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재이다

아공간 지도 제작자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플폴풀
작품등록일 :
2023.08.07 15:17
최근연재일 :
2024.08.07 20:00
연재수 :
195 회
조회수 :
18,214
추천수 :
333
글자수 :
1,020,566

작성
23.08.08 18:05
조회
1,079
추천
11
글자
12쪽

지도 제작자

DUMMY

아공간, 그곳은 멸망을 피해 인간들이 대피한 곳이었다.

온통 새하얗기만 하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공간.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곳에는 여러 도시가 만들어졌으며,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었다.

아름이라는 도시 역시 그러한 도시 중 하나였다.

멸망 이후 아공간에 세워졌으며, 인간이 살아가는 도시.

그리고 그곳은 그러한 이들 중 몇몇 존재를 향해 맹렬한 비난을 쏟는 도시이기도 했다.


마력 랭크 A.

이것은 그 비난의 화살을 한 몸에 받는 이가 지닌 힘을 측정한 결과였다.

상당히 높은 랭크라고 할 수 있다.

아니, 현재로서는 가장 높은 랭크이다.


그야 그 위로는 단 하나의 랭크만이 존재하고 있으나, 그것은 실질적으로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힘을 가진 남자, 김윤은 리터너를 택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처럼 포탈을 타고 지구로 향하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몬스터와 맞서 싸우지 않았고, 물자를 확보해오지 않았다.

마땅한 힘이 있음에도 그는 그러지 않았다.

지구를 되찾는 일을 택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수많은 멸칭이 뒤따랐다.

겁쟁이.

도망자.

인류를 등진 자.

·

·

·

멸망을 바라던 자까지.


영광의 칭호를 부여받는 리터너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김윤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야 사실이니까.”


누군가 김윤을 향해 속삭였다.

실존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의 망상이 만들어낸 존재에 불과한 목소리.

그러나 그것은 실존하는 그 무엇보다 그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허억!”


비명과도 같은 숨을 토해내며 몸을 일으킨 것이 그 증거였다.


김윤은 장갑을 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가죽 장갑 특유의 감각이 그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그날의 사건 이후 맨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진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얼굴만이 아니다.

그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맨손으로 만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의 감촉은 그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김윤은 마른세수를 끝낸 후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방금 꾸었던 꿈의 영향일까, 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는 떨리는 두 손을 모아 품으로 당겼다.

그리고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한참을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미··· 요······. 미안··· 해요······.”


그는 연신 누군가를 향해 사과를 토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주위에는 온통 새하얀 공간만 존재할 뿐, 그렇기에 그 누구도 그의 사과를 듣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상태를 회복한 그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러자 온통 새하얀 공간을 넘어 색채와 형태를 지닌 무언가가 그의 눈동자에 담겼다.

그것은 도시였다.


아름이라는 이름을 지닌 도시.

아공간 내부에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도시 중 하나이자, 그가 살아가는 곳이었다.

또한 그를 향한 비난의 비처럼 쏟아지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해야 하는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김윤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단단히 각오하고 말이다.


새하얀 공간을 한참을 가로지르던 그.

그러자 도시로 들어서는 거대한 문이 그를 맞이하였다.


김윤은 자신의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 들었다.

아공간에 세워진 각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거대한 문을 지키던 이들은 그의 신분증을 확인하더니 혀를 찼다.


“쯧. 들어가시오.”


마치 그가 도시로 들어가는 것이 내키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김윤은 그 태도가 익숙하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아름 내부로 들어섰다.


마치 과거 존재하던 서울의 도시를 그대로 재현해둔 듯한 모습.

아니, 그 이상이었다.

지금의 아름은 서울보다 덩치는 한참은 작으나, 더욱이 발전되어 있는 모습의 도시였다.

마력의 존재 때문이었다.


인간들에게 깃든 마력은 그들에게 고유 스킬을 선사했고, 그것 중에는 이러한 도시 발전에 기여되는 능력도 존재했다.

물론 그것만으로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니다.

고유 스킬들 또한 큰 도움이 된 것은 맞으나, 그것보다 더 큰 도움이 된 것이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몬스터들이었다.

그들은 멸망한 세계에서 인간들의 식량이 되었고, 여러 가지를 만드는 재료가 되어 주었다.


덕분에 마석 대재해로부터 5년.

