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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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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80,019

작성
15.04.01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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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무단 침입.

DUMMY

문은 비밀의 벽돌 바로 옆에 숨겨져 있었다. 나는 가슴이 벅찰 정도로 기뻐하며 얼른 안을 들여다보았다. 벽 안에는 사람 대여섯이 누워 잘 수 있을만한 작은 방이 펼쳐져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뜬 것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작은 돌멩이였다. 그것이 왜 눈에 띄었냐면, 거기서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빛이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밀 통로치고 지나치게 밝다 싶었는데 요 녀석이 그 이유였다.

작은 돌에서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빛은 막 대단한 발견을 하고 한껏 고무된 나를 축복해주는 보상 같았다. 나는 그것을 머리 위로 주워 올려 그 빛이 내 몸을 감싸게 했다. 돌멩이는 회색과 보라색이 뒤섞였으며 만져보니 질감은 조금 거칠었다. 스스로 빛을 내는 걸 보니 마법이 담긴 물건인 것 같다. 그런데 너무 빛이 강해서 눈이 부시다. 천 같은 것으로 덮어서 좀 죽여야겠는데.....

“앗!”

순간 내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 돌멩이에서 나오는 빛이 갑자기 약해지더니 딱 적당한 밝기로 바뀐 것이다. 이거 꽤 흥미로운걸. 나는 시험 삼아 이번에는 좀 더 밝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았다. 오오! 된다, 된다! 돌멩이는 딱 내가 생각한 정도의 강한 빛을 뿜어냈다. 마법이 담긴 물건들이 별의별 신기한 효과를 낸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런 건 상상도 못했다. 사람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꼭 언젠가 쥐어봤던 정령검을 연상케 했다.


나는 그 빛나는 돌을 들고 작은 방 구석구석을 살폈다. 아무래도 이 방은 며칠 동안 숨어 지내기 위한 피난처 같다. 왼쪽 벽에 건조된 식량이 잔뜩 쌓여있고 그 옆의 수로로는 물도 조금씩 흘렀다. 남쪽 벽에는 옷도 몇 벌 걸려있다. 그런데 그 옷들의 대부분은 왕족이 입지 않을 법한 낡은 것들이었다.

가장 중요한 오른편으로는 시커먼 복도가 뻗어있었다. 그렇지! 바로 이거야. 비밀 통로라면 이렇게 어두컴컴해야지. 나는 얼른 그 빛나는 돌을 등불 삼아 거침없이 복도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이내 그 돌에서 나오는 빛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유일한 빛이 사라지자 복도 안은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저 멀리 보이는 희미한 빛의 끝자락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저 곳이 이 복도의 또 다른 끝이다. 그 때도 이런 방법으로 길을 찾았었다.

어둠에 휩싸인 복도는 마치 과거로 연결되는 통로 같았다. 기억을 더듬으며 그 속을 걷다 보니 어느 새 나는 다섯 살짜리 어린 왕녀 휘렌델 바르테인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종종거리는 발걸음에 맞춰 흥겨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왕녀님. 어디 있나요.

세상은 검은 손으로 가득해

먼지투성이가 되어버릴지 몰라요.

왕녀님. 돌아오세요.


잠깐. 이 노래는 ‘왕녀의 외출’의 원형이 된 멜로디 같은데? 집나간 딸을 애타게 찾으시면서 아버지가 부르시던 노래.... 나는 무단으로 성을 나가면서 그런 노래를 신나게 흥얼거렸단 말인가? 굉장한 녀석.... 이제 보니 나도 꽤 장난이 아니었구나. 왠지 나를 키우시며 마음 고생하신 어머니께 한결 더 미안해지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잠시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걷고 있던 복도가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이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이 비밀통로는 왕이 이용하는 것이라 다른 것들과 조금 다른가 보다.

나는 별로 주저하지 않고 왼쪽 방향으로 틀었다. 이쪽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원체 고민 같은 건 잘 안하는 성격인지라 그냥 발걸음 가는 대로 방향을 정한 것뿐이었다. 십여 분 정도 걷다 보니 드디어 복도가 끝이 났다. 길을 가로막으며 선 육중한 문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문틈으로 누런 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온다. 나는 그 빛의 결을 유심히 살폈다. 따스함이 감도는 것이 햇빛인 것 같다. 즉 이 문의 반대편은 성의 바깥이라는 뜻이다. 이 시점에서는 비밀통로의 문을 여는 방법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비밀 통로는 윈더민 성의 곳곳에 숨겨져 있다. 각 통로 마다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스위치, 비밀 벽돌의 위치는 천차만별이었다. 지금처럼 같은 쪽 벽에 문이 열리는 통로도 있었지만 벽돌과 반대편으로 뚫리는 통로도 있었다.

