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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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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연재수 :
120 회
조회수 :
168,270
추천수 :
3,574
글자수 :
645,036

작성
21.10.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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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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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13 300

DUMMY

백실장은 찜닭과 술과 다른 몇 가지 안주를 양손 무겁게 사 들고 왔다.


“원룸을 굉장히 심플하게 꾸며 놓으셨네요?”


매니저답게 말을 듣기 좋게 한다.


“심플한 것 보다는 아무것도 안 꾸며 놓은 것에 더 가깝죠. 거의 제가 이사 왔을 때 그대로니까요”


동기들이 말한대로 진철은 집도 차도 옷도 관심이 없다.


“그런데 저게 제게 맞을 것 같다는 그 대본인가요?”


진철이 백실장이 들고 온 봉투 중 하나를 보며 말했다.


“네. 제목은 [삼국 팔검전]입니다”

“역사극인가요?”

“네. 후삼국 말에서 고려 건국 때까지 각국의 무사들이 그들의 무예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대본이 꽤 괜찮습니다”

“백실장님의 작품 보는 안목은 업계에서 유명하죠. 지금까지 제게 추천해 준 것도 다 좋은 작품이고 좋은 배역이었고요”


백실장의 평판에 대한 건 동기들과 얘기하다보니 알게 되었다.


“하하! 제가 촉이 좋다는 얘기는 좀 듣습니다”

“제게 추천해 주실 배역은 어떤 건가요?”


진철이 책을 들고 등장인물 설명을 훑어보며 말했다.


“추천할 배역은 두 개입니다”

“두 개요?”

“사실 하나이기도 하죠. 극 중 서로 삼한제일검[三韓第一劍]이라고 주장하는 검천호와 검지호. 쌍둥이의 일인이역[一人二役]입니다”

“아!”


진철은 백실장의 말 뜻을 알아들었다.


“강배우님이 전에 말했던 게 진실이라면 이 배역만큼 딱 맞는 역은 당분간 없을 겁니다”

“그렇군요”


당연히 그 뒤에 이어질 질문이 있는데 백실장이 그를 쳐다보기만 하자 진철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럼 이번에는 제가 자세한 설명을 해야 하겠군요”

“그러면 감사하겠습니다”


진철은 그가 배우를 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노력과 근래에 들어 거둔 성과, 그리고 김학철에게 제의받은 내용까지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모두 이야기했다.

[슈퍼액터 프로젝트]를 말하는 부분에서는 ‘피식’이라도 웃을만도 한데 백실장은 진철의 말을 한 번도 끊지 않고 끝까지 신중하게 들어줬다.

설명이 끝난 후 한참 뭔가 생각하던 백실장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강배우님이 없는 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한 말은 잘 믿기지 않네요”


얼굴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걸 말하는 거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제대로 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못 믿는 게 당연하다.

요즘 시대에 기[氣]라니, 역용술[易容術]이라니.


“그런데 지금 당장은 그 미남으로 변신하는 걸 재현할 수 없다고요?”


진철은 그렇게 말하는 백실장의 시선이 한쪽 벽을 덮고 있는 흰 천을 보고 있는 걸 눈치챘다.


“창문도 아닌데 좀 이상하죠?”

“그렇기는 하네요. 위치를 보면 그림이나 사진, 아니면 거울을 달아 둬야 할 곳 같은데요? 혹시 저기 걸려 있는 게 그 화가 선배가 그려주었다는 그 그림인가요?”


매니저답게 눈치는 정말 빠른 사람이다.


“맞습니다”


진철이 벽에 다가가 천을 걷어 올리자 그 곳에는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백실장은 진철과 거의 같은 크기의 미남을 한참 마주보고 있었다.


“이 그림을 보니 강배우님이 한 말이 좀 믿어지네요”


그리고 진철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제가 이 연예계 바닥에 입문한 후 정말 여러가지 이상한 일을 봤다고 자부하지만 오늘 말씀하신 건 그 중 제일입니다. 강배우님이 저 얼굴로 변신하는 모습을 제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곧 볼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방금 저 얼굴을 다시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지금은 그렇죠. 원래 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수련하면서 천천히 재도전 할 생각이었는데. 급한 사정이 생겼습니다”

“어떤 사정이죠?”

