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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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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연재수 :
120 회
조회수 :
168,284
추천수 :
3,574
글자수 :
645,036

작성
21.10.23 09: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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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49
글자
11쪽

007 일기[一技]로 관통[貫通]하다

DUMMY

진철은 아침에 잠에서 깨자 몸 컨디션은 굉장히 좋은데 기분은 나쁜 그런,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묘한 기분을 느꼈다.


‘오랜만에 엄마, 아빠 꿈을 꿨네?’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보자 빨간 동그라미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까 벌써 다음주가 기일이구나?’


물론 돌아가신 부모님 꿈을 꾸는 게 싫은 건 아니다.

다만 부모님의 기일을 즈음해서 꾸는 꿈에는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하던 장면이 나온다는 게 문제다.


‘엄마, 아빠. 좀 좋은 내용의 꿈으로 찾아주면 안 될까?’


부모님 꿈을 꾸면 기분이 좋게 깨고 싶지 나쁘고 싶지는 않다.

뒤숭숭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던 진철은 달력의 옆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여섯 시?”


진철이 원룸에 돌아와 잠들었던 시간이 새벽 네 시였다.

그런데 잘 자고 일어난 것처럼 몸이 개운하다.


‘겨우 두 시간 잤는데 여섯 시간 잔 것 보다 더 개운해’


왜 그런지 짚히는 게 있기는 하다.


‘나, 드디어 기[氣]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걸까?’


진철은 그제 얼굴을 변화시키는 일을 해냈다.


[슈퍼액터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어떤 무협소설을 보다 생각했었다.

주인공이 사용하는 역용술[易容術]을 내가 사용할 수 있다면 연기하는데 굉장한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소년이라면 할 법한 생각이었다.

한번 생각하고 불가능하다고 바로 잊어버릴 그런 생각.

진철이 보통의 소년과 달랐던 점은 그는 한번 마음을 정한 일이라면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점과 다행이도 무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다.

그 뒤 십 수년 노력 끝에 결국 원하는 대로 얼굴을 변화시켰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내가 드디어 기[氣]를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걸까? 그렇겠지? 그렇지 않으면 역용술을 사용한 것도. 그제, 어제, 오늘 삼 일 연속으로 평생 몇 번 없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은 것도 설명할 수 없어”


심지어 어제는 새벽까지 촬영을 하면서 연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 녹초가 되었던 상태.


“그런데 돌아오는 차에서 몇 번 호흡을 하니까 조금이나마 체력이 돌아왔었지”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던 몸상태가 원룸에 돌아올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고작 두 시간 수면으로 완벽하게 정상, 아니 베스트 컨디션을 되찾았다.


“그런데 어떤 수련 때문에 기[氣]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걸까?”


무술, 요가, 명상법, 차력 그 외 뭐라 분류를 할 수 없는 어떤 것 등등 진철은 워낙 배운 게 많았다.


“에이, 몰라. 어쨌든 방향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으니 이대로 계속 수련을 하면 되겠지”


그 모든 노력이 다 합쳐져 한단계 발전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캐리어]는 어제 촬영으로 모든 스케쥴이 끝났고 이후에는 예정된 일이 없다.

씻고 식사하는 동안 오늘은 뭘 할지 생각하던 진철이 전화를 들었다.


“유진아. 나다”

“알아. 아침부터 왜 전화했어?”

“왜 또 시비조야?”

“몰라. 나쁜 놈아. 왜 전화했냐고!”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반응이지만 이제 이력이 난 진철은 자기 할말을 했다.


“진형이는 좀 어때?”


그냥 평소대로 행동하면서 원래대로 돌아오길 기다리면 된다.


“다리에 깁스하고 지금 집에 있어. 왜? 가 볼라고?”

“응. 가 봐야지”

“그럼 수희에게 전화해 봐. 오늘 간다고 했어. 다른 애들도 몇 놈 간다고 하는 것 같던데?”


여기서 ‘다른 애’들은 대학동기들을 말한다.

전화를 끊은 진철은 수희에게 전화를 해 오후에 진형이 집에 같이 가기로 약속했다.


‘어제 그렇게 나가서 걱정했는데 오늘은 또 평소와 다를 게 없네. 유진이 녀석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내가 뭐 잘못한 줄 알았잖아’


진철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원룸을 나섰다.