하지만 통로에서 밖으로 나갈 때 눌러야 할 벽돌의 위치는 항상 같았다. 문을 정면으로 봤을 때 오른쪽 벽.... 어린 휘렌델에게는 머리 위, 지금의 나에게는 허리쯤 오는 위치에 살짝 튀어나온 벽돌을....

“어?”

눌렀는데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당황해서 다시 한 번 그 벽돌을 힘껏 눌러 보았다. 손바닥을 통해 뭔가 이질적인 촉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 똑똑한 마법의 돌을 들고 빛을 비추면서 벽돌을 자세히 관찰했다. 중앙 부분이 깨져 있는 것이 보인다. 안타깝지만 이 쪽 문의 스위치는 망가진 것 같다.

이 비밀통로는 왕의 방과 통하니, 이 곳을 이용했던 사람은 나 이전의 왕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 그렇다면 이 문을 망가뜨린 사람은 대체 누굴까? 아마도 전당에 초상화가 걸려있던 6명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문을 열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이윽고 그 갈림길로 돌아온 후 아까 택하지 않은 오른쪽 길로 가보았다. 윈더민 성의 지리에 적응이 되어서 그런가? 지금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대강의 방향을 유추할 수 있었다. 남쪽에 있는 비밀의 방에서 오른쪽 복도로 들어와서,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한 번 더 꺾었으니 지금쯤은 선회하여 성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도착할 곳은 왕의 방을 기준으로 서쪽이 되겠지.... 그 부근에 뭐가 있더라? 이 궁금증은 곧 풀릴 것이다.


이쪽 통로의 문은 벽돌 스위치를 누르자마자 수월하게 열렸다. 그리고 밖으로 나온 나는 곧바로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비밀 통로인 만큼 가급적이면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데 나도 의견을 같이한다. 그런데 이건 너무하잖아! 그곳은 음식물 쓰레기를 담은 통을 쌓아두는 창고였던 것이다.

설마 왕이 이런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서 기어 나올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겠지. 어떤 놈이 설계한 건지는 몰라도 안전성 하나 만큼은 기똥차게 지어놨구나.


고약한 냄새에 코를 막고 있는데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여기서 나간다 해도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성 안을 통과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다른 누군가와 마주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왕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몰래 성 밖으로 나간다는 목표는 실패하고 말 것이다.

실망이 밀려오기 전에 얼른 그 작은 방에 걸려있던 옷들을 기억해냈다. 그것들이 낡고 볼품없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유사시에 신분을 감추고 도망치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해결책을 찾은 기쁨에 나는 한달음에 비밀 통로로 돌아갔다. 그리고 벽에 걸린 옷들을 꺼내 펼쳐 보았다.

잠깐. 지금 보니 이건 거의 다 여자 옷이네? 이상한 일이군. 나는 최초의 여왕이었다. 비단 바르테인에서만이 아니라. 역사상 최초로 왕이 된 여자다. 그런데 왕을 위한 비밀 통로에 왜 여자 옷만 이렇게 잔뜩 있는 걸까? 혹시 성을 설계한 놈은 급박한 상황을 이용해 왕에게 여장을 시키려 했던 걸까? 숭악한 놈....


어쨌든 그 옷들 가운데 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바로 윈더민 성에서 가장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하녀들이 입는 옷이었다. 이거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음식물 쓰레기 창고에 드나들만한 사람이 하녀 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

나는 고급 아마천으로 된 겉옷을 모두 벗어버렸다. 그리고 재빨리 낡은 하늘색의 하녀복을 입고 왕의 방으로 나와서 거울을 한 번 보았다. 신났다! 이렇게 입으니까 완전히 하녀처럼 보이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었다.

