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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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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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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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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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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2화 소파진에서 대담하다

DUMMY

22화 소파진에서 대담하다


“소파진이구나.”


연회가 끝나고 하루를 지나 한양으로 돌아가기 위해 움직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기 시작한 나루를 보며 사관 김조경은 돌아간다는 실감을 느꼈다.


동시에 그들을 위협하듯 뒤따르는 청나라 군대를 확인하니 다른 실감도 들었다.


그들은, 조선은 전쟁에서 졌다. 그 위용과 체면은 다행히도 청 황제가 세워주어서 아주 망신당하는 것은 피했다 하나 여전히 현실은 현실이고 사실은 사실이다.


아무리 말로는 이렇다, 저렇다 한들 알 사람은 다 알았다.


그리고 김조경은 고작 체면치례에 만족해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장 형.”

“영보? 무슨 일인가.”

“저기, 우리 백성들이 아닙니까?”


어느새 따라붙은 송시열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과연 거기에 피골이 상접하다 표현해도 부족할 백성이 잔뜩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렇군, 저들이 청인들이 돌보았다 주장하는 이들이로구나.”


사관이라는 직책은 좋게도 나쁘게도 상과 가까이 있는 자리다. 그러니 남들보다 빨리, 많이 알 수 있었다.


“돌보았다?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반포가 있을 것이네. 지금은 그렇게만 알고 있게.”


지금은 그저 볼 수밖에 없다. 김조경 자신이야 저들을 어떻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그는 일개 사관이었고, 전쟁에서는 제 한 몸 간수하기 버거운 문관이었다.


마음이 동하는 대로 나섰다가는 반박에 청나라 놈들에게 밟힘은 물론이요, 그가 저지른 행동은 일탈이자 잘못으로 취급되어 서글픈 이름 석 자나 남길 수 있다면 다행일 터였다.


“임금님이다!”

“어, 어서!”


그러나 무얼 할 수 없다고 한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파진으로 향하는 길에 잡혀서 늘어선 백성들은 곧장 소리를 높였다.


“저희 좀 살려주십쇼!”

“어버이라고 하시면 자식들이 끌려가서 죽을 처지에 당한 것을 돌아보셔야 합니다!”

“저 잔혹한 놈들이 마을 사람들을 죄 죽였습니다! 저도 끌고 가서 죽일 겁니다!”


포로들은 그 몰골에서 생각기 힘든 큰 소리로 외쳐서 도움을 구했다. 개중에는 이것저것 주워들은 듯 제법 말을 그럴듯하게 내뱉는 이도 있었는데, 김조경이 슬쩍 보니 낡고 볼품없게 되었다고 하나 도포에 갓을 쓴 걸 보니 빈한한 양반이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상께서 이제 여기서 무얼 하시겠는가.”

“자장 형, 아무리 그래도 그건 위험한 말입니다.”

“......그래, 할 말은 아니었지.”


외면하지 말아 달라는 듯이 계속해서 강요하듯 다가오는 현실에 김조경은 저도 모르게 씁쓸하게 중얼거렸다가 송시열의 긴장 어린 경고를 듣고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그와 심정이 비슷하였는지 누구 하나 그에게 무어라 하는 이가 없었다.


개중에는 그와 비슷한 생각인지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들도 몇몇 있었다.


“딱히 상을 비난하려는 건 아닐세. 그분은 우리 가운데 가장 훌륭한 분이야.”

“압니다.”


김조경이 그렇게만 말했으나 송시열 역시 그 심정을 이해했다.


그렇게 올곧게 굴었음에도 결과는 이 모양이다. 너무 늦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역시 이런 모습을 보는 건 여러모로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응? 상께서 멈추셨군.”

“멈추셨다? 어째서 말입니까?”

“나야 모르지. 가서 물을 수는 있겠으나, 이 분위기에 그러면 너무 튀지 않겠는가. 하물며 나 역시 아직은 일하는 중이네.”


