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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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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연재수 :
1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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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3,574
글자수 :
645,036

작성
21.11.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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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18 오디션

DUMMY

오디션 준비에 여념이 없는 나날이 지나갔다.

거의 모든 시간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하기는 했지만 간간히, 사실은 상당히 자주 밖에 나가기도 했다.

진철을 찾는 사람이 의외로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진형이 전화해서 집에 갇혀서 심심하다고 오라고 하기도 하고, 상만과 유진이 술 좀 사라고 하기도 했다.

진철은 친구가 많지 않지만 일단 친구가 되면 상당히 충실한 친구가 된다.

그럴 때는 연습을 접고 외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연기연습에 매진한다.

또 수희가 자주 찾아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습실에 있다가 가기도 하는데 그녀는 진철의 연습을 방해하지 않고 상대역을 해준다.

그리고, 계속되는 연습과 방해. 그리고 또 연습.

또 다른 친구가 연락을 해서 또 외출 후 돌아와 연습.

진철은 방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냥 일상 그 자체인 날들을 헤치고 조금씩 자신만의 검지호를 만들어갔다.







백현수 실장은 [삼국 팔검전]의 제작사에 퇴사 인사차 갔다가 나가는 길이었다.

눈치 빠른 백실장은 제작부장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의 반응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어 좀 마음이 찝찝한 상태였다.

조심스럽게 무슨 문제가 있냐 물어봐도 제작부장은 아무런 문제없다고만 대답했다.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달고.

백실장의 두뇌가 재빨리 회전했다.


‘혹시 이미 쌍둥이의 배역이 결정된 건가?’


없는 경우는 아니다.

이번 오디션은 공개오디션이 아니고 제작사에서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몇 명의 배우만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오디션이다.

면접과 비슷하다.

이런 경우 같은 배역이라도 감독과 작가, 배우의 사정에 따라 오디션 날짜가 다른 경우가 많은데 이번이 그런 경우였다.

이럴 때는 먼저 오디션을 본 배우가 배역에 찰떡 같이 어울리면 잠정적으로 이미 결정이 나버리는 경우가 있다.

제작부장과 인사를 끝낸 후 백실장은 돌아가지 않고 제작사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친분 있는 직원들에게 정보를 수집했다.


‘지난 번에 오디션을 본 박현국 배우가 굉장히 좋은 연기를 했다고?’


백실장이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거기 까지였다.

저 쪽에서 알려 줄 생각이 없으면 백실장으로서는 결과까지는 확인을 할 경로가 없다.


‘확실한 것도 아닌데 강배우님에게는 안 알리는 게 좋겠다’







[삼국 팔검전]을 제작하는 [울프토템]의 김형택 제작부장은 대본을 펴 들고 뭔가를 확인한 후 막 사무실을 나가는 백현수 실장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허! 그거 참. 강진철이라는 배우하고 쌍둥이 배역의 나이가 맞지 않는다는 건 몰랐네”


백실장이 배역에 어울리는 배우가 있다고 하길래 유명한 그의 안목을 믿고 배우 프로필을 받고 오디션 날자를 잡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배우의 나이가 스물아홉이다.


“검지호와 검천호는 나이가 적어도 사십대는 되야 하는데”


1, 2편 대본에는 검지호의 나이가 따로 표시되어 있지 않으니 이번 일은 명백한 제작사의 실수다.


“헛수고할 텐데 지금이라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옆에서 부하직원이 그렇게 말하자 제작부장이 말했다.


“아니, 모르는 척하자. 내일 모래가 오디션인데 지금 알려 줬다가 원망 들어먹는다. 오늘까지는 우리도 몰랐다는 게 사실이니까 차라리 이틀 더 모르는 걸로 하는게 낫겠어”

“그렇네요. 저 쪽에서도 벌써 한 달이나 오디션 준비를 했을 텐데 오디션이라도 보고 떨어지는 게 낫겠죠”

“내 말이 그거야. 그 편이 서운한 게 더 적을 거야. 이거 배우들이 오디션을 한 날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 다른 후보 배우들 나이대가 다르다는 것도 모를텐데 괜히 알려줄 필요 없어. 이 바닥에서는 원수를 안 만드는 게 중요한데 특히 백실장처럼 유능한 사람은 더 그렇지”

“저 백실장이 그렇게 작품과 배우 보는 눈이 좋다면서요?”

