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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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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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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0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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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017 그는 배우다

DUMMY

진철은 바빴다.

백실장이 한 달 뒤 있다는 [삼국 팔검전]의 검씨 쌍둥이역 오디션을 잡아왔기 때문이다.

공개오디션이 아닌 몇몇 배우만을 대상으로 하는 오디션이라고 한다.

그래서 진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습실에서 한발도 나가지 않고 어떻게 연기할지 준비에 열중했다.


진철에게도 연기를 준비하는 나름의 순서가 있다.


캐릭터를 이해하는 게 먼저다.

진철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검씨 형제가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삼국 팔검전]의 작가들은 고증에 철저하고 실재 역사와 드라마 속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배치하기로 유명한 사람들이었지만 의외로 검씨 형제는 딱히 실재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은 단서는 대본의 배역 설명과 행동지문과 대사 밖에 없다.

그걸 보고 진철 나름대로 캐릭터를 구성해야 한다.


검천호가 나온다는 후반부 대본은 아직 없으니 우선 검지호부터.

1, 2화 대본은 수십번 읽어가며 분석했다.


우선 [심리층위]


“이 검지호라는 인물은 겉은 어른이지만 대사를 읽어보면 여성스러운 면도 어린애 같은 면도 있어”


진철은 보통 인물의 심리를 몇 개의 층위를 가진 것으로 구성하는데 검지호의 가장 바깥의 층위는 보통남자의 모습에 여성스러운 면 조금, 어린애 같은 면 조금을 가미하기로 결정했다.


“속에는 쾌활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있어”


조금 더 안쪽 층위의 심리도 결정했다.

보통 두 층위로 끝나지만 이 검지호는 그 밑에 본질적인 심리의 층위를 하나 더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복잡한 인물이다.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는 약육강식의 원리를 신봉하는 흉폭한 무사가 들어있어”


진철은 가장 밑에서부터 하나씩 검지호의 심리를 덮어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본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연기연습만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세상은 진철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화련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나. 간다”


그녀는 화가 답지 않게 – 아는 화가가 딱 그녀 하나이긴 하지만 - 행동력이 넘치는 사람이다.

돈 생긴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셋방과 작업실을 정리해서 짐은 친구에게 맡겨놓고 러시아 여행 계획을 다 짜 예약까지 끝냈다.

그리고, 오늘이 떠나는 날이라고 한다.


“가긴 어딜 가요. 선배, 나 얼굴 하나 더 만들어 줘야 할지 몰라요”


진철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야! 지금 비행기 타러 가는 사람한테 잘 다녀오라는 말 대신 그런 소리 하기냐?”

“알았어요. 그럼, 재미있게 놀다 와요”

“내가 놀러가니?”

“하하! 아니예요? 그림 보며 놀러 여행가는 거 아닌가?”

“화가에게 미술관 여행은 놀러가는 게 아니야. 낮에는 미술관에서 그림 보면서 모사하고, 밤에는 숙소에 돌아가서 또 모사하는 날의 계속이야. 노동이라고”

“너무 그림만 그리지 말고 좀 즐기기도 해요”

“네가 할 소리냐? 너나 연기만 하지 말고 좀 즐겨. 어쨌든 갔다 와서 그림 그려 줄게 너도 나 돌아올 때까지 돈 많이 벌어 놓고 있어”


다시 연기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또 방해하는 게 있었다.

이번에도 전화.

서울 중부경찰서 강력계에서 온 전화였는데 잠시 출두를 해서 진술을 한 번 더 해달라고 하니 이번에는 전화로 끝나지 않고 진철이 결국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일단 가겠다고 대답을 한 진철은 전문가에게 전화를 해 상담을 했다.







진철이 중부경찰서 강력계 최규황 형사를 만났을 때의 분위기는 딱히 심문 같지는 않았다.


“전화로 말씀드린 대로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어서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는 사진 한 장을 들어 보였다.


“여기 보시면 차 두 대, 앞의 본네트와 옆쪽 상단의 차대에 발자국이 나 있는데 이건 어떻게 된 일인지 아시나요?”


철판이 구겨진 승합차 두 대의 사진.

조폭들이 어떻게 된 일인지 진술을 했을 텐데 굳이 진철을 다시 부른 것은 아마도 그들의 진술이 믿어지지 않아서 일 것 같다.

백변호사님은 혹시 약간의 기물파손을 했다고 해도 불리할 건 없으니 사실대로 말하면 된다 했다.


“네. 제 발자국이 맞습니다”


형사는 사진과 진철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죠?”

“이것저것 여러가지 무술을 배웠습니다”


형사는 증명을 해보라고 까지는 하지 않고 몇 가지 쓸데없는 걸 묻더니 슬그머니 별것 아닌 것처럼 물었다.


“그 상대편 사람들 지금 병원에 있는데 뭔가 아는 것 있나요?”


백변호사님은 상대방이 상해를 입은 것에 대한 건 시치미를 떼라고 했다.


“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진철도 그들에 대해서는, 그리고 그 때 싸웠던 건 다시 생각하기도 싫었다.

누군가는 자기가 가진 힘을 휘두르는 걸 즐길지 모르지만 적어도 진철에게는 절대로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그 한 번으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천재적인 무술재능을 가진 그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누군가를 때린다는 건 진철과 절대로 맞지 않았다.


“강진철씨가 그 친구들과 싸우지 않았나요? 그 사람들 지금 몸이 많이 좋지 않은데”


진철의 이마가 저절로 찌푸려졌다.


