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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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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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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2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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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 폭풍(Storm) (2-5)

DUMMY

“서 대리. 민 대리 좀 불러주게.”

“알겠습니다.”


잠시 뒤 회의실 문이 열리고 민혜림 대리가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본 한강진 국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나?”

“네. 괜찮아요.”

“이제 밤이야. 더 이상 오지는 않을 테니 좀 쉬게.”

“하지만...”

“괜찮아. 필요하면 부를 테니까.”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냐. 들어가게. 명령이야.”


한강진 국장의 단호한 말에 민혜림 대리가 비틀거리듯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누가 봐도 피곤에 절어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이었다. 당연했다. 그녀는 요 이틀 동안 한 잠도 못잤으니까. 문이 닫히자 한강진 국장이 숨기지 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약물을 이런 식으로 쓸 걸 예상했어야 했는데... 젠장.”


「검은색 나무」가 기술로 앞서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적들은 전투 예고 직후부터 HQ 인근에 4~5명으로 구성된 정찰대를 수시로 보내왔다. 적 볼리셔니스트들은 약물을 써 기척을 감춘 채 서울 내부로 들어온 후, HQ 지근까지 다가와 약물 효과를 없애고 정찰을 시도했다. 놈들은 꾸준하게 벌집 쑤시듯 주변을 흔들어놓았다. 그러다 9국 볼리셔니스트들이 다가가면 교전을 피하고 시간을 끌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번 붙고 싶었지만, 큰 전투를 앞둔 지금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적들은 이런 아군의 심리를 잘 이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이쪽을 지치게 만들었다 싶으면 유유히 철수했다. 거리가 좀 멀어졌다 싶으면 바로 약물로 흔적을 지웠기에, 계속 추적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것을 한 패턴이 아닌 두 개 팀 이상을 동시에 혹은 시간차로, 여기에 다방향으로 돌려가면서 운영했다. 볼리셔니스트가 많다는 우위를 십분 활용한 작전이었다. 이쪽은 예지망에 들어온 적을 요격하는 데만 급급할 정도였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특히 민혜림 대리의 부담이 엄청나게 커졌다. 약물 효과가 끊어지는 순간을 잡아내야 했기에, 그녀는 정찰이 시작된 이래 거의 하루 종일 예지에 매달려 있었다. 고속도로 진출입로에서 차량을 모니터링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국도나 다른 길로 오는 경우에는 잡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대응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놈들이 근방에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미 발바토스 침입 당시 집을 빌려 장비를 설치했던 만큼, 그것은 막을 필요가 있었다. 결국 작전 준비에도 바쁠 인원을 일부 차출하여 상시 대기하도록 했다. 여기에 근처 빈 집 현황 수집, 외지인이 집을 얻을 경우를 상정한 부동산과의 협조까지. 전투 전에 지쳐가는 대원들을 생각하자 절로 욕이 올라왔다.


‘제기랄...’


더구나 대규모 소개(疏開)를 앞두고, 전장이 될 곳을 적이 탐색하게 만드는 것도 탐탁지 않았다. 전장을 넓게 쓴다는 것을 적은 되도록 늦게 알아야만 했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접근을 허용해서는 정보통제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민 대리도 한계가 있는 건가.’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시간을 벌어주었던 민혜림 대리였다. 남한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예지가는 오직 그녀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그런 민혜림 대리조차 약물 뒤에 숨은 적을 예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나마 최근에는 「장막」이라는 형태로 대략적인 규모와 적들이 약을 쓴다 쓰지 않는다 정도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지만, 솔직히 작전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이동 경로와 의지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적어도 당일에만 정찰을 저지할 수 있다면...’


준비의 핵이 될 대규모 소개는 작전당일인 5월 9일 오전부터 24시간 동안 예정되어 있었다. 그날 민관군 합동 공습대비 훈련이 예정되어 있었고, 구난과 집합, 경찰과 군의 작계 검증 등 여러 가지 계획들이 잡혀 있었다. 물론 이것은 주민 소개를 자연스럽게 만들 구실일 뿐이었다.


‘후.’


한강진 국장이 소리 없이 한숨을 뱉었다. 여차하면 적에게 이쪽 계획을 일부 드러내고 시작하는 것도 감안해야했다.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그는 잡념을 없애듯 고개를 저었다.


같은 시간, 휴게실로 돌아가는 민혜림 대리의 머리도 복잡했다. 한강진 국장의 강한 명령에 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눕는다고 해도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을. 9국의 예지망을 떠맡은 이후로, 이렇게 무기력한 때는 없었다. 예지망 자체가 완전히 무력화되었다는 좌절감이 가슴을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휴게실 안으로 들어간 민혜림 대리는 간이침대 위에 불편한 몸을 뉘었다. 갑자기 이성진 대리 생각이 났다. 만약 그가 있었다면, 유쾌한 말로 자신을 안심시켜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올라왔다. 아쉬움은 곧바로 그리움이 되어 가슴을 두드렸다. 조금씩 흘러내린 눈물이 배게 위로 떨어졌다.


“흐흑...”


