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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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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연재수 :
1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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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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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4
글자수 :
645,036

작성
21.10.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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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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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글자
11쪽

011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얼굴

DUMMY

“화련선배”

“애쉴리. 애쉴리라고 불러”

“네. 애쉴리 선배. 그림 좋아요. 만족했어요. 살게요”


겉으로는 자신만만한 척했지만 속으로 조마조마하고 있었던 애쉴리는 그림이 팔리자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하아~!”


이번에도 퇴짜 맞으면 생활비가 간당간당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돈 엄청 쓰지 않았어요? 웹툰 작가들처럼 이런 유화 말고 디지털 장비로 그림을 그리고 포토샵 같은 걸로 수정하면 더 쉽게 그릴 수 있지 않아요? 그러면 물감이나 캔버스 값도 아낄 수 있을텐데”


진철은 초상화라는 예술작품을 원하는 게 아니고 테마에 맞는 인상적인 얼굴이 필요한 거니까 꼭 비싼 유화로 그림을 그려 줄 필요가 없다.

애쉴리가 씽긋 웃더니 말했다.


“나는 유화로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좋은 작품이 나와. 계속 그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유화 실력이 죽어버리고 말아. 그리고, 네가 나중에 채플린이나 로렌스 올리비에 같은 역사에 기록이 될 명배우가 되면 이 그림들은 어떤 값어치를 가지게 될까? 그러면 내 이름값은?”


칭찬이다.

애쉴리는 진철 자신보다 더 진철을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


“아부해 봐야 그림 값을 더 쳐주지는 않을 건데요?”


좀 쑥스럽다.


“다른 배우들은 다른 사람에게 배운 연기를 하지. 하지만 넌 네게 맞는 연기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어”


진철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러면 좋았겠지만. 태양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 하잖아요? 내가 연기하는 방법도 이미 세상에 있는 거예요. 조금 다를 뿐이죠”


비록, 그 조금 다른 것 때문에 엄청 고생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방법을 네가 쫓아가는 게 아니잖아. 네가 길을 찾으니 우연히 길이 겹친 거지”


백퍼센트 확신하는 말투다.

그리고, 진철도 그건 인정했다.


“그렇기는 해요. 그런데 선배는 어떻게 나를 그렇게 잘 이해하죠?”

“왜냐하면 너는 나와 비슷하니까”

“어떤 면에서요?”


진철은 화련선배와 자기가 비슷한 면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노력파인 자신과 다르게 전형적인 재능파인 사람이다.


“너도 자꾸 엉뚱한 짓 해서 교수님들에게 미움 받았잖아? 나도 그랬으니까”

‘누나가 무슨 엉뚱한 짓을 해요? 학교 열심히 다닌 걸로 알고 있는데. 그리고 재능도 이렇게 어마어마한데”


진철이 거의 사진같아 보이는 자신의 초상을 가리키자 애쉴리가 희미하게 웃었다.


“현대 미술계에서 이런 그림은 좋은 평가를 못 받아. 하지만 나는 이렇게 그리는 걸 좋아하거든. 그래서 교수님들에게는 내가 재능을 낭비하고 있는 걸로 보이나 봐”

“추상화 같은 현대회화는 안 좋아해요?”

“맞아. 나한테 추상화는 그냥 낙서로만 보여”


진철은 배우로써 김화련이라는 화가의 내면에 굉장히 큰 흥미를 느꼈다.


“저한테도 추상화들은 거의 어린애가 발로 그린 그림 같아 보이기는 하죠. 하지만 전문가들이 현대미술은 의미를 중요시한다고 한다면 그걸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래야 인정을 받죠”


애쉴리가 갑자기 울컥 하며 말했다.


“지랄! 예술은 딱 봤을 때 아! 하고 오는 게 있어야 예술이지. 이게 왜 좋은 작품인지. 염병! 이게 왜 대단한지 설명해야 하는 예술이라니 그것보다 더 비참한 게 있을까?”

“딱 봤을 때 쓰레기면 그건 그냥 쓰레기라는 말인가요?”

“내게 있어서는”

“교수님들에게 미움 받을만 했네요. 그분들 대부분이 현대회화를 하는 분일 텐데요”


그래도 진철은 화련선배의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학교 다닐 때 미술시간에 배웠던 유명한 그림들보다.


“소위 전문가들은 나를 낡은 예술을 한다고 하지. 하지만 두고 봐. 언젠가 대중이 날 인정할 거야.그리고 대중이 인정하면 결국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평은 한 푼의 가치도 없어지는 게 예술의 세계니까”


화련선배의 눈동자는 박력있게 빛나고 있다.


“또, 너 같은 후원자도 있으니까”


그 말에 진철은 좀 부담을 느꼈다.


