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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공간 지도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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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물
작품등록일 :
2023.08.0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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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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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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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잇는 자 (2)

DUMMY


‘이제 이 세계도 끝이구나.’


천천히 다가오는 이지우의 손을 보며 마리가 품은 생각이었다.

딱 그것까지였다.


동정심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도 많은 멸망을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저 멸망한다는 사실만 직시할 뿐이었다.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과거 자신의 세계가 멸망하며 이젠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졌다.

그 무엇도 말이다.


그녀는 알게 되었다.

어차피 모든 세계는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짜여진 운명이었다.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우주의 뜻이었다.


‘그런데 왜 이 세계의 멸망은 모여서 막는 게 아니지?’


마리는 문득 의문을 품었다.


세계 곳곳에 나타난 멸망.

한 세계의 길의 주인이었던 그들은 이제 한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현현했다.

그리고 그들이 일으키는 파괴로 이 세계의 원망을 일으켰다.


한시라도 빨리 막아야 유리하게 짜여진 멸망.

그리고 그것을 위해선 길을 만드는 자들이 흩어져야 했다.

다른 세계의 멸망과는 다르게 말이다.


‘우리가 전부가 아닌 건가?’


그런 생각이 듣자 눈앞에 이지우가 가련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 어떠한 멸망보다 어려운 멸망이라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야.’


그러니 다행으로 여기렴.

이렇게 끝나는 것이 더욱 편한 것이니까.


또한 먼저 죽는 그녀는 자신처럼 다른 세계에서 다시 되살아날 필요가 없었다.

진정한 안식을 맞는 것이었다.


“윽?”


그렇게 두 손이 맞닿는 순간.

손바닥에서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그녀의 손바닥에 맞닿은 것이 손바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지우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은빛 칼날.

그것이 새빨간 피를 두른 채 살벌한 인사를 건넸다.


‘파동의 여파를 이렇게 빨리 벗어났다고?’


그것만이 아니다.

그녀의 눈동자가 내보내는 매혹.

그것마저 이겨낸 것이었다.


“상당한 정신력을 지녔구나?”

“그러게요.”


이지우가 싱긋 웃었다.

그리고 칼날에 마력을 더욱 쏟아부으며 그것을 앞으로 내질렀다.


그대로 손을 넘어 팔을 갈라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뺨을 후려치는 거대한 날개.


그것의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강화된 그녀의 머리가 휙 젖혀졌다.

그것을 넘어 저 멀리 날아가는 이지우.


날개가 품은 부정적인 감정에 잠시 몸의 제어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순간적으로 몸에 힘이 빠져 밀려나는 것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냥 방금 죽는 게 너한테도 편했을 텐데 말이야.”


그녀가 손에 박힌 은빛 단도를 뽑아냈다.

그러자 빛으로 화하며 사라지는 그것.


그녀는 상처에 마력을 흘려보내 지혈했다.


“이 세계는 살아남을 자격이 없어. 너도 들었잖아? 감사를 둘째치고 원망부터 하는 목소리를 말이야. 그들이 대다수인 세계야.”


마리의 몸 주위에서 작은 마력의 구슬들이 만들어졌다.


“멸망해도 상관 없지 않겠어?”


그리고 쏘아졌다.


총탄의 비처럼 쏟아지는 그것.

그것은 이지우와 거리를 좁히기 무섭게 폭발을 일으켰다.


총탄이 아닌 포탄이었던 것이었다.


콰과광!


이어 그 폭발 사이를 뚫고 쏘아지는 섬광.


이지우는 곧바로 공간을 열어냈다.

그녀의 앞, 그리고 마리의 위로 이어지는 길.


그녀가 쏘아낸 섬광이 그녀를 강타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다수지.”


마리가 깃털검을 움켜쥐며 쇄도했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깃털의 검이 화려한 움직임에 따라 휘둘러졌다.


마치 춤과 같은 공격.