원룸에서 나와 약 10분가량 걸어간 진철은 어떤 허름한 건물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 간판도 없는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깍]


불을 켜자 휑한 공간이 드러났다.

바닥에는 두꺼운 방음방진 마루가 깔려있고 한쪽 벽은 전체가 거울이었다.

세간이라고는 샤워부스와 화장실, 삼각대 위의 카메라와 구석의 컴퓨터, 그리고 정수기 한 대 밖에 없는 그 곳은 진철의 개인 연습실이었다.

진철만의 특별한 연습 루틴 때문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연습실을 마다하고 원룸 근처의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건물 꼭대기 임대료가 아주 싼 사무실을 임대해 개인 연습실로 꾸며 이용하고 있다.

진철은 중얼거렸다.


“오층 계단을 걸어 올라왔는데 전혀 숨이 차지 않네?”


그 전에도 고작 오층건물을 걸어 올라가는 정도로 힘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평지를 걷는 것 같았다.

확실히 몸이 달라졌다.

이것도 그가 기[氣]를 터득했다는 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제 그걸 점검해봐야 한다.


“한 번 해볼까?”


그제 [체인지맨]의 촬영장에서 잘생김을 연기하는데 성공했을 때 바로 확인을 해보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지금까지 참고 있었다.

이제 번거로운 일을 모두 끝냈으니 비로소 완벽한 마음가짐으로 확인을 해 볼 때가 되었다.


‘정말 내가 마침내 기[氣]를 터득해 역용술을 실현해 낸 건지 아닌지’


개시[開始]


숨을 고른 후 진철은 눈을 감고 속으로 진언을 읊었다.


‘정수리로 나가는 기운을 잡아 천산대맥[天山大脈]으로 돌리고 발바닥으로 나가는 기운을 틀어 니환신궁[泥還神宮]으로 보낸다’


일 만년 이상 전해 내려왔다는 인도의 비밀 암살단 아쉬람 전통의 단련법이라는 - 물론 가르쳐 준 노인의 말에 의하면 - 아쉬람[ASHRAM]요가의 중요한 구절을 진철이 한글과 한문을 섞어 번역한 것이었다.

약식 수련이 아닌 그가 정립해 낸 전체 수련 과정의 시작을 열 때 사용하는 진언이다.


청량한 기운이 머리 꼭대기에서 등을 타고 ‘쭉’ 내려오고 뜨거운 기운이 발바닥에서 시작해 다리를 지나 단전으로 ‘확’ 올라왔다.


‘화승수강[火昇水降]’


불은 올라가고 물은 내려온다는 뜻인데 수련에서는 천지[天地]에서 받아들인 음양[陰陽]의 기[氣]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뜻하는 말이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기[氣]의 느낌에 진철은 깜짝 놀랐다.

물론 수련 구결에서 의도했던 것이지만 이렇게 기[氣]를 확실하게 느낀 적은 이전에 없었다.


‘역시 소성[小成]을 이룬 거야’


가슴을 진정시킨 진철은 다시 숨을 고르고 계속 수련을 해 나갔다.

다음 순서는 몸을 풀어주는 과정이다.


역근세수타골[易筋洗髓打骨]


진철이 직접, 몸을 풀어주는 동서고금의 수십가지 기법 중 그 골자만을 빼내어 합쳐 만들어낸 기법이다.

열 손가락으로 머리부터 발 끝까지 순서대로 몸의 혈맥[血脈]을 때리고 점하며, 근골[筋骨]을 누르고 쓸며, 신경을 깨우고 근육을 이완시킨다.

그리고 의술 중 추나법[推拿法]의 관절을 풀어주는 기법을 채용해 온 몸의 모든 관절을 풀어주었다.

호흡에 맞춰 부위마다 섬세하게 강약을 조절하면서 한 시간에 달하는 지루한 그 과정을 끝내면 피가 빠르게 돌고 체온이 높아져 한 여름에도 몸에서 김이 난다.


“후~!”


내쉬는 숨에 뜨거운 기운이 빠져나갔다.


다음은 몸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조절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수련법이다.


