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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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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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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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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28 징조가 좋다

DUMMY

장미는 겉으로 보기에는 호리호리해서 여리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드센 성격으로 누구와 말싸움을 해서 밀릴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불 같은 장미에게도 상극이 존재했는데 바로 물 같은 주리선배다.

언제나 조근조근 말을 하면서 자기 의견을 끊임없이 몰아치는 주리선배는 항상 먼저 흥분해서 소리를 높이는 장미의 카운터 펀치였다.


“아직 리딩 시간 좀 남은 것 같은데, 우리 같이 나가서 커피 한 잔하면서 내가 어떻게, 왜, 놀라게 했는지 얘기를 해 보자”


이번에도 똑 같은 패턴이었다.

조근조근 압박해오는 주리선배의 말에 장미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몸을 살짝 떨었다.


“아니! 조금 있으면 작가님들과 피디님 올 거야. 선배님들도 오면 인사해야 하니까 나중에 얘기해. 언니”

“갑자기? 너, 방금 전에 진철이랑 밖에 나가자고 한 거 아냐?”

“그랬는데 내가 잠시 착각한 것 같아. 지금 나가면 안 될 것 같아. 앗! 저기 작가님들 온다. 가서 인사 해야지”


급하기 자리를 뜨는 장미를 보며 주리선배가 말했다.


“장미는 맨날 덤벙거려, 말 바꾸기도 잘하고, 진철이 너는 좀 생각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는지 모르겠지만 저 왕고집 장미가 말을 바꾸는 경우는 주리선배와 관련된 경우 밖에 없다.


“우리도 작가님들과 감독님에게 인사를 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천문상의 말에 주리선배가 말했다.


“리딩 시작하면 하나씩 일어나 인사할텐데 굳이 저 복잡한 곳으로 들어가자고? 우리는 다른 선배님들에게나 인사하자”


주리 선배는 장미와 다른 의미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데 진철이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나와 닮았지’


누나가 있다면 이런 재미있는 누나가 있었으면 했다.







리딩이 시작되었다.

물경 600억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삼국 팔검전]에는 진철이 평소에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배우들이 많았고 그가 모르는 배우들도 모두 굉장히 치열한 오디션을 뚫고 캐스팅되었다 들었다.

그래서인지 노년과 중년, 청년 배우들, 심지어 주인공들의 아역을 맡은 애들도 어색한 리딩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대본은 가끔 확인만 하고 고개를 들어 상대역 배우와 눈을 맞추며 대사를 쳤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대사들은 듣는 사람의 귀에 찰떡같이 들러붙었다.

처음의 어수선한 시간이 지나자 리딩은 점점 열기를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철이 첫 대사를 읽을 때가 다가오자 대본 리딩 장 안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대본리딩 현장의 중앙에는 감독과 작가들, 그리고 주요배우들이 앉아있고 그 다음 열에는 조연배우들이 앉아있다.

그 다음 열, 벽과 창문 근처에 놓인 의자들과 출입문의 근처에는 배우들 소속사의 매니저들과 제작사 관계자들, 투자사에서 나온 사람들이 앉아있다.

그들은 당연히 모두 다 요즘 핫한 진철에 대해 알고 있다.

일반 사람들은 진철의 얼굴 변신 능력을 ‘세상에 이런 일이’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이 연예계 종사자들은 다르다.

연기 관련으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그들은 한 발 더 나아간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얼굴의 인상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게 연기하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그들은 안다.

연기라는 것은 인상, 즉 비주얼 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에 많은 걸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진철의 연기실력이 크게 늘었을 것으로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삼국 팔검전]의 오디션에 대해 들은 게 있다.

진철이 오디션 때 굉장한 연기를 해서 나이대가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배역을 따 냈고 대본까지 수정하도록 만들었다고.


이 두 가지 사실은 사람들에게 진철이 검지호 연기를 기대하고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신경우 피디는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강진철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태반이겠지?’


그의 이전 작품의 첫 리딩 때 보다 오늘, 훨씬 더 많은 관계자들이 리딩 현장을 메우고 있다.

물론 그들이 강진철을 보러 온 건 아니다.

전부 자기들 배우와 돈이 투자가 된 관계로 온 사람이지만 저들 머리 한 구석에는 강진철이라는 요즘 핫한 인물이 어떤 연기를 하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도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도 궁금했다.


‘그 오디션 때의 그 기괴하고 요상한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더 강하게?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다르게?’


신피디도 기대감을 가지고 강진철을 주시했다.







진철의 연기는 기본적으로 변신이다.