“나는 절대로 누나를 후원하는 게 아닌데요? 그냥 내가 원하는 능력을 누나가 가지고 있으니 그걸 사는 것뿐이죠”

“미술계에서는 그런 사람을 후원자라고 해”

“뭐, 어쨌든. 그림 값은 지난번처럼 보내드려요?”

“응”


진철은 바로 계좌이체로 돈을 보냈다.

어제 받은 [캐리어]의 출연료 거의 전부였다.


[띠링!]

“왔다!”


애쉴리는 계좌잔고를 보면서 행복해했다.


“예술가가 돈을 너무 좋아하는 것 아녜요?”


그건 진철에게도 꽤나 거금이었다.


“너도. 며칠 굶어보면 돈 좋아할 거야. 그리고, 이 돈은 나를 러시아로 보내 줄 거니까 더 좋아하는 거지”

“러시아요?” 갑자기?”

“[이반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이 복원을 마치고 다시 전시되기 시작했다고”


얼마나 좋은지 화련선배의 온 얼굴이 웃음이라 진철도 따라 웃게 되었다.


“그렇게 말하면 나는 모르죠”

“그 그림은 러시아 황제 이반 뇌제[雷帝]가 미쳐서 자기 손으로 아들인 황태자 이반을 죽인 후 아들의 머리를 끌어안고 절규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야. 워낙 인간의 광기와 절망과 슬픔과 후회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잘 표현해서 상처에 흐르는 피의 붉은 색을 진짜 피로 그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걸작이야. 내가 이번에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오겠다는 거 아냐”


생각만해도 신이 나는지 화련선배는 어린애처럼 팔을 앞뒤로 휘둘렀다.


“그런데 그 그림은 왜 복원한 거예요? 보관을 잘 못해서 곰팡이라도 슬었어요?”


화련선배의 눈이 또 반짝 빛났다.


“그 그림은 보는 사람의 정신을 나가게 하는 저주받은 걸작으로 유명해. 관람객이 그림을 훼손하려고 덤빈 게 벌써 세번인데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은 2018년이야. 이번에 그게 복원되어 이번에 다시 전시를 한다고. 그것 외에도 러시아에는 보고싶은 그림들이 넘쳐나지. 나는 이 돈으로 러시아에 가서 육개월 동안 미술관을 돌아보고 올 거야”

“육 개월이요?”


생각보다 더 긴 시간이다.


“그 정도는 돼야. 보고싶은 걸 마음껏 보고 오지. 그림을 보면서 모작도 해보고”


생각해보면 화련선배는 지난번 첫번째 진철의 초상을 판 후에도 연락이 끊겼었다.


“지난번에는 어디 갔었어요?”


합리적 의심이다.


“지난번에는 영국에 갔었어. 테이트 미술관에 있는 [오필리아]를 보려고”

“그 그림은 어떤 특별한 점이 있는데요?”


이번에는 신이 나 속사포처럼 말하던 전과 또 반응이 다르다.

그림을 보던 때를 회상하는지 눈을 감고 시를 읊듯이 느릿하게 말했다.


“오필리아는 햄릿의 약혼자야. 소설에는 미쳐서 연못에 빠져 죽는 걸로 나와. 그것도 천천히 천천히. 그림은 그녀가 연못에 잠겨드는 그 순간을 그리고 있어. 오필리아는 미쳐서 자기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은 공허한 눈을 하고 있지만 그 표정에는 참을 수 없는 처연함이 담겨있었지”


진철은 점점 그녀가 말한 그림들에 관심이 가는 걸 느꼈다.


“정말 그 그림들이 그렇게 강렬한 느낌을 주나요? 학교 다닐 때 미술시간에 사진으로 여러가지 그림들 봤는데 잘 모르겠던데요?”


연기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직접 봐야 해. 사진 따위로는 그 박력을 전할 수 없다고. 그리고, 축복받은 눈이 있어야지. 나는 누구보다 그 그림들이 내뿜는 광채를 잘 알아볼 수 있어.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야”


그 [오필리아]라는 그림에서 받은 감동을 떠올리고 있는지 꼭 감은 그녀의 눈꺼풀 사이로 희미하게 눈물이 베어 나오는 것 같다.

그녀는 눈을 뜨며 한숨처럼 내뱉었다.


“그런 초월적인 감성을 어떻게 그림에 담았을까?”

“재능 아닐까요?”


갑자기 화련선배가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


“재능? 당연한 소릴. 하지만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 다시없을 천재인 미켈란젤로도 천지창조를 그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어. 실제 그림을 다 그렸을 때는 거의 불구가 됐지. [오필리아]를 그린 존 애버렛 밀레이는 오필리아도 아닌 그 배경을 완성하려 애월의 흑스밀 강에 나가 매일 그림을 그리다 얼어 죽을 뻔했다고”


화련선배는 진철에게 얼굴을 바싹 가져다 대며 말했다.


