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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공간 지도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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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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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 (4)

DUMMY

지키지 못했다.

늘 그랬다.


마석 대재해의 그날도.

박건영이 아름을 집어삼키던 그날도.

아툰슬레어가 학살을 하던 그날도.

멸망교에게 형이 살해당했던 그날도.

그리고 주은서가 납치당하는 그날도.


늘 늦었다.

늘 지키지 못했다.


힘이 있음에도 그는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

잘못된 선택으로 그들을 구하지 못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서로 다른 자책이 어둠으로 가득찬 방안을 가득 채웠다.

방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다.


“······김윤씨 잘못도 아니에요.”


이유진이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들었어요. 김윤씨는 최선을 다했다고. 그리고 애초에 그 몬스터들은 결계조차 찢어버렸으니까. 그래요, 그곳에 남아있었다면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은 구할 수 없었을 거예요. 김윤씨가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와 준 덕이에요. 살아돌아온 이들도 당신이 구해줬으니까 살 수 있었던 거고요.”


그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가 자신들에게 왔기에 지금 이곳에 있는 인원이라도 살아남은 것은 사실이니까.


또한 그들은 결계를 부술 힘이 있었고, 최고 전력 중 하나이던 신혜성이 죽었다는 것은 그곳에 있었어도 막기 버거웠을 것을 뜻했다.

마력의 양이 적다고 한들 그는 캠프 내에서도 가장 뛰어난 전투 실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즉, 이것이 최선인 것이었다.

이 빌어먹을, 멸망이 찾아오는 세상에서는 말이다.


“······이 세상에선 이게 최선인 거겠죠.”


계속해서 빼앗는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구렁텅이로 밀어넣는다.

세계가 그것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한다.

그것말고는 아무런 방도가 없다.

그것이 멸망이 정해진 세계에게 주어진 유일한 것이었다.

태어난 이상 할 수밖에 없는, 해야만 하는 것.

생명체가 가진 본능.


그렇기에 지금 눈 앞에 있는 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유진이 김윤을 바라보았다.

캠프에 처음 찾아왔을 때보다 더욱 강한 기운을 품기고 있는 그.


그는 스스로의 생존을 넘어 모두의 생존을 바라고 있었다.

그렇기에 저렇게까지 힘을 갈구한 것이었다.


“······그런 심정이기에 길을 만드는 자에 선택된 거겠죠.”


그녀가 작게 중얼거리며 마력을 운용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마력이 깃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감정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진심으로 자책하고 있었다.

힘이 있음에도 지키지 못한 것을.


“그러니까 김윤씨가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이런 세상인 거니까요.”


이유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김윤에게 말했다.


“캠프도 마석 던전을 없애는 일을 도울 거예요. 그게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하는 일 아니겠어요?”

“대표님······.”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저뿐만 아니라 캠프의 모두도 나아가기 위해 단련하고 있으니까요.”


그녀가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걷었다.

그러자 아공간의 새하얀 빛이 방 안을 파고 들었다.

그리고 가려진 창문이 드러나며 바깥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박다민과 최지원, 그리고 캠프의 이들이 훈련하고 있었다.

마석 던전을 공략하기 위한 준비였다.


이유진이 아공간의 빛을 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



캠프의 구역에서 벗어난 김윤은 아름 바깥으로 벗어났다.

아공간, 다른 세계의 기억을 읽어두기 위함이었다.


‘그게 이 빌어먹을 세계, 멸망이 확정된 세계에서 살아남을 방법이니까.’


그는 새하얀 공간은 거닐며 이유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동시에 백민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게 세상이 만든 길이라면.’


그는 새로 길을 놓아야 한다.

그는 길을 만드는 자니까.

새기는 자니까.


멸망이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길을 새겨야 한다.


그는 새하얀 바닥에 손을 펼치고 마력을 운용했다.

그러자 그곳에 숨겨져 있던 다른 세계의 기억이 그의 머릿속을 파고 들었다.



