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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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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연재수 :
1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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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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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4
글자수 :
645,036

작성
21.10.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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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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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10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화가에게

DUMMY

진철의 생각대로 전세금까지 빼서 쓴 형과 두 친구는 진철의 집에서 한동안 신세를 좀 지자고 찾아온 것이었다.


“너도 알겠지만 우리는 거의 일하는 사무실에서 밤을 샐 건데 그래도 가끔 나와서 씻고, 세탁도 좀 하고 할 곳도 필요하고”


성철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자기 생각을 하던 진철이 말했다.


“계약서 어디 있어?”

“계약서? 그건 회사 금고에 있지”

“형들 계약서가 회사 금고에 있다는 거야?”

“응”


형의 무심한 대답에 진철의 미간이 꿈틀했다.


“왜 거기다 보관한 거야?”

“거기가 가장 안전하니까. 우리가 지금 전세금까지 빼서 투자를 하는 바람에 네 집에서 한동안 신세를 좀 지려고 하는 거잖아. 그런데 여기도 금고는 없을 것 같아서”

“그 금고라는 거. 그 사장이라는 선배가 열 수 있는 거야?”


형과 두 형 친구는 잠깐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형이 대답했다.


“응”


목소리가 침중한 걸 보니 형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깨달은 것 같다.


“그럴 줄 알았다. 인간아. 밥 먹고 빨리 가서 계약서부터 가져와”

“응. 알았어. 그래도 그 사장 형이 계약서를 가지고 뭔 짓을 하지는 않을 거야”


진철은 그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그러면 다행이고. 어쨌든 내가 확실하게 말하는데 계약서 가져오면 내가 따로 변호사와 계약서를 검토할 거야. 그리고 아무런 이상이 없는 계약서라는 전제 하에 권리관계를 다시 조정할 거야. 형들은 그러면 그 회사에 단순히 직원으로 남는 거야. 여기까지는 이해하지?”

“응”

“응”

“응”


반발은 없었다.

양심이 있으면 반발하면 안 된다.







형과 친구들 세 사람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 한국대학교의 컴퓨터 공학부를 나와 한국을 지배하는 인터넷 플렛폼 기업에 입사해서 잘 다니고 있었다.

아니, 진철은 잘 다니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날 세 사람이 거지꼴로 나타나 원룸에서 같이 살게 해 달라고 했다.


진부한 이야기였다.


과하게 줄이면 세 사람은 아는 지인의 꼬임에 회사를 나와 동업으로 회사를 세웠는데 그 지인에게 뒤통수를 맞아 그들이 개발했던 기술과, 회사까지 다 뺏기고 쫓겨났다는 이야기다.


진철은 형들을 데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법무법인에 가서 비싼 돈을 주고 상담을 받았으나 재판을 하면 백프로 진다는 단호한 대답을 들었다.

변호사가 돈을 벌 기회를 마다할 정도로 형들은 완벽하게 당했다.

아니, 진철이 보기에는 이 관심있는 분야 외에는 아무런 생각 자체가 없는 바보들이 스스로 당한 거다.

그 회사의 사무실에서 찍은 사진 한 장 없는 세 형들은 자기들이 그 회사에서 일을 했다는 최소한의 입증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계약서 한 장 안 쓰고 일을 했냐 물어보니 대답이 가관이었다.

자기들이 그 기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으니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걸로 자기들이 개발자임을 입증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변호사가 혀를 차며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세 분이 그 회사의 기밀 기술을 알고 있다는 건 도리어 산업스파이로 몰려 고소를 당할 빌미일 뿐입니다. 그 쪽에서는 아마 세 분이 고소해 오길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저였다면 기다리기 전에 먼저 고소해서 세 분이 지금 입고 있는 옷까지 다 털어먹었겠지만”


결국 진철은 길길이 날 뛰는 형들을 말려 고소하는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진철은 변호사와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관심도 없던 형들의 전문분야에 대해 조금 자세하게 알게 되었고 좋은 아이디어를 하나 떠 올렸다.

그가 몇 년 동안 진행하고 있던 [슈퍼액터 프로젝트]와 세 사람의 전문분야인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접목할 생각을 한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당시 진철의 역용술 수련도 몇 년 동안 거의 발전이 없었기 때문에 돌파구가 필요할 때였다.

그리고, 형들을 도와줄 명분도 필요했고.


진철은 세 사람에게 얼굴의 근육과 신경을 어떻게 조작하면 어떤 효과가 나는지 알아낼 수 있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의 개발 용역을 맡겼다.

그 용역대금을 선금으로 주면서.