“백실장님도 아시죠? 제 형과 형 친구들이 전에 사기를 당했다는 거요. 그 형들이 또 사기를 당했어요. 그 사건을 처리해 달라고 다시 백변호사님에게 의뢰했습니다. 그래서 돈이 필요해요. K&J는 수임료가 정말 끔찍하게 비싸서요”


백실장은 뭔가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까 전화로 제가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었죠?”

“아! 네. 분명히 들었는데 지금까지 제 얘기만 하고 있었네요. 어떤 말씀이죠?”

“이번에 제가 회사를 나가게 됐습니다”


백실장이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유능한 직원이라고 알고 있던 진철에게는 참 뜻 밖의 말이었다.


“그럼 어디 더 좋은 회사로 이직을 하시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강배우님 얼마 전 우리 사장님 건강이 나빠져서 일선에서 물러나 공기좋은 곳으로 요양을 가셨다는 건 아시죠?”


진철은 눈을 멀뚱멀뚱 떴다.


“아뇨. 모르는데요?”


회사가 떠들썩했으니 모르기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진철에 대해 잘 아는 백실장은 그러려니 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 사장님 아들인 김병세 부사장 중심으로 회사가 돌아가게 되었죠. 그런데 문제는 백충성이사님과 부사장이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겁니다”


진철은 백이사가 누군지도 몰랐으나 일단 백실장의 말을 계속 들었다.


“부사장과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백이사님은 AAA를 나가 자기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백이사님을 따라가기로 했죠”

“그렇군요? 그런데 그 얘기를 저에게 한다는 건?”

“네. 강배우님에게 이적을 제안하는 겁니다”


진철은 머리속을 정리한 후 말했다.


“그런데 그 백충성이사님이라는 분과 실장님 성씨가 같은 건 우연인가요?”


백실장이 ‘빙긋’ 웃는다.


“제 아버님이십니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AAA라는 대형기획사를 떠나 신생 회사로 옮겨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설마 회사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하나요?”

“네. 맞습니다”

“왜죠? 제가 회사에 돈을 못 벌어 준 것도 아닌데”


큰 돈을 벌어주지는 못했어도.


“부사장은 자기 아버지인 사장님과도 그리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이 기회에 회사에서 사장님의 흔적을 지우고 자기 사람들을 심어 놓으려 하고 있는 중이죠”


진철이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래도 그 큰 회사의 부사장쯤 되는 사람이 나에 대해 그렇게 신경을 쓸까요?”

“부사장은 몰라도 그 옆에서 충성경쟁을 하는 인간들은 신경을 쓰겠죠”

“아하!”


이 년 전 매니지먼트 계약을 할 때 AAA의 사장이 직접 진철과 계약을 맺었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그건 아주 이례적인 경우라는 것과 사장이 자기에게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즉, 진철은 사장파로 분류가 되고 있다는 거다.

거기다 회사에서 별다른 비중이 없으니 쳐내고 자기가 사장파 중 하나를 쳐냈다고 부사장에게 어필하기도 좋다.


“그렇군요. 제가 이적해야 하는 이유는 알았어요. 그래도 신생 회사로 갈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오라는 곳은 아직 없어도 가려면 갈 곳은 꽤 된다.


“새 엔터테인먼트 회사, 아! 이름은 쓰리헌드레드 엔터라고 지었습니다. 그 회사의 사장을 맡으실 제 아버님은 AAA엔터의 창립멤버로 상당히 많은 주식을 가지고 계셨죠. 회사가 거대해진 만큼 그 금액은 상당합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신생 답지 않게 자금력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실무를 담당할 저 역시 어디가서 실력 없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아닙니다”

“네. 실장님 실력은 누구나 인정하더군요”

“그리고, 강배우님. 돈 필요하다고 하셨죠? 저희 쓰리헌드레드 엔터로 이적을 하시면 소정의 계약금을 드리겠습니다”


백실장은 현재 진철의 이름 값으론 절대로 받을 수 없는 금액을 제안했다.


진철은 며칠 시간을 달라 했고 백실장 역시 얼마든지 고민하고 선택하라 말했다.

하지만 진철은 속으로 새로 생긴다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쪽으로 크게 마음이 기울어 있는 상태였다.

다른 어떤 것 보다는 그 동안 보아왔던 백실장의 능력과 성격 때문이었다.







진철은 바람도 쐴 겸 백실장을 차가 있는 곳까지 배웅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사장님과 실장님 성이 백씨라서 회사 사명을 [쓰리헌드레드 엔터]라고 한 건가요?”