사관이니 슬쩍 다가가서 함께 일하는 자와 말을 하며 상황을 살피는 일이야 쉬웠다. 허나 그는 지금 사관으로서 책무를 다하고자 일부러 송시열과 함께 대열 중간을 걷던 중이었다.


받은 책무를 무시하고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여긴 김조경은 내심 선두에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하면서도 세필을 놀렸다.


-백성들이 저들을 두려워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는 저들이 벌인 소거에 원인이 있으리라. 청나라는 전일 군대를 내어......



***



소파진이라.


“나는 가장 나중에, 백관이 모두 건넌 후에 건널 것이다.”

“군왕은 가장 존귀하니 먼저 건넘이 마땅합니다.”


영의정 김류가 고개를 숙여 그리 말했으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분명 다른 상황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에는 소파진에서 벌어진 굴욕, 저 먼저 건너자고 왕의 옷깃을 잡아채는 관료가 없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괜한 일로 기껏 남긴 권위를 더 흘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뒤에서 우리를 따르는 청나라 황제는 아마도 이걸 더 좋아하겠지.


“나와 세자는 마지막에 건넌다. 다른 이들이 먼저 건너가게 하라.”

“허나 전하......”

“영의정, 나는 분명히 명했소. 아니면 내가 그대에게 관옥이라 부르며 친분이라도 표시해야 들어줄 참인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옵니다.”


내 말에 김류는 금세 사색이 되어서 황급히 물러났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나는 다시 명했다.


“다른 이들을 먼저 건너게 하시오.”



***



소현세자는 왜 굳이 이렇게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세자.”

“예, 전하.”


그런 그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아비 이종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현세자는, 아니 이왕은 곧장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일 필요는 없다. 아니, 고개를 숙이지 말라.”


고개를 숙이지 말라.


마치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 너는 곧 이 땅 조선에서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게 될 것이라 이르는 듯했다.


‘두렵다.’


어깨가 무겁고 두려움이 가득한 그에게 다시금 이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나라의 근간이라 스스로 말하는 사대부의 모습을 똑똑히 보거라.”

“예?”


생각지도 못한 말 그리고 말에 담긴 실망감에 이왕은 고개를 들어서 아비가 보는 곳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잘 알지 못했으나 곧 무엇을 보라고 이르는지 깨달은 이왕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소파진에는 본래 있어야 했던 병사들이 죽거나 도망치며 작은 배 두 척만 남았는데, 여러 번 오가면 될 것을 한 번에 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처럼 그들은 앞다투어서 배에 오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먼저 배에 오르고 있던 영의정 김류가 누군가에게 옷깃을 당기어져서 그대로 엉거주춤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승에게도 저리하니 자칫하면 나조차 험한 꼴을 보겠구나.”

“설마 그러겠습니까.”


아비의 말에 설마 하면서도 어쩌면이라는 생각도 살그머니 머리 한켠에 자리했다.


‘그래도 아닐 것이다. 아버님께서는 이 나라 최고의 의인이 아니던가.’


아무리 제 살길이 급하고 저가 중한 이라도 사대부이자 선비라면 응당 그러할 것이라 애써 생각하기를 잠시, 아비 이종이 그에게 다시금 일렀다.


“지금의 사대부는 무언가 잘못되었다. 이 나라 조선도 마찬가지다.”

“잘못되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가슴에 참으로 와닿는 말이었다.


“세자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여기는가?”

“......소자는 잘 모르오나 예전 수년에 걸친 전쟁과 광해 시절에 과한 사치로 인함이 아닐까 하옵니다.”

“틀리진 않았다. 허나 완벽하지도 않구나.”

“허면 아버님은 어디에서 그 원인을 찾으십니까?”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대답이 있으니 이리 이르는 것이라 여긴 이왕은 마른 입술을 조심스럽게 핥아 긴장을 해소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 이왕에게 이종은 손짓했다.


다가오라는 손짓에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슬그머니 다가갔고, 곧 귀엣말을 건넬 정도로 가까워진 그에게 아비의 말이 들렸다.


“!”

“아직은 너만 그리 알고 있거라.”


