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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269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5.03.09 22:42
조회
4,436
추천
134
글자
8쪽

노드의 부하들

DUMMY

시간은 꾸역꾸역 흘러갔다. 닫힌 창문 사이로 어느덧 불그스름한 노을빛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변화를 눈치 챈 후에야 페나에 남겨 두었던 나를 되찾을 수 있었다. 회중시계를 보고 시각을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이 휘렌델 바르테인이 무려 6시간 남짓 한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다니! 그것도 이렇게 비좁은 마차 안에서 말이다.

말발굽소리가 잦아들며 마차의 덜컹거림이 멎었다. 노드는 누가 와서 일러주지도 않았는데도 마차가 멈춘 까닭을 훤히 짐작한 모양이었다.

“오늘 밤은 여기서 묵을 모양입니다. 괜찮겠습니까, 전하?”

나는 노드에게 알겠다고 대답한 후 부스스 일어나 마차 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머리를 식혀준다. 생각해보니 철이 든 이후 페나를 떠나는 건 내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우울했던 기분을 털어내기 위해 미지의 풍경으로 눈길을 돌렸다. 실개천이 연보랏빛 라일락과 싱그러운 수목 사이로 시원하게 질주하고 있었다.


“긴히 전하께 상의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내 뒤를 따라 마차에서 내린 노드가 말했다. 그런데 그는 막상 내 주의를 끌어놓고도 머뭇거리기만 할 뿐,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직 그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미간을 잔뜩 찌푸린 표정에서 지금 그가 얼마나 곤혹스러워하는지 능히 짐작이 갔다.

“전하께서 수호기사를 임명하실 때까지 왕궁기사단장인 제가 전하의 신변을 호위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노드는 한 번 더 말을 끊었다. 다음 말을 쥐어짜기 위해 그는 상당량의 용기를 끌어 모아야 했다.

“원칙적으로 수호기사는 야외에서 절대 왕의 곁을 떠나선 안 됩니다. 세신을 하실 때나.... 환복하실 때나....”

또 말이 없어지려 한다. 보다 못해 내가 대신 그의 말을 완성해 주었다.

“똥 싸러 갈 때도요?”

“....!”


노드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놀라는 꼴을 보니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그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뭐가 민망한 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요컨대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하자는 것이다. 왕이 전부 남자였기에 지금까지 당연히 해왔던 관습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에 대답했다.

“남의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는 조금 껄끄럽습니다. 저도 천생 소녀니까요.”

“천생.... 소녀....?”

노드는 눈빛을 흐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다 자신이 한 말을 깨닫고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큰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내 말을 따라한 게 뭐 그리 큰 잘못인지 노드는 고개를 숙이며 거듭 사과를 했다. 왕궁기사단장이라면서 의외로 담이 작은 남자다.

“....어쨌든 제가 부탁할 때는 혼자 있게 해주세요.”

“왕궁기사단장, 노드 체스터. 명을 따르겠습니다.”

노드는 처음으로 내가 왕으로서 명을 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차렷 자세로 우렁차게 대답했다.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다른 마차의 문도 열렸다. 윈더민으로 향하는 마차는 총 3대였다. 노드와 나 두 사람이 탄 마차를 가운데에 두고 앞뒤로 호위하는 형국이다. 각 마차에서 일꾼들과 노드가 데려온 기사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하네. 저 마차 2대와 거기에 태운 일꾼들은 브란트 성에서 공수한 물건과 사람들이다. 애초에 수도에서 나를 맞이하기 위해 보낸 건 노드와 그의 부하 넷으로 정원을 꽉 채운 마차 한 대뿐이었다. 겨우 다섯 명의 기사라니, 왕을 호위할 병력치고는 너무 적지 않나? 내가 우려하던 일은 결국 터지고 말았다.


때는 저녁을 먹은 뒤였다. 하녀들은 냇가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남자들은 노드가 가져온 엄청 크고 으리으리한.... 그야말로 왕이 쓸 거 같은 호화로운 천막을 기사들의 주도하에 설치하던 중이었다.

노드의 부하들 중에는 굉장히 눈매가 날카롭고 과묵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왠지 카리스마도 넘치는 것이 딱 봐도 노드 다음가는 직위에 있는 사람 같았는데, 그는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마른 빵과 육포를 챙겨 숲속으로 사라졌었다. 그랬는데 갑자기 다급한 표정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멀리 보이는 노드를 향해 외쳤다.

“체스터 경! 싸울 준비를 하시죠! 적들이 오고 있습니다!.”

적들? 적들이라고?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놀라고 덜컥 겁이 나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나 노드는 역시 달랐다.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신중하고 진지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페트라 숲에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맹수나 이 종족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대체 무슨 짐승이 나타났단 말인가?”

