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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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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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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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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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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23 150개의 인물사진

DUMMY

“나는 무술연습이 더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이 센터에도 가끔 나와서 오늘처럼 한 번씩 맞춰보는 정도면 충분해요. 남은 기간은 무술이 아닌 연기에 모두 쏟아 부을 생각이예요. 선배도 알잖아요. 나 연기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거”


주리선배가 가자미 눈을 떴다.


“정말? 무술연기도 연기인데 정말로 무술연습은 더 안 한다고? 네가? 강진철이?”

“네! 미안하지만 선배와 같이 무술연습을 할 시간은 없네요”


진철은 딱 잘라 말했다.

주리선배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이지만 그래도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진철은 어찌어찌 그녀가 자기 말을 믿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주리 선배만 만나면 휘둘리는 것 같단 말야’


원하는 게 있으면 굉장히 집요해지는 한주리 선배의 특징이 문득 생각났다.

그래서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는데 마침 그녀의 어깨 너머 저 쪽에서 전병호씨가 홍경표 감독과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기회다’

“선배. 나는 홍감독님과 얘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선배도 바쁜 것 같고 나는 얘기 끝나면 여기서 볼 일은 다 끝나니까 미리 인사할게요”


진철이 막 움직이려는데 한주리가 물어본다.


“아직 AAA에 있는거지? 전화번호는 안 바꿨고?”

“어~, 네? 아뇨. 회사는 바꿨어요. 쓰리헌드레드 엔터라고 신생이예요. 번호는 그대로고”

“알았어. 전화할 게”


진철은 급해 보이지 않도록 되도록 천천히 자리를 떴다.







진철이 자리를 뜨자 천문상과 신세계가 한주리를 향해 다가왔다.


“누나가 뭐라고 했길래 강진철씨가 저렇게 허둥지둥 도망가요?”


천문상이 물었다.


“무슨 도망이야? 그냥 홍감독님과 할 이야기 있다고 가는 건데? 진철이가 사람 피하고 그럴 애는 아니야. 얼마나 착한데”


한주리는 조용조용 대답했다.


“그런데 왜 내 눈에는 꼭 누나를 피해서 도망가는 걸로 보이지?”

“정말 그런 거 아니야”

“그건 그렇고 강진철씨가 우리와 같이 검술연기를 연습하자는 말에는 뭐라고 해요?”


친해지면 굉장히 쾌활하지만 그 때까지는 굉장히 낯을 가리는 두 무사역의 남자들은 진철과 친분이 있는 한주리에게 대신 말해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시간이 없어서 너희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그냥 내 용건만 얘기했어”

“그래서 누나는 도와준데요?”


한주리를 도와주다 보면 자기들도 그 옆에서 친해질 기회를 좀 볼 수 있다.


“대답을 피하던데? 무술 연습은 더 안 할 거라고”

“그럼 거절한 거네요?”


두 남자는 실망했다.

하지만 한주리는 달랐다.


“아니, 거절한 게 아니고 피한 거야. 암묵적인 승낙이지. 진철이가 무술 연습을 안 할리 없으니까”

“누나. 대답을 피하는 건 승낙이 아니고 암묵적인 거절이예요”

“아니라니까. 진철이는 내가 잘 알아. 그건 승낙이야. 계속 부탁하면 들어준다고”


부드럽고 교양있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한주리를 보고 두 남배우는 머리가 ‘띵’해지는 걸 느꼈다.


“몇 번이나 부탁을 해야 들어주는데요?”


신세계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한주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몇 번이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는데? 부탁하는 입장에서 그런 걸 생각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들어줄 때까지 계속 부탁해야지. 그게 성의있는 태도 아닐까?”


남다른 그녀의 정신세계를 접한 천문상과 신세계 두 배우는 입을 딱 벌리고 그녀를 보았다.

그들은 겉으로 보면 얌전해 보이고 말소리와 행동거지 역시 차분해서 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이 누나가 사실은 보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이 누나, 처음 본 날 먼저 다가와서 바로 말 트고 반말했지?’

