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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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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연재수 :
1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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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45,036

작성
21.11.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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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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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25 미스테리한 남자

DUMMY

류승철 감독은 진철을 자기 영화에 캐스팅하려 생각하기 전 이미 그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들었었다.

나름 단편이나 독립영화계에서는 유명한 배우다.


‘잘하기는 하지만 뛰어나다 할 정도는 아니다’


연기력에 대한 평은 사람마다 거의 비슷했다.

그런데 사람 자체에 대한 평은, 같은 사람에 대한 게 맞는지 의심을 할 정도로 갈렸다.

누구는 아주 건방지다고 욕을 하고 누구는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일관성이 없다.


‘보통 남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이 욕을 하기도 했고, 남 욕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칭찬하기도 했지’


영화감독이자 대본을 쓰는 사람으로써 아주 흥미가 가는 사람이다.

어쨌든 류승철 감독은 강진철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을 했다.


‘생각이상으로 세심한 질문이네’


긴 시간이 지나고 진철이 질문이 끝났다고 하자 류승철 감독이 말했다.


“이제 제가 질문을 좀 해도 될까요?”

“아! 제가 너무했나요?”

“아닙니다. 대본에 없는 설정과 이야기의 전체적인 배경까지 알고 싶다는 건 이해합니다. 배역의 해석을 위해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본의 시간대가 아닌 그 전과 후의 이야기와 서사까지 질문하는 건 너무···”


말을 줄이는 류승철 감독 대신 진철이 말했다.


“과하죠. 그것도 단 한 장면 나오는 배역의 배우가”

“한 장면이든 열 장면이든 그건 상관없습니다. 단 한장면이라도 중요한 역할이니까요. 문제는 보통 대본을 쓸 때 그런 부분까지 설정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그런데 강진철씨는 그런 쓸데없는 부분까지 설정을 해와라 감독에게 강요를 하는 거니까요. 마치 숙제해오라고 하듯이. 사실 그래서 말이 많습니다”


진철이 쓴 웃음을 지었다.


“스타도 아니고 연기력도 별로인데 무료 출연을 빌미로 갑질을 한다, 영화와는 관계도 없는 질문으로 힘들고 바쁜 사람들 괴롭힌다, 별것도 아닌 놈이 잘난 척한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뒤에서는 욕을 하겠죠. 저도 압니다”

“알면서 왜?”

“예전에는 촬영 현장에서 감독을 붙잡고 질문했어요. 그런데 그러면 촬영에 지장이 가니까요. 그래서 오늘처럼 하루 날 잡아 하고싶은 질문을 하는 걸로 바꿨죠”


그건 알겠지만 근본적인 의문은 여전하다.


“그런데 도대체 왜 욕을 먹으면서까지 왜 계속 단편영화나 독립영화에 출연하는 거죠?”


진철은 류승철 감독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순수한 궁금증이다.


‘괜찮은 감독 같네’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최대한 많은 연기를 경험하고 그것들을 레퍼런스 삼아 새로운 배역의 분석과 설정을 빠르게 할 수 있을 걸 기대해서예요”


[슈퍼 액터 프로젝트]의 일부분이다.

지금까지 연기한 150개 캐릭터의 숨 쉬는 것에서부터 생각하는 방식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진철 자신의 뼈에 새겨 넣었다.

수 없이 많은 연습으로.

그 결과 지금은 새로운 배역을 맡을 때 기존에 설정했던 것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류승철 감독은 강진철의 말을 이해했으나 납득하지는 못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처음 시작할 때는 막연하게 가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가능해요. 요즘 그 효과를 보고 있으니까”


진철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요즘 캐릭터를 완성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빨라졌어요. 전에는 대부분 캐릭터를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작품에 들어갔죠. 그래서 연기가 좀 어색했어요. 하지만 이 미스터리한 남자는 아마 캐릭터를 완성한 상태에서 찍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류승철 감독도 마주 웃으며 말했다.


“기대하겠습니다”


자랑하려는 의도는 없었는데 자랑을 한 것처럼 된 진철이 부끄러워 자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주일 후 [지옥행 워터슬라이드] 촬영일이 되었다.

