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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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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연재수 :
120 회
조회수 :
168,292
추천수 :
3,574
글자수 :
645,036

작성
21.10.24 09:00
조회
2,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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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글자
10쪽

008 미친놈들 중 제일 미친놈

DUMMY

모든 수련을 마치고 컨디션이 최고로 올라왔으니.


“이제 준비가 됐어”


다시 도전을 할 때가 되었다.

혹시 모른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진철은 정신을 가다듬고 숨을 고른 후 눈을 감고 뇌에서 얼굴의 신경과 근육으로 강력한 신호를 내보낸다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자기암시를 주어도 촬영장에서 느꼈던 그런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기[氣]가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뜨고 거울을 보았다.


“에휴!”


여전히 평범한 진철의 얼굴이 거기 있다.

기[氣]를 체득하기는 했어도 아직은 역용술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럼 그 때는 어떻게 한 거지?”


진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다른 조건이 있는 건가? 혹시 뭐, 현장의 긴장감이나 카메라로 진짜 찍고 있다는 그런 정신적인 트리거가 필요한 건가? 그런게 생긴 거라면 골치 아픈데?”


생각을 거듭해도 안 되는 건 안되는건데 거기 매달려 심력을 낭비할 필요없다.


“넘어가자. 다른 신경 쓸 것도 많아”


입버릇 같은 말을 하고 이번에는 카메라를 켜 방향을 고정하고 모니터에 화면이 잘 나오나 확인했다.

다른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눈을 감고 [캐리어] 촬영현장에서 했던 병수의 연기를 준비했다.

머리속으로 [옴~!]이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숨이 평탄하게 골라지자 진철은 눈을 떠 카메라 화면이 비치는 모니터를 보았다.


“역시”


그곳에는 진철이 아닌 병수가 서 있다.

[체인지맨] 때처럼 생김새 자체가 변한 건 아닌데 분위기가 완전히 변해버렸다.


‘분장도 안 했는데’


껄렁하면서 세상 모든 것에 불만인 병수의 성격이 몸의 자세와 얼굴에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물론 이건 직접 병수 캐릭터를 분석하고 개성을 하나하나 부여해 연기한 진철이라 더 잘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야. 그래도 이 정도면 감독들이나 파인더를 통해 배우들을 보는 촬영감독들은 알아챌 수도 있어’


진철은 그 상태에서 병수역할을 쭉 연기하기 시작했고 다 끝난 후엔 녹화영상을 돌려보며 검토했다.


“아주 미세한 딜레이가 있던 게 없어졌어”


진철은 연기를 하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준비한다.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연습을 한다고 해도 그동안은 그 준비한 것을 한순간에 다 펼쳐내기에 능력이 부족했다.

컴퓨터로 치면 한 번에 끌어올 수 있는 메모리 용량이 딸렸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연기에 미세한 딜레이가 생겼고 어딘지 콕 집어서 얘기는 못해도 어색한 부분이 있었던 거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부분이 없다.


그리고, 뜻하지 않았던 수확이 또 하나 있다.

숨 쉬는 것까지 계산해서 연기하는 진철에게 단점을 꼽자면 개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연기 스타일 상 캐릭터의 개성은 그의 상상력에 의해 좌우되고 그 상상력은 맡은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달려 있는데 보통 사람과 여러모로 생각하는 방향이 다른 진철은 그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니터에서 보이는 연기에는 움직임에도 발성에도 얼굴표정에서도 힘과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

나름 내세울 수 있는 개성이 생긴 것이다.


“아직 역용술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는 없어도 당장은 이 정도로도 훌륭하지”


진철이 거울을 보며 웃었다.

다른 배우들이 보기에는 미약한 한걸음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위대한 한걸음이다.


‘이렇게 하나씩 개성과 연기력을 키워가다 보면 나중에는 정말 세상 모든 배역을 완성형으로 연기할 수 있는 [슈퍼액터]가 될 수 있을지 몰라’








어떤 사람들은 진철을 보고 ‘어?’ 하며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데 그 어딘가가 생각은 나지 않는다는 그 표정을 하고는 한다.

바로 지금 그가 탄 택시의 기사님처럼.

이럴 때 굳이 ‘나 이런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는 건 참 없어 보이는 일이다.

