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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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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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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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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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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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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006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DUMMY

“어때?”


자기 배우가 연기하는 걸 푹 빠져 보고 있던 김정수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봤다.


“네? 아! 백실장님. 어떻게···”

“아까 강배우님이 요즘 자기 연기가 크게 늘었다고 하더라.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래서 얼마나 늘었는지 한 번 보러 왔지”

“아. 네”

“그래서, 네가 보기에는 어땠어?”


백현수 실장이 촬영현장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좋았습니다”

“어떻게 좋았는데?”


김정수는 바싹 긴장했다.

AAA엔터에서는 로드매니저를 일종의 수습이라고 보기 때문에 정식 매니지먼트 부서 소속으로 두지 않는다.

총무팀 소속으로 필요할 때 마다 로드매니저가 배정되는 시스템이다.

물론, 암묵적인 담당은 있어서 가급적이면 한번 수행을 했던 배우들에게 같은 로드를 붙여 주기는 하지만.

2년의 연차가 차면 실장 이상의 매니저가 눈여겨 봤던 로드매니저를 끌어가게 된다.

그러니 직속 상관은 아니지만 백실장도 그의 진급에 한 목소리 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아니, 어쩌면 결정적인 키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강배우님은 이전 다른 촬영때도 잘 하기는 했지만 오늘은 특히 배역 그 자체가 된 것 같이 연기를 잘 했습니다”

“그래?”


여전히 촬영장에 시선을 두고 있는 백실장이지만 긍정적인 어투라 살짝 마음을 놓은 정수가 말을 덧붙였다.


“어···그게···잘은 모르겠지만, 저런 연기를 메소드 연기라고 하는 거겠죠?”

“메소드 연기?”


백실장이 시선을 돌려 정수를 보았다.


“어···음···”


이번에는 별로 좋은 반응이 아닌 것 같다.

뭐라 말을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정수는 말을 더듬었다.


“메소드 연기도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여러가지 방법론이 있지만 기본은 배역과 자기를 동화시키는 거다. 그런데 강진철 배우님은 오히려 배역과 거리를 두고 대사는 물론이고 모든 동선과 몸짓, 아주 작은 제스쳐까지 미리 준비하고 연습해서 몸에 익히는 그런 타입이야. 기억해둬”

“네”


아직 로드매니저인 김정수의 교육이 백실장의 공식적인 책임은 아니다.

하지만 백실장은 자기가 회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매니저가 왜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는지 궁금해?”


회사의 주인에게는 회사 관련된 일 중 자기 책임이 아닌 게 없다.


“네”


또, 아직 미숙하기는 하지만 김정수는 백실장이 눈여겨 보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배우의 연기 형태에 따라 그 후유증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야. 연기는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사용하는 일이다. 누구는 에너지를 다 쏟아내고 나면 까칠해지고, 누구는 무기력해지지. 그런 것까지 따져서 케어를 해야 유능한 매니저라고 할 수 있어”

“네”

“여기서 케어라고 하는 건 배우의 상태를 알고 배려하는 것만 말하는 게 아니야. 그런 부정적인 상태가 대중과 매스컴에 드러나는 것도까지 신경쓰는 걸 말하는 거다”

“아. 네”

“네가 어떤 매니저가 될지는 네가 알아서 할 일인데, 매니저로써 계속 위로 올라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은 있어. 그건 바로 배우의 연기를 보는 정확한 안목이야”

“네”


백실장은 거기서 말을 멈췄다.


‘잔소리로 받아들일지, 충고로 받아들일지는 알아서 하겠지. 어떻게 그 안목을 키우는지도 알아서 할 일이고’


그는 조금 더 촬영현장을 보다가 말했다.


“나는 이만 갈 테니까 강배우님에게는 나 왔었다고 말하지 말고”

“네?”

“퇴근길에 잠깐 들른 거야”

“알겠습니다”


정수는 대답하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이 새벽에 무슨 잠깐 들러? 백실장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단 말야’


백현수는 촬영 현장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도 오늘 강진철의 연기는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게 좋았다.


“뭐,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말은 아직 뭔지 모르겠지만 연기가 는 건 확실하네”








아무리 촬영이 아무런 문제없이 흘러갔다고 해도 [캐리어]의 촬영이 끝난 건 원래 계획한 시간을 훌쩍 넘겨 새벽이 깊은 후였다.

어제의 현장과 달리 이번 현장은 돈이 없어서가 아닌 시간이 없어서 쫑파티를 뒤로 미뤘다.

그래서 강진철은 정수가 모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정수는 룸미러를 통해 뒷자리의 진철을 보았다.

촬영에 모든 에너지를 썼는지 몸은 뒤로 젖힌 의자에 축 늘어져있고 한 팔을 눈 위에 올리고 있다.


[후욱! 후욱!]


왠지 숨소리도 좀 거친 것 같아 걱정이 된 김정수는 계속 진철의 상태를 신경 쓰게 되었다.


“헙!”


그런데 갑자기 진철이 기합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키더니 조명을 켜고 책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피곤하실텐데 조금 더 쉬시는 게 어떨까요?”


정수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가 겪어 본 배우 중에는 평소에는 아주 편안하게 대해주다가 조금 피곤하기라도 하면 까칠하게 대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강진철 배우는 항상 정수를 정중하게 대해줬다.

하지만 거의 전담 로드로 지낸지 벌써 2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말을 높여 오히려 부담스럽고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이도 정수가 강진철 배우보다 적은데.


“괜찮아요. 이제 다 회복됐어요”


다시 룸미러로 진철의 안색을 살핀 정수는 생각했다.


