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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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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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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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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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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 스승

DUMMY

[삼국 팔검전]은 물경 삼십편에 달하는 장편 드라마인데다가 사전 제작 드라마다.

여러모로 리스크가 큰 드라마인데 진철은 이런 드라마는 방송권력이 공중파 방송국에서 영상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아니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드라마가 성공하더라도 앞으로 나오는 드라마는 몇 시즌으로 나누어 전 시즌의 흥행을 보고 뒷 시즌 제작을 결정하겠지’


제작자들은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려 하기 때문이다.


사전 제작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은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촬영계획을 효율적으로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한 위치에서 이동 없이 그 배경이 나오는 모든 장면을 찍을 수 있어서 제작비와 시간, 노력을 최소한으로 들일 수 있다.

하지만 효율적인 촬영계획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삼국 팔검전]처럼 수십년 긴 세월을 담아야 하는 드라마의 경우에는 그런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지 못하기도 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결정적으로 배우들이 감정선을 이어가는 게 힘들어진다.

그런 단점을 생각하면 순서대로 촬영을 하는게 좋다.


[삼국 팔검전]은 그 중간을 선택했다.

드라마 안에서 시간의 흐름이 크게 점프를 하는 회차를 끊어서 하나의 드라마처럼 찍도록 촬영 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 대략 다섯편에서 열 편의 대본을 몰아서 네 구간으로 나누어 몰아서 찍도록 촬영계획이 짜여있다.

검지호는 초반에 촬영이 몰려 있다.







진철은, 중학교 때는 연기 동아리에서 취미로 연기를 시작했고, 이후 연기에 빠져 예고 연기과로 진학해 연기를 배웠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스스로 명성종합예술학교의 연기과에 합격한 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연기력이 형편없었다.

대학에 합격한 후 명문이라고 불리는 대학에서 연기를 배우면 뭔가 나아질지 모른다고 기대를 했었지만 소용없었다.

고등학교 때도 열심히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아무리 열심히 커리큘럼을 따라가고 방법론을 배워도 연기력은 요지부동, 형편없는 수준에서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보통사람이라면 나는 연기에 재능이 없다고 포기했을 것이다.

실제 동기들 중 몇은 그렇게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 떠났지만 진철은 보통사람과 생각하는 방식이 달랐다.


진철은 노력의 방향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연기 방식은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고 판단했고 스스로 자신만의 연기 방법론을 깨우쳐야 한다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맞은 것 같다.


‘교수님들이 하라는 대로 했으면 아직도 그저 그런 배우로 남아있었을 거야’


자기만의 방법론을 찾기 위해 진철은 대학에 들어와 중단했던 [슈퍼액터 프로젝트]를 다시 가동했고 거짓말처럼 연기력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진철은 그 때 자신이 나아갈 방향이 이것이라고 확신했다.

이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마음 붙일 곳이 없던 진철은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을 [슈퍼 액터 프로젝트]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학교를 졸업할 때쯤 그래도 끊이지 않을 정도로 배역을 따낼 수 있을 정도의 연기력은 갖추게 되었다.


다른 배우들과는 다른 자기만의 연기 방법론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에게 아무런 바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진철도 보고 배운 배우들이 있다.

우리나라 배우 중에는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안성문 배우이고 또 한 명이 김명우 배우다.

우리나라에 그들보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은 있을 수 있지만 스타일상 진철이 본받을 수 있는 배우는 그 둘이 전부다.


특히 김명우 배우는 진철의 연기인생에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할 수 있다.


김명우 배우는 [내 사랑 내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루게릭 병에 걸린 남자를 연기한 적이 있다.

그 남자는 영화 속에서 시간이 감에 따라 몸이 점점 야위어 가야 했다.

김명우 배우는 그 변화를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촬영 내내 하루에 김밥 반 개씩만 먹으며 연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의 처음 부분에는 건강한 모습이었던 남자가 마지막에 가서는 징그러울 정도로 온 몸의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게 야위어 버렸다.

그저 그 뿐이라면 그냥 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말 수 있다.

진철이 가장 감탄한 부분은 김명우 배우가 촬영 내내 탈진상태로 있었으면서도 시간이 가며 점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과 말이 어눌해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완벽하게 연기해냈다는 점이었다.


‘그건 정말 ‘필라델피아’의 톰 행크스에 비견할만한 명연기였어’


톰 행크스는 영화 ‘필라델피아’에서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남자의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어. 그런데 시나리오와 연출이 연기의 반도 따라가지 못했지. 어느 정도라도 연기력을 따라갔다면 ‘필라델피아’에 버금갈 걸작 영화가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정말 아까웠다.

무술을 익히며 부수적으로 익힌 의학 때문에 사람의 몸에 정통하게 된 진철은 영화 속 김명우 배우를 보면서 그가 어느정도 몸을 혹사했는지 정확하게 파악했다.


