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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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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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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45,036

작성
21.11.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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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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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19 요사함이 있어

DUMMY

“준비됐습니다”


진철이 검지호의 목소리로 말하자 프로필을 보는 척하던 김영민 작가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 옆에 앉아있던 신경우 피디 역시 숙였던 고개를 들어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를 보았다.

화면에는 조금 전 보았던 강진철 배우와는 다른 느낌을 주는 사람이 서 있었다.

평범하고 인상 좋은 청년이 어느새 독기 바싹 올라 있는 깡패가 되어 있다.


‘그냥 서 있는 걸로 이런 느낌을 준다고?’


오디션을 형식적으로 끝내고 밀려 있는 일을 할 생각 밖에 없던 신경우 피디는 약간 흥미가 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예정에도 없던 질문을 했다.


“강진철씨, 분위기가 다른데 지금 뭔가 한 건가요?”

“네. 준비해 온 대로 검지호를 연기 중입니다”


돌아오는 소리가 조금 전 발성이 좋던 그 목소리와는 분명히 다르다.

톤이 조금 높고 음색 역시 미묘하게 다르다.

결정적으로 니들이 원하는 걸 보여주고 있는데 왜 그런 질문을 하냐 따지는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


“이 목소리는 강진철씨가 생각하는 검지호의 목소리인가요?”

“네”


신피디는 그가 그리는 검지호에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 얼굴표정은 어떻게 된 거죠?”

“저는 지금 검지호로 서 있는 중입니다. 이 얼굴은 검지호가 만약 오디션을 본다면 할 것 같은 표정입니다”


신경우 피디와 김영민 작가가 모니터 속의 진철의 얼굴을 자세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우리가 상상한 얼굴과는 좀 달라요”

“그래도 느낌은 괜찮네요. 뭔가 안하무인일 것 같은 눈빛이예요”


김영민 작가가 한 말에 자기 의견을 말 한 신피디가 준비했던 오디션 공식 질문을 했다.


“그럼, 제가 먼저 질문을 하겠습니다. 강진철씨, 대본 1, 2권 읽었죠? 검지호는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죠?”


예상했던 질문이다.


“저는 검지호가 현실을 살고 있는 관심종자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대본 속 다른 인물들은 다 커다란 이상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데 검지호는 다릅니다. 노골적으로 현실적인 욕망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살고 있는 캐릭터죠. 그리고, 화장이나 장신구를 과하게 하고 다닌다는 점에서 관심종자라고 생각했죠”

“그렇군요”


신피디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이번에는 대본에서 검지호라는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은 장면의 연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진철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짧은 대사를 했다.


“그니까! 내가 그랬잖아요. 몇 번을 얘기해요!”


검지호의 첫 등장, 첫 대사다.


“너무 평이하지 않나요?”


신피디의 말에 진철이 대답했다.


“저는 검지호가 다른 인물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표출하는 좋은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요?”

“이 [삼국 팔검전]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들의 대사는 거의 사극풍인데 반해 검지호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작가님들이 일부러 그렇게 쓴 것 같은데 저는 그 첫 대사가 검지호의 경박한 성격을 잘 보여주었다 생각합니다”

“호오~! 다음에는 제가 질문을 하겠습니다”


자기가 상당히 고심해서 쓴 그 대사를 잘 이해하고 있는 진철에게 박상민 작가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다.


“검지호가 화장을 하고 장신구를 달고 다니는 걸 그가 게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진철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검지호가 화장을 하는 건 요즘 사람들이 문신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의 하나라고요”

“그렇군요. 그럼 그런 외적인 것 말고 강진철씨가 생각하는 검지호의 심리 중 특이한 점은 어떤 게 있죠?”

“일종의 구경꾼 내지는 방관자의 경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박상민 작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흥미 있다는 표정을 했다.


“그런 건 관심종자라는 것과는 정반대의 개념 아닌가요?”