‘정말 멀쩡해 보이네?”


분명히 십분 전 차에 탈 때 까지만 해도 굉장히 지쳐 보이던 얼굴이었다.

정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뭔가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그럼요. 물어보세요”

“배우들마다 연기를 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하던데 강배우님은 어떻게 연기를 하시는지 궁금해서요. 많이들 얘기하는 메소드 연기를 하시나요?”


정수는 진철의 아까 그 연기가 메소드 연기가 아니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아뇨. 나는 대본을 밑바닥까지 분석하고 얼굴표정 하나까지 다 계산하고 연습해서 연기하죠. 메소드 연기와는 완전히 반대라고 보면 되요”


백실장의 말이 맞았다.


“어···그럼. 아까 그 장면도?”


진철이 씩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제 연기가 괜찮았나요?”

“네. 훌륭했습니다”

“오늘 연기가 훌륭했던 건 내가 준비해갔던 걸 백프로 그대로 해내서 그래요.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오늘 연기 말고 예전 연기를 떠 올려 보세요. 다른 점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리 대단한 연기도 아니었어요. 여전히 갈 길이 멀어요”


정수는 진철의 말대로 예전 진철의 연기를 떠 올려 보았으나 오늘 연기가 특별히 좋았다는 것 빼고는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멀었네’


연기를 보는 안목이 아직 형편없다.

정수도 매니저로써 승진해서 실장, 팀장, 본부장을 거쳐 될 수 있다면 자기 회사를 차리기를 원해 쇼 비즈니스의 세계로 들어온 사람이다.


“그럼 그 연기들의 다른 점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피곤한데 자꾸 질문을 하면 귀찮을 법도 한데 강진철 배우는 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글쎄요. 가장 좋은 건 연기를 직접 해보는 거죠. 만약 연기를 할 형편이 아니라면 연기를 많이 보는게 그 다음으로 좋은 방법 같은데요?”








정수의 질문을 받은 진철도 자기 연기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서 내 연기가 들쭉날쭉하지’


진철의 문제는 그가 어떤 감독, 작가, 배우를 만나느냐에 따라 연기의 퀄리티가 상당히 달라진다는 거다.

순발력이 없다.

촬영 전에 정한 그대로 찍는 사람들과 일을 할 때는 꽤 준수한 연기를 보이다가 쪽대본을 남발하는 작가나 현장에서 자주 상황을 바꾸는 감독, 애드립을 좋아하는 상대배우를 만나면 연기가 어색해진다.


‘계속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임기응변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임기응변은 완벽하게 준비를 마친 연기와는 달랐기 때문에 진철에 대한 평가는 업계의 사람마다 꽤나 갈렸다.

그래도 진철은 다른 사람의 눈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그 정도면 괜찮아. 문제는 내 연기 그 자체야’


그는 추구하는 바가 일반적인 사람과 배우와는 달랐다.

진철에게 있어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다음 작품을 잡을 수 있을 정도면 된다.


‘내게 중요한 건 내가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거지’


특히, 오늘.

준비했던 연기가 줄줄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흘러나왔다.

어쟀든 아직 부족한 것투성이인 진철에게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배우도 하나의 완성도 있는 영상작품을 만든다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는 스텝의 하나라고 볼 때 낙제점을 받아도 어쩔 수 없는 태도지만 그게 강진철이다.

그의 모든 정열은 자기 연기를 완성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모든 것을 도외시하고 연기에만 몰두하기 시작한 건.

그 전에도 기미는 있었지만 아마도 그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난 후였던 것 같다.


작가의말

배우 오정세님이 카메라 구도부터 자기 배역의 움직임까지 모든 걸 계산해서 연기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뭐가 바뀌면 당황하게 된다고. 

이런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대기만성인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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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024 지옥행 워터슬라이드 +5 21.11.09 1,885 44 11쪽
23 023 150개의 인물사진 +3 21.11.08 1,884 41 10쪽
22 022 마음이 착해 +2 21.11.07 1,885 41 11쪽
21 021 MAPA +1 21.11.06 1,928 44 10쪽
20 020 나도 미남 +2 21.11.05 1,957 45 11쪽
19 019 요사함이 있어 +4 21.11.04 1,912 45 10쪽
18 018 오디션 +1 21.11.03 1,935 42 11쪽
17 017 그는 배우다 +1 21.11.02 2,009 41 9쪽
16 016 눈에서 빛이나 +2 21.11.01 2,053 45 10쪽
15 015 삼국 팔검전 +6 21.10.31 2,129 54 10쪽
14 014 재현하다 +7 21.10.30 2,150 42 11쪽
13 013 300 +1 21.10.29 2,178 42 11쪽
12 012 진상들과 변호사의 의기투합 21.10.28 2,166 40 9쪽
11 011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얼굴 +1 21.10.27 2,275 45 11쪽
10 010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화가에게 +2 21.10.26 2,393 46 12쪽
9 009 망나니까지는 아닌 진상들 21.10.25 2,431 51 9쪽
8 008 미친놈들 중 제일 미친놈 +3 21.10.24 2,554 55 10쪽
7 007 일기[一技]로 관통[貫通]하다 +3 21.10.23 2,674 49 11쪽
» 006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2 21.10.22 2,761 47 9쪽
5 005 캐리어 +2 21.10.21 2,928 60 11쪽
4 004 큰 벌을 받을거야 +4 21.10.20 3,284 56 10쪽
3 003 슈퍼액터 프로젝트 +2 21.10.19 3,734 56 10쪽
2 002 체인지맨 +3 21.10.18 5,001 6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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