‘이 누나, 생각보다 더 마이웨이일지 몰라’







“병호감독이 검지호의 무술 스타일을 다시 정립하고 동선을 다시 짰으면 한다는데 혹시 강배우님이 참여를 할 생각은 있나 해서요”


홍감독은 이미 강진철이 거절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시침이 뚝 떼고 그렇게 말했다.


“아! 제가 연기에 필요한 무술 동작들을 금방 배울 수는 있어도 그 동작들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없습니다. 능력도 없는데 참여하면 민폐만 끼칠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거절하는 게 정답 같네요”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홍감독은 순순히 진철의 말을 받아들였지만 진철은 꺼림칙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알겠다는 말이 왠지 포기한다는 말로 들리지 않는다.


‘주리 선배도 그렇고 홍감독도 그렇고 느낌이 좋지 않은데 오늘은 그만 가야겠다. 눈 앞에 안보이면 잊어버리겠지’

“감독님, 제가 알아야 할 건 다 알려 주신 거죠?”

“네. 앞으로는 2주에 한번 나오셔서 오늘처럼 대본에 따라 계속 추가되는 무술장면들을 배우고 우리 스텝들과 합을 맞춰보면 됩니다. 따로 특별한 변경사항이 있을 때는 저희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진철은 홍감독에게 인사를 하고 정수매니저를 찾아 액션센터의 휴게실로 찾아갔다.







“그냥 보내실건가요? 감독님?”

“응? 그럼 잡아서 가둬?”


홍감독의 싱거운 농담에 전병호가 질색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좀 더 설득을 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해서요. 정식으로 액션연출 의뢰를 하는게 어떨까요? 금액도 좀 후하게요”

“아니, 지난번 오디션 때도 그렇고 오늘도 대답하는 품이 그런 건 먹히지 않을 것 같아. 역효과만 나지. 다음에 기회 있을 때 다시 말을 해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주리 배우와 강진철 배우가 아는 사이인가?”

“대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요?”

“그래?”


홍감독이 한주리에게 다가가 뭔가를 물어보자 한주리가 대답했다.


“그럼요. 진철이가 겉으로 보기에는 좀 무뚝뚝하고 차가워 보여도 얼마나 착한데요. 사람들 곤경을 외면하는 사람 아니예요. 진심으로 부탁하면 들어줄 거예요”


홍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진철은 휴게실로 김정수매니저를 찾아가며 생각했다.


‘주리선배가 착하긴 한데 집요한 면이 있어서 얽히면 피곤한데’


좀 전에는 어떻게 부드럽게 빠져나왔지만 한주리 선배가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든 나는 내 할 거나 하자’


진철은 걸어가며 형, 성철에게 전화를 했다.


“형! 사무실에 그 빈 공간, 사용할 계획 있어? 없다고? 그럼 내가 한 삼개월 정도 사용해도 될까? 백대표님에게도 물어보고···된다고? 알았어. 그럼 내가 좀 쓸게. 뭐 할 거냐고? 연기연습 할 거야”


휴게실 테이블에서 김정수 매니저가 노트북 컴퓨터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게 보인다.


“정수씨”

“아! 강배우님. 일찍 오셨네요?”


대답하는 김정수 매니저의 목소리가 크다.


“무슨 일이 있어요?”

“[그 사진]에 대한 논란이 생각보다 더 빠르게 확산되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이슈도 생성되는 것 같고요”

“또 다른 이슈요?”

“네. 지금 강배우님 홈페이지가 좀 이슈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정수 매니저가 보고 있던 노트북 컴퓨터의 화면을 진철을 향해 돌리자 그의 개인 홈페이지 메인화면이 떠 있는 게 보인다.

무수한 인물들의 사진으로 꽉 차 있는 화면이다.


“이건 그냥 제가 프로필 정리할 겸해서 만든 건데 왜 화제가 되죠?”

“강배우님이 [그 사진]의 주인공이라는 증거를 찾던 사람들이 강배우님 홈페이지를 찾았는데 메인 페이지에 있는 사진들을 본 겁니다”

“그냥 평범한 사진들인데요?”

“이거 다 강배우님이 지금까지 했던 배역들이죠?”

