.


“빨리 마무리 해-!!”


파운딩 포지션에서 맹공이 펼쳐졌다. 묵직한 주먹질 하나하나에 악마의 외피가 조금씩 바스러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누운 자세에서 내지른 발바토스의 반격에, 그녀가 훌쩍 뒤로 날아올랐다. 거리가 벌어지면서 잠시간의 대치가 일어났다.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발바토스가 부서진 외피를 만졌다. 부상은 얕지 않았다. 손가락이 닿자 고통이 피어올랐다. 일전의 큰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었지만, 인간의 몸으로 자신을 이렇게 몰아붙인 존재가 있었던가. 분명했다.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 발바토스가 광기 섞인 웃음을 보였다.


‘......’


정은정 과장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제는 적이 당황한 틈을 탄 공격은 통하지 않으리라. 적은 공격, 방어, 속도... 어느 것 하나도 뛰어넘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압력은 받아낼 수 있다. 하지만...’


정은정 과장도 알고 있었다. 이 싸움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러자 지금껏 눌러놓았던 공포라는 놈이 점점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제기랄...’


이때였다. 마치 머릿속에 낀 안개를 걷어내듯이, 선우현 대리의 외침이 귀에 쏟아졌다.


“끝났습니다!!!!”


기계적인 판단이 이어졌다. 그녀는 손을 산 저편으로 뻗으면서 소리쳤다.


“탈출!!! 눌러!!!”

“알겠습니다--!!”


선우현 대리가 숲을 향해 달리자 발바토스의 표정도 굳어졌다. 저놈이 이곳을 이탈한다는 건, 어떤 준비가 끝났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자신과 적 사이에는 여자가 굳건히 서 있었다. 일찍이 맛 본 적 없는 전투력을 가진 상대였기에 더 즐기고 싶었건만, 상황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온갖 판단 사이에서 머리가 복잡해진 발바토스가 양 손에 힘을 모았다. 그러자 엄지와 검지 손톱 사이에서 조그마한 광구(光球)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것을 이탈하는 선우현 대리를 향해 「발사」했다.


“!!!!!”


놀란 정은정 과장이 궤도를 막아섰다. 그리고 칼을 휘둘러 광구를 후려쳤다. 대폭발이 일어났다. 토연 속에서 사람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기가 조금 걷히자 쓰러진 채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킨 정은정 과장이 있었다.


“크윽...!!”


폭발의 여파는 컸다. 충격에 온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선우현 대리도 거리를 벌렸건만, 그녀의 상태를 보고는 섣불리 발파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발바토스의 발이 움직이며 먼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손가락 끝에 광구가 모였다. 정은정 과장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눌러----!!”


갑자기 시간이 느려졌다. 발바토스 뒤쪽의 허공이 어떤 힘에 의해 흔들렸다. 급격히 원형의 새로운 경계면이 생겨났다. 그리고 선우현 대리의 손가락이 격발기의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이었다. 열린 경계면에서 악마의 손 하나가 튀어나왔다. 정은정 과장은 슬로 모션과 같이 이 장면을 경악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또-?!!’


새로운 악마가 나타났다는 말인가. 그레모리? 단탈리온? 하지만 둘 중 누구든 상황이 최악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원형의 경계면이 채 완전히 자리 잡기 전이었다. 튀어나온 악마의 손끝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다. 마치 어떤 파장 같은 것이 손끝을 기점으로 반경을 넓혀가는 느낌이었다. 퍼져나간 파장은 순식간에 공터 전체를 둘러싸고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


시간은 계속해서 느리게 흘러갔다. 이때 격발기에 반응한 신관과 폭발물이 터지기 시작했다. 선우현 대리와 가장 가까이 있던 시설이 산산조각 났다. 파편은 눈에 보일 정도로 느리게 사방으로 퍼졌다. 그리고 연쇄적으로 다른 폭탄이 터질 것을 예상하며, 정은정 과장이 필사의 힘으로 몸을 날렸다. 공터 가장자리에 엎드린 그녀가 방어를 위에 머리를 손으로 가렸다.


“...?!!”


하지만 폭발은 이어지지 않았다. 첫 폭발이 마지막이었다. 동시에 경계면이 닫히면서 그레모리가 땅에 두 다리를 딛고 섰다. 한정형태의 그녀는 지친 듯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늦지... 않았나..../


갑작스러운 그레모리의 등장에 발바토스가 놀라며 소리쳤다.


