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재이다

아공간 지도 제작자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플폴풀
작품등록일 :
2023.08.07 15:17
최근연재일 :
2024.08.07 20:00
연재수 :
195 회
조회수 :
18,094
추천수 :
333
글자수 :
1,020,566

작성
24.06.19 20:00
조회
40
추천
0
글자
12쪽

길을 새기는 자 (3)

DUMMY


김윤이 태운 지도.

그것은 평범한 기억을 담은 지도였다.


어떤 지역에 대한 기억을 담은 지도.

그러나 지금 김윤의 마력은 그것을 증폭하고, 완벽하게 재현이 가능했다.


화르륵!


그렇기에 주변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용암이 들끓던 땅이 모조리 메꿔지고, 초목이 자라났다.

우중충하던 하늘은 푸르게 물들었고, 화사한 햇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주변을 바꾼 건가.”


쿠로가 그 광경을 멍하니 살폈다.

김윤의 마력이 주변의 마력과 뒤섞이며 틀어박혔다.


마력의 운용법, 흐름.

그것이 적용되며 재현의 풍경을 현실에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즉, 이 일대의 풍경은 이제 이것으로 고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나의 골렘에게 유리할텐데?”


쿠로가 용암을 끌어만든 골렘.

그것은 말 그대로 용암으로 만들었기에 이 숲을 불태우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뭐지? 골렘이 없어졌다.’


그 골렘이 없어져 있었다.

아니, 골렘만이 아니다.

그가 만들었던 마력의 나무 역시 없어져 있었다.


상공을 가득 채워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응축되던 번개마저 사라졌다.

그가 준비하던 모든 게 사라진 것이었다.


주변에 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저 풍경만이 들어찼다.


“내가 설치한 것들을 없애기 위함이었나.”


그사이 김윤은 나무로 가득한 숲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의 뒤로 새카만 마력이 흩날리며 길을 새겼다.


곳곳에서 솟구치는 새카만 마력.

모두 김윤이 새긴 길이었다.


마력이 흐르는 길.


콰과과과!


공기 중에 퍼져 있는 마력이 길을 타고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늘 높이 치솟는 새카만 마력.

김윤의 길을 따랐기에 그 성질에 물들여진 것이었다.


김윤은 솟구친 마력을 자신의 것으로 갈무리했다.

그리고 손날에 휘감아 휘둘렀다.


목표는 당연하게 쿠로.

쿠로는 곧장 방어막을 펼치며 대비했다.


그의 손에 들린 책의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며 수많은 방어 수단을 꺼내들었다.


성벽이 지어지고, 거대한 골렘들이 솟아나며, 마력의 장벽들이 둘러졌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한 번의 휘두름에 산산조각이 났다.


콰드드드득!


그가 길과 흐름을 통해 끌어모은 힘이 모든 것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쿠로에게 향하는 길을 뚫어냈다.


새카만 마력의 덩어리가 지상에서부터 솟구쳤다.

김윤이었다.


필연.

기억의 지대에 뒤섞인 새기는 힘이 그에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부여했다.


그것은 그 어떠한 것도 그를 방해하지 못하는 운명.


부서진 모든 것들이 재조합되며 그를 덮치려 했으나, 필연에 의해 막혔다.

그와 쿠로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통로가 있었다.

그 무엇도 간섭할 수 없는 통로말이다.


김윤은 그 통로를 지나가며 지도를 불태웠다.

그의 오른 손에 짧은 창이 하나 들렸다.


그대로 접근해 쿠로를 꿰뚫어버릴 심산이었다.


‘놈은 마력을 스킬 위주로 사용하는 캐스터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차단한 지금, 그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단창을 타고 마력이 스며들었다.

그것은 창을 더욱 단단하게 하고, 날카롭게 했다.

그렇게 강화된 창이 쿠로를 향해 쇄도했다.


꿰뚫어라.


그러면 그대로 끝이다.

이 세계의 멸망이 끝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한 멸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콰드드득!


김윤의 단창이 쿠로의 어깨를 관통했다.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뭐?”


김윤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했기에 되물었다.

그리고 쿠로는 친절하게 했던 말을 다시 내뱉어 주었다.


“우리가 진정한 멸망이 아니라는 뜻이다.”


쿠로가 펼쳐진 책 위로 자신의 피를 떨어뜨렸다.

그러자.


화아악!


불길한 붉은 빛을 내뿜는 책.

그것의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멸망은 길을 만드는 자 모두가 협력해 막는 것. 그런데 이렇게 각자 움직이는 것으로 막아진다는 것부터가 이상하지 않나?”


턱.


그가 책을 덮었다.

그러자 책에서 끈적한, 붉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우린 맛보기에 불과해. 너희가 진짜 멸망을 맞이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거다. 그래, 작은 멸망이라고 할 수 있겠군.”


쿠로가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폭풍이 쏟아지며 김윤을 밀쳐냈다.


“그리고 그 작은 멸망은 이제 시작이다.”


그의 얼굴 양옆에 달린 날개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자 책이 쏟아내던 붉은 기운이 그를 휘감았다.