나는 다시 비밀의 방에 돌아가 흐르는 물에 얼굴을 씻었다. 안나가 공들여 만들어준 인형의 얼굴을 지워냈다. 다시 거울을 보니 오랜만에 봐서 더 반가운 휘렌델이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자 이제 다시 출발해볼까. 오늘 저녁식사를 거른다고 미리 말해둔 덕분에 이런 소동을 벌일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해가 저물고 있었다. 언제 바이우스가 내일 일정을 전달하기 위해 내 방을 찾을지 모른다.

성 밖에 몰래 나가는 일이 한 두 번에 그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나는 예감하고 있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진심이 담긴 목소리를 가급적 많이 들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속고 있는 건 아닌지, 왕으로서 잘하고 있는지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인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일단은 지금 이렇게 입었을 때 과연 남들이 내 정체를 알아볼 것인지 확인하는 게 첫 번째 목표다. 나는 이를 위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음식물 쓰레기 창고로 들어섰다. 물론 벽돌을 눌러 비밀통로를 다시 원래대로 감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창고의 문을 열고 나가자 내 눈앞에 익숙한 윈더민 성의 광경이 펼쳐졌다. 하얀 벽돌로 이어진 벽들과 호박색 목재로 만들어진 난간, 모든 것이 평상시의 윈더민 성이다. 하지만 이를 보는 내 기분은 평소와 사뭇 달랐다. 한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굉장히 흥미진진한 모험처럼 느껴졌다.

“야! 너!”

고개를 돌리자 헝클어진 잿빛 머리의 늙은 하녀가 씩씩 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이름을 내가 알고 있을 리가 없다. 다만 좀 낯이 익은 늙은 하녀로 인식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 사람.... 목소리가 꽤 하이톤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들어보니 꽤 걸걸하구나.

“내가 뭐라 그랬어?! 내일 기사단 행사가 있을 거라고 했잖아!!”

버럭 고함을 지르자 그녀의 목소리는 남자 목소리와 별로 다를 것이 없어졌다. 나는 그제야 그녀가 나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뻤다. 정체를 들키지 않는 데 성공했구나! 그런데 나의 웃는 얼굴이 왠지 그녀를 더 화나게 만든 것 같았다.

“당장 정복을 걷어오지 않고 뭐해!”

천한 하녀가 감히 내게 호통을 치다니....! 나는 몹시 화가 났지만 일반적으로 내 나이 또래의 하녀들이 그녀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맞서 소리 지르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속으로 분을 삭이며 꼬리를 말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할망구.... 오늘 일은 잊지 않겠다....!


그녀의 말을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왕궁기사단의 숙소 쪽에 하녀들이 할 일이 있나 보다. 빠른 걸음으로 그쪽으로 움직이며 비로소 하녀복의 왼쪽 가슴에 달린 명찰을 살핀다. 낡은 명찰에는 ‘메리’라고 써 있었다. 일단은 이것이 지금의 내 이름이구나. 잠깐 동안이지만 나는 메리인 척을 해주기로 했다.

기사단 숙소에 도착하니 하녀들이 분주하게 각 방에서 옷을 가져와 복도에 놓아둔 수레에 싣고 있었다. 그들이 수거하는 것은 모두 똑같은 옷이었는데, 바로 내 즉위식이 거행되었을 때 기사들이 입었던 정복이었다. 나도 그녀들 틈에 섞여 은근슬쩍 기사들의 방을 차례차례 들어갔다. 물론 내 목적은 다른 하녀들처럼 옷을 걷어오는 것이 아니라 십자와 네잎 클로버 모양이 들어간 벽돌을 찾는 것이었다.

비밀 통로는 이 윈더민 성의 어느 곳에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지금 생각났는데 심지어 놀러 갔었던 우물 안에서 찾은 적도 있었다. 그 안의 비밀 통로는 복도 형식이 아니라 미끄럼틀처럼 경사를 따라 미끄러지는 구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 재미있었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타보러 가볼까....


나는 기사들의 방을 차례차례 들락날락하며 비밀통로를 수색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한 방에서 조금 기묘한 것을 발견했다. 왜 기묘했냐면, 그것이 왜 내 눈길을 사로잡는지 그 이유를 모르면서도 어느 순간 멍하니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느 한 기사의 방의 벽에 걸린 목걸이였다. 기사의 소지품이라 보기에 좀 격이 떨어지는 싸구려 줄에, 뭉툭한 손가락처럼 생긴 검은 덩어리 하나가 꿰어진 목걸이였다. 결코 비싸거나 귀할 것 같지 않은, 오히려 그 반대라 할 수 있는 목걸이였다.