‘무사히 회복한 게 다행일 정도로 건강이 망가졌겠지’


목숨을 걸고 연기한 거다.

그런데 그 영화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잊혀갈 범작에 그쳐버렸다.

흥행도 그냥 저냥 했다.

진철은 영화의 감독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배우라는 게 영화와 드라마에서의 비중은 그저 그 정도 밖에 안되는 거야’


연극도, 뮤지컬도, 드라마도, 영화도.

문제는 아무도 없는 오지에서 일인극을 하지 않는 이상 어떤 연기와 관련된 행위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거다.


아무리 명배우라 해도 작품 안에서 일개 배우가 할 수 있는 건 연기를 하는 것뿐이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선택한 작품에 대해서 작품성은 감독과 작가에게, 흥행여부는 하늘에 맡기고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진철은 그 때 확고한 선을 그어 자신의 배우관을 정립했다.


다른 배우와 촬영현장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태도는 그렇게 형성되었다.


그러니 진철의 진정한 스승은 대학의 교수들이 아니고 김명우 배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김명우 배우가 지금 허름한 옷을 입고 고문의자에 앉아 온몸을 비틀고 있다.







화려한 신라의 도성 금성[서라벌]에도 음습하고 누추한 곳은 있는 법.

그중 제일은 아마도 감옥일 것이다.

그 감옥 안.

어떤 남자가 고문의자에 묶여 있다.

그 좌우로 고문관들이 늘어서 있으며 감옥은 횃불 몇 개와 인두 같은 고문도구를 달구기 위한 화로불만이 겨우 밝히고 있다.

딱 봐도 불길한 느낌을 물씬 전해주는 그 공간.

입에 천으로 만든 재갈을 물고 있는 어떤 남자가 고통에 온몸을 비틀며 몸을 부르르 떨고 있다.


남자의 이름은 최승우였다.

나중에 최치원, 최헌위와 함께 신라 삼최로 불리게 되는 그는 당에 건너가 공부한지 삼년만에 빈공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다 신라로 돌아왔다.

최씨 자체가 원래 왕족을 제외하면 신라 최고의 신분인 육두품 귀족이다.

거기다 문장으로 전국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최승우.

그런 남자가 지금 고문을 받고 있는 중이다.

낙형[烙刑]


불에 달군 꼬챙이로 생살을 지지는 형벌.

어떤 남자가 최승우의 허벅지 안쪽 가장 부드러운 부분에 빨갛게 달군 얇은 꼬챙이르 가져다 대고 있었다.


[치지지지직]


살갖을 태우는 그 고통은 의지를 거슬러 그의 폐를 몸과는 별개의 생명체인 것 마냥 격렬하게 확장과 수축을 거듭하도록 만들었다.


“으으으으윽~~~!”


하지만 혀를 깨물지 못하도록 입에 물린 재갈은 그 비명도 마음껏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끄~으~끅! 끄~으~끅! 끄~으~끅!”


최승우는 낙형을 당해 온몸의 근육을 배배 꼬며 꿈틀거리다가 어느 순간 축 늘어졌다.

하지만 입에서는 여전히 작은 신음이 끊이지 않았다.


“끄~끅! 끄~끅! 끄~으~끅!”


검지호는 몸을 낮추고 거의 사경을 헤매는 최승우에게 말했다.


“말해봐. 어떤 모양이 좋을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자국인데 내 마음대로 해서야 되겠어? 원하는 모양으로 지져 줄게”


그러더니 눈을 반짝였다.


“맞아. 그러면 문신과는 또 다른 멋이 있겠다. 재미 있겠어”


자기가 생각에 바로 빠져버린 검지호는 아직 몸을 잘게 떨고 있는 최승우의 숙여진 머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그림이 좋을까? 아니 좋은 글귀가 좋겠다. 너 문장으로 유명하잖아. 말해봐. 네가 원하는 걸로 새겨 줄게”


검지호는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최승우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신음소리만 냈다.


“끄으으윽~~!”

“말해보라니까? 왜 그러고 있어? 야!”

[짝, 짝, 짝, 짝]


검지호는 짜증이 난 것처럼 최승우의 뺨을 세게 때렸다.


“무슨 글이 좋겠냐고”


언성도 높아진다.


“그러다가 죽겠어요. 주모자를 찾아야 합니다”


누군가 등 뒤에서 그렇게 말하자 검지호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중얼거렸다.


“어, 맞아. 반란을 계획한 놈을 찾는 중이었지?”

“지금부터는 제가 얘기해 보겠습니다”


검지호는 이 장면에서 풍월주 김신을 꺾은 강한 무사의 모습과는 또 다른 면모를 드러냈다.

