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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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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린 (2)

DUMMY


지옥이라 불리던 그날 밤.

그녀가 몸을 담았던 헤븐이 사라졌던 날.

헤븐의 모두가 목숨을 잃었던 날.

허우진이 길드원 전원을 죽였던 날.


그날의 상황은 그렇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그렇게 꾸며져 있었다.


그가 내뿜는 흉흉한 살기.

바닥에 굴러다니는 동료였던 것들의 시신.

그리고 그 시신에 새겨진 검흔.

모든 것이 그가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단 하나, 마력만은 제외하고 말이다.


허우진이 남긴 검흔처럼 마력에도 흔적이 남는다.

그것은 사람마다 마력 패턴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쉽게 익힐 수 있는 스킬이 다르고, 지니게 되는 고유 스킬이 다른 법.


허우진이 떠나고 고혜린은 침착하게,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마력의 흔적을 읽었다.


피 냄새는 익숙하다.

시신의 모습 역시 익숙하다.

하지만 그것이 함께 하던 가족과도 같은 이들일뿐.


그녀는 차오르는 헛구역질을 억누르며 마력을 계속해서 읽고 읽었다.

그렇게 흔적을 찾았다.

그가 했을 리가 없다고, 만들어진 상황을 부정하며.


수많은 마력의 흔적이 그녀의 마력을 통해 읽혀나갔다.

허우진의 오라의 마력.

길드원들의 휘두른 마력.

그리고 그중에서 허우진을 제외한 모두에게 남아있는 하나의 흔적을 찾았다.


고유 스킬로 보이는 마력의 변환.

그렇게 변환된 마력이 길드원들에게 둘러져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마력의 패턴은.


‘길드장.’


헤븐의 길드장의 것이었다.


그의 고유 스킬은 유명하다.

살의.


그것은 잘만 사용한다면 전장에서 유용한 버프로서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악용도 가능한, 그렇기에 정부 측에 허락을 받고 사용해야 하는 스킬.


그가 법을 어긴 것일까.

아니면 정부가 협력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어째서 그들은 헤븐을 지우려고 했는가.

어째서 허우진은 자신에게 사실을 밝히지 않았는가.

어째서 그는 도망쳤는가.


그 사실은 머지 않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헤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공표.


『헤븐 습격 사건.

길드원 22명 피살.

˙

˙

˙

보랏빛 사신 및 주요 전력 다량의 혈흔만 남긴 채 실종······.』


엉망진창인 사건의 정리.

분명 그곳에 있던 이들은 모두 죽었다.

자신과 허우진만 남긴 채 말이다.


하지만 그중 강한 이들을 골라 실종으로 처리.

살아있는 자신은 사망 명단에 들어가 있었다.


왜 이렇게 처리한 것일까.

그녀는 헤븐의 사건과 함께 놓여진 또다른 기사거리를 바라보았다.


『시장 피살.

범인은 헤븐의 사건과 같은 범인으로 밝혀져······.』


그리고 그 자리를 받아 새로이 시장에 오른 이.

그는 다름 아닌 헤븐의 길드장이었다.


물론 그의 본직은 길드장보다는 정부 측의 고위직.

그렇기에 그가 시장을 받는다고 한들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이어지는 사건이 그것을 이상하다고 표하고 있었다.


‘죽은 사람들을, 우진 오빠를 범인으로 몰려고 하는 거야? 시장이 되려고?’


그녀는 그 즉시 시청을 향해 찾아갔다.

내부로 침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그간 암살이라는 것을 주업으로 삼아오던 삶을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손쉽게 내부로 침투한 그녀.

그는 곧장 시장이자 길드장이었던 남자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 날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나도 길게 살 생각은 없어. 조금만, 조금만 있다가 죽여줄 수 있어? 이 모든 일을 해결한 뒤에.”


고혜린이 인상을 구겼다.


“······우진 오빠도 알고 있었어?”

“······그래.”

“그런데 나한테는 말하지 않았구나.”

“너를 위해서였어. 네가 죽은 걸로 해달라는 것도 정부에게 쫓기지 않기 위······.”


콰앙!


그녀의 마력이 담긴 주먹이 책상을 깨부쉈다.


“우진이는 네가 모르길 바랐어.”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거로 처리하면서 말이지.”

“······그 애도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거야.”

“그럼 그걸 아는 길드장님은 왜 그렇게 처리했대? 응?”

“그게 우진이의 부탁이었으니까······. 그 모든 일을 홀로 처리한 그 애가 바란 일이니까.”


쾅!


이번엔 부서진 책상을 걷어차 벽에 날려버렸다.


“그냥 나를 믿지 못한 거겠지. 주변 사람들이 보던 시선처럼 나한테 의지할 수 없었던 거겠지.”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시청을 빠져나갔다.


자신의 나약함이 한탄스러웠다.

그는 자신에게 단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자신은 늘 그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비췄다.

그렇기에 그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일 터.


“내가 강했다면 버리지 않았겠지. 지키려고만 하지 않았겠지.”


강해져야 했다.

힘이 필요했다.


약했기에 그가 떠나간 것이다.

약했기에 지켜지는 것이었다.

그가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야 했다.


그리고 보여줄 것이다.

자신도 이렇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렇기에 그녀는 아름에 남은 몇 안 되는 범죄조직, 그 중 백화를 찾아갔다.

강해지기 위해서.

그 방향이 어떠한 방식이라도 말이다.


그곳에서 자신을 단련하며 시간을 보내던 그녀.

그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날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백화의 대부분의 인력이 동원된 임무.

그랬기에 그녀 역시 그 임무에 참여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허우진을 발견했다.


‘말해야해.’


자신도 이렇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고.

