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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잘생김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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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맨
작품등록일 :
2021.10.18 01:01
최근연재일 :
2023.09.08 15:36
연재수 :
120 회
조회수 :
168,298
추천수 :
3,574
글자수 :
645,036

작성
21.10.28 09:00
조회
2,166
추천
40
글자
9쪽

012 진상들과 변호사의 의기투합

DUMMY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진철의 인사에 시니컬하면서도 만사 귀찮다는 듯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돌아왔다.


“네. 강진철씨도 안녕하십니까?”


목소리의 주인공은 우리나라 최고의 법무법인이라는 K&J의 파트너 변호사인 백현중이었다.

그가 AAA엔터의 백현수실장과 성과 돌림자가 같고 목소리까지 비슷한 건 우연이 아니다.

둘은 형제니까.

형들이 전에 사기당했을 때 진철이 백실장에게 변호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고 그 때 소개받은 게 백변호사였다.


“형과 친구분들이 또 사기를 당했습니다”


진철이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는데 백변호사에게는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닌지 평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군요. 4시 넘어서는 상담이 없으니 오늘 바로 오시죠”


진철은 형에게 전화해서 지난 사기 건 때 상담했던 법무법인 K&J로 오라고 했다.







전에 와 본 변호사 사무실로 진철이 들어가자 뒤 따라오던 형과 형 친구들이 투덜댔다.


“왜 또 여기야?”

“그러게”

“나도 여기는 좀”


굉장히 비싸 보이는 짙은 단색의 심플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사무실 안에서 백현중 변호사가 그들을 맞았다.

삼십대 후반의 날카롭게 생긴 남자.

백현수 실장과 비슷하게 생긴 그 얼굴에는 변함없이 나른함과 귀찮음, 그리고 약간의 짜증이 감돌고 있었다.


“안녕하셨어요?”

“네. 강배우님도 안녕하셨어요? 이쪽 세 분은 이번에도 안녕하시지는 않은 것 같네요?”


형들 말을 들었는지 살짝 깐족거리는 백변호사의 말에 세 형이 발끈했다.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라요”

“맞아요. 우리가 붕어도 아니고, 똑 같이 당했을 것 같아요?”

“들어보면 깜짝 놀랄 걸?”


지난번 사기를 당했을 때 세 형들은 굉장히 낙담했었고 어쩔 줄 몰라 했었는데 지금 형들에게 보이는 건 낙담이 아니고 분노였다.

백변호사의 의욕 없는 얼굴에 살짝 미소가 스친 것 같다.


“호오~! 그래요? 다들 이 쪽으로 앉으시죠. 세 분이 과연 지난번과 얼마나 다른 방법으로 사기를 당하셨는지 들어봅시다”


백변호사의 말 소리에 조금 생기가 돌았다.

형들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울분을 토하는 세 사람의 말을 한 번도 끊지 않고 다 들은 백변호사가 말했다.


“그러니까 세 분은 지난번과 달리 그 선배라는 사장이 배신할 경우를 충분히 대비했다는 말이군요?”

“네”

“그럼요. 우리는 바보가 아니예요”

“한 번 당했으면 됐지. 또 당할 수는 없죠”


다행히 세 형들도 지난 사기 사건에서 배운 게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컴퓨터를 비롯한 사무실의 모든 장비에 비밀번호로 락을 걸어서 그들 세사람이 아니면 어떤 데이터에도 접근할 수 없게 해 두었다 했다.

그리고 그 선배라는 사람과 만나서 대화를 하며 동업을 진행했던 상황을 몰래 녹화해 파일로 보관했다고 한다.

백변호사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지난번에 그렇게 사기를 당했으면서 왜 또 다른 사람과 동업을 했죠? 그냥 세 분이 업체를 차려서 운영할 생각은 안 했나요?”


형이 대표로 말했다.


“변호사님이 보기엔 우리가 바보 같겠죠”


백변호사는 양손바닥을 펴 보이며 어깨를 으쓱 했지만 부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알아요. 우리는 경영을 맡아서 하거나 주주로써 경영자를 제대로 감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예요. 우리 셋 다 똑 같이 그런 부분이 부족한 사람들이죠”


시니컬한 웃음과 함께 한 말이다.


“형!”


형들의 자존감이 너무 떨어진 것 같아 진철은 걱정이 되었다.


“진철아, 우리는 일단 연구에 들어가면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못해.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반년이고 일년이고 지나 있지”

“에휴!”

“그렇게 한숨 쉬지 마. 우리는 그런 우리가 좋으니까. 우리는 천재라고. 문제가 되는 건 딱 하나 지금처럼 사기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뿐이야”


그냥 자기비하가 아니라 냉정한 자기분석인 것 같아 다행이다.


백변호사가 말했다.


“진짜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했겠네요”

”네. 진철이 저 녀석이 경영을 맡아주면 제일 좋은데 저 놈도 우리가 연구에 미친 것 못지 않게 연기에 미친 놈이라 그런 면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죠. 그렇다고 한번 사기를 당한 걸로 모든 주변 사람을 의심하며 살 수도 없어서 가장 믿을만한 사람에게 동업을 제안했어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믿어 보기로 한 거예요. 하지만 무작정 믿을 수는 없었죠. 대비가 필요했어요”


형들은 혹시나 배신을 당했을 때 복수를 할 수 있는 준비를 했다고 한다.


“우리 믿음을 배신했으니 앞으로 발 뻗고 살 생각은 못하게 해야죠. 흐흐”

“맞아. 지금 우리가 얼마나 마음이 아픈데”

“절대 용서 못하지”


서늘한 미소를 짓는 형들의 얼굴이 묘하게 무섭다


‘왠지 형들, 흑화[黑化] 한 것 같은데?’