“그야 머리털 난 짐승밖에 더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저녁을 지을 때 피어난 연기를 본 모양입니다. 도적 떼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열둘까지 확인했는데 조금 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꽤나 먼 거리를 달려온 것 같았다. 게다가 지금도 달리는 중인데 호흡이 거의 흐트러지지 않은 채 노드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심지어 재치 있는 말까지 곁들여 가며 말이다. 노드 역시 적이 열 둘 이상이라는 말을 들었으면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선왕께서 승하하셨다는 소문이 퍼진 모양이군. 윈더민 근방에서 이렇게 도적이 활개를 치다니....”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혀를 끌끌 차며 한탄 섞인 한 마디를 뱉은 다음에야 노드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도적이 나타났소! 모두 전하 곁으로 모이시오! 기사들이 그대들을 지켜줄 것이오!”

소스라치게 놀란 일꾼들은 하던 일을 즉시 멈추고 내 주변에 모여 들었다.


잠시 후 그들이 나타났다. 이쪽에는 총 열 세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보다 많았다. 그들의 손에 들린 수많은 칼들이 일제히 시퍼런 빛을 뿜어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놈들은 우리 일행의 고급스러운 행색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듯 징그러운 웃음을 흘렸다. 맨 앞 가운데 선, 두목으로 보이는 남자가 지시를 내렸다.

“사내놈들은 모조리 죽이고, 여자들은 사로잡아.”

그 말을 들은 우리 일행의 반응은 두 가지로 확연히 갈렸다. 브란트 성에서 온 사람들은 오금이 저려 안색이 창백해졌는데 윈더민에서 온 사람들.... 노드를 포함한 다섯은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열일곱입니다. 체스터 경 혼자 상대하시겠습니까?”

노드의 또 다른 부하.... 짧은 흑발을 꼿꼿이 세운 남자가 마치 선심 쓰듯이 말했다. 쌍꺼풀이 짙은 부리부리한 눈에 이목구비 선이 뚜렷한 외모의 기사였다. 노드는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내게 있어 최우선 과제는 전하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오.”

뒤에 물러나 있는 게 기사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걸까? 노드는 괴로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짧은 흑발의 기사도 그 대답이 뭐가 아쉬운지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제가 왼쪽으로 돌파하겠습니다! 스웨이츠 경께서 우측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얼굴 생김새가 전반적으로 동글동글한, 선한 인상의 기사가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나가며 외쳤다. 그러자 스웨.... 짧은 흑발의 기사도 대칭되는 위치를 잡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사들 중에서 가장 어리고 직위가 낮을 것이 확실한.... 거의 말도 못하고 있던 장발의 미청년이 그 둘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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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무사히 상을 치르고 돌아왔습니다.

뭔가 이번 일을 계기로.... 가족끼리 더욱 끈끈해진 느낌입니다.

많은 것을 느끼는 기회가 되었네요....

왕녀의 외출은 대략 이틀에 한 번 6천자 정도의 페이스로 올리고 있었는데,

오늘도 글을 올리지 않으면

또 잠적한 걸로 오해하실까봐;;

적은 분량이지만 올립니다.

생각해보니 연참할 것도 아닌데.... 게다가 연참해본 적도 없는데

한 번에 4천자 이상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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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관대한 기사 +10 15.04.02 3,448 97 10쪽
20 무단 침입. +8 15.04.01 3,722 121 17쪽
19 나가자, 나가자, 나가자! +8 15.03.31 3,474 122 10쪽
18 바르테인의 전당 +8 15.03.30 3,464 86 10쪽
17 추첨제 +12 15.03.28 3,518 106 10쪽
16 영지 없는 백작 +10 15.03.27 3,909 99 8쪽
15 아득한 기억 +8 15.03.26 3,521 94 9쪽
14 결론 +12 15.03.24 3,845 126 15쪽
13 첫회의 +8 15.03.23 3,723 108 8쪽
12 포커 페이스 +4 15.03.20 3,724 106 10쪽
11 동기 +10 15.03.18 3,855 100 7쪽
10 즉위식 (수정본) +11 15.03.17 4,394 132 16쪽
9 관례 +6 15.03.16 4,351 116 12쪽
8 응징 +10 15.03.15 4,294 122 9쪽
7 마지막 임무 +6 15.03.12 4,131 117 9쪽
6 검에 갇힌 정령들 +4 15.03.11 4,480 151 13쪽
» 노드의 부하들 +7 15.03.09 4,437 134 8쪽
4 일단 저지르고 본다. +8 15.03.02 5,252 149 18쪽
3 분노의 이단옆차기 +17 15.03.01 6,105 150 14쪽
2 왕녀, 공주, 여왕 +10 14.12.12 8,000 165 20쪽
1 프롤로그 -왕녀의 외출- +28 14.12.10 11,785 17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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