약육강식의 세상, 승부에 진 놈은 이긴 쪽이 마음대로 처분해도 아무런 잘못이 아니라 생각하는 모습.

남이 고통은 전혀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이 중요하고 그것에 정직한 모습.

그 모든 것이 검지호의 연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감독과 작가의 의도대로.


그 때 진철은 김명우의 연기를 보며 그 열정에 새삼 감탄했다.

감독이 아무리 미쳤어도 고문 장면에서 진짜로 배우를 고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금 김명우 배우는 동공이 풀리고 손끝 발끝까지 파르르 떨리는 게 정말 곧 숨이 넘어 갈 것 같아 보인다.

눈가 근육도 파르르 떨린다.

기를 터득한 후 진철도 할 수 있는 연기다.

하지만 김명우 배우는 오로지 연기를 위한 연습 하나만으로 얼굴 근육을 자유자재로 쓰고 있는 거다.

그 리얼한 연기에 진철은 감탄했다.







카메라가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고 현장 모니터가 나온 이 후 감독들은 예전 감독처럼 카메라 옆에서 현장을 주시하고 있지 않는다.

어차피 영상의 세계는 파인더로 들여다보는 세계,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모니터 앞에 들러 붙어있다.

지하감옥 세트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현장모니터를 통해 연기를 보던 신경우 피디는 중얼거렸다.


“카메라를 통해 보니까 더 찰떡이네. 세가지 인격이 있는 건가?”


그 옆에 있던 카메라 감독이 말했다.


“뭐라는 거야?”

“뭐긴. 저 친구 연기하는 걸 말하는 거지”


신경우 피디가 모니터 속 진철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진철? 확실히 순간순간 달라지기는 하더라”

“마치 무사와 신경질쟁이, 장난 좋아하는 어린애. 이렇게 세 인격이 저 친구 몸 속에서 순간순간 차지하는 퍼센티지가 바뀌는 것 같아”


신피디는 그 인상적인 연기에 만족했다.

검지호의 분량은 전체 러닝타임에서는 몇 프로 차지하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드라마가 플랫폼에 업로드 되었을 때 시청자가 받을 임팩트는 절대 작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것보다 저 생동감 넘치는 대사와 움직임이 더 좋은데? 파인더로 보면 맨눈으로 보는 것 보다 훨씬 더 좋아”


촬영감독은 피디와 다른 쪽으로 좋아했으나 둘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도 있다.


“검지호 최후의 장면은 어떤 연기를 펼칠지 기대가 되네”

“촬영은 한참 남았는데 나도 기대가 돼. 그걸 저 친구가 그걸 어떻게 연기할 지”


신경우 피디가 생각하기에 이 드라마에서 검지호가 자기 내면의 진짜 모습을 내보이는 장면이 세 곳 있다.

처음 찍었던 김신을 꺾은 무사의 모습, 지금 찍은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오가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이 검지호가 죽을 때의 모습이다.

앞의 두 번의 연기는 이미 소름끼치게 인상적인 연기를 해냈고 그건 시청자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기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신피디가 가장 기대한 건 아직 찍지 않은 마지막 장면이다.


“뭐, 그 마지막 장면도 히트 칠 거야. 능력있는 악당이 장렬하게 죽는 장면은 언제나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신경우 피디가 중얼거렸다.

사실 히트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명장면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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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024 지옥행 워터슬라이드 +5 21.11.09 1,885 44 11쪽
23 023 150개의 인물사진 +3 21.11.08 1,885 41 10쪽
22 022 마음이 착해 +2 21.11.07 1,886 41 11쪽
21 021 MAPA +1 21.11.06 1,929 44 10쪽
20 020 나도 미남 +2 21.11.05 1,957 45 11쪽
19 019 요사함이 있어 +4 21.11.04 1,912 45 10쪽
18 018 오디션 +1 21.11.03 1,935 42 11쪽
17 017 그는 배우다 +1 21.11.02 2,010 41 9쪽
16 016 눈에서 빛이나 +2 21.11.01 2,054 45 10쪽
15 015 삼국 팔검전 +6 21.10.31 2,130 54 10쪽
14 014 재현하다 +7 21.10.30 2,150 42 11쪽
13 013 300 +1 21.10.29 2,178 42 11쪽
12 012 진상들과 변호사의 의기투합 21.10.28 2,166 40 9쪽
11 011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얼굴 +1 21.10.27 2,275 45 11쪽
10 010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화가에게 +2 21.10.26 2,393 46 12쪽
9 009 망나니까지는 아닌 진상들 21.10.25 2,431 51 9쪽
8 008 미친놈들 중 제일 미친놈 +3 21.10.24 2,554 55 10쪽
7 007 일기[一技]로 관통[貫通]하다 +3 21.10.23 2,675 49 11쪽
6 006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2 21.10.22 2,761 4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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