그게 [인체 물리효과 프로그램]이다.

형들이 정식 명칭은 뭐라고 얘기하기는 했지만 진철은 그냥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형과 친구들은 세 사람이 살며 일을 할 꽤 큰 집을 전세로 얻고, 비싼 장비들까지 다 장만하고, 개발을 마치고도 한참을 더 살 수 있을 정도의 생활비까지 얻었다.

당시 진철이 가지고 있던 돈의 거의 전부와 가능한 최고 한도까지 대출을 해서 만들어 낸 돈이었다.

따로 알아본 업계 표준보다 꽤 후하게 책정한 돈이었지만 어차피 형에게 작은 방이라도 얻어주고 얼마간 살아갈 수 있는 돈을 주는 것까지 생각해보면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돈은 벌면 되니까.


그 용역의 결과물은 진철의 기대보다 훨씬 더 좋았다.

MRI, CT, 초음파, 3D 모델링 스캐너 등 현존하는 거의 모든 방법으로 대상의 몸을 스캔해서 추출해낸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거의 완벽한 인체 아바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겉 모습뿐만 아니라 피부 밑의 뼈와 근육, 신경, 혈관, 장기의 모습까지.

그 아바타를 통해 진철은 자기가 얼굴 근육과 신경을 어떻게 움직여야 특정한 얼굴을 만들 수 있을지 알아 낼 수 있었다.


대출을 갚기 위해 한동안 허리띠를 졸라 매야 했지만 결과는 대 만족이었다

아바타의 근육과 신경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마인드 트레이닝을 하는 것은 확실하게 달랐다.

일 년이 지나지 않아 수련에 큰 발전이 있었고 며칠 전 얼굴의 신경과 근육을 완벽하게 조절해 원하는 얼굴을 만들어냈다.







형들은 계약서를 가지러 사무실로 갔고 진철은 연습실로 출발했다.

그와 비슷한 시간 영화 [체인지맨]의 제작사 [백결영화]의 사무실에는 김상만과 김유진이 출근해 있었다.

프로덕션이 갓 끝났으니 일주일은 쉬고 난 후 후반작업을 시작하기로 했지만 영화의 감독과 제작 프로듀서인 두 사람은 도저히 마음 편하게 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작사의 사장과 이사이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탁자에는 여러가지 서류와 사진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좋은 방법 없을까?”


홍보 계획 서류를 탁자 위로 집어 던진 상만이 중얼거리자 유진이 말했다.


“그냥 애초에 계획을 세운대로 하자”

“지금 다시 보니 계획이 별로야. 영화가 생각보다 더 좋게 뽑혔으니까 어디선가 좀 더 투자를 받을 수 없을까?”

“아직 편집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감독이야. 당연히 알지. 그리고, 임팩트 있는 장면도 있잖아!”


상만이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이자 유진도 수긍했다.


“확실히 임팩트가 있는 얼굴이긴 하지”


[체인지맨] 때 진철의 얼굴을 정면에서 잡은 사진이다.


“윤곽이 살짝 변했다고 어떻게 이런 미남이 되지? 이렇게 얼굴 근육을 움직인 것도 대단하지만 그렇게 움직이면 이런 얼굴이 된다는 걸 알아낸 것도 대단한 것 같아. 어디 성형외과에 가서 상담이라도 했나?”


상만이 거듭 감탄을하자 유진이 말했다.


“예고편이라도 기가 막히게 한 번 뽑아 보던가”

“그러면 될까?”

“해보기는 해봐야지. 내가 그걸 가지고 여기저기에 제안을 해볼게”

[딩동~!]


인터폰 화면을 보고 상만이 말했다.


“혁필이?”

[철컥]

“혁철이다! 짜식아”


짧은 턱수염을 멋지게 기른 미남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빽’ 소리를 질렀다.


“들어와. 들어와. 천재 CF감독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왕림해 주시니 삼세의 영광이긴 한데 왜 빈 손이냐?”

“요즘 누가 자기 손으로 들고 다니냐? 배달시키지”

“역시, 잘나가는 CF감독. 우와!”

“내가 그런 분이야. 잘 모셔”


인사 겸 만담을 나누고 의자에 앉던 혁철이 진철의 사진을 보았다.


“어? 이게 누구야? 진철이 아냐? 아닌가? 아니, 진철이 맞는데? 이거 이번에 찍은 영화에 있는 장면이야? 그런데 포토샵을 너무 많이 한 거 아니냐?”


혁철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포토샵 아닌데?”

“응? 그럼 CG?”

“아니, CG 아닌데?”