/그레모리!! 무슨 짓인가!!/


하지만 그레모리는 발바토스를 무시하고 정은정 과장 앞으로 나섰다. 바닥에서 일어선 그녀를 향해 그레모리가 말했다.


/오래간만이야. 하얀 마녀./

/너... 무슨 짓을.../

/발바토스 혼자서는 어려워 보여서 급하게 포탈을 열었지./

/뭐?!/

/설명하면 길어지니까. 어쨌든 폭발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

/...!!/


정은정 과장이 위화감을 느낀 건 그레모리의 말이 끝난 직후였다. 잡음이 들려오던 이어셋이 고요했다. 조심스럽게 무전기에 손을 올려 조작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위화감이 온몸을 감쌌다. 껍질을 깨고 들어오기 위해, 바늘처럼 달라붙던 「결계 」의 느낌도 사라진 것이었다.


‘아까 그 파장 같은 것 때문에?!’


분명했다. 그레모리가 팔을 뻗어 뿜어낸 파장 때문이었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원격신관을 비롯한 기계장치를 무력화시킨 것이 틀림없었다.


‘젠장...’


잠시 주변을 둘러본 정은정 과장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폭탄은 불발되었고, 큰 부상 중에 악마 둘을 - 그것도 한정형태인 - 상대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상했다. 곧 목숨이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을 지금, 그녀는 난데 모를 짜증을 느끼고 있었다.


‘......’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선후에게 들었던, 이성진 대리의 말이었다. 「악마가 인간 흉내를 내고 있다」라는 말이었다.


‘......’


그랬다. 이 짜증은 공포와는 완전히 달랐다. 압도적인 악마 앞에서 느끼는 공포가 아닌, 그저 개인적인 불만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짜증과 상황에 대한 불만은 그리 간단한 감정은 아니었다. 악마, 바로 저 악마라는 존재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녀가 입속에 고인 피를 침과 함께 뱉어내면서 자세를 일으켰다. 이 와중에 발바토스와 그레모리는 뭔가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레모리가 달려드려는 발바토스를 막아 세우여 말했다.


/내 적이야. 내 손으로 마무리하겠어./


잠깐 고민하던 발바토스가 뒤로 물러섰다. 순서를 정리한 그레모리가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고 이를 깨문 정은정 과장도 다시 칼을 뽑아들었다. 천천히 손톱을 펼친 그레모리는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고통 없이, 최대한 빨리 보내주겠어./


이후의 전투는 두고 볼 것도 없었다. 그레모리의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부상이 심한 정은정 과장은 제대로 반격할 수도 없었다. 바닥을 구를 때 들어온 온 흙먼지에 입안이 까끌 거렸다. 그녀는 가까스로 균형을 잡으며 부러진 갈비뼈 위에 손을 얹었다. 극심한 고통에 미간이 절로 오그라들었다.


“헉... 헉...”


호흡이 가빠졌다. 이제 남은 건 죽음뿐이었다. 아마도 멀리서 이 장면을 보고 있을 선우현 대리도 같은 판단을 하고 있겠지. 둘이 죽을 바에는, 하나만 죽는 게 나을 테니까. 그러나 죽음이 눈앞에 놓인 지금도 마음만은 이상했다. 아까 전 느꼈던 짜증이 더더욱 크기를 키워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그레모리가 정돈된 걸음걸이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면서 조용히 말했다.


/이제 끝이군... 하얀 마녀./


대답할 기력도 없는 정은정 과장이 피식 웃었다. 그레모리가 손톱을 치켜들었다.


/「적」이지만 진심으로 존경했다. 그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군./


그 순간이었다. 「적」이라는 단어가 정은정 과장의 마음속에서 폭탄처럼 터졌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감히 악마라는 새끼들이 인간에게 「적」이라고 칭하다니. 자신이 아는 「적」이라는 단어는, 적어도 서로가 급에 맞을 때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거늘. 화산처럼 터진 분노를 따라 목구멍에서 욕지기가 절로 흘러 나왔다.


“시팔... 세상 좋아졌네. 악마새끼가... 인간한테 엉기다니...”