진철은 기사님을 향해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를 하고 행선지를 말한 후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리에 평범한 남자의 얼굴이 비친다.

친구 유진이의 말에 의하면 적당히 큰 키에 적당한 체격, 적당한 얼굴을 한 진철은 멀리서 보면 미남으로, 가까워지면 훈남으로, 근처에서 보면 흔남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나마 이목구비는 뚜렷해서 카메라에는 훈남으로 잡히는 게 다행이지’


그 덕에 요즘처럼 잘 생기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들이 널려 있는 시대에도 그럭저럭 일이 끊기지 않고 있다.

얼굴 생각을 하니 그의 대학동기들 얼굴이 주르륵 눈 앞을 지나간다.


‘실기를 보러 가니까 잘 생기고 예쁜 녀석들이 복도 한가득 있었지’


나중에 알게 된 일인데 2013년도 명성예술종합학교의 연기과에는 유난히 미남, 미녀들이 많이 지원했다고 한다.


‘잘생기고 예쁘면 연기를 못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다들 연기도 잘했지. 그리고, 그 중 합격한 녀석들은 정말 미친듯이 연기를 잘하는 녀석들뿐이었어. 나를 빼면’


스스로 생각하기에 진철 자신은 떨어진 애들에게도 비빌 장점이 하나도 없었다.

사실 진철은 지원할 때만 하더라도 천재들만 다닌다는 명성예술종합학교에 자기가 붙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연극반에서도 연기학원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는데.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연기선생님들은 누구나 진철에게 연기의 재능이 하나도 없다, 더 늦기 전에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했다.

하지만 고집불통 진철은 연기를 하고 싶었다.


‘재능이 없는 나라도 우리나라 최고의 연기과가 있는 대학에 가면 혹시 연기를 잘하게 될지 몰라’


그렇게 생각했다.

몇 번 재수를 하다보면 어떻게든 명성예술종합대학에 들어갈 수준은 될지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2013년에는 그렇게 경험이라도 쌓으려 지원 한 건데 덜컥 붙어 버렸다.

주변 사람들도 다 놀랐지만 가장 놀란 건 진철 본인이었다.


‘교수님들 중 딱 한 분이 나를 강력하게 밀었다고 했지’


비리가 있다고 오해받기 딱 좋은 경우였다.

실제로 그런 오해를 했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교수님이 진철의 어떤 점을 보고 합격시켜줬는지는 모르지만 단연코 진철은 그 교수님 얼굴도 모른다.

그의 집이 명성예술대학교 교수에게 로비를 할 정도로 잘 사는 것도 아니었고.

문제는 그 교수님이 진철을 뽑고 나서 바로 학교를 그만뒀다는 거다.


‘남은 교수님들은 다 나를 싫어하는 분들이었고’


사실 싫어할 이유가 있기는 했다.

진철은 연기를 못했으니까.

명성예술종합대학교, 줄여서 명예종이라고 많이 불리는 이 대학의 연기과는 업계에서 천재들만 붙는다는 소리를 듣는 명문이다.

그 명성에 걸맞게 학사과정도 혹독하기 그지없다.

2013년 입학한 스무명의 학생 중 무사히 졸업한 것은 열 명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졸업생 남녀 동기들은 현재 연극에서, 뮤지컬에서,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대부분 이름을 날리고 있다.

학교 다니는 내내 평가는 밑바닥을 기었지만 어쨌든 진철도 졸업을 하기는 했다.


‘그게 문제는 아닌데’


동기들의 출세를 시기하는 건 아니지만 좀 불편한 점은 있다.


‘요즘은 명성예술종합학교 연기과 13학번을 전설의 기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고’


13학번이 졸업한지 이제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하나둘씩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그들의 출신 학교와 그 동기들의 면면이 화제가 되는 경우가 점점 늘었다


‘전설들 속에 전설이 아닌 내가 끼어 있다는 게 문제야’


유명해지는 것도 관심을 받는 것도 좋은데 전설들의 쭈꾸미 같은 친구로 관심을 받는 건 사양이다.








“기다려 같이 들어가게”

“아! 왜 꼭 같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냥 기다리라면 기다려. 나 금방 도착하니까”


왜인지 몰라도 수희는 진형의 집에 꼭 자기와 같이 들어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참, 옛날부터 이상한 부분에서 이상한 애라니까?”