그가 내뿜는 푸른 마력과 뒤섞이는 붉은 기운.

그러자 그것이 하나로 뒤엉키며 검보랏빛 아우라를 내뿜었다.


“네가 내게 과거를 보이지 않겠다면, 직접 알아 볼 수밖에.”


쿠로가 어깨에 박힌 단창을 뽑아냈다.

그리고 움켜쥐었다.


콰드득!


가볍게 박살이 나는 창.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많으니까.”


느낌이 좋지 않다.

김윤은 곧장 마력 광선을 쏘아냈다.


그 두터운 광선은 새까만 몸을 이끌고 쿠로를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그가 손을 내밀기 무섭게.


콰아앙!


폭발을 일으키며 나아가는 것을 멈췄다.


원인은 간단했다.

그가 뻗은 손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광선의 앞을 황금으로 바꾼 것이었다.

그러자 뒤쫓아오던 마력이 그것과 충돌했고, 폭발을 일으켰다.

이어 폭발도 황금이 되었으며, 다시금 뒤따르던 마력들이 폭발을 일으켰다.


황금화와 충돌, 폭발의 연쇄.

그것이 일어나며 광선을 막아선 것이었다.


“역시 쓸만한 능력이야.”


그사이 쿠로는 책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다시금 펼치는 책.

그러자 그 안에 있던 모든 페이지가 하늘로 솟구쳤고, 불타올랐다.


종이들이 불타오르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문자.

그것이 모조리 그의 몸에 빨려들어갔다.


“길의 힘은 잃었지만, 내 고유의 것은 남아있다. 나는 새기는 자이자 기록하는 자, 쿠로.”


그의 붉은 눈동자가 김윤을 내려다보았다.


“모든 세계의 기록이 네 과거를 들출 거다.”

“······끈질기군.”


김윤은 남은 마력을 점검했다.


충분하다.

저놈을 깨부술 정도로는 남아있다.


상처?

그것 또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곳곳에서 솟구치는 검은 기운이 모두 없었던 것으로 되돌리고 있었다.


그것보다 문제는 쿠로가 내뱉었던 말.


‘진정한 멸망이 아니다.’


김윤은 그 말을 되새기자 아공간의 중심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만난 그림자.

그것은 확실하게 우리의 세계에게 적대감을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든 멸망시키고 싶은 거냐.’


그렇기에 여러 멸망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증명할 뿐이다.

이 세계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것이라는 것을.

자신은 모든 멸망을 막아낼 것이라는 것을.


김윤이 지도를 꺼내 불태웠다.

아공간에서 만들었던 다른 세계의 기억이 담긴 지도.


그는 그것을 기억의 지대와 새기는 힘을 이용해 재현했다.


마력이 기억을 꺼내오고 만들었다.

그의 양손에 수많은 부적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괴한 기운.


“다른 세계의 기억이군.”


쿠로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발을 타고 문자들이 피어나더니 손바닥에서 모였다.

그리고 하나의 기록을 재현했다.


손바닥에서 피어나는 연녹색의 꽃.

그리고 그것의 중앙에서 쏘아지는 광선.


콰과과과과!


쏘아진 광선이 숲을 불태웠다.


김윤은 그것을 피해내며 부적들을 쏘아냈다.

흉흉한 것들을 피워내는 그것들이 광선을 피하며 쿠로에게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그의 주위를 동그랗게 감싸는 부적들.


그때였다.


콰지지직!


번개를 내뿜으며 그를 속박하는 부적.

결계였다.


이어 부적이 내뿜던 흉흉한 기운이 하나로 뭉치며 살벌한 외모를 지닌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커다란 두 뿔, 쩍 벌어진 입안에 가득한 날카로운 이빨.

새하얀 소복과 한 손에 들린 거대한 검.


그것이 쿠로를 향해 휘둘러졌다.


“본 적이 있는 세계군.”


그러자 그는 또다시 손을 펼쳤고, 문자가 쏟아지며 다른 기록을 꺼내왔다.


김윤이 가져온 기억은 악령이 담긴 기억.

그리고 쿠로가 지금 꺼낸 것은 그것을 퇴치하는 기록이었다.


그의 마력이 환한 금빛을 내뿜더니 악령을 불태웠다.

그를 감싼 부적과 결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보여다오. 그 기억들을 너는 어떻게 다루는지, 그것을 통해 네 과거는 어떻게 쌓여왔는지.”


쿠로가 마력을 쏟아냈다.

문자들이 하나로 뭉치며 거대한 검이 되었고, 대지를 갈랐다.


콰드드드득!


흙먼지가 높게 피어나며 바닥을 장식하던 나무들이 사방으로 날렸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재앙.

김윤 역시 똑같이 재앙을 일으키며 그것에 맞섰다.


또다시 꺼내오는 기억.

칸트로프의 기억이었다.


그의 마력이 흑철로 변하며 거대한 인간의 형태가 되었다.

김윤은 그것에 깃들며 흑철의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검과 주먹이 충돌하며 충격파를 터트렸다.