인간들은 아공간 내에 도시마저 설립하여 멸망인 것치고는 생각보다 괜찮을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러한 비난마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김윤이 아름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민들의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이 도시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룰과 같은 것이었다.


리터너로서 부합한 힘을 지니고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이들을 비난한다.


몇몇 시민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은 소리는 아니었기에 김윤은 그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노골적인 비난이었다.


며칠 전 리터너들이 원정에 실패하고 아공간으로 돌아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저들의 논리대로라면 원정을 실패한 그들 역시 야유를 받아야 마땅한 것이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도 리터너들의 생사를 오가는 삶을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것에서 도망친 힘 있는 이들을 비난했다.

리터너를 택하는 것이 의무인 것도 아님에도 말이다.


“저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아공간 안에만 있는 거래요?”


“나가기 무섭다잖냐. 저 힘을 내가 가졌으면 나는 진작에 밖에 나가서 리터너가 됐다고!”


“저 힘을 이번 원정에 더해줬다면 더 많은 사람이 살아서 돌아왔을 게 아닌가?”


“아니지! 그 이전에 원정에 성공했겠지! 저 비겁한 길잡이 놈들이 모두 참여만 했다면 말이야!”


“아공간에서 평생 살 것도 아니고, 저 능력으로 지도나 만들고 있다니······.”


“그러니까. 도시 말고는 온통 새하얀 곳뿐인데, 다른 도시 찾는 게 뭐가 어렵다고. 지도면 이 도시 지도면 충분한데 말이야.”


“그런 힘이 있으면서 왜 리터너를 하지 않는 건지······. 안 해도 된다 해서 정말 안 하는 거야? 할 수 있다면 해야지!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왜 리터너가 됐는데!”


늘 있던 일이었다.

그렇기에 김윤은 애써 무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겁쟁이!”


그때였다.

한 꼬마가 김윤을 향해 쓰레기를 내던졌다.


퍽.


쓰레기는 정확히 그의 머리에 명중했다.


이 또한 익숙한 일이었다.

그는 리터너에 적합한 힘을, A랭크라는 커다란 힘을 지니고도 그저 지도를 그리는 한량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는 길잡이라는 가게에서 지도를 만드는 유일한 지도 제작자였다.

물론 필요한 직업이기는 했다.

새로운 도시에 새로운 지도는 필요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A랭크라는 김윤이 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또한 지도는 그들이 살아가는 도시 내부, 아름의 것으로 충분했다.

보통 다른 도시와의 교류는 정해진 이들 외에는 하지 않는다.

때문에 도시 바깥으로 나갈 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윤은 아름의 것 외 지도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당연히 지구에 대한 지도는 아니었다.

그는 포탈을 타고 지구로 향하는 리터너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만드는가.

그는 지금 그들이 살아가는 아공간의 지도를 만들었다.


도시 이외에는 온통 새하얀 곳의 지도.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일이다.

이러한 공간에서 길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곳의 지도를 만들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더욱이 큰 비난을 샀다.


김윤은 바닥을 구르는 쓰레기를 흘끔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비난하던 사람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싸늘한 눈초리가 그를 향하고, 무감정한 눈길이 그들을 향했다.


이러한 처우는 누구나 화를 낼 법한 처우였다.

애초에 리터너가 되는 것은 강제가 아닌 선택이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이라면 여기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구를 되찾고 싶으면 자신들이 나가면 되는 것이지 않은가.

하지만 김윤은 그런 말은커녕 화 한 번 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가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대역죄인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날 그는 그 어떠한 것도 지키지 못했다.

마석 대재해가 일어나던 날, 마력이 각성하던 날.

그는 그 무엇도 지키지 못했다.


세상을 뒤덮는 푸른 섬광.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가족.

그리고 그것을 향해 뻗었던 자신의 손.


김윤은 그것이 떠오르는 순간 치밀어오르는 격한 감정을 느꼈다.

토악질이 치밀었다.

오한이 밀려왔다.


그러자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주변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동시에 그를 향한 속삭임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결국 너는 구하지 못했잖아.”


“네 가족만이 아니지. 그 뒤에 있던 수많은 사람은 어떻고? 너만 아니면 모두 살 수 있었어.”


“허억, 허억.”


김윤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속삭임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마구잡이로 끄집어졌다.


“큭!”


그는 두 귀를 막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도시를 가로지르며 달리던 그.

그는 도시 외곽에 위치한 한 가게로 무작정 뛰쳐들어갔다.