그것은 검무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저는 지킬 약속이 있거든요.”


은빛 칼날이 검무를 갈랐다.

그녀의 춤이 흐트러지며 공격이 멎었다.


“약속이라······. 이 세계에도 그런 단어가 있구나. 하긴 지성체가 있는 곳이라면 모두 존재하는 단어겠지.”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름답고도 역겨운 단어야.”


그러자 그녀의 날개가 파르르 떨며 깃털을 쏟아냈다.


“잠시 내 이야기를 해도 될까?”


따로 대답은 듣지 않았다.

곧바로 말을 이을 뿐이었다.


“나는 말이야. 다른 이들과 달리 여러 개의 고유 스킬을 지니고 있어.”


그녀가 깃털검을 매만졌다.


“깃털의 공간. 감정의 연결. 내가 있는 세계에 모든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고, 연결할 수 있지. 그리고 이 깃털에 담는 것도 가능하고 말이야.”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천천히 드러났다.

그것이 다시금 이지우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세계의 모든 감정을 받아들인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마리가 슬쩍 미소지었다.


“그 세계에 실망을 하게 된다는 뜻이야. 모든 것을 알게 되니까.”


그러나 이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볼 수 없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잠구고 모든 감정에 무뎌지게 되지.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


그녀가 날개를 퍼덕였다.

그러자 바닥에 쌓이던 깃털들이 쏘아졌다.


“이 깃털에 갇힌 생명이 쏟아내는 모든 감정에도.”


쏘아진 깃털들이 일제히 폭발했다.

그러자 그것이 담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내가 가져야 했던 감정에도.”


일대를 검게 물들이는 감정.


“으윽······.”


이지우는 황급히 몸을 날렸다.

그러자 그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는 그녀.

그녀를 향한 원망의 화살이 너무도 매서웠다.

그들이 가진 죽음의 두려움이 너무도 공포스러웠다.


섬광의 그들도 이렇게 죽어갔겠지.


그녀는 다시금 일어섰다.

약속을 지켜야 했다.


새로운 섬광을 세우고 그곳을 완벽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과거의 섬광의 모두를 해친 그에게 죄를 묻기 위해.


은빛 마력이 전신에서 솟구쳤다.


“굴하지 않는구나.”


마리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녀의 굳은 의기는 그 어떠한 설득에도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

그러니 무력으로 제압할 뿐.


“너도 깨닫게 될 거란다.”


그녀의 새하얀 날개가 새카맣게 물들었다.

머리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그녀의 머릿속에 수많은 아우성이 휘몰아쳤다.


이 세계의 지성체들이 보내고 있는 감정이었다.


“네가 지키려는 이들조차 변한다는 것을. 그들은 감사를 잊는다는 것을.”


그녀의 새카만 날개가 펼쳐졌다.


“내가 이러는 것은 너를 위한 거란다. 같은 잇는 자로서 말이야.”


그녀가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자 푸른 마력의 구슬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이내 새카맣게 물들었다.

그리고 쏘아졌다.


이지우는 마력을 쏘아냈다.

은빛 마력이 장벽이 되어 전방을 막아섰다.


콰과과광!


그것이 막아서기 무섭에 틀어박히며 폭발을 일으키는 탄환들.

폭발과 함께 새카만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전보다 더 짙은 감정.


“크윽······.”


이지우는 그것을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알고 있었다.


모든 마석이 무너지고 멸망이 일어나기까지의 짧은 기간.

그 기간동안 충분히 맛보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지킬 것이다.

그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이니까.


누군가가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킬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더라도.

그 모두가 자신을 원망하더라도.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었다.


“그게 굳이 너일 필요는 없지 않니?”

“하지만 제게 주어졌으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길을 이었다.


“넘겨줄 수도 없잖아요?”


그들이 욕심으로, 원망으로 무너뜨린 길을 다시금 이었다.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그들이 다시 걸어갈 수 있게.