***



회복된 마력이 다시 바닥을 보인다.

김윤은 스킬을 거두고 주변을 살폈다.


발광하던 아공간의 빛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밤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많이도 걸어왔군.”


김윤은 자신이 지나 온 길을 돌아봤다.

한 곳에서 읽을 수 있던 세계는 하나.

그렇기에 그는 계속해서 이동하며 다른 세계의 기억을 읽었다.

때문에 상당한 거리를 이동한 그.


‘지도도 전하려면 돌아가야겠지.’


김윤이 아름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탈력감.


“큭.”


부족한 마력의 그의 몸이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그러다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는 그.


‘이상하다. 분명 마력이 남아··· 있었······.’


김윤이 바닥과 부딪히며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까맣게 물드는 시야.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시야가 다시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아공간과 닮았으나 다른 공간.

그가 트라우마를 이겨낼 때, 그리고 확실하게 각성할 때 찾아왔던 그 공간.


“여긴······!”


김윤이 몸을 벌떡 일으키며 주변을 살폈다.


그는 이 공간을 찾아올 때마다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감정이 분리되어 무기가 되거나, 진정한 길을 만드는 자로 각성하거나.

그렇다는 것은 이번 역시 그에게 변화가 찾아올 지도 모른다.


김윤은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았다.

평소처럼이라면 이 그림자가, 혹은 자신의 체내에 숨겨진 새카만 무언가가 자신의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바닥에 있던 그림자가 새카만 무언가를 마구잡이로 토해냈다.

그것은 이내 하나로 뭉쳐졌고, 김윤과 똑같은 형태로 빚어지며 그의 앞에 멈춰섰다.


“이거 또 오랜만이네?”


과거 도망자 시절 자주 듣던 목소리.

새카만 그림자가 그에게 속삭였다.


“······여긴 대체 뭐하는 곳이지?”

“글쎄.”


그림자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것보다는 내가 이렇게 다시 빠져나올지도 몰랐다고.”


그림자가 김윤을 바라보았다.


“날 완벽하게 받아들인 거 아니었어? 이젠 시작점도 지났는데 말이지.”

“뭘 알고 있는 거냐.”

“나는 결국 너야. 네가 아는 거랑 큰 차이는 없다고. 아, 아니지. 저번에 말한 것처럼 다른 힘이 섞여서 뭔가 더 알고 있을 지도?”


그림자가 미소를 지었다.


“말해.”


김윤이 그림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것은 그림자이자 어둠으로 이루어진 것.

그것은 다시 어둠으로 화해 흩어진 후, 거리를 벌려 다시 뭉쳤다.


“진정하라고. 알고 싶다면 직접 알아야 봐야지. 날, 널 협박할 게 아니라.”


그의 말에 김윤은 손을 거두고 마력을 일으켰다.

고유 스킬, 기억을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의 스킬이 발동되지 않았다.

다량의 마력을 때려박아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고유 스킬만이 아니다.’


모든 스킬이 사용되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간단한 마력의 운용 뿐.

그것을 변형해 만든 스킬들은 단 하나도 사용이 되지 않았다.


‘이 공간 때문인가.’


김윤은 스킬을 사용할 생각을 거두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번엔 저 그림자의 방해가 존재하지 않아 살필 시간은 충분했다.


그는 새하얀 공간을 거닐었다.

그러나 별다른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아공간처럼 새하얗기만한 곳.


‘마력은··· 모두 균일하게 공간을 감싸고 있군.’


때문에 특정 장소를 찾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게 한참을 흰 공간을 돌아다닐 때였다.


드드드드!


갑작스레 대지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


김윤은 균형을 잡으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곳곳에서 포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포탈?”


김윤은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포탈의 너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뒤에 있는 포탈.

그것의 풍경은 틀림 없는 지구의 풍경, 아공간과 지구가 이어진 서울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우측에 있는 포탈은 전혀 처음 보는 풍경.