동공[動功]


진창을 걷는 것처럼 무거운 걸음으로 원을 그리며 – 보법 중 하나인 창니보[倉泥步]다 - 몸의 중심을 언제나 원의 중심을 향하는 수련을 했다.

이 후 손가락으로 물구나무를 서서 역[逆] 창니보를 수련했다.

그 다음에는 더 동적인 태껸과 카포에라를 합쳐 만든 동작으로 신체 각 부위의 움직임을 수련했다.

마지막으로 제자리에서 앞으로, 뒤로, 옆으로, 사선으로 손을 대고, 손을 떼고 수십가지 버전의 재주를 넘는 것으로 동공을 끝냈다.


만공[慢功]


그 다음은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수련이다.

아주 느릿하게 웅크려 앉았다가 사지를 쭉 뻗고 엎드린 후 다시 천천히 일어나는 것을 백팔번 반복하는데 불교에서 절을 하는 방식인 단배공[段培功]에서 빌려온 수련법이다.

제대로 하면 몸을 웅크렸다가 펴는 동작을 할 때 온 몸 피부의 세부 혈맥에 피와 기가 흐르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단배공은 원래 마음을 고르는 조심[操心]이 그 수행의 요체였으나 진철은 수련의 정점에서 신경과 근육을 더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폐문[閉門]


마지막은 [옴]이라는 소리를 할 수 있는 한 길게 내며 몸 속의 들뜬 탁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장장 두시간 반에 달하는 수련을 한바퀴 돌린 것이다.


이 모든 수련과정을 관통하는 원칙은 한가지다.


‘기식[氣息]은 언제나 평온하게, 공기는 내뱉어도 기운은 내뿜지 말 것’


진철이 연구한 모든 수련기법 중 제대로 된 것이라고 판단된 기법들 중 찾아낸 공통점이다.







정규수련이라 이름 붙인 과정이 끝났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 보다 더 기운이 넘쳐’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정규수련을 한바퀴 돌리면 온몸의 기운이 다 사라진 듯 기진맥진했었다.

그래서 하루에 수련을 두 바퀴 이상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氣]가 온 몸을 돌아다녀 수련을 할수록 더 몸에 활력이 넘쳤다.


‘허량스님은 미친 짓이라고 했지만 결국 나는 해냈구나’


허량스님은 단배공을 가르쳐준 스님인데 여러 수련법을 잘라 붙여 하나로 만들려는 진철의 시도를 미친짓이라고 했었다.


[그 미친 짓을 계속하면 여러 종의 기[氣]가 꼬여 폐가망신[弊家亡身]할 것이 뻔히 보이지만 지금 당장 네 놈 눈에 광기[狂氣]가 가득해 정신이 위태하니 진정하라고 단배공[丹培功]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단배공은 원효대사에게 시작되어 불문[佛門]에 전해져 내려오는 훌륭한 호심공[護心功]이니 능히 네 정신을 되찾아 줄 것이다. 정신을 차리면 그 미친 짓도 자연히 그만두게 되겠지]


“하지만 나는 결국 해냈어”


진철은 뛸 듯이 기뻤다.


‘시간 내서 암자로 허량스님을 찾아가 자랑을 해야겠다’


아마도 수십가지 기예를 일기[一技]로 관통[貫通]을 해낸 것의 가치를 알아줄 이는 허량스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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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013 300 +1 21.10.29 2,178 42 11쪽
12 012 진상들과 변호사의 의기투합 21.10.28 2,166 40 9쪽
11 011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얼굴 +1 21.10.27 2,275 45 11쪽
10 010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화가에게 +2 21.10.26 2,393 46 12쪽
9 009 망나니까지는 아닌 진상들 21.10.25 2,431 51 9쪽
8 008 미친놈들 중 제일 미친놈 +3 21.10.24 2,554 55 10쪽
» 007 일기[一技]로 관통[貫通]하다 +3 21.10.23 2,675 49 11쪽
6 006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2 21.10.22 2,761 47 9쪽
5 005 캐리어 +2 21.10.21 2,928 60 11쪽
4 004 큰 벌을 받을거야 +4 21.10.20 3,284 56 10쪽
3 003 슈퍼액터 프로젝트 +2 21.10.19 3,734 56 10쪽
2 002 체인지맨 +3 21.10.18 5,001 6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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