형들은 계속 이야기했다.

회사의 CCTV를 음성까지 녹음이 되도록 개조한 후 녹화 파일이 그들이 지정한 웹하드로 전송이 되도록 했다고.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것 같다.


백변호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파일들은 점검해봤습니까?”

“아뇨? 이제 확인 해야죠”

“미리 그 파일들을 확인했으면 혹시 사기를 사전에 알아챌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안 했나요?”

“우리는 그 선배를 믿기로 하고 동업을 했으니까요. 오늘 일이 터지지 않았으면 그 파일들은 영원히 확인할 일 없었을 거예요”


백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어쨌든 그 일이 불법이라는 건 알고 한 일이죠? 불법으로 수집한 정보는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해주지 않아요”


형들은 서로 눈을 맞추더니 인정했다.


“그래요. 불법이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건 사용할 게 아니라 만약의 경우 우리가 어떻게 당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한 일이었어요”


백변호사가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좋군요. 좋은 자세예요. 마음에 들어요”


사기당하고 울상이었던 지난번의 세 형들보다 오늘 보이는 –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 모습이 더 백변호사의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진철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 조치한 것은 없습니까? 저는 여러분들 변호사입니다. 비밀보장의 의무가 있어요. 의뢰에 관련된 불법적인 일을 알았다고 해도 그걸 발설할 수가 없습니다”


백변호사의 눈에 권태로운 기운이 사라졌다.

형들도 씩 웃음을 지었다.


“그 선배 스마트폰과 노트북 컴퓨터에도 해킹 앱을 깔아 놨습니다. 물론 아직 발동하지는 않았지만 그거야 언제든지 가능하죠. 현재 위치부터 뭘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고 필요하면 계좌도 탈탈 털 수 있습니다”


백변호사가 힘찬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아주 좋아요”


그러자 형들도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하!”

“히히!”

“큭큭!”


그 뒤로 네 사람은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룰지 열띤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서로에게 별 좋은 감정이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의기투합해 으쌰으쌰 하고 있지만 진철은 막을 생각 없다.

지금처럼 약간 흑화 하는게 사기당하며 사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니까.

보통 사람과 사고방식이 약간 다른 진철 답게 그도 무슨 일이 있어도 법에 따라 일을 해결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진철은 형들과 백변호사가 상의해서 이번 사기사건을 잘 해결하라고 맡겨두고 원룸으로 돌아왔다.

그가 걱정해야 할 것은 이제 K&J에 지불할 수수료를 버는 것뿐이다.


“타이밍도 참! 이번 [캐리어]로 번 돈은 그림 사느라 화련누나에게 다 줘버렸는데?”


남은 건 겨우 몇 달 생활비 정도 밖에 없다.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따로 투자를 하지 않는 다음에야 배우가 돈을 벌 방법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역을 맡거나 CF를 찍는 것 말고는 거의 없다.

마침 혁철이 제안한 CF건이 있기는 한데 문제가 있다.

진철이 그 잘생긴 얼굴을 다시 재현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일단 한다고 해야지. 그리고 해내면 되지. 뭐”


어떻게 보면 진철도 그의 형 성철만큼 대책이 없는 인간이다.


“그리고, 백실장에게 새 작품을 찾아달라고 해야겠네”


지난번 정수매니저가 가져온 책 중에는 진철의 마음에 드는 배역이 없었다.

마침 백실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띠리릭]

“네. 백실장님”

“강배우님. 좋은 책이 들어왔는데 한 번 보시겠습니까?”

“지난 번에 제가 원했던 그런 배역인가요?”

“딱 맞는 건 아니지만 배우님이 말했던 그 얼굴의 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연기력을 최대한 사용할 수 있는 그런 배역입니다”

“그래요?”

“네. 지금 집에 있으신가요?”

“네. 집입니다”

“그럼 제가 책을 가지고 가도 될까요?”

“내일 회사에서 보는게 나을 것 같은데요?”

“따로 들릴 말씀이 있는데 회사에서는 하기에 좀 그런 이야기라서요”

“그래요? 그럼 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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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024 지옥행 워터슬라이드 +5 21.11.09 1,885 44 11쪽
23 023 150개의 인물사진 +3 21.11.08 1,885 41 10쪽
22 022 마음이 착해 +2 21.11.07 1,886 41 11쪽
21 021 MAPA +1 21.11.06 1,929 44 10쪽
20 020 나도 미남 +2 21.11.05 1,957 45 11쪽
19 019 요사함이 있어 +4 21.11.04 1,913 45 10쪽
18 018 오디션 +1 21.11.03 1,935 42 11쪽
17 017 그는 배우다 +1 21.11.02 2,010 41 9쪽
16 016 눈에서 빛이나 +2 21.11.01 2,054 45 10쪽
15 015 삼국 팔검전 +6 21.10.31 2,130 54 10쪽
14 014 재현하다 +7 21.10.30 2,150 42 11쪽
13 013 300 +1 21.10.29 2,178 42 11쪽
» 012 진상들과 변호사의 의기투합 21.10.28 2,167 40 9쪽
11 011 취향을 타지 않는 미남의 얼굴 +1 21.10.27 2,275 45 11쪽
10 010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화가에게 +2 21.10.26 2,394 46 12쪽
9 009 망나니까지는 아닌 진상들 21.10.25 2,431 51 9쪽
8 008 미친놈들 중 제일 미친놈 +3 21.10.24 2,555 55 10쪽
7 007 일기[一技]로 관통[貫通]하다 +3 21.10.23 2,675 49 11쪽
6 006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2 21.10.22 2,761 4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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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03 슈퍼액터 프로젝트 +2 21.10.19 3,735 5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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