기록과 기억의 충돌.

서로 비슷한 것들의 충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흑철의 거인이 무너지고, 검이 부러지고.

수많은 세계의 것들이 이 자리에 모두 재현되었다.

그리고 충돌하고 사라졌다.


그것이 전투와 관련된 것이든 아니든, 수많은 기억과 기록이 오갔다.

과거의 모든 것이 쏟아지며 부딪혔고 사라졌다.


과거로 길을 새기는 자들.

그러나 그것으로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 그들에겐 그 모든 것이 없었다.


쿠로는 실패했기에 미래가 없었고, 김윤은 미래를 소모해 현재를 만들었다.

또한 그 현재는 다시금 과거가 되었다.

그렇기에 그 자리에 현재는 없었다.

미래도 없었다.


그것이 쿠로가 끝까지 걷게 된 길이었다.

그것이 김윤이 택한, 나아가고 있는 길이었다.


김윤이 자신의 머리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을 헤집었다.


“오오······.”


그 모습에 쿠로가 감탄을 토해냈다.

저것은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해답이었으니 말이다.


김윤이 지닌 모든 것.

과거, 현재, 미래.


그것이 녹아든 길.

그가 걷고 있는 길.

지도로 담을 길.


그사이에 표시되어 있는 다른 이들은 걷지 못할, 걸어서는 안 되는 길.


길을 새기는 자가 걷는 길.


김윤이 길을 새겼다.

그리고 그 위에 올랐다.


“왜 우리는 과거에서 길을 가져오는가.”


과거를 기억해야 미래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잡은 그 길도 결국엔 실패의 노선을 걸었다.

그렇다면 저 길은 나아갈 수 있는가?


아니, 애초에 저 길은 무엇지지?

바로잡을 미래 따위가 없는 저 길은 왜 존재하는가.


저것은 과거를 끌어오고 미래를 불태우며 새겨진다.

오로지 현재만을 새긴다.


하루살이만이 걸을 수 있는 길.

그런 길이 어째서 존재하는가.


“그게 새기는 자이기 때문인가?”


먼저 나아가며 길을 새긴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이들이 비틀고, 지우고, 이으며 다른 이들에게 길을 안내한다.


저것은 과거의 길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을 딛고 일어나 새로이 새겨진 길.


쿠로가 지나온 길과는 전혀 다른 길.


“그저 내가 과거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인가.”


그는 스스로를 하나의 운명에 가두었다.

그렇기에 알고 있음에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길은 아니었다.

그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은 과거에 얽매여 있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오만하다.”


하지만 그 길은 오직 김윤만이 걸을 수 있는 길.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길.

포장되지 않은 길.


오히려 과거를 모두 떨쳐냈기에 홀로 서 있는 길.

그렇기에 실패가 보이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길에 지워지며 다른 무언가를 보았다.

김윤의 뒤에 생겨나는 여러 개의 길.


“하지만 저것들이 하나로 이어진다면 모를 일이겠군.”


새카만 길이 쿠로를 집어삼켰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공간 지도 제작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완결 공지 안내 24.08.07 48 0 -
195 에필로그 - 5년 사이 +1 24.08.07 44 1 12쪽
194 창조 24.08.02 31 0 12쪽
193 파멸 (2) 24.07.31 31 0 11쪽
192 파멸 (1) 24.07.30 31 0 11쪽
191 잉그 (13) 24.07.26 33 0 12쪽
190 잉그 (12) 24.07.25 32 0 11쪽
189 잉그 (11) 24.07.23 29 0 11쪽
188 잉그 (10) 24.07.19 32 0 11쪽
187 잉그 (9) 24.07.17 31 0 11쪽
186 잉그 (8) 24.07.16 34 0 11쪽
185 잉그 (7) 24.07.12 35 0 12쪽
184 잉그 (6) 24.07.11 30 0 12쪽
183 잉그 (5) 24.07.09 32 0 11쪽
182 잉그 (4) 24.07.04 35 0 12쪽
181 잉그 (3) 24.07.02 30 0 11쪽
180 잉그 (2) 24.06.28 35 0 11쪽
179 잉그 (1) 24.06.27 33 0 11쪽
178 창조주 그리고 피조물 (2) 24.06.26 30 0 11쪽
177 창조주 그리고 피조물 (1) 24.06.21 36 0 12쪽
» 길을 새기는 자 (3) 24.06.19 41 0 12쪽
175 길을 새기는 자 (2) 24.06.18 29 0 12쪽
174 길을 새기는 자 (1) 24.06.14 35 0 11쪽
173 길을 지우는 자 (2) 24.06.13 28 0 11쪽
172 길을 지우는 자 (1) 24.06.12 35 0 11쪽
171 길을 잇는 자 (3) 24.06.11 36 0 12쪽
170 길을 잇는 자 (2) 24.06.07 32 0 11쪽
169 길을 잇는 자 (1) 24.06.06 32 0 11쪽
168 길을 비트는 자 (3) 24.06.05 36 0 11쪽
167 길을 비트는 자 (2) 24.06.04 33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