“그럼. 유명하지. 그런 백실장이 눈여겨보고 있으니까 우리 드라마도 성공하지 않을까?”

“그러면 좋겠네요”






시간은 흘러서 오디션 날이 다가왔다.


“백실장님까지 오실 필요는 없는데요?”


오디션을 보러 가는 차 안에서 진철이 말했다.


“이제 인수인계 다 끝내서 회사에서 할 일도 없습니다. 강배우님 오디션에 동행하는 게 AAA에서의 제 마지막 일이 되겠네요. 오늘 저녁 직원들과 환송회 하고나면 정말로 끝입니다”

“시원섭섭하시겠어요?”

“아뇨. 시원하기는 한데 섭섭하지는 않네요. 아마 AAA에서 할 일은 다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미련이 없어서”

“그런가요?”


진철은 백실장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백실장 말대로 섭섭한 감정은 아닌데 또 그냥 시원하기만 한 것도 아니야. 아주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표정이야. 차라리 원망? 아니면 원한에 더 가까운데?’


진철은 사람들 반응을 짐작하는데 재능이 없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표정을 살피며 어떤 상황일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표정을 하는지 관찰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이제 경험이 많이 쌓여 역으로 사람 표정을 보면 약간이나마 그 속을 짐작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어쨌든 지금 백실장의 표정은 지금까지 진철이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이라 기억해두기로 했다.

나중에 어떤 연기에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저도 다음주가 계약 끝이네요. [쓰리헌드레드 엔터]와 계약은 그 때 하는 건가요?”

“네. 배우분들 이적에 관한 건 이미 합의를 끝냈습니다. 뭐, 양쪽 회사에서 동의했으니 바로 계약을 해도 되지만 저희 사장님이 그냥 AAA의 계약이 끝난 후 계약을 하자고 하시네요. 제가 아직도 회사에 붙어서 인수인계를 철저히 하고 떠나는 것과 일맥상통한 일이죠”


진철은 이해하기 힘든 얘기다.


“어떤 면에서요?”

“사실 우리 사장님이 AAA부사장을 못 믿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죠. 그 인간은 구두로 합의를 한 건 어기고, 문서로 작성한 것에는 함정을 파거나 계약을 질질 끌어 상대방의 힘을 빼 놓는게 특기죠. 아주 못된 것만 배운 놈이예요”


진철은 살짝 놀랐다.

백실장이 그렇게 남 욕하는 건 처음 들어봐서.


”강배우님 건도 나중에 계약기간이 겹친다고 이중계약이라고 물고 늘어지는 정도는 아주 쉽게 할 놈입니다”

“설마요”


진철의 반응에 백실장은 냉소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쉽게 하는 놈은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놈이죠. 전형적으로 당한 사람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그런 쓰레깁니다”


백실장은 어지간히 AAA의 부사장을 싫어하는 것 같다.

아까 그 이상한 표정의 대상이 그 부사장을 향한 것일수도 있다.


‘하기는 회사에서 좋게 나가는 게 아니기는 하지’


이번에 진철뿐 아니라 꽤 많은 배우들이 백충성이사와 백실장을 따라 회사를 옮기기 때문에 직원 몇이 퇴사하는 게 아니라 사실상 회사의 분할에 가깝다고 김정수 매니저가 말했다.

합의가 끝났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분란이 있었을지 진철도 짐작할 수는 있다.







진철과 백실장, 김정수 매니저는 비어있는 회의실 같은 곳으로 안내되었다.


“다른 배우들은 없네요?”

“이게 공개오디션이 아니라 오늘 오디션을 보는 건 아마 강배우님 혼자일 겁니다”


그 때 울프토템의 직원이 들어와 진철을 안내했다.


“이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진철은 준비한 목검 하나만 들고 대기실을 떠나 오디션을 보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 한 쪽에는 탁자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넓은 공간 끝에 흰 벽을 바라보며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백실장이 이미 [삼국 팔검전]의 감독과 작가의 얼굴과 프로필을 진철에게 알려줬다.


‘작가 두 사람과 감독. 다른 한 사람은 누구지? 촬영감독? 무술감독?’


진철의 날카로운 눈은 탁자 뒤에 앉은 네 사람의 얼굴이 묘하게 경직되어 있다는 걸 캐치했다.


‘왜지?’


어쨌든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십니까? 강진철입니다”


작게 말을 했는데도 묘하게 방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그 목소리에 사람들이 움찔 했다.