그게 길을 잇는 자에게 주어진 사명이니까.


그녀는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다.


“갸날프구나. 어찌 이 세계는 저런 심성에서 힘을 주었는가.”


폭발과 파동을 뚫고 가녀린 은빛이 다가왔다.

그것은 늦은 밤, 하늘에 가득한 구름에 가려지는 달빛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찬란함은 감춰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시금 빛을 발할 것이다.


“흐아아압!”


마치 지금처럼.


은빛 섬광을 두른 검이 휘둘러졌다.

순간적인 마력의 출력으로 검날을 길게 늘린 검.


그것이 폭발을 뚫고 마리의 날개에 틀어박혔다.

그러자 그것을 타고 쏟아지는 짙은 감정.


보통의 이들이라면 정신이 무너져 내리기 충분한 그러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지우는 굴하지 않았다.


강력한 정신력은 애초에 길을 만드는 자들이 선택된 이유 중 하나.

그렇기에 웬만한 이들보다는 정신력이 강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출난 이가 있다면 그것은 이지우였다.


백민호의 부하, 이기한에 의해 조종을 당했던 그녀.

그리고 백민호가 벌였던 참극.

그것들이 종합해서 그녀의 정신력을 한층 단련시킨 것이었다.


카드득!


그렇기에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은빛 칼날이 마력을 더욱 머금으며 새카만 날개를 잘라냈다.


천천히 조금씩 계속해서 파고드는 칼날.


마리는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저 그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이 마리에게 무언가를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걱.


은빛의 칼날이 마리의 새카만 날개를 기어이 도려냈다.


“가련하구나.”


쿵!


마리가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날개를 바라보았다.

저것은 그녀에게서 떨어지면 안 됐다.

하지만 이지우의 모습이 그것을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재앙을 불러 일으켰다.


마리의 품에서 떨어진 날개.

저것은 수많은 감정을 지니고 있다.

그것도 부정적인 쪽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억제된 품에서 벗어나게 된 그것.

날개에 담긴 새카만 것들이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날개가 다시 하얀 모습을 되찾아갔다.

그리고 새카만 무언가를 토해냈다.


콰과과과!


하늘 높이 솟구치는 새카만 기둥.


“이건 무슨······.”

“순순히 내준 것엔 이유가 있는 거란다.”


마리가 붉은 눈동자로 그 기둥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반대편 날개를 움켜쥐었다.


우드득.


그대로 마지막 남은 날개마저 뜯어내는 그녀.

그러자 그것 역시 새하얗게 변하며 새카만 무언가를 토해냈다.


“이래야 네가 포기하겠지. 다 너를 위한 일이란다. 빛나는 아이야.”


그녀가 새카만 기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끝을 모르고 솟구치던 어둠이 멈추고, 일대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유성우처럼 사방으로 쏟아져 내렸다.


이어 그녀는 반대손을 다른 기둥에 넣었다.

그러자 그것 역시 솟구치던 것을 멈추고 어둠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앞에 것과는 달랐다.


이번엔 돔 형태로 일대를 둘러쌌다.

그러자 돔과 유성우가 충돌하며 비명을 토해냈다.


정말로 비명이었다.

인간의 비명이 돔 안에 가득 메아리쳤다.


“아무리 밝은 달빛이라고 한들 결국엔 어둠에 가려지리.”


새카만 어둠이 일대를 휘감았다.


“이어야 할 길이 모두 가려진다면 무엇을 이으리. 또한 이어도 의미가 없으리.”


그녀가 새하얀 손을 뻗었다.

그녀의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어둠이, 절망이, 원망이, 고통이, 죽음이. 그리고 멸망이 이 땅에 내려앉을 것이다.”


동시에 그녀의 등 뒤로 새카만 마력이 솟아나며 날개의 형태를 이루었다.


그녀가 그간 느끼지 못한 죄책감을 느꼈다.

동정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숨기기 위해 어둠을 쏘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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