촬영은 밤.

촬영지는 서울시내의 어떤 재개발 지역, 모든 주민이 이사를 가 내일이면 철거가 들어가는 동네다.

류승철 감독이 급했던 이유기도 했다.

내일이면 철거되어 감독이 원하는 분위기가 없어지기 때문에 오늘 이곳에서 필요한 모든 장면을 찍어야 한다.


스텝 몇 명 되지도 않는 조촐한 촬영현장.

진철은 검은색 양복을 입고 검은색 중절모를 쓰고 있는데 그 앞에서 류승철 감독이 디렉팅을 하고 있었다.


“저 쪽 조명이 뒤에서 사선으로 비출겁니다. 그럼 이 위의 가로등 불빛과 어우러져 복합적인 그림자가 질 거예요. 얼굴도 모자챙의 그림자에 덮혀 살짝 보일 듯 말 듯하겠죠. 주인공 고민구는 여기, 미스터리 남자는 저기 서서 마주보며 대화를 합니다”


주인공 고민구 역의 류승호라는 남자 역시 제자리로 갔다.

류승호라는 배우가 입을 계속 달싹이고 있는 게 대사를 계속 외우고 있는 것 같다.


‘류승철 감독 동생이라고 하던데 둘이 전혀 안 닮았네’


류승철 감독은 상당한 미남인데 류승호는 상당히 억울하게 생겼다.

여기저기 핏자국이 있는 찢어진 옷을 입고 그 억울한 얼굴 이곳저곳에는 생채기가 있는 분장을 한 류승호는 영화내내 개같이 고생을 하는 주인공의 분위기와는 딱 맞다.

이전 씬을 연기하는 걸 봤는데 대사나 움직임, 제스처도 주인공 캐릭터를 잘 살리고 있다.


‘연기는 처음이라고 하는데 저 정도면 재능있네’


진철이 생각했다.


‘나에게 저 정도 재능이 있었으면 이 고생은 안했을텐데’


가볍게 리허설을 하고 실제 촬영이 시작되었다.







“나 알아? 나한테 왜 이런 제안을 하는데?”


고민구가 말하자 중절모의 남자가 대답했다.


“왜 그러긴. 사람끼리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자네 행색을 보게, 너무 불쌍해 보이지 않나? 악마라도 측은하게 생각할 지경이야”


남자의 목소리는 마치 음절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듣는 사람의 귀에 꽂혔다.


‘예쓰!’


류승철 감독이 속으로 환호를 내질렀다.

그는 진철에게 미스터리 남자의 목소리 톤과 어투가 나이도, 태생도 짐작하기 어려운 모호한 분위기였으면 한다고 요구했다.

그리고, 지금 진철은 그 요구를 초과해서 달성했다.







류승호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형이 어렵게 모셔왔다는 명문대학교 연기과를 졸업한 배우라고 해서 속으로 꿀리고 있었는데 리허설에서는 연기는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자기보다 못한 것 같아 살짝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실전에 들어가 첫 마디를 듣자마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거 뭐야?’


능글맞은 동시에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는 그의 등에 소름이 돋게 했다.

그 덕분에 미스터리 남자의 첫 마디에 불길함을 느끼고 몸이 움츠러드는 고민구의 연기를 애써 할 필요가 없었다.

다행히 그의 입은 달달 외운 대사를 저절로 뱉어냈다.


“백만원을 주면서 어디가서 말 한마디 전하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냥 전화하면 되지. 수상하잖아. 뭔가 위험하니까 그런 것 아니야?”

“수상하지. 이걸 안 수상하다고 하는 놈은 머리가 없는 놈이지. 그래서 안 하게?”


네 머리 속 정도는 꿰뚫어 본다는 확신이 있는 목소리다.


“크큭!”


고민구는 망설였지만 거절하지도 못했다.

그는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으니까.


“내가 뭘 하면 된다고?”

“내가 말했잖나. 말 한마디 전하면 된다고”


고민구가 치열하게 고민을 하자 남자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흐흐~!”

“뭐가 그렇게 웃겨?”

