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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이다

아공간 지도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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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플폴풀
작품등록일 :
2023.08.07 15:17
최근연재일 :
2024.08.07 20:00
연재수 :
195 회
조회수 :
18,114
추천수 :
333
글자수 :
1,020,566

작성
23.11.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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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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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새 지도 (8)

DUMMY

그날과 똑같은 상황이다.

떠밀어지듯 포탈로 들어서는 상황.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날이 아니다.


그때와 달리 뒤에 있는 이들은 인간이 아니다.

멸망을 일으킨 재앙 또한 떨어지고 있지 않다.

김윤 역시 그날의 그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그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의 기억이 마구잡이로 치솟았다.

장갑을 낀 손이 붉게 물드는 것만 같았다.

포탈을 탈 때 느껴지는 특유의 울렁거림이 올라왔다.


‘이겨내야 한다. 오늘은 반드시 이겨내야만 해.’


새카만 어둠이 그를 휘감으며 속삭였다.


“그런데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가 트라우마를 맞이할 때마다 들려오는 목소리.

늘 그에게 부정적인 말을 쏟아붓는 존재였다.


평소라면 최대한 그의 말을 무시했을 김윤.

그러나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다.

그렇기에 이 존재 또한 마주해야 했다.


‘그래.’


그날을 제대로 마주한다.

애초에 그것을 위해 이곳에 있다.


그렇기에 마주할 것이다.

손발이 벌벌 떨리더라도 움직일 것이다.

심장이 멎는 한이 있어도 그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구나? 그럼 소원대로 해줄게.”


새카만 어둠이 김윤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귓가에서 그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화아아악!


동시에 새하얀 섬광이 그의 시야를 집어삼키며 의식을 잃었다.


“으음······.”


의식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간.

그는 신음을 흘리며 의식을 되찾았다.


“여긴?”


마치 아공간과 같은 온통 새하얀 공간.

그러나 김윤은 알 수 있었다.

분명 새하얀 것은 같으나 이곳은 아공간이 아니었다.

이질감이 느껴졌다.


“포탈을 잘못 탄 건······?”


김윤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아공간보다 마력이 짙다던 지구에서조차 느끼지 못했던 압박감.

압도적인 양의 마력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크으윽······!”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김윤은 마력을 순환시켜 육신을 강화하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주변을 살폈다.

온통 새하얗고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방금까지는 그랬다.


그의 몸에서부터 소용돌이치는 새카만 어둠.

그것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더니 공간에 무언가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의 기억이었다.


“네가 마주하고 싶다며?”


주변의 기억을 재현하고 사라진 줄 알았던 새카만 어둠이 김윤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김윤에게 속삭였다.


“그래서 준비해봤어.”


새카만 김윤이 양팔을 펼치며 다시금 자신의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자 준비가 완료됐는지 기억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멸망의 그 날이었다.


하늘을 타고 뻗어 나가는 푸른 섬광.

그것은 온 도시에 떨어지며 폭음과 함께 대지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김윤은 달리고 있었다.


“허억, 허억.”


그날 느꼈던 감각이 생생하게 다시 느껴졌다.

반복되는 달리기에 폐와 다리가 찢어질 것만 같은 감각.

마력이 없던 빈약한 몸뚱아리였다.


그 기억에 휘말린 김윤은 자신의 의지가 아님에도 계속해서 다리를 움직였다.


쿠구구구!


대지가 뒤흔들려도 멈추지 않았다.

가끔 뒤를 돌려 부모가 달려오는지를 확인하며 그는 계속해서 달렸다.


‘엄마, 아빠······.’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는 감정에 집어 삼켜졌다.

그들이 살아있는 모습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 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그 감정에 먹혀서는 안 됐다.


그야 곧 그들은 죽을 테니 말이다.


그는 역으로 달렸고, 그 앞에 섬광이 떨어져 폭풍을 토해냈다.

그렇기에 다른 장소를 찾았고 포탈로 향했다.


또다시 그 앞에서 망설이기 시작하는 그.


‘움직여. 움직여! 바로 들어가라고!’


과거의 자신에게 빙의한 그는 들리지 않는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그의 몸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부모님의 손을 잡는 기억 속 그.

그리고 그가 포탈로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양손에 잡히던 그들의 손이 사라졌다.

그는 그 즉시 황급히 몸을 돌렸으나.


콰과과과과!


그가 볼 수 있던 것은 공포로 일그러진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가족의 표정이었다.


‘안 돼-!!’


김윤이 재빨리 손을 뻗어 무언가 붙잡아 당겼다.

동시에 포탈에 빨려 들어갔다.


그 다음에 이어질 광경.

김윤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으려 했다.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가 깃든 몸은 그의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두 손에 들린 피로 물든 손들을.


“커, 커헉······!”


그것을 보는 순간 그는 깃들었던 기억에서 튕겨 나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목을 움켜쥐며 바닥을 뒹굴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새카만 어둠이 다시금 그의 몸에서 빠져나오며 미소를 지었다.


“아, 거추장스러운 건 없애야지?”


동시에 그의 손에 끼워져 있던 장갑을 없앴다.


“네가 마주하고 싶다 했잖아. 나는 도와주는 거라고.”


장갑이 없어지자 자신의 목과 손이 닿으며 체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더 큰 발작을 일으켰다.

금방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 같은 그의 모습.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딱!


새카만 어둠이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기억이 다시금 재생되었으니 말이다.

김윤 역시 다시금 과거의 자신에게 빙의하며 기억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반복되고 반복됐다.

그가 그것을 극복하거나 정신이 무너지기 전까지.


‘이번이 몇 번째지?’


이제는 셀 수조차 없다.