백실장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맞습니다. 괜찮죠? 아버지는 [삼백 엔터]로 정하자고 했는데 제가 우겨서 쓰리헌드레드라고 정했습니다”


백실장님은 유능한 사람이지만 작명에는 센스가 없는 것 같다.


“그럼 쓰리라는 건. 백씨가 세 명이라는 말이겠네요? 백변호사님도 그 회사로 합류하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마지막 백씨는 우리 막둥이를 말합니다”

“아하!”


두 사람이 그렇게 대화를 하며 길을 걸어가는 도중 진철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형들과 백변호사님 목소리가 들리네요”

“네?”

“아직 멀리 있어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같이 술을 마신 것 같은데요?”


예전에는 그 소리들을 듣지 못했을 거리다.

지금까지 잘 인식하지 못했는데 청력을 비롯한 다른 모든 감각도 더 예민해진 것 같다.


“아이고”


백실장이 한 손을 자기 이마에 댔다.


“이 인간. 소주 세 잔이면 만취해서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데”


그건 형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네 사람이 다 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그런데 형들과 백변호사님이 저렇게 죽이 잘 맞을지는 몰랐네요”

“하~!”


백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아뇨. 저한테 죄송할 건 없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저 멀리에서 네 명의 남자가 어깨동무를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비틀비틀 걸어오는 게 보인다.

그런데 진철은 그 때 갑자기 뭔가 바늘 같은 게 뒤통수를 찌르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뭐지? 이 느낌은? 굉장히 불길한데?”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진철이 당황할 때 도로를 따라 검은색 승합차 세대가 달려왔다.


[끼이익]

[끼이익]

[끼이익]


승합차 한 대가 주정뱅이 네 사람의 앞으로 가로막았고 나머지 두 대가 옆에 급정지를 한 후 손에 여러가지 흉악한 무기를 든 남자들이 뛰어내렸다.


“한 놈이 더 있는데요?”

“같이 잡아라. 다치지 않게 조심해. 귀하신 몸들이야”

“네”

“네”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험해!’


위기감에 한 순간 진철의 집중력이 최고점으로 상승하자 따로 운용을 하지 않았는데도 차가운 기운이 정수리에서 뒷머리를 타고 밑으로 내려갔고, 뜨거운 기운이 발바닥에서 위로 올라와 단전에서 앞쪽으로 치달렸다.

눈이 화끈하고 귀가 먹먹하고 온몸이 후끈거린다.


“흡!”


짧게 숨을 들이마신 진철이 발을 박차 순식간에 가장 앞의 승합차에 접근해 발을 내질렀다.


[쾅!]

[끼이익]


큰 승합차가 들썩거리더니 옆으로 돌아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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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26 이제는 질투 안 해 +2 21.11.11 1,803 41 13쪽
25 025 미스테리한 남자 +3 21.11.10 1,846 50 10쪽
24 024 지옥행 워터슬라이드 +5 21.11.09 1,884 44 11쪽
23 023 150개의 인물사진 +3 21.11.08 1,884 41 10쪽
22 022 마음이 착해 +2 21.11.07 1,885 41 11쪽
21 021 MAPA +1 21.11.06 1,928 44 10쪽
20 020 나도 미남 +2 21.11.05 1,956 45 11쪽
19 019 요사함이 있어 +4 21.11.04 1,912 45 10쪽
18 018 오디션 +1 21.11.03 1,934 42 11쪽
17 017 그는 배우다 +1 21.11.02 2,009 41 9쪽
16 016 눈에서 빛이나 +2 21.11.01 2,053 45 10쪽
15 015 삼국 팔검전 +6 21.10.31 2,129 54 10쪽
14 014 재현하다 +7 21.10.30 2,149 42 11쪽
» 013 300 +1 21.10.29 2,178 42 11쪽
12 012 진상들과 변호사의 의기투합 21.10.28 2,166 40 9쪽
11 011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얼굴 +1 21.10.27 2,274 45 11쪽
10 010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화가에게 +2 21.10.26 2,393 46 12쪽
9 009 망나니까지는 아닌 진상들 21.10.25 2,430 51 9쪽
8 008 미친놈들 중 제일 미친놈 +3 21.10.24 2,554 55 10쪽
7 007 일기[一技]로 관통[貫通]하다 +3 21.10.23 2,674 49 11쪽
6 006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2 21.10.22 2,760 47 9쪽
5 005 캐리어 +2 21.10.21 2,928 6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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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03 슈퍼액터 프로젝트 +2 21.10.19 3,734 5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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