/...?!/


의미를 알지 못한 그레모리가 잠깐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뒤로 한껏 당긴 손톱을 휘둘렀다. 공기가 찢어지며, 폭풍처럼 피어오른 흙먼지에 주변 공간의 시계는 다시 0으로 바뀌었다. 멀리서 초조하게 이 장면을 바라보던 선우현 대리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과장님--!”


이번 작전은 이상했다. 시작도 범상치 않았고 전개도 납득되지 않았다. 적은 곧바로 최강의 악마를 투입했고, 수 없이 검증했기에 작동을 확신한 장비가 기능을 잃었고, 동시에 악마가 하나 더 나타났다. 어떤 원리인지도 알 수 없었다. 적에게 어떤 의사결정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만은 분명했다. 이제 결말부에 들어섰다는 것이었다. 먼지 폭풍이 잦아들 즈음이었다. 바람소리를 뚫고 정은정 과장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런 기분이었나.”


마치 관성이 사라진 것 같았다. 정은정 과장이 들어 올린 작은 팔에 악마의 손톱이 멈춰 섰다. 볼리셔니스트의 신체 따위는 손쉽게 잘라내는 초음속의 손톱이었건만, 그녀의 팔에 닿자마자 속도는 0이 되어 버렸다. 신체의 관성을 조절하는 전사의 법칙을 넘어, 날아드는 상대 공격의 관성조차 흡수해 버리는 영역이 발생한 것이었다.


“가지고 있기는... 버겁군.”


꾹 참은 그녀의 말처럼, 물리력을 흡수한 주변의 공기는 초고속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약간 노란색을 띤 공간은 곧 방향을 바꿔 회전하는 공기를 뒤쪽으로 토해냈다. 그러자 엄청난 폭풍이 꼬리를 만들며 주변 산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그레모리가 황급히 손을 거뒀다.


/설마...!!/

/그래. 악마는... 인간을 이길 수 없어. 절대로!!/


서울의 병원에서도 이변을 감지했다. 지수가 흠칫 놀라면서 절로 남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피어오른 홀리Holy의 느낌에, 그가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약간의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결국... 됐나.”


지수의 말처럼, 정은정 과장은 홀리Holy의 각성 조건을 충족시켰다. 그녀는 의지를 통해 공포를 이겨냈다. 그러면서 정화와 부정의 분노를 담아 악마를 직시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지막 한 가지 조건이 남아 있었다. 바로 자신이 「인간」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스스로가 의지를 통해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깨달음.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의기력자이기에 도달할 수 있는 깨달음이었다. 지수가 상체를 구부려 침대에 몸을 눕히며 말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군. 적이 여전히 강해. 애림아. 9국에 전화를.”

“네. 수장.”


전투의 양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홀리Holy를 몸에 두른 정은정 과장의 맹공이 쏟아졌다. 칼끝에 담긴 노란색의 안개가 악마에게 닿자 껍질이 거북등처럼 갈라졌다. 그레모리와 발바토스는 공격을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특히 발바토스는 크게 당황한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레모리가 소리쳤다.


/발바토스!!!/


발바토스는 마치 허우적대듯 무서움에 떨며 공격을 피했다. 과장된 몸짓과 일그러진 얼굴은 완전히 겁에 질려 도망치는 개와도 같았다. 그나마 그레모리가 기세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마저도 위태로워 보였다. 이제 정은정 과장의 눈에 불꽃이 치솟았다. 악마를 도륙내고 모든 것을 뒤집을 시간이 온 것이었다.


“끝을 보자---!!”


싸움은 공터에서 산 위로 옮겨졌다. 전장이 넓어지자 이제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녀는 먼저 발바토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발바토스는 여전히 공포에 사로잡힌 채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그 사이를 파고든 칼날은 채찍처럼 나부끼며 악마의 껍질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


“어떻게...!!”


멀리서 뒤바뀐 전황을 본 선우현 대리가 입을 벌렸다. 분명 정은정 과장은 악마 둘을 압도하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고민의 여지는 없었다. 그는 곧바로 다시 전장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때 이어셋에 한강진 국장의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선우 대리! 전황은?!!]

“폭발은... 실패입니다!! 하지만 지금 정 과장이 적을 몰아넣고 있습니다!!”[...!!]

“악마를... 악마를 두들겨 패고 있습니다!!!”