“특수 분장과 조명빨?”

“그것도 아닌데?”


혁철이 또 ‘빽’ 소리를 질렀다.


“그럼 뭔데? 성형수술이라도 했냐? 그 강진철이?”

“연기”

“뭐?’

“그냥 연기로 해냈다고”

“무슨 헛 소리야?”

“너도 안 믿기지?”


김상만은 자기 자랑이라도 하듯이 그 때 현장에서의 일을 떠들더니 그 장면의 녹화파일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걸 보던 김혁철의 머리속에 번쩍 스파크가 튀었다.


“상만아, 유진아”


혁철로서는 드물게 진지한 목소리다.


“왜?”

“응?”

“우리, 진철이까지 해서 콜라보레이션 하나 해볼래?”

“무슨 소리야?”

“진철이는 명성과 인기를 얻고, 너희는 돈들이지 않고 영화를 홍보하고, 나는 내가 맡은 CF를 성공하고, 좋은 전략이 떠 올랐어”


상만과 유진의 귀가 솔깃한 소리다.


“정말?”

“그럼,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천재 CF감독인 이 김혁철님이 거짓말이라도 할 것 같냐?”


천재라는 말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혁철이 잘나가는 CF감독이라는 건 사실이다.


“오오! 믿습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뭔가 있어 보여. 혁필아!”

“혁철이라고 이 망할 녀석아!”







그 때 진철은 연습실에서 손님과 만나고 있었다.


“호갱. 아니, 고객님. 이번 것도 고객님 마음에 쏙 들 게 분명합니다”


손님은 청바지에 잠바를 아무렇게나 걸친 삼십대 초반의 수수하게 생긴 여자였다.


“호갱?”

“기분 탓이야. 쓸데없는데 신경쓰지 말고 여기를 봐”


그녀의 이름은 김화련.


[찌직!]


화련선배가 갈색 포장 종이를 찢자 그 안에서 거의 실제 진철과 크기가 비슷한 그의 초상화가 나왔다.

직업은 화가였다.


“지난 번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초상]을 잇는 역작 [닥치고 나쁜놈]입니다”


진철의 얼굴에서 미세하게 달라진 얼굴.

그러나 보자마자 ‘아! 이놈은 나쁜 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그런 사악한 분위기를 풀풀 풍긴다.

미남 얼굴과 똑 같은 생김새지만 딴사람이라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다.

거기다 묘한 카리스마가 감도는 것까지 진철의 마음에 쏙 든다.

진철은 생각했다.


‘역시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해’


처음 자기 얼굴을 기반으로 원하는 스타일의 얼굴을 만들어내려 했을 때 진철은 알게 되었다.

그에게는 그런 종류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걸.

그렇다고 포기할 진철이 아니었다.

전문가에게 대신 맡기자는 대안을 찾아냈다.


물어물어 찾아간 유능한 성형외과 의사에게 협조를 구했지만 그 성형외과의사는 자기에게 그런식의 얼굴모양을 창조하는 상상력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준 조언이 초상화 화가에게 부탁하라는 것이었다.

사람의 얼굴 골격과 근육에 대해 의사 다음으로 익숙한데 더해서 미적인 감각과 감정표현에도 전문가인 화가가 진철이 말한 목적에 가장 들어맞는다 했다.

그 판단은 정확했다.

부족한 그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대신해 진철이 원하는 얼굴을 만들어낸 화련선배의 초상화는 진철의 마음에 딱 들었다.


“역시, 초상화 천재”


성형외과 의사와 상담을 했지만 결국 처방은 명예종의 미술과를 나온 선배 화가에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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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017 그는 배우다 +1 21.11.02 2,010 41 9쪽
16 016 눈에서 빛이나 +2 21.11.01 2,054 45 10쪽
15 015 삼국 팔검전 +6 21.10.31 2,130 54 10쪽
14 014 재현하다 +7 21.10.30 2,150 42 11쪽
13 013 300 +1 21.10.29 2,178 42 11쪽
12 012 진상들과 변호사의 의기투합 21.10.28 2,166 40 9쪽
11 011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얼굴 +1 21.10.27 2,275 45 11쪽
» 010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화가에게 +2 21.10.26 2,393 46 12쪽
9 009 망나니까지는 아닌 진상들 21.10.25 2,431 51 9쪽
8 008 미친놈들 중 제일 미친놈 +3 21.10.24 2,555 55 10쪽
7 007 일기[一技]로 관통[貫通]하다 +3 21.10.23 2,675 49 11쪽
6 006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2 21.10.22 2,761 4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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