“그렇죠”


김정수가 활짝 웃었다.


“그 사진들 숫자가 150개가 넘어간 게 인상적이랍니다. 서른도 되지 않은 배우의 필모그래피가 그런 숫자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150개가 넘어가는 사진이 전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는 게 또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거지에서 조폭까지 수많은 직업, 어린아이에서 노인까지 수많은 나이대, 심지어 여자까지 망라되어있는 사진들은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인물사진들이다.

그런데 그 150개의 사진 전체를 한 번에 훑어보면 굉장히 인상적으로 변한다.

평범하지만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그 사진들의 주인공이 단 한 명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으니까.







진철은 나이에 비해 굉장히 다작을 한 배우다.

대학 다닐 때나 졸업 후에나 독립영화, 단편영화 가리지 않고 배역이 마음에 들고 그가 필요하다고 하면 출연료를 따지지 않고 다 출연했다.

한창 단편영화 위주로 출연을 할 때에는 일 년에 40편이 넘게 찍은 해도 있다.

물론, 그런 경우는 맡은 배역이 거의 다 조연과 엑스트라에 가까운 것이라 가능한 것이기는 했지만.

거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찍은 작품도 드라마가 10편, 장편영화가 13편이나 된다.

물론 다 조연이었다.


‘어쨌든 그 작품들에 출연한 사진들이 지금 화제가 되고 있다는 거지?’


치열했던 열정의 기록이 빛나고 있다니 기분은 좋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라 좀 얼떨떨하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이 화제를 유지하고 더 크게 부풀리는 그런 건 백본부장이나 혁철이, 상만이가 알아서 진행하겠지. 나는 연기연습을 해야 해’


진철은 정수 매니저를 향해 말했다.


“간이 풀장 중에 가장 큰 게 어느 정도 클까요?”


김정수 입장에서는 정말 뜬금없는 소리다.


“네? 그 여름에 마당에 설치해 놓고 애들이 노는 간이 풀장이요?”

“네. 지름이 한 육미터 정도 되는 게 필요한데요”


이미 진철의 엉뚱함에 어느정도 적응을 한 김정수 매니저는 더 이상 반문하지 않고 바로 검색을 했다.


“여기 있습니다. 5.88미터가 가장 크네요. 그런데 이건 어디에 쓰시려고?”

“물론 연기연습을 하는데 필요해서요”


표홀한 움직임을 연습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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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26 이제는 질투 안 해 +2 21.11.11 1,803 41 13쪽
25 025 미스테리한 남자 +3 21.11.10 1,847 50 10쪽
24 024 지옥행 워터슬라이드 +5 21.11.09 1,885 44 11쪽
» 023 150개의 인물사진 +3 21.11.08 1,885 41 10쪽
22 022 마음이 착해 +2 21.11.07 1,885 41 11쪽
21 021 MAPA +1 21.11.06 1,928 44 10쪽
20 020 나도 미남 +2 21.11.05 1,957 45 11쪽
19 019 요사함이 있어 +4 21.11.04 1,912 45 10쪽
18 018 오디션 +1 21.11.03 1,935 42 11쪽
17 017 그는 배우다 +1 21.11.02 2,009 41 9쪽
16 016 눈에서 빛이나 +2 21.11.01 2,053 45 10쪽
15 015 삼국 팔검전 +6 21.10.31 2,129 54 10쪽
14 014 재현하다 +7 21.10.30 2,150 42 11쪽
13 013 300 +1 21.10.29 2,178 42 11쪽
12 012 진상들과 변호사의 의기투합 21.10.28 2,166 40 9쪽
11 011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얼굴 +1 21.10.27 2,275 45 11쪽
10 010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화가에게 +2 21.10.26 2,393 46 12쪽
9 009 망나니까지는 아닌 진상들 21.10.25 2,431 51 9쪽
8 008 미친놈들 중 제일 미친놈 +3 21.10.24 2,554 5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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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05 캐리어 +2 21.10.21 2,928 6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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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03 슈퍼액터 프로젝트 +2 21.10.19 3,734 5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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