하지만 그 마음보다 앞선 것이 하나 존재했다.


그것은 그녀가 백화 있는 시간 동안, 자신을 단련하는 시간 동안, 홀로 있는 시간 동안 커진 것이었다.

원망.


왜 자신을 그곳에 버리고 갔는가.

함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

짐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


그것에 휩싸인 그녀는 최초의 품었던, 진정한 속마음과는 다른 언행을 보였다.

그에게 과격한 행동을 보였고, 그날 그가 그랬던 것처럼 살의를 비추었다.


그걸로 그가 깨닫기를 바랐다.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하지만 이해받는 날은 오지 않았다.

대신 소소한 복수는, 최초의 품었던 뜻은 보여줄 수 있었다.


자신도 의지할 수 있다고.

이렇게 그를 지킬 수 있다고.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그는 자신을 평생 기억할 것이라고.

그런 복수라고.


그것이 그녀가 심장이 꿰뚫리며 품었던 생각이었다.



***



콰과과과과과!


마력의 파도와 오라의 충돌로 응축되던 마력이 일제히 폭발을 일으켰다.

그것은 과거 박건영 사태때처럼 일대를 집어삼키기에 충분한 위력이었다.


새롭게 지어진 주변의 건물들이 모조리 폭발에 휩쓸리며 다시 폐허의 모습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 중앙엔 바닥난 마력을 박박 긁어내며 폭발을 견뎌내는 한 사내가 있었다.


“커헉!”


부족한 마력과 육신에 새겨진 상처로 인해 피를 토해내며 버티는 그.

그의 품에는 목숨을 잃은 한 여인이 안겨 있었다.


“젠장, 젠장······.”


그는 자신의 나약함이 한탄스러웠다.

그날의 일에 굴복해 멈춰있던 자신의 나날.

멈추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나아갔다면, 계속해서 단련했다면.


‘모두 지킬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의 품에 있는 그녀도.

그리고 김윤이 지켜달라고 했던 그녀도.


폭발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전신을 두드리던 압박이 사라지자, 그는 이제야 안심했다는 듯이 의식을 잃었다.



***



김윤은 천천히 그리고 또 천천히 걸었다.

차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위해서였다.


점이었던 멸망론자들.

그들이 이어져 하나의 선이 되었고, 그 선이 원이 되어 멸망교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며칠 전, 그 원은 모조리 불타올랐다.


그가 불태운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증오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들의 일부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인 것일까.

아니면 트라우마인 그 장면이 겹쳐 보였기에,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던 트라우마가 다시 날뛰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일단은 진정해야한다.

이 상태로 아공간에 들어설 수는, 길잡이의 이들을 마주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천천히 이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몬스터들 때문일까.

그는 그들에게 화풀이를 하며, 그들의 본거지인 마석 던전에 처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의 보스몬스터까지 처리한 후,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경기 북부에 있는 마석 던전을, 의도치 않게 하나둘 처리하며 다시 서울로 향했다.

그러나 아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그 행위를 후회했다.


천천히 와서는 안 됐다.

더 빨리 와야만 했었다.


“백민호가··· 은서를 납치해갔다고······? 그리고 은서가 길을 만드는 자······?”

“마, 맞아요······.”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허우진을 간호하던 최현민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를 지키지 못했던 죄책감 때문이었다.


김윤이 허우진의 사라진 팔을 바라보았다.


멸망교나 잡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복수로 가장한 학살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키기 위해서 했던 짓이었잖아.’


그조차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했던 일.

그런데 그는 지키지 못했다.

그럼 그 행위는 무엇이 되는가.

자신이 움직이고 활동하던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는 그저 증오에 휩싸인 학살자다.


“······백민호. 놈은 어디로 갔지?”

“고, 공간 이동을 해서······.”


김윤은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길잡이 건물을 빠져나왔다.


“사, 사장님!”


최현민이 황급히 그를 쫓아왔지만 김윤은 멈추지 않았다.

뒤돌지도 않았다.


그는 백민호와의 충돌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과거 박건영 사태처럼 다시 폐허가 된 그곳.

김윤은 그곳에서 마력의 흔적을 더듬었다.

이어 찾아낸 흔적에 자신의 고유 스킬을 사용했다.


곧바로 공간을 찢고 도망치는 곳이라면 현재 머물고 있는 장소일터.

새로운 장소라면 그렇게 이동할 수 없다.


또한 주은서, 그녀가 순순히 잡혀있지 않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시간을 끌어줄터.

그러니 위치를 찾고 그곳으로 향한다.


그의 마력이 일대를 둘러쌌다.

기억의 지대.

그는 그것을 통해 곧장 그들의 기억을 읽었다.


그날 있었던 싸움, 그녀의 각성.

그리고 그것을 넘어 그들이 이곳에 오기 전에 왔던 곳.

열린 공간의 너머를 살폈다.


사람이 전혀 없는 공간, 과거 김윤이 한 차례 찾아간 적이 있던 곳.

그리고 정부 측에서도 사람을 보낸 적이 있던 곳.


“섬광.”


도시, 섬광.

놈들은 지금 그곳에 있었다.


“다시 섬광으로 돌아간건가?”


저번에 정부에서 사람을 보냈을 때 섬광에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저 마력이 빠져나간 사람들의 시신만이 가득할 뿐.

생존자는 없었다.


‘아니면 그곳에 따로 숨을 만한 곳을 마련한 거겠지.’


아름에 있는 지하 대피소처럼 말이다.


어찌되었든 놈들의 위치는 특정되었다.

이제 다음으로 할 일은.


‘놈들을 쫓아가는 것.’


콰앙!


김윤이 바닥을 강하게 박차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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