“이상이나 충성 같은 것들은 검지호에게는 한 푼의 가치도 없는데 그런 돌멩이보다 못한 걸 가지고 목숨을 거네 마네 하는 건 그에게 재미있는 구경거리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자신의 부귀영화와 관계없다면 어떤 난리가 나도 한 발 물러나 구경이나 하겠죠”


말을 하던 진철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 올랐는지 놀라는 표정과 함께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지금 목소리는 강진철씨 목소린데요?”


박상민 작가가 매우 흥미로운 듯 물었다.


“왜 갑자기?”

“말을 하다보니 갑자기 검지호와 저는 닮은 점이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놀랐습니다”

“어떤 점이 닮았죠?”

“자기 관심거리에만 집중을 하고 그 외 다른 것에는 방관을 하는 게 저와 아주 닮았습니다”

“재미있네요. 검지호가 닮았다고 인정하기 그리 쉬운 인물은 아닐텐데”


검지호는 아주 악랄한 사람이다.


“제가 편견은 없는 사람이라”


다음 질문 차례인 김영민 작가가 말했다.


“강진철 배우님. 혹시 메이크업을 해 봐도 될까요?”

“네?”

“여기 박작가와 내가 생각한 검지호에 비하면 강진철씨는 너무 잘 생겼어요. 그 얼굴에 화장이 얼마나 어울릴지도 확인을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진철은 방안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꺼림칙한 느낌이 이미 완전히 사라졌다는 걸 느꼈다.


‘이제 진짜 오디션이 시작된 건가?’


“물론 괜찮습니다”

“좀 모자라더라도 제 화장품으로, 그냥 어울리는지 확인만 하면 되니까”


김영민 작가가 자기 핸드백을 들어보이며 말하자 신피디가 말했다.


“아니, 좀 본격적으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럼 다시 날을 잡아요?”

“우리가 오후에 회의를 어떤 사람들과 하기로 했죠?”

“아!”


그들은 오후에 메이크업과 의상관련 업체들과 회의를 하기로 했었다.

신피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왕 하는 것 메이크업뿐 아니라 수염도 붙이고 의상까지 입혀보는 게 어때요?”







협력팀들은 메이크업과 의상에 대한 협의를 하러 온 사람들이다.

메이크업 팀이 진철에게 달라붙어 천지호에게 예정된 분장을 했고 의상팀은 만들어 온 샘플 의상의 크기를 약간 조정해서 입혔다.

마침내 진철이 다시 오디션장에 서자 김영민 작가가 말했다.


“역시 검지호라고 하기에는 너무 잘 생겼어요”


신피디도 말했다.


“우리가 상상한 검지호는 남자가 과한 화장을 한 것 때문에 약간 괴기한 면이 있어야 하는데 강진철씨는 화장이 너무 자연스럽게 잘 어울려, 그런데 수염도 생각보다 잘 어울리네. 분장하기 전에도 생각했는데 저런 느낌을 뭐라고 하더라? 단어가 생각이 안 나네요”


잘 들어보면 배역과 안 어울린다는 말인데 왠지 부정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제가 그리 잘 생긴 건 아닌데요”


진철의 메이크업을 해 준 팀의 한 사람이 말했다.


“아뇨. 잘 생겼어요. 보니까 맨 얼굴은 카메라가 잘 받지 않는데, 메이크업을 하니까 카메라가 너무 잘 받아요”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강진철씨도 검지호에 잘 어울리기는 해. 우리가 생각했던 기괴함은 아니지만 대신 뭐라고 할까? 그래 요사함이 있어”


김영민 작가가 말을 하자 신피디가 갑자기 크게 말했다.


[딱!]

“맞아. 아까부터 머리속에 돌아다니던 말이 그거야. 요사스러운 분위기”


오디션 합격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진철이 속으로 웃었다.


‘그럼 여기에 그 얼굴을 더하면 어떻게 될까?’