[!!]


놀란 한강진 국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금 지수에게 받은 전화의 내용처럼, 그녀가 새로운 힘을 각성한 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 당장 탈출이 필요했다. 한강진 국장이 무전기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선우 대리! 정 과장 데리고 빨리 탈출해!!]

“네?! 하지만 지금은...!”

[힘이 있을 때 탈출해야 해!! 길어야 오 분이다!!]


지수의 걱정은 다름 아닌 시간이었다. 홀리는 악마를 상회하는 힘을 시전자에게 제공하지만, 문제는 지속시간이었다. 아마 정은정 과장이 홀리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봐야 오 분. 이 짧은 시간에 발바토스와 그레모리라는, 강력한 두 체의 악마를 모두 제압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었다.


[아무리 정 과장이라도 둘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어! 빨리!!!]

“하지만 어떻게...!!”

[곧 수송기가 저공으로 내려간다!! 그걸 붙잡아!!]

"...!!!"


한강진 국장의 말에 선우현 대리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럴 줄 알았다면 풀톤 회수 시스템(Fulton surface-to-air recovery system)이나 챙겨올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러나 후회할 시간도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한강진 국장의 말처럼, 멀리서 묵직한 엔진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들려왔다. 아마 전투가 한창인 저쪽은 전혀 눈치 못 챘겠지.


‘어떻게 한다.’


정은정 과장을 향해 다가서면서 선우현 대리의 머리도 복잡해졌다. 격렬히 전투 중인 그녀를, 타이밍에 맞춰 빼내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더구나 이상하게 무전도 연결이 되지 않는 상태.


‘제기랄.’


공터에 도착한 선우현 대리가 다시 배낭을 내렸다. 그리고 단 하나 남아 있던 폭발물과 신관을 꺼내 들었다. 그는 제일 중요하다고 여긴, 선박에서 본 VP 추출기의 안쪽에 폭발물을 설치했다. 기존에 설치된 것은 전원이 나가 있었다. 선우현 대리는 고장 난 원격신관 하나를 회수하고는, 방금 설치한 것의 작동 여부를 확인했다. 테스트 등에 빛이 반짝였다.


‘이판사판이다!!!’


다시 달려 숲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뒤쪽에 모든 표막을 집중한 그가 격발기를 몇 번 움켜쥐었다. 그러자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모두의 시선을 휘어잡는 폭발연이 허공을 향해 치솟았다. 한참 발바토스를 밀어붙이던 정은정 과장도 그 장면을 보았다.


“?!!!”


그래. 임무가 있었다. 주의가 환기되자 갑자기 주변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정은정 과장은 눈앞에서 거의 빈사상태에 빠진 발바토스를 바라보았다. 원한을 생각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찢어 죽여도 모자라건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제기랄...!!!’


지금껏 생각하지 못한 몸의 한계가 느껴졌다. 에너지의 공급과 방출의 밸런스가 깨진 것 같았다. 아무리 홀리Holy를 손에 넣었다고 한들, 결국 한계는 분명했다. 악마 둘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분노와 아쉬움을 담아 그녀는 발바토스를 향해 큰 소리로 포효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뒤를 돌아 폭발 장소로 달려갔다. 그녀는 허공을 향해 손짓하는 선우현 대리를 향해 외쳤다.


“선우 대리!!”

“탈출해야 합니다!!”


선우현 대리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위치에 맞춰 돌린 시선에는, 땅을 스칠 듯 낮은 고도에서 거대한 수송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열린 수송기 램프에서 내려온 몇 개의 긴 밧줄이 정은정 과장의 눈에 들어왔다. 밧줄 끝에 달린 조명탄은 불꽃놀이와 같이 화염의 꼬리를 늘어트리며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뜻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뛰어--!”


프롭기의 로터에 나무가 갈려나갈 정도의 저고도에서, 두 사람은 아슬아슬하게 수송기의 로프를 잡아챘다. 그레모리와 발바토스도 그 장면을 보았지만 대응은 할 수 없었다. 둘은 어둠 속에서 멀어지는 수송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11화 : 폭풍(Storm)


-1-


「포에베Phoebe」 작전 이틀 후인 1988년 5월 1일 일요일 09시 17분.

서울 모처(某處), 국가안전기획부 「제9국」 국장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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