“싸웠다고 하기는 좀 뭐하죠. 습격당한 건 저희들이고, 저는 무기를 쳐서 떨어뜨리기는 했지만 그 사람들 몸에는 손끝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들 그렇게 몸에 힘이 없다고 하소연들 할까요?”

“그거야 의사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모르죠. 그 사람들 혹시 제가 때렸다고 하나요?”

“그렇지는 않은데. 강진철씨 때문에 그렇다고 하던데요?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돼서요”


그 조폭들도 영문을 모르는 게 확신하다.


“그 사람들, 몸에 내게 맞았다는 상처라도 있나요?”

“아니요”


진철이 피식 웃었다.


“그럼, 제가 한 짓은 아니네요”

“그렇기는 한데. 강진철씨 아니면 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누가 알까요?”

“확실한 건 나는 아니라는 겁니다”


조폭들이 몸이 좋지 않다고 호소하는 것은 진철이 건혈[建血]을 찍어서 그렇다.

워낙 빠른 손의 속도 때문에 당사자인 조폭들도 느끼지 못했다.

가슴의 건혈은 훈혈[薰血]의 일종으로 심장과 폐의 기능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상이 생겨 기가 통하지 않으면 몸에 피도 적게 돌고 산소 역시 평소보다 적게 흡수한다.


‘고산병에 걸린 것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평소보다 훨씬 더 피로하고 힘이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 적응을 하기는 하겠지만 영원히 이전과 같은 몸 상태가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진철이 기를 익히기 위해 수집한 고서적에서 배운 내용이다.

이전에는 내용을 알고 있어도 침을 사용해야 겨우 사용할 수 있는 기법이었는데 기를 사용하자 맨손으로도 쓸 수 있었다.

그것도 침을 쓸 때 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아마도 그 조폭들은 진철이 풀어주기 전에는 절대로 몸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 거다.


‘내가 없었으면 형들은 그놈들에게 끌려가서 지금쯤 서해 바다 어디쯤 가라앉아 있을 수도 있는데 뭐가 불쌍하다고 치료해 줘? 평생 다른 사람 못 괴롭히게 혈기를 좀 죽이는 게 더 나을 거야’


자업자득.

전혀 불쌍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싸움을 싫어하는 것과 별개로 진철은 조폭들의 혈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진철은 다시 연습실에 돌아와서 연기 연습을 시작했다.


‘검지호가 사용하는 무술은 어떤 걸까? 검을 사용한다고 되어 있는데. 작가들이 무술에 대해서까지 설정을 하지는 않았겠지?’


그래도 오디션에서 무술 실력을 보거나 운동신경을 테스트하기는 할 거다.


‘무술감독은 검술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일까? 내 나름대로 준비를 해야 하나? 삼한제일검이라고 하니 검술을 준비하는 게 좋겠지?’


진철도 검술을 아는 게 몇 개 있다.


‘예도’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검술의 하나다.

도라고 되어 있지만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약간 휘어진 예검[銳劍]을 사용하는 검법이다.

진철이 한창 기와 경락을 콘트롤 할 수 있는 무술들을 찾을 때 익혔던 무술의 하나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검법.

이것은 온전한 검법을 다 얻은 것은 아니고 종이 하나에 달랑 검법의 기수식 열두개만이 그려진 게 전부였다.

검법의 이름도 시전 방법도 없지만 진철이 보기에 그것은 고도의 세련된 검법이었다.

온전하게 펼쳐 냈을 때의 위력은 예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종이 상태로 보아 진철은 그 검법이 적어도 고려 이전에 만들어진 검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진철은 우선 검지호의 오디션에서 예도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오디션에서 사용할 검도 준비를 할 생각이다.


‘그나저나 작가가 검지호와 검천호의 인상을 어떻게 설정했을까?’


미남과 나쁜놈 얼굴이 작가의 생각과 잘 들어맞으면 좋겠다.

그 두가지 얼굴을 연기에 사용했을 때 시청자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벌써 궁금해진다.


‘두 얼굴 다 카리스마가 대단하니까’


매사에 덤덤하기는 해도 진철 역시 배우가 맞다.

어떤 배우보다 더 연기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은 그런 열정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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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024 지옥행 워터슬라이드 +5 21.11.09 1,885 44 11쪽
23 023 150개의 인물사진 +3 21.11.08 1,885 41 10쪽
22 022 마음이 착해 +2 21.11.07 1,886 41 11쪽
21 021 MAPA +1 21.11.06 1,929 44 10쪽
20 020 나도 미남 +2 21.11.05 1,957 45 11쪽
19 019 요사함이 있어 +4 21.11.04 1,912 45 10쪽
18 018 오디션 +1 21.11.03 1,935 42 11쪽
» 017 그는 배우다 +1 21.11.02 2,010 41 9쪽
16 016 눈에서 빛이나 +2 21.11.01 2,053 45 10쪽
15 015 삼국 팔검전 +6 21.10.31 2,130 54 10쪽
14 014 재현하다 +7 21.10.30 2,150 42 11쪽
13 013 300 +1 21.10.29 2,178 42 11쪽
12 012 진상들과 변호사의 의기투합 21.10.28 2,166 40 9쪽
11 011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얼굴 +1 21.10.27 2,275 45 11쪽
10 010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화가에게 +2 21.10.26 2,393 46 12쪽
9 009 망나니까지는 아닌 진상들 21.10.25 2,431 51 9쪽
8 008 미친놈들 중 제일 미친놈 +3 21.10.24 2,554 5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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