진철은 현재 검지호의 심리층위를 뒤집어쓰기만 한 상태였다.

어쨌든 진철의 의상과 메이크업이 굉장히 작가들과 피디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휴우! 지금 굉장히 여러가지 영감이 떠오르고 있어요”

“그런데 이미 대강이 다 짜여 있는데 지금와서 바꿔도 될까?”


두 작가가 그렇게 얘기하고 있을 때 신피디가 진철에게 말했다.


“강진철씨, 2부에서 검지호가 신라의 풍월주를 죽이고 자기가 삼한제일검이 되었다고 말하는 장면을 연기해 볼 수 있을까요?”

“예”


진철은 연기를 시작했다.

눈이 살짝 커지고 동공에 초점이 나가 허공의 어딘가를 바라보았으며 이마에 핏발이 서 꿈틀거렸다.


“나야. 이제 내가 삼한제일검이야”


마치 어린아이가 살짝 열에 들떠서 횡설수설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갭이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 요사한 모습과 귀로 들리는 천진한 목소리의 부조화가 강렬한 존재감을 선사했다.


“인상적이네”


신피디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빨리 끝내려던 오디션 사정이 거기에 이르자 감독과 작가들의 머리속은 강렬한 갈등으로 혼란스러워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강진철을 쓰려면 설정을 아예 바꿔야 하는데?’


그건 고생길의 시작이다.

그 때 무술감독 홍경표가 말했다.


“세 분 강진철씨에게 더 볼 일이 없으시면 이제 제가 오디션을 봐도 될까요?”

“아! 죄송합니다. 너무 우리 생각만 했네요”

“아닙니다. 어차피 제가 가장 마지막에 질문을 하기로 했는데요”


홍감독이 질문했다.


“강진철 배우님, 프로필에 보면 여러가지 무술을 배운적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스스로의 실력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꽤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객관적인 기준은 없나요?”

“뭐 띠나 단 같은 걸 말하시나요?”

“예”

“그런 건 없습니다. 어디서 배운 게 아니라 다 독학을 한 거라서”

“그 검을 들고 왔다는 건 검술을 준비해 왔다는 거겠죠? 한 번 보여줄 수 있습니까?”

“네”


진철은 가져온 목검을 들었다.


“예도[銳刀]라고 합니다”


진철은 무예도보통지에서 얻은 예도를 펼쳤다.


[부아앙~! 부아앙~! 부아앙~!]


검이 허공을 가를 때 마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고 회오리 바람이 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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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021 MAPA +1 21.11.06 1,929 4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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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9 요사함이 있어 +4 21.11.04 1,913 45 10쪽
18 018 오디션 +1 21.11.03 1,935 42 11쪽
17 017 그는 배우다 +1 21.11.02 2,010 41 9쪽
16 016 눈에서 빛이나 +2 21.11.01 2,054 45 10쪽
15 015 삼국 팔검전 +6 21.10.31 2,130 54 10쪽
14 014 재현하다 +7 21.10.30 2,150 42 11쪽
13 013 300 +1 21.10.29 2,178 42 11쪽
12 012 진상들과 변호사의 의기투합 21.10.28 2,166 40 9쪽
11 011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얼굴 +1 21.10.27 2,275 45 11쪽
10 010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화가에게 +2 21.10.26 2,393 46 12쪽
9 009 망나니까지는 아닌 진상들 21.10.25 2,431 51 9쪽
8 008 미친놈들 중 제일 미친놈 +3 21.10.24 2,555 55 10쪽
7 007 일기[一技]로 관통[貫通]하다 +3 21.10.23 2,675 49 11쪽
6 006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2 21.10.22 2,761 47 9쪽
5 005 캐리어 +2 21.10.21 2,928 60 11쪽
4 004 큰 벌을 받을거야 +4 21.10.20 3,285 56 10쪽
3 003 슈퍼액터 프로젝트 +2 21.10.19 3,735 5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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