일반적인 변신은 배우가 배역으로 변신을 하지만 진철의 경우 배역이 진철로 변신을 한다.

처음에는 꼭두각시 인형 같이 부자연스럽던 진철의 변신은 150개가 넘는 배역을 만들어가며 발전했다.

그리고 거기에 기[氣]의 작용이 더해져 이제 완숙하고 자연스러운 경지에 도달했다.

이제 그걸 공식적으로 세상 사람에게 보여줄 때가 되었다.

가슴이 살짝 두근거린다.


[호~!]


진철은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쉰 후 검지호의 심리위계를 덮어쓴 후 대본에 두고 있던 시선을 들어 신라의 권력자 각간 김위홍의 배역을 맡은 노배우를 보았다.

눈꼬리를 살짝 날카롭게 만들고 눈에 기[氣]를 돌려 능글맞으면서도 가볍고, 그러면서도 저 깊은 곳에 서늘하고 포악한 짐승을 감춘 검지호의 눈빛을 연기했다.

근육에 미약한 긴장이 흘러 몸의 균형점이 이동해 자세가 변했고 다리는 창니보를 밟을 수 있는 위치로 슬쩍 움직였다.

언제라도 어떤 방향으로라도 튀어나갈 수 있는 무사의 자세가 되었다.

다음 대사를 칠 진철에게 집중하고 있었던 사람들 모두가 그 눈빛을 읽고 변한 몸의 자세를 알아챌 수는 없어도 배우 진철의 분위기가 변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주변의 긴장감이 올라간 그 순간 진철이 대사를 쳤다.


“그니까! 내가 그랬잖아요. 몇 번을 얘기해요”







진철이 만들어 낸 검지호의 목소리는 남자치고 살짝 높은 톤에 짜증이 약간, 그리고 자기가 잘났다는 젠 체가 섞여있다.

굉장히 평범한 대사, 그 대사를 하는 목소리를 떼어 놓고 보면 이상할 것은 없다.

이상한 점이 있다면 그리 크지 않게 말을 했는데 그 커다란 방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그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다는 것 그 뿐이었다.

신피디는 주변을 돌아봤다.

배우든 스텝이든 다들 진철을 보고 있다.

평이한 대사로 이정도 주목을 이끌어 냈다는 건 대단했다.


‘어떻게 한 거지? 딕션이 뚜렷하기는 하지만’


발음이 좋은 배우는 얼마든지 있다.

리딩이 이어졌다.


계속 진철을 주의 깊게 관찰하던 신피디는 리딩이 진행이 되면서 검지호의 목소리가 묘한 리듬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배우들의 진중한 사극 톤 대사와 현대의 것과 비슷한 검지호의 대사가 그 리듬감 덕분에 어색하지 않게 어울린다는 것도.

진철의 연기가 튀는 대사 톤을 납득할 수 있는 설득력을 만들어냈다.

어울리지 않는 것을 굳이 어울리게 만든 결과 묘한 흡입력과 존재감이 검지호에게 부여됐다.


‘그렇지!’


그 결과 진철이 대사를 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은 자기들도 모르게 그를 향했다.

그게 신피디의 분석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신피디와 같이 진철의 연기를 분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배우들은 길지도 않은 진철의 대사가 장내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렸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배우들은 그 분위기에 호응했다.

안그래도 첫 대본리딩에 집중해서 날이 서 있던 배우들의 대사는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기백을 발산했고, 용이 구름 속에서 꿈틀거리는 듯한 울림을 주변에 전했다.

현장의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고 그것을 보고 있는 관계자들의 마음 또한 기대감으로 달아올랐다.


신경우 피디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모두 자기 배역에 빠져들었어’


리딩을 들으며 대사를 조금이라도 더 배우들에게 어울리게 고칠 수 있을지 고심을 하는 두 작가들은 집중하느라 미간을 찌푸리고 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맺혀 있다.

제작사의 인사들도, 투자사에서 나온 사람들도, 방송플랫폼 뉴플렉스의 담당자도 모두가 기대치가 올라갔다.







리딩이 끝나 집중이 풀리고 긴장이 가시자 사람들의 얼굴에는 공통적인 표정이 떠 올랐다.

기대감이다.

그들 모두 대본리딩이 드물게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걸 느꼈다.

피디나 작가가 리딩 중간에 진행을 끊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배우들 모두 빙의라도 한 듯 귀신 같은 연기를 해냈다.

현장에서 딱 이정도만 연기가 나와도 굉장한 명작드라마가 나올 것 같다.


모두들 기대감에 들떠 있다.