그러나 지구에서는 볼 수 없을 법한, 온통 보랏빛으로 가득한 풀들.


‘다른 세계인건가.’


다른 세계의 풍경이 보였다.


‘그렇다는 건······.’


곳곳에 있는 세계를 비추는 풍경.

그리고 그곳에서 빨려들어오는 마력.

김윤은 그것을 바라보며 이 공간의 짐작했다.


“모든 세계가 이어지는 아공간. 그 중심인가.”


김윤이 그것을 깨닫기 무섭게 바닥이 휘어지기 시작했다.

포탈이 생긴 것이 끝이 아닌 것이었다.


대지가 휘어지며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마치 개미지옥처럼 말이다.

그것은 방대한 마력을 일으키며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당겼다.


김윤은 그것에 저항할 수 없었다.

지지대도 없을뿐더러 스킬을 사용할 수 없으니 말이다.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해 버티려해도 끌어당기는 힘이 더 강하다.


“크윽······!”


결국 강력한 인력에 끌려가는 김윤.

그는 중앙에 생긴 새카만 구멍에 빨려 들어갔다.

그것과 동시에 그는 의식을 되찾았다.


“허억!”


숨을 크게 들이쉬며 몸을 벌떡 일으키는 이.

여전히 새하얀 공간이었으나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아공간이었다.


“거긴 대체······.”


김윤은 의식을 잃은 사이 다녀온 공간에 대해 떠올렸다.

아공간의 중심으로 짐작되는 그곳.


‘조건이 뭐지?’


어째서 그는 계속해서 그곳으로 옮겨지는 것일까.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어째서 도움을 받은 것일까.


‘이곳에서도 갈 수 있는 건가?’


김윤은 어느새 어두워진 아공간을 살폈다.

밝게 빛나던 공간이 밤을 뜻하듯 어두워졌다.

동틀녘의 지구를 보는 것만 같은 밝기.

아공간답게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다.


김윤은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방금 그곳에 다녀왔으니 혹시 이어진 길이 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력을 사용하고, 스킬을 사용해도 별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일단은 돌아가야겠군.”


당장은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 여긴 김윤은 아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이 다가올 무렵에야 겨우 아름에 들어선 그.

그는 곧장 자신의 집이자 가게인 길잡이로 향했다.


“왔나?”


가게에 들어서자 노호수가 그를 반겼다.


“왜 방에서 안 주무시고 그러고 계신대요.”

“너야말로 왜 이제 왔지?”

“할게 좀 많아서요.”


김윤이 상자를 하나 꺼내고 그곳 위에 인벤토리를 열어 지도를 쏟아부었다.


“그보다 허우진이 깨어났다.”

“네?”


김윤은 곧장 허우진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아공간의 빛이 새어들어오는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엔 허우진이 침대에 앉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어버린 오른팔이 있던 곳을 붙잡으며 말이다.


“······백민호는 어떻게 됐습니까.”


허우진이 김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의 두 눈에서 공허함이 느껴졌다.


“은서가 돌아온 것은 봤습니다. 백민호는 죽었습니까?”


오른팔이 없어 펄럭이는 옷을 붙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김윤은 침묵으로 답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허우진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럼 제가 죽이겠습니다.”


그리고 짙은 살기를 내뿜었다.


“지키지 못했던 죄를 그것으로 갚겠습니다. 그게 혜린이도, 죽어간 시민들도 바라는 일일테니까요.”

“우진씨······.”


허우진이 비틀거리며 문으로 다가갔다.

김윤이 그러한 그를 부축했지만, 허우진은 그것을 벗어나 홀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게 제가 찾은 길입니다.”


그의 보랏빛으로 타오르는 눈동자가 김윤을 바라보았다.

굳은 의지가, 짙은 살의가 담긴 눈이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김윤은 그를 말릴 수 없었다.

자신 역시 그랬었으니까.


그는 길잡이를 빠져나가는 허우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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