그러나 좌절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무거운 몸을 다시 일으켰다. 머리는 이미 연속된 예지에 멈추기 직전이었지만, 민혜림 대리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랬다. 자기밖에 없었다. 이곳의 예지는 오로지 자기뿐이었다. 가슴 속에서 분노와 의지가 활화산처럼 솟구쳤다. 지금까지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만했다. 그녀는 가부좌를 하고 양손을 모은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예지에 들어갔다. 먼저 할 것은 「장막」을 감지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저 멀리서 희미하게 펄럭이는, 검은색의 보자기 같은 것이 나타났다. 음영이 너무 없기에 원래라면 존재 자체도 감지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온 신경을 집중하여 장막을 바라보았다. 변함은 없었다. 그저 「있다」 정도만을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악마가 내뿜는, 시취(屍臭)와도 같은 의지 세 개가 푸른 불꽃을 내밀며 불타고 있었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악마의 의지를 지워버렸다.


‘......’


마치 아무 빛도 없는 방에서 눈을 크게 뜬 것과 같았다. 구분할 수 없는 신호와 잡음이 마구잡이로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그 둘을 완벽하게 구분하기란 불가능했다. 바뀌지 않는 결과에 초조함이 커져갔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어본들, 실패는 달라지지 않았다.


‘방법이... 정말로 있는 걸까?’


조금 전의 분노가 급속히 사그라졌다. 다시금 아무 방법도 없다는 절망만이 마음을 감쌌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심장을 다잡았다. 분명히 방법이 있을 터였다. 아니,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무언가 머리 뒤쪽을 번뜩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동공이 크게 열렸다.


‘......설마?’


지금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접근법이 번개처럼 내리쳤다. 언젠가 「이런 것도 가능하겠지」 생각만 해보고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이었다.


‘명경지수(明鏡止水)...’


예지 능력을 측정하는 데에는 여러 잣대가 존재했다. 범위, 정확도, 동시 처리 가능한 신호의 수... 그리고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예지의 갱신속도였다. 받아들인 신호를 처리하고 해석 가능한 문자열로 만드는 이 속도는, 예지가를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척도였다. 신호를 받고 처리하는 속도가 빠를수록 같은 시간에 예지 정보를 더 많이 최신화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예지가는 한 번에 들어온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식으로 훈련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어차피 범위 안에 들어온 볼리셔니스트의 의지란 어둠 속의 등불과도 같기에, 탐색 목표만 맞아 떨어지면 더 빨리 예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그와는 정 반대되는 개념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야말로 거울처럼 차분하게 만들어, 천천히 모든 신호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보통은 처음 예지를 배울 때 신호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마음을... 거울처럼...’


그녀는 마음의 눈을 감은 채 들이찬 힘을 빼기 시작했다. 그러자 물결이 잔잔해지면서 어둠이 점차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보이던 장막도 이내 어둠에 묻혀 버렸다. 그러나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이제부터는 신호를 계속해서 중첩해서 쌓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像)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감수성을 낮추는 대신 신호를 켜켜이 쌓는 건, 야간 사진을 찍을 때 활용하는 저감도 장노출과 비슷했다.


물론 쉽게 되는 건 아니었다. 눈의 깜빡임을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것처럼, 예지 신호란 것이 쌓고 싶다고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해서 시도하고 시도했다. 얕은 물 위로 방울이 하나 둘 떨어졌다. 잔잔한 수면을 두드리는 진동이 아주 조금씩 커져갔다. 마치 격자로 구분된 스케치북 위를 조금씩 색칠하는 것과도 비슷했다. 진동이 쌓인 곳은 좀 더 밝은 색으로 변해갔고, 그렇지 않은 곳은 지금처럼 어둠으로 남아 있었다. 초조함이 심장을 조여가고 미끈거리는 밧줄은 계속해서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제발...!!’


그녀는 온 힘을 다하여 짧은 매듭을 움켜쥐었다 .몸은 이미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마침내 어떤 그림이 잔상처럼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


순간적으로 밝은 빛을 본 후의 느낌과도 비슷했다. 귀에는 삐 하는 이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방금 자신이 본 그림을 천천히 떠올렸다. 무채색의 장막과, 그 아래 돌기처럼 솟아오른 여러 개의 작은 기둥들이었다. 기둥의 개수는 거의 마흔 개에 가까웠다. 장막은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이거다...!!”


물론 한 번 확인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잡음도 많았고 형태가 불확실한 곳도 있었다. 그러나 장막 아래를 확인했다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머리를 흔들고 다시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이동 여부를 확인할 차례였다. 이를 악 물고 다시 한번 과정을 진행했다. 방금 본 영상과 차이는 없었다. 밤이기에 놈들도 쉬고 있음이 분명했다.


‘좋아...’


일단은 방법을 찾았다. 이제는 이 사실을 한강진 국장에게 알려줄 차례였다. 그녀는 다리에 힘을 줘 몸을 일으켰다. 볼을 타고 흐른 땀방울이 턱을 타고 떨어졌다. 손을 들어 대충 땀을 닦아낸 그녀가 휴게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몸을 끌고 지휘통제실을 향했다.


“민 대리. 쉬라고 했을 텐데.”


문이 열리자 곧바로 한강진 국장의 걱정 섞인 질책이 나왔다. 하지만 민혜림 대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숨을 정돈하면서 말했다.


“방법을 찾았어요. 내일, 반드시 예지하도록 할게요.”

“뭐...?”


갑작스러운 말에 어리둥절한 한강진 국장이었지만, 곧 뜻을 깨달았다. 자세한 것을 묻고 싶었지만 참기로 한 그가 짧게 말했다.


“알겠네.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


-3-


이틀 후,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작전 사흘 전이자 「해왕성Neptune」 작전 개시 사흘차인 1988년 5월 6일 금요일 21시 8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북도 곡산군 동남쪽 약 15km 지점(목표지점까지 약 80km)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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