“인생이 웃기지”


고민구는 발끈했다.


“그래. 인생. 씨발. 웃기지. 그리고 내 인생은 그 중 제일 웃겨. 제기랄. 내가 개그맨을 했어야 했는데”

“자네는 지금까지 많은 기회를 놓쳤어. 그때마다 넌 태평하게 웃었지.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 기회가 지나면 이제 네 그 우스운 인생에서 웃음이라는 건 다시없을 거야. 그러니 신중하게 행동해”


고민구가 소리를 질렀다.


“너, 뭐야? 나에 대해 어떻게 아는 거야? 심부름 시킬 사람으로 날 찍은 건 우연이 아니지? 나를 속여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류승철 감독은 진철이 미스터리 남자의 정체에 대해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그 남자의 정체는 뭐든지 될 수 있습니다. 천사일수도 악마일 수도 있죠. 저는 강진철씨가 그 모호함을 표현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진철은 최대한 류승철 감독의 의사에 맞춰 연기하려 했다.


“당연히 짐작이지. 인생에 불만인 사람의 열에 여덟아홉은 그렇게 생각하니까. 우리는 오늘 처음 보는데 내가 자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알겠나”


낮은 톤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줬고, 동시에 그 속에 인식하기 힘들 정도로 살짝 섞여 사람의 신경을 찌르는 쇳소리가 듣는 사람의 무의식에 불편함을 안겨줬다.

고민구는 위로와 비난을 동시에 느꼈다.


“이런 제기랄. 날 놀리는 거야?”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그 감정에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놀리는 거지. 놀려도 별 후환은 없을 것 같은데?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 보니까”


남자의 능글맞은 목소리의 피치가 아주 조금 올라가며 공명이 커졌고 그건 고민구의 안그래도 답답했던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제기랄. 사람, 그렇게 대하면 안 되잖아!”


고민구가 울먹이듯 소리쳤다.

미스터리 남자는 한걸음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하려고 하면 세상에 안되는게 어디 있나?


옷자락의 펄럭임도 없이, 발이 움직이는 기미도 없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온 남자.

중절모의 그늘이 약간 옅어져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모든 것이 다 사람의 마음에 달렸어. 지금 네가 나를 악마로 본다면 그건 신이 악마를 보낸 것이고, 천사로 본다면 그것 또한 신의 뜻이 되는 것이지”


그 얼굴은 악마를 말할 때는 악마처럼 창백한 얼굴에 입이 찢어진 것처럼 보였고, 천사를 말할 때는 천사처럼 온화한 빛에 붉은 입술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사실, 예산만 있다면 이 부분은 CG로 남자 얼굴에 악마와 천사의 얼굴을 겹치는 연출을 했으면 했죠]


류승철 감독이 했던 말이다.

아마도 CG는 필요 없을 것 같다.


작가의말

류승완 감독이 [죽거나 나쁘거나]를 찍을 때 동네 양아치 캐릭터를 찾으려고 밖으로 돌아다니다 지쳐서 집에 오니까 그 양아치가 집에 있었다고 하죠. 

그게 동생 류승범이었고 그는 그 때까지 연기는 한번도 해본적 없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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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26 이제는 질투 안 해 +2 21.11.11 1,803 41 13쪽
» 025 미스테리한 남자 +3 21.11.10 1,847 50 10쪽
24 024 지옥행 워터슬라이드 +5 21.11.09 1,885 44 11쪽
23 023 150개의 인물사진 +3 21.11.08 1,884 4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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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021 MAPA +1 21.11.06 1,928 4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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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018 오디션 +1 21.11.03 1,935 42 11쪽
17 017 그는 배우다 +1 21.11.02 2,009 4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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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015 삼국 팔검전 +6 21.10.31 2,129 54 10쪽
14 014 재현하다 +7 21.10.30 2,150 42 11쪽
13 013 300 +1 21.10.29 2,178 42 11쪽
12 012 진상들과 변호사의 의기투합 21.10.28 2,166 40 9쪽
11 011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얼굴 +1 21.10.27 2,274 4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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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009 망나니까지는 아닌 진상들 21.10.25 2,431 5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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