딸랑! 딸랑!


거칠게 열리는 문에 달려있던 방울이 거칠게 소리를 토해냈다.


콰앙!


이어 문이 매섭게 닫히며 비명을 내질렀다.


“사, 사장님?”


그곳은 김윤의 가게, 길잡이였다.


가게에 들어서자 깜짝 놀란 여자 하나가 그를 맞이했다.


주은서.

길잡이라는 이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 중 하나였다.

검고 긴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은 차분한 인상의 여인.

특이한 점이 있다면 눈동자의 색상이 푸른 빛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에서는 흔한 점이기도 했다.

마석 대재해가 낳은 변화 중 하나였다.


마력의 각성.

그것을 통해 체내에 깃든 마력이 몇몇 이들의 눈 색이나 머리 색에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


“괜찮으세요?”


주은서가 김윤을 향해 다가왔다.


“괘, 괜찮아.”


김윤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으며 손을 내밀었다.

가까이 오지 말라는 제스처였다.


주은서는 익숙하다는 듯이 뒤로 살짝 물러난 후 그의 상태를 살폈다.

천천히 심호흡을 반복하며 마력을 운용하는 그.

그러자 상태가 천천히 안정되어가기 시작했다.


“후우······.”

“이제 괜찮으신가 보네요.”

“그래.”


김윤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밖이 소란스럽다 했더니······.”

“하하···. 뭐, 내가 좀 유명인이잖아?”


김윤이 머쓱하게 웃으며 몸을 기대던 문에서 떨어졌다.


“지도는 좀 팔았고?”

“팔리겠어요? 우리 평가는 잘 알잖아요.”


주은서가 창밖을 슬쩍 바라보았다.

김윤을 욕하던 이들의 시선이 그곳에 박혀있었다.


그녀는 불쾌하다는 듯이 창문에 다가가 커튼을 거칠게 쳤다.


“저 사람들은 왜 우리를 바깥으로 내몰지 못해 안달인 걸까요. 우리가 나가서 죽기라도 바라는 건가?”

“글쎄······.”


김윤이 또다시 미소를 지으며 주은서를 바라보았다.


“하아······.”


주은서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범한 지도는 안 팔렸지만, 손님은 있어요.”


그리고는 접객실을 가리켰다.


“어느 쪽이야?”

“특수 지도 제작 의뢰에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공간 지도 제작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완결 공지 안내 24.08.07 48 0 -
195 에필로그 - 5년 사이 +1 24.08.07 44 1 12쪽
194 창조 24.08.02 31 0 12쪽
193 파멸 (2) 24.07.31 31 0 11쪽
192 파멸 (1) 24.07.30 31 0 11쪽
191 잉그 (13) 24.07.26 33 0 12쪽
190 잉그 (12) 24.07.25 33 0 11쪽
189 잉그 (11) 24.07.23 30 0 11쪽
188 잉그 (10) 24.07.19 33 0 11쪽
187 잉그 (9) 24.07.17 32 0 11쪽
186 잉그 (8) 24.07.16 35 0 11쪽
185 잉그 (7) 24.07.12 36 0 12쪽
184 잉그 (6) 24.07.11 31 0 12쪽
183 잉그 (5) 24.07.09 32 0 11쪽
182 잉그 (4) 24.07.04 35 0 12쪽
181 잉그 (3) 24.07.02 30 0 11쪽
180 잉그 (2) 24.06.28 35 0 11쪽
179 잉그 (1) 24.06.27 33 0 11쪽
178 창조주 그리고 피조물 (2) 24.06.26 31 0 11쪽
177 창조주 그리고 피조물 (1) 24.06.21 36 0 12쪽
176 길을 새기는 자 (3) 24.06.19 41 0 12쪽
175 길을 새기는 자 (2) 24.06.18 29 0 12쪽
174 길을 새기는 자 (1) 24.06.14 35 0 11쪽
173 길을 지우는 자 (2) 24.06.13 28 0 11쪽
172 길을 지우는 자 (1) 24.06.12 35 0 11쪽
171 길을 잇는 자 (3) 24.06.11 36 0 12쪽
170 길을 잇는 자 (2) 24.06.07 32 0 11쪽
169 길을 잇는 자 (1) 24.06.06 32 0 11쪽
168 길을 비트는 자 (3) 24.06.05 36 0 11쪽
167 길을 비트는 자 (2) 24.06.04 34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