진철은 전화를 끊으며 중얼거렸다.

어쨌든 진철은 수희를 기다렸고, 이윽고 수희가 도착해 나란히 진형의 빌라에 들어가자 동기 중 하나인 송진우가 가장 먼저 인사를 해 왔다.


“오! 히사시부리”

“안녕?”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 깁스를 한 다리를 쿠션 위에 올려 놓은 김진형도 인사를 했고 그 옆에서 뭔가를 하던 정채신도 허리를 쭉 펴고 일어서며 인사했다.


“왔냐! 그런데 너희는 또 붙어 다니냐?”


송진우, 김진형, 정채신 세 사람은 스마트하고 터프하고 날카로운 각기 다른 스타일의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 같은 미남들이었다.


“남이사”


수희가 까칠하게 대답했다.


“하기는, 자기가 좋다는데 내가 뭐라고 할 건 아니지. 너희도 한마디씩 적어”


정채신이 손에 든 매직을 휙 던지며 말했다.


진철과 수희는 진형의 깁스에 각기 하고싶은 말을 적었다.

수희는 일정이 있다고 금방 떠났고 – 그럴거면 왜 꼭 같이 들어와야 했냐고 진철은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 남은 네 친구는 거실 소파에 앉아 맥주를 홀짝거리며 이런저런 밀린 얘기들을 했다.

채신이 말했다.


“이게 얼마만이지? 왜 이렇게 [미친놈들]이 모이기가 쉽지가 않냐? 다들 일 없을 때는 백수면서”


명예종 연기과 13학번이 지금은 전설의 기수니 뭐니 하지만 학교를 다닐 때 까지만 해도 이들을 아는 사람들은 [미친놈들]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불리게 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13학번 대부분이 정말 연기에 미친놈들이기 때문이다.

진우도 한마디 한다.


“원래 백수가 과로사 하는 법이야. 진형이 다친 건 안됐지만 그 바람에 너희 얼굴 보게 된 건 좋네”

“그래 나도 너희들 보게 된 건 좋은데 그 [미친놈들] 소리는 그만하면 안 되겠냐? 내가 졸업해서까지 그 소리 들어야 해? 애초에 너희들이야 진짜 미친놈들이니까 그런 말 듣는 걸 좋아한다 해도 나는 왜 싸잡아서 그렇게 불려야 하는 거야?”


진철이 투덜대자 세 친구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그를 보았고 다리 부러진 것 때문에 술을 못 마셔 콜라를 홀짝이다 짜증이 난 진형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야. 네 놈이 우리 미친놈들 중 제일 미친놈이니까. 미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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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024 지옥행 워터슬라이드 +5 21.11.09 1,885 44 11쪽
23 023 150개의 인물사진 +3 21.11.08 1,885 41 10쪽
22 022 마음이 착해 +2 21.11.07 1,886 4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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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019 요사함이 있어 +4 21.11.04 1,912 45 10쪽
18 018 오디션 +1 21.11.03 1,935 42 11쪽
17 017 그는 배우다 +1 21.11.02 2,010 41 9쪽
16 016 눈에서 빛이나 +2 21.11.01 2,054 45 10쪽
15 015 삼국 팔검전 +6 21.10.31 2,130 54 10쪽
14 014 재현하다 +7 21.10.30 2,150 4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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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12 진상들과 변호사의 의기투합 21.10.28 2,166 40 9쪽
11 011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얼굴 +1 21.10.27 2,275 45 11쪽
10 010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화가에게 +2 21.10.26 2,393 46 12쪽
9 009 망나니까지는 아닌 진상들 21.10.25 2,431 51 9쪽
» 008 미친놈들 중 제일 미친놈 +3 21.10.24 2,555 55 10쪽
7 007 일기[一技]로 관통[貫通]하다 +3 21.10.23 2,675 49 11쪽
6 006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2 21.10.22 2,761 47 9쪽
5 005 캐리어 +2 21.10.21 2,928 60 11쪽
4 004 큰 벌을 받을거야 +4 21.10.20 3,285 56 10쪽
3 003 슈퍼액터 프로젝트 +2 21.10.19 3,735 56 10쪽
2 002 체인지맨 +3 21.10.18 5,001 6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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