“네. 안녕하세요. 발성 좋네요. [삼국 팔검전] PD를 맡은 신경우입니다”

“각본 박상민입니다”

“각본 이영민입니다. 그런데 발성이 좋기는 정말 좋네요. 아직도 방안 공기가 떨리는 것 같은데요?”


이영민 작가는 이름과 달리 여자다.


“[팀 허슬]의 무술감독 홍경표입니다”







[삼국 팔검전] 작가와 감독, 무술감독 네 사람은 지금 약간 당황한 상태였다.

인물 설정에 따르면 검지호의 나이는 최소 사십이 넘어야 하는데 오늘 오디션을 볼 사람의 나이는 삼십도 되지 않은 스물 아홉.

오디션을 보기 직전에야 그들은 배역후보와 배역의 나이대가 맞지 않는 다는 걸 알았다.

지난번 오디션을 본 배우가 굉장히 배역과 잘 맞았기에 시간낭비라 취소하자고 하니 제작부장이 부탁을 했다.


“강진철 배우는 이번 오디션을 보려고 한 달을 준비했습니다. 어쨌든 우리쪽 실수 때문이니까 오디션이라도 보게 해주는 게 어떨까요?”


제작부장은 그리 만만한 위치가 아니다.

오디션 합격도 아니고 잠깐 시간을 내는 정도라면 들어주는 게 낫다.


“좋아요. 한 번 보죠. 그런데 이 강진철이라는 배우는 몇 번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요즘 조연으로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연기 잘해요. 사진이 좀 못 나온 것 같은데 실물을 보시면 기억이 날 겁니다”

“노안은 아닌가요? 노안이면 그래도 가능성이 있는데”

“노안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배우 강진철이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할 일 많아요. 빨리 끝내고 쌓인 일이나 하죠”







진철도 나이는 많지 않아도 오디션 경력은 상당했다.

심사하는 사람들 표정을 보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할 정도는 된다는 거다.


‘나한테 그리 기대가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이미 배역이 결정된 건가?’


예정된 오디션을 다 끝내기도 전에 이미 결정을 냈다면 그 배우가 잘 한 거다.

그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오디션도 연기이고 모든 연기에 진심인 진철은 오늘 오디션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 준비한 검지호의 심리 위계를 덮어쓰자 세심하게 설정하고 연습한 성격에서 버릇 같은 움직임까지 옷을 입듯이 그의 몸에 장착이 되었다.

그리고, 눈을 뜨면서 스위치를 올렸다.


‘연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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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26 이제는 질투 안 해 +2 21.11.11 1,803 41 13쪽
25 025 미스테리한 남자 +3 21.11.10 1,846 50 10쪽
24 024 지옥행 워터슬라이드 +5 21.11.09 1,885 44 11쪽
23 023 150개의 인물사진 +3 21.11.08 1,884 41 10쪽
22 022 마음이 착해 +2 21.11.07 1,885 41 11쪽
21 021 MAPA +1 21.11.06 1,928 44 10쪽
20 020 나도 미남 +2 21.11.05 1,957 45 11쪽
19 019 요사함이 있어 +4 21.11.04 1,912 45 10쪽
» 018 오디션 +1 21.11.03 1,935 42 11쪽
17 017 그는 배우다 +1 21.11.02 2,009 41 9쪽
16 016 눈에서 빛이나 +2 21.11.01 2,053 45 10쪽
15 015 삼국 팔검전 +6 21.10.31 2,129 54 10쪽
14 014 재현하다 +7 21.10.30 2,149 42 11쪽
13 013 300 +1 21.10.29 2,178 42 11쪽
12 012 진상들과 변호사의 의기투합 21.10.28 2,166 40 9쪽
11 011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얼굴 +1 21.10.27 2,274 45 11쪽
10 010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화가에게 +2 21.10.26 2,393 46 12쪽
9 009 망나니까지는 아닌 진상들 21.10.25 2,431 51 9쪽
8 008 미친놈들 중 제일 미친놈 +3 21.10.24 2,554 55 10쪽
7 007 일기[一技]로 관통[貫通]하다 +3 21.10.23 2,674 49 11쪽
6 006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2 21.10.22 2,760 47 9쪽
5 005 캐리어 +2 21.10.21 2,928 6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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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03 슈퍼액터 프로젝트 +2 21.10.19 3,734 5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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