폐가 찢어질 것 같은 이 통증도 이제는 편안하기 그지없다.

이보다 더 아픈 통증이 이 끝에 계속해서 찾아오니 말이다.


몇 번을 넘어졌을까.

몇 번을 망설였을까.

몇 번을 그들의 죽음을 보았을까.


‘이제 이겨낼 때도 됐잖아.’


그러나 그가 지닌 죄책감은 씻겨나가지 않았다.

그날의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정신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애초에 저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 재해였잖아.’


“하지만 네가 망설이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살았겠지. 예를 들면 부모님?”


‘그렇다고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포탈에 뛰어들라고? 내가 아니라도 망설였을 거야. 안 그래?!’


기억 속 김윤이 자신의 뒤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나서지 못한 채 포탈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방에 섬광이 떨어지고 있음에도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애초에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김윤은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던 일이야. 재해잖아?’


이거로 된 거다.

이렇게 받아들인다면 모두 넘길 수 있다.

자신의 트라우마도 억누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포탈을 타고 그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김윤이 고개를 저었다.

이걸로 될 리가 없다.

이런 식으로 넘기는 것으로 그가 발전할 리가 없다.


그것은 자신의 부모를, 그리고 자신을 도우려 한 이들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을 넘어 그날 죽어간 모두를 욕보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방식으로 이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승화.

이 절망적인 감각을, 기억을 변화시킨다.

잊는 것이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은 죽었고, 자신은 살아있다.

그들이 희생해주었기에 자신은 살아있다.


김윤은 지금 보이는 장면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그들의 마지막 미소를.

그들의 마지막 말을.


김윤은 손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새빨간 피로 인해 붉게 물든 손에 푸른 기운이 휘몰아쳤다.


이어 그는 그것으로 자신의 절망을 끌어당겼다.

그의 발작을 일으키는 요소가 절망에 이끌려 모여들었다.

그것은 매번 그에게 속삭이던 어둠처럼 새카맸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그는 그것을 압축해 지도에 담았다.


도망치는 것은 아니었다.

기억을 지우는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승화였다.

그의 부정적인 감정을 잊지 않으며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


지도가 새카맣게 물들었다.

동시에 그 안에 수많은 지형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과거 서울의 지도였다.

멸망의 그 날, 그 모습이 새겨진 지도 말이다.


김윤은 지도가 완성되는 즉시 그것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화아악!


새카만 지도가 그의 마력을 집어삼키고는 섬광을 토해냈다.

원래라면 기억을 토해내야 하는 지도가 기억을 토해내지 않았다.

그저 새카만 무언가를 끝없이 토해낼 뿐이었다.


새하얀 공간이 새카만 무언가에 의해 가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필름이었다.

김윤의 기억이 담긴 필름.

그리고 동시에 그의 새로운 지도였다.


그의 기억을 담는 수단, 지도.

그것이 지도인 이유는 김윤이 그것을 지도로 국한했기 때문이었다.

이 뜻은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다른 형태가 될 수 있다는 뜻.

지금 이 필름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는 필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수많은 기억이 담긴 필름이 더욱 새카맣게 물들기 시작했다.

필름의 형태가 다른 무언가로 변하기 시작했다.


필름의 길이가 점차 줄어들며 계속해서 형태가 변했다.

그것은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길었고, 줄어든 만큼 두께가 늘어났다.

다만 그렇다고 너무 두꺼운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새카만 채찍이었으니까.


그의 기억이, 지도가, 필름이 채찍으로 변했다.


김윤이 다시 새하얗게 변한 공간 속에서 채찍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바라보았다.


이것 역시 그의 기억이 새겨진 지도였다.

잡는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기억을 찾는 길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끝인가.”


어느덧 새하얀 공간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렇게 끝이 날 것만 같던 순간, 무너지던 공간이 멈췄다.

정확히는 일대의 시간이 얼어붙었다.


“뭐?”


김윤은 채찍을 당겨 쥐며 주변을 살폈다.

공간이 무너지던 모습 그대로 굳어 있었다.


김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이 공간은 대체 무엇인 걸까.

갑자기 나타난 자신이 만든 환영과 그것을 통한 기억 때문에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분명 포탈을 탔거늘 어째서 아공간이 아닌, 그것과 닮지만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가.


‘그게 아니면 아공간 내부 중 어느 곳인가?’


그는 아직 아공간에 있는 모든 공간을 살핀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공간이 있을 수도 있었다.


김윤은 주변을 살폈다.

여전히 아무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의 한 마디가 그의 귓가를 파고들기 전까지는 그랬다.


[길을 만드는 자, 길··· 을······ 자··· 여.]


뒷부분은 뚝뚝 끊어져 알아들을 수도 없는 문장.


“뭐?”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그게 무슨. 자, 잠깐······!”


공간이 다시금 무너져 내렸다.

새하얀 공간이 깨지듯이 쏟아졌고, 김윤은 그것에 휘말리며 이 공간에서 쫓겨났다.

주변을 눈부시게 채우던 빛이 사라지고 칙칙한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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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길을 만드는 자 (7) 23.11.23 56 2 12쪽
70 길을 만드는 자 (6) 23.11.21 57 2 12쪽
69 길을 만드는 자 (5) 23.11.20 6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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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길을 만드는 자 (3) 23.11.15 57 2 12쪽
66 길을 만드는 자 (2) 23.11.14 55 2 12쪽
65 길을 만드는 자 (1) 23.11.13 60 2 11쪽
64 새 지도 (9) 23.11.10 63 3 12쪽
» 새 지도 (8) 23.11.09 6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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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바깥 (2) 23.10.24 64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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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용오름 (4) 23.10.11 7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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