나는 이 목걸이에 시선을 빼앗기는 이유를 알 수 없어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한 번 뒤적여봤다. 하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윈더민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기억이 날듯 말듯 한 것들은 여럿 있었다. 이번에 발견한 비밀통로도 그 중의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런데 이 목걸이는 그 기억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드는 게 이건 정말로 내가 어릴 때와 관계가 없는 물건 같았다. 그런데 왜 나는....?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문득 내 뒤에 서 있는 수상한 남자를 발견했다. 언제 내게 접근한 걸까? 놀랍게도 그는 상체를 완전히 벗은 상태였다. 이 사실을 깨달은 나는 그야말로 심장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끼야앗!!!!!!”

“끄악!!!!!!”

때를 같이 하여 그 자식도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이유는 나와 조금 달랐다. 놈이 비명을 지른 건 내가 발로 녀석의 왼쪽 정강이를 힘껏 걷어찼기 때문이다.

“당신 누구야?!”

“아야야.... 아파!”

나는 순간적으로 크게 소리를 내어 복도를 다니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만일의 경우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자식은 나를 하녀로 생각한 게 틀림없다. 그래서 우습게보고 희롱하려 했던 거겠지.

“이 되먹지 못한 놈아! 어디서 감히....!”

감히 왕을 덮치려 하다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내 정체가 들통 나는 한이 있더라도 네 놈을 확실하게 보내버리겠어! 이런 생각에 당당해진 나는 녀석을 방 바깥으로 몰아내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그 호색한 자식은 걷어차인 다리가 꽤 아팠는지 내 말에 제대로 반격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때 복도에 수많은 기사들이 녀석과 똑같이 상체를 벗은 상태로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야 녀석의 바지에 눈길이 간다. 이럴 수가! 이 녀석 왕궁기사단 소속이었잖아? 상체를 탈의한 건 오후 훈련이 끝났기 때문이었나?

왠지 겸연쩍어졌지만 기죽기는 싫었다. 그래서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따졌다.

“왜 사람이 있는 방에 함부로 들어오고 그래요?! 노크도 안하고! 놀랐잖아요!”

옷을 벗은 남자가 갑자기 방 안에 무단으로 들이닥치니 오해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런데 놈이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하지만 여기는 내 방인걸?”

“끼이익.... 쾅!”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문을 닫고 있었다. 그리고 내 손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침착정확하게 걸쇠를 걸고 있었다. 그 직후 혼란이 밀려온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나를 놀라게 한 저 빌어먹을 놈이.... 실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다는 건가?

“이봐! 열어줘!”

놈이 문을 두드리며 안타깝게 외친다. 하지만 열어줄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여왕 휘렌델이 아니라 하녀 메리인 상태다. 하녀가 기사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 엄청난 사건이잖아. 나는 필사적으로 방 안을 살폈다. 이렇게 된 이상 여기서 탈출하는 수밖에 없어....!! 나의 마지막 희망은 이 방에서 비밀 통로를 발견하는 것뿐이었다.

“이봐! 거긴 내 방이라고! 제발 열어줘!”

자신의 방에서 쫓겨난 주인이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조급한 마음이 생겨나서 좀처럼 그 벽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에 이 방이 비밀통로가 없는 방이면 어떻게 하지? 그리고 어렸을 때의 경험으로 나는 그럴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성 안에 살면서도 그 존재를 잘 모르는 까닭은 그만큼 비밀통로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똑, 똑, 똑!”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면 온 몸에 소름이 돌았다. 노크를 하다니....!! 내가 방금 노크 핑계 댔던 것을 물고 늘어질 셈인가....?! 교활한 자식! 이제 문을 잠그고 버티고 있을 명분이 없어져 버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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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오늘은 제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메담이 등장하는 장면까지 굉장히 짧을 줄 알고

빨리 쓰고 휴식을 취하려 했는데....

역시 왕녀의 외출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오랫동안 구상해서인지

글로 옮기니 분량이 뻥튀기처럼 불어나는 군요;;

그렇다고 오늘 반드시 나오게 해주리라 마음 먹었던 메담을

이대로 방치하기 미안해서 결국 이 시각까지 자리를 지키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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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왕녀, 공주, 여왕 +10 14.12.12 8,000 16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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