여기저기서 웃음 소리가 튀어나오고 이 드라마가 얼마나 성공을 하게 될지 예견하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신경우 피디가 진철에게 다가와 말했다.


“강진철씨. 아까 리딩 정말 좋았어요. 오디션때는 없던 묘한 리듬이 있던데 그건 어떻게 된 거죠?”


대본 리딩을 끊고 물어보고 싶던 말이지만 애써 참고 있었다.


“요즘 몸을 가볍게 움직이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그게 대사에도 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세상사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 맞다.

정말 전분물 위를 춤추듯 뛰어다닌 게 대사의 리듬감에 도움이 되었다.


“강진철씨 요즘 최고로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거, 정말 예감이 좋아요. 우리 드라마가 아직 크랭크업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고”


신피디가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다.


물론 진철의 연기력이 굉장히 늘어난 것도 아주 기분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이 [삼국 팔검전]라는 대작 드라마에 캐스팅된 괴물 같은 명배우들 중에는 진철 못지않은 리딩 모습을 보인 사람들도 꽤 있었다.

특히 궁예역을 맡은 김명우가 사람들에게 소리치는 부분에서는 전율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런데도 신피디가 과도하게 좋아하는 이유는 진철이 근래 이슈가 되는 것이 좋은 징조[徵兆]이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특성상 이 업종의 종사자들은 모두 운이라는 걸 신봉하는 사람들이다.

설사 처음에는 그렇지 않던 사람이라도 시간이 지나다 보면 저절로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걸 다 털어 넣어 작품을 기가 막히게 잘 뽑아도 참여한 배우 한 명의 스캔들 한 번으로 매장당할 수 있는 게 이 쪽이다.

그런 경우를 몇 번 보고 듣고 경험하다 보면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운때가 맞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을 할 수 없다는 걸 믿게 된다.

운이 상승하는 배우가 함께한다는 건 그 배우의 능력을 떠나서 운을 끌고 들어온다는 면에서 아주 중요하다.

신피디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진철은 촬영이 시작되면 그 기대를 바꿔줄 생각으로 기대를 하고 있다.


‘나는 실전파니까’


물론 다른 배우들도 촬영 현장에서는 대부분 리딩 때 보다 연기를 더 잘한다.

하지만 진철의 연기 매커니즘 특성상 주변의 모든 환경이 다 갖추어졌을 때는 다른 배우들보다 그 연기가 더 빛을 발하게 되어있다.


‘카메라 앞에서 훨씬 더 집중력이 올라가기도 하고’


슈퍼 액터 프로젝트가 경지에 도달하고 난 후 가장 많이 변한 것이 그것이다.

처음 잘생김을 연기한 것도 카메라 앞이었고, 그 뒤 연습할 때 보다 실전 때 진철은 더 실력을 보였다.

얼마전 류승철 감독의 단편을 찍을 때, 혁철과 CF를 찍을 때 그것은 더 확실해졌다.

이제 진철은 현장에서는 대본리딩 때 보다 몇 배는 더 잘해낼 자신이 생겼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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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027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날 +4 21.11.12 1,792 43 13쪽
26 026 이제는 질투 안 해 +2 21.11.11 1,803 41 13쪽
25 025 미스테리한 남자 +3 21.11.10 1,846 50 10쪽
24 024 지옥행 워터슬라이드 +5 21.11.09 1,884 44 11쪽
23 023 150개의 인물사진 +3 21.11.08 1,884 41 10쪽
22 022 마음이 착해 +2 21.11.07 1,885 41 11쪽
21 021 MAPA +1 21.11.06 1,928 44 10쪽
20 020 나도 미남 +2 21.11.05 1,956 45 11쪽
19 019 요사함이 있어 +4 21.11.04 1,912 45 10쪽
18 018 오디션 +1 21.11.03 1,934 42 11쪽
17 017 그는 배우다 +1 21.11.02 2,009 41 9쪽
16 016 눈에서 빛이나 +2 21.11.01 2,053 45 10쪽
15 015 삼국 팔검전 +6 21.10.31 2,129 54 10쪽
14 014 재현하다 +7 21.10.30 2,149 42 11쪽
13 013 300 +1 21.10.29 2,178 42 11쪽
12 012 진상들과 변호사의 의기투합 21.10.28 2,166 40 9쪽
11 011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얼굴 +1 21.10.27 2,274 45 11쪽
10 010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화가에게 +2 21.10.26 2,393 46 12쪽
9 009 망나니까지는 아닌 진상들 21.10.25 2,430 5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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