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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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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146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5.03.27 00:50
조회
3,908
추천
99
글자
8쪽

영지 없는 백작

DUMMY

난 회의가 끝난 후 내가 완전히 널브러질 줄 알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밤을 샜다. 밤을 새면서 한 일이란 것도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공부였다. 게다가 첫 번째 회의라는데 너무 기대하고 긴장했었기에 마치 팽팽하게 당겨졌던 실이 끊어진 연처럼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아무렇지 않았다. 매일 같이 산과 들을 뛰어다녀서 내 체력이 꽤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나는 회의가 끝난 후 휴식 시간에도, 점심을 먹은 후에도, 그리고 다음 일정을 기다리는 그 지루한 시간에도 잠들지 않았다. 두 눈은 초롱초롱....

“피곤해 보이십니다. 눈이 충혈 되셨네요.”

빛나지는 않았나 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화폭에 담아야 하는데....”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30대 중반의 키 큰 밤색 머리의 남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스펜서였다.

그는 옷을 참 잘 입는 남자였다. 꾸미는데 별 관심이 없는 내가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평범한 흰 정복에 청록색 벨벳 조끼를 받쳐 입었는데,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깔끔한 것이 꽤 감각적이다.

그는 매일 내 얼굴을 화장해주는 안나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와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오후에 내 초상화를 그린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스펜서가 이 일정을 진행하는 책임자인가 보다. 그의 예술적안목이나 사교성을 생각해보면 솜씨 좋은 미술가와 친분이 있는 것도 별로 이상하지 않았고, 이를 생각하면 그가 맡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솔직히 말해 원래 나는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운다. 그리고 이젠 얘기하기도 지겹지만, 여태까지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 상태가 이런데도 짧은 시간 동안 워낙 많은 사람들을 만났기에 머릿속에서 이름과 얼굴이 제대로 연결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지만 스펜서 라울 백작은 내가 특별히 기억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수많은 귀족들 중에서 오직 그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작위의회와 왕성의회에 동시에 소속된 인물이라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해 하면서도 그 동안은 얼이 빠져 있었던 나는, 안나가 내 얼굴에 작업을 하는 동안 이제야 그 이유를 들어보기로 했다.


“라울 경은 백작이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건국왕 윌리엄 전하께서 저희 가문에 수여하신 작위입니다.”

“그런데 스펜서 경은 윈더민에 계속 있잖아요. 작위를 받으려면 영지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상주는 하지만 성안에서 살지는 않습니다. 라울가의 저택은 성 밖 윈더민 중심가에 있습니다. 물론 윈더민의 주인은 여왕님이시지만 말입니다. 하하하.”

스펜서는 농담을 하면서 기분 좋게 웃는다. 그는 굉장히 예의 바르고 깍듯한 사람이면서도 이렇게 유쾌한 면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곁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이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농담할 때가 아니다. 일단 궁금증부터 풀고 싶다.

작위의회에 속한 자들은 그들의 영지에 머문다. 왕성의회에 속한 자들은 성 안에서 생활한다. 그런데 이 녀석은 시내에 살면서 매일 성으로 출근한다. 오직 이 녀석만 말이다.

“라울 경은 어떻게 작위의회와 왕성의회 양쪽에 소속될 수 있었던 건가요?”


스펜서는 곧바로 내 의도를 눈치 챈 것 같았다. 즉시 웃음기를 거두고 설명을 시작했다.

“아까 전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작위를 얻은 사람들은 바르테인의 땅을 하사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갖는 것도 허락되지요. 그 대신 그들은 윈더민 성을 파악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공무를 위해 가끔 성을 방문했을 때에도 그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은 북쪽과 서쪽 성루뿐입니다.

반면 왕성의회 사람들은 윈더민 성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역사상 가장 복잡한 요새의 구조를 낱낱이 파악하게 됩니다. 왕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르테인 전역을 다스리는 일을 함께 하면서 말이죠. 대신 그들은 자신의 군대를 보유할 수 없습니다.”

그는 정말로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윈더민 성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는 나는 그가 방금 말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를 알고 일부러 작위의회와 왕성의회의 차이점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해준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들은 후에야 바르테인 전역에 퍼져 있는 영주들, 작위의회에 소속된 사람들을 윈더민 성 깊숙한 곳에서 대한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공식적인 행사가 진행되는 회장이나 회의실, 알현실 등 성을 방문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설들은 전부 서쪽과 북쪽 성루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

“저희 라울가가 작위의회와 왕성의회 양쪽에 동시에 가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지를 얻는 것도, 군대를 보유하는 것도 포기하고, 윈더민 성의 구조도 알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듣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그 말대로라면 양쪽의 단점만 추려서 취한 게 되지 않나? 그런데 라울 백작의 표정을 보니 이에 전혀 불만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 대가로 양쪽 모두에 소속되는 것을 굉장한 특혜로 여기고 있는 눈치였다.


“아 그리고....”

나는 생각난 김에 그에게 다른 것도 묻기로 했다. 그 외에 또 다른 특혜를 누리고 있는 인물. 바로 바이우스 성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바이우스 성장은 왕성회의에 속해 있나요?”

“아닙니다. 뤼프 경은 어느 쪽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저와 반대죠.”

“그런데 성장은 어떻게 오늘 회의에 참여한 건가요? 원래 성장이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직책은 아니잖아요?”