“판돈을 크게 걸어야 크게 얻는 법이야. 천재라도 목숨을 걸어야 걸작을 만들 수 있지”


눈에 언뜻 광기까지 비치는 것 같아서 진철은 불안해졌다.


“그런데요?”

“너도 배우로서 희로애락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그림 공부가 필요해. 그러니까 러시아에 같이 가자. 내가 그림에 대해 잘 설명해 줄게”


진철이 냉담하게 대답했다.


“안가요”

“야! 가자. 혼자가면 이동할 때 너무 심심하단 말야”


헛소리를 더 하기 전에 화련선배를 연습실에서 쫓아냈다.

그리고 원룸으로 돌아가려 할 때 김상만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

“네가 그렇게 말할 때는 뭔가 부탁을 할 게 있을 땐데?”

“무슨 섭섭한 소리. 너 지금 시간 있냐? 있으면 지금 이리로 좀 와라. 물론 올 때는 양 손 무겁게”







진철은 [백결영화] 사무실에 들러 김혁철에게 설명을 들었다.


“그러니까. 내 사진으로 사람들에게 의혹을 불러 일으켜서 노이즈 마케팅을 하자는 말이네?”

“맞아. 이 사진 속 남자라면 가능해”

“당사자를 앞에 두고 왜 남 얘기하듯 해? 그 얼굴이 내 얼굴이야”

“네 얼굴이기는 한데”


김혁철은 무슨 말을 할지 우물쭈물하다가 사진을 진철의 얼굴 옆에 가져다 대고 다시 확인했다.


“참 희한하네. 분명이 진철이 너 맞는데. 어떻게 이렇게 변하지?”

“맞아. 맞아!”


옆에서 유진까지 맞장구를 친다.

진철이라도 원래 주제로 돌아가야 했다.


“먼저 이 미남 사진을 매스컴과 이곳저곳에 흘려서 이게 CG인지, 분장이나 조명 때문인지, 포토샵으로 만든 건지 의혹을 불러 일으키자는 말이지?”

“맞아. 그 다음 짧은 영상 짤, 영화 현장의 메이킹 필름을 차근차근 푸는 거야. 그럼 논란이 계속 이어질 거야. 논란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 때 타이밍 맞춰서 상만이 영화를 개봉하고 네가 나온 내 CF 광고를 시작하면? 모두에게 행복한 결과를 가져오는 거지”

“맞아. 맞아. 의혹은 논란의 가장 좋은 친구니까”


유진이 또 맞장구를 친다.

좋은 계획이지만 맹점이 하나 있다.


“그 모든 건 이 사진이 논란이 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냐?”

“이 사진 속 남자는 취향을 타지 않을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어. 거기에 카리스마까지. 당연히 관심을 끌지”


혁철이 팔짱을 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 얼굴을 만들어낸 화련선배가 그림에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는 했다.


“그러니까 당사자를 앞에 두고 제삼자 말하듯이 하지 말라니까 그러네”








진철이 생각해 보겠다고 한 뒤 원룸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계약서 찾았어?”

“진철아!”


목소리가 이상하다.


“왜?”

“그 새끼, 사무실과 장비들 통째로 가지고 도망갔다”


나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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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024 지옥행 워터슬라이드 +5 21.11.09 1,885 44 11쪽
23 023 150개의 인물사진 +3 21.11.08 1,884 41 10쪽
22 022 마음이 착해 +2 21.11.07 1,885 41 11쪽
21 021 MAPA +1 21.11.06 1,928 44 10쪽
20 020 나도 미남 +2 21.11.05 1,957 45 11쪽
19 019 요사함이 있어 +4 21.11.04 1,912 45 10쪽
18 018 오디션 +1 21.11.03 1,935 42 11쪽
17 017 그는 배우다 +1 21.11.02 2,009 41 9쪽
16 016 눈에서 빛이나 +2 21.11.01 2,053 45 10쪽
15 015 삼국 팔검전 +6 21.10.31 2,129 54 10쪽
14 014 재현하다 +7 21.10.30 2,150 42 11쪽
13 013 300 +1 21.10.29 2,178 42 11쪽
12 012 진상들과 변호사의 의기투합 21.10.28 2,166 40 9쪽
» 011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얼굴 +1 21.10.27 2,275 45 11쪽
10 010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화가에게 +2 21.10.26 2,393 46 12쪽
9 009 망나니까지는 아닌 진상들 21.10.25 2,431 51 9쪽
8 008 미친놈들 중 제일 미친놈 +3 21.10.24 2,554 5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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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05 캐리어 +2 21.10.21 2,928 6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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