스펜서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왠지 남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를 꺼리고 있는 눈치였다. 이 또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하는 특별한 요인이려나.

“전하. 혹시 뤼프경께 그 이유를 물으신 적은 없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아까 그 방에서 기회가 있었는데 다른 얘기를 하다가 까맣게 잊고 말았다. 여기서 스펜서의 특권에 대해 말하다 보니 다시 생각난 것이다.


“뤼프 경이 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은 그가 세운 공 때문입니다. 알트론 선왕께서 특별히 하사하신 특권입니다.”

“그러면 일종의 상이라 볼 수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뤼프 경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 정책을 만들어냈습니다. 어쩌면 바르테인이 강철거인의 후예 중에서 최강국이 될 수 있었던 까닭도 그 정책 때문일지 모른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적어도 그 정책이 적용되는 이 윈더민은 그 어느 곳보다 더 생산성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장이 회의에 참석하는 이례적인 사태에도 양 의회는 전혀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떤 정책인데요?”

나는 한껏 호기심이 증폭되어 가만히 물었다.

“한 달에 평민 한 명을 선정하여 귀족으로 올려주는 정책입니다. 추첨제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평민을 귀족으로요?”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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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앞으로 가급적 매일 글을 올리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오늘처럼 분량이 매우 적을 때도 있고,

결정적인 장면이 아닌 곳에서 끊기는 일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그러는 쪽이

제 자신이 나태해지지 않으면서도 부담이 덜할 것 같고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도 더 나은 방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약에 글이 올라오지 않은 날이 있다면

피치못할 약속이 잡혀 제가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했거나

도저히 글이 손에 잡히지 않아 대여섯 줄밖에 진도가 안나가는 날일 겁니다.

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4월 6일, 7일은 가족 여행을 떠나느라 휴재할 것 같습니다 ^^;


라울 : 루시엘에서 저는 그야말로 엑스트라였는데 제 선조분은 뭔가 있어보이는 분위기를 풍기네요.

스펜서 : 분위기만 풍기고 끝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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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0

  • 작성자
    카리황제
    작성일
    15.03.27 01:04
    No. 1

    저도 잘 보고 있습니다^^
    싸우는 장면도 없는데 이렇게 흡입력있는 글은 처음이네요.
    터프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일품이에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3.28 02:13
    No. 2

    생각보다 안 싸우는 장면의 분량이 많아지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원래 이 소설은 액션보다는 심리 위주로 진행할 생각이긴 했지만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9 티말
    작성일
    15.03.27 05:48
    No. 3

    우선 확실한건 100화는 넘어갈듯한 느낌.
    그리고 현실일이 먼저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3.28 02:14
    No. 4

    ....한 때 저는 이걸 단편으로 쓸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쩌자고 그런 생각을;;
    100편은 넘을 거 같고....
    전작만큼의 분량은 안 나올 것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사파이어9
    작성일
    15.03.28 01:18
    No. 5

    오늘도 흥미진진...
    작가님 매일 와주시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예요 ㅠ.ㅠ
    그렇다고 넘 무리하지 마시구요. 건강도 꼭 챙기세요.
    완결까지 꼭 완주하셔야죠^^~
    담주에 가족여행도 잘 다녀오시구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3.28 02:12
    No. 6

    윽 어제 결국 못 보셨네요
    고작 몇 분 차이로...
    오늘은 뭐 한 시간이나 차이 났으니
    별로 안 아깝네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4 누들스
    작성일
    15.04.16 19:20
    No. 7

    귀족 추첨제라 기대됩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4.16 21:47
    No. 8

    다분히 풍자적이죠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5.09.06 16:05
    No. 9

    추첨제라... 특이한 설정이네요. 아니, KJH 지도부터 돋보였던 작가님만의 특이한 설정이라 그런지 더욱 흥미롭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9.06 22:37
    No. 10

    저는 문학은 언제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추첨제는 바로 현대판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되는 로또를 풍자한 겁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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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무단 침입. +8 15.04.01 3,721 121 17쪽
19 나가자, 나가자, 나가자! +8 15.03.31 3,474 122 10쪽
18 바르테인의 전당 +8 15.03.30 3,463 86 10쪽
17 추첨제 +12 15.03.28 3,518 106 10쪽
» 영지 없는 백작 +10 15.03.27 3,909 99 8쪽
15 아득한 기억 +8 15.03.26 3,521 94 9쪽
14 결론 +12 15.03.24 3,845 126 15쪽
13 첫회의 +8 15.03.23 3,722 108 8쪽
12 포커 페이스 +4 15.03.20 3,723 106 10쪽
11 동기 +10 15.03.18 3,855 100 7쪽
10 즉위식 (수정본) +11 15.03.17 4,393 132 16쪽
9 관례 +6 15.03.16 4,351 116 12쪽
8 응징 +10 15.03.15 4,293 122 9쪽
7 마지막 임무 +6 15.03.12 4,130 117 9쪽
6 검에 갇힌 정령들 +4 15.03.11 4,479 151 13쪽
5 노드의 부하들 +7 15.03.09 4,436 134 8쪽
4 일단 저지르고 본다. +8 15.03.02 5,252 149 18쪽
3 분노의 이단옆차기 +17 15.03.01 6,105 150 14쪽
2 왕녀, 공주, 여왕 +10 14.12.12 8,000 165 20쪽
1 프롤로그 -왕녀의 외출- +28 14.12.10 11,784 17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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