아비는 그리 말한 후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이왕은, 소현세자는 너무나도 놀라서 그를 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유학과 사람이 문제라고?’


조금 전, 들은 말을 곱씹으며 그는 등줄기를 타고 짜르르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아비 이종은, 상은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그가 용상에서 내려오기 전에 할, 파장이 크고도 그 후폭풍을 짐작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구나. 어디, 날 대신해서 앉을 각오는 생겼느냐?”

“소, 소자는......”

“여기서 말하기 적당한 주제는 아니었구나. 궁에 돌아가면 만사 제쳐놓고 부르마. 거기서 한번 뜻을 보이거라.”


이 이상은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듯, 상의 시선은 저 멀리 소파진을 건너기 시작한 배를 보고 있었다.


그에 소현 역시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간신히 집어삼키며 눈치를 보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길은 둘 뿐이었다.


받아들이던가, 부족함을 호소하며 선례를 따르던가.


어느 쪽도 쉽지 않은 길이기에, 고민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



“제법 기특하구나.”


모두를 건너게 하고 본인과 후계자를 남기는 조선왕의 모습을 보며 홍타이지가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니 옆에서 동행하던 호오거가 말을 거들었다.


“제 분수를 이제야 알고 있는 것이지요. 그에 반해 조선의 신료들은 참으로 한심합니다.”

“조선왕이 불쌍할 따름이다. 인재라 할 것은 세자와 최명길이라는 자, 그리고 북방에 있는 그자뿐이로구나.”

“이제 그자도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호오거의 말에 홍타이지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도 잠시, 그는 미간에 주름을 잡고 물었다.


“여전히 같은 생각이냐?”

“한께는 죄송하오나 저는 예친왕의 뜻이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무릇 이긴 자가 포로를 잡고 데리고 있는 것이지, 패자에게 이긴 자가 구태여 인질이나 포로를 넘기는 예는 없습니다.”

“어차피 데리고 가기 힘든 녀석들이다. 아니, 데려가면 위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녀석들이지.”

“그건 동의하오나, 많은 이가 저와 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호오거의 말에 홍타이지는 이 문제가 살짝 복잡하게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도르곤의 제안은 버리기 힘든 좋은 것이었기에 홍타이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바꾸었다.


“그러면 이건 어떠냐. 요토가 내 뜻을 대신하는 이로 남으면 말이다.”

“감시역으로 말입니까? 말만 바꾸는 건 회순왕이나 잘하는 일입니다.”

“하하, 그렇구나. 하지만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지. 이렇게 하자구나. 조선왕은 이미 여러 번 말을 바꾼 자다.”

“실로 그러하옵니다.”


이미 전적이 있는 만큼 호오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진실로 기가 꺾인 듯했으나 전에 보인 행동은 참으로 여러 말을 하며 마음에 들지 않게 굴었으니 실로 믿기 어려운 이라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청나라인들 가운데 다수는 아직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허니 요토에게 그 대비책으로 남으라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 후미를 맡기되, 그 기간이 좀 길어질 뿐이지.”

“그렇게 하신다면 괜찮사옵니다. 다만 실지로 요토가 따르겠습니까?”


반대하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해소되니 호오거는 뜻을 돌렸다. 하지만 아직 남은 불안 요소가 있어 그를 입에 담으니 홍타이지가 스산한 눈빛으로 웃었다.


“따르지 않으면 요토에게 다음은 없을 거다.”


작가의말

첨언)

 

원래 역사에서 항복한 후 소파진에 온 조선 사람들은 모두 앞다투어서 건너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 다급함이 어찌나 컸는지 서로 배에 타려고 다투다가 인조의 옷깃을 잡아끌었다는 말이 실록에 남아있습니다.

 

당시 사대부라는 자들의 번드르르함과 인조가 얼마나 권위가 떨어졌는지 짐작게 하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실제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나 옷깃 당긴 자의 이름과 처벌에 대해서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인지 확실치도 않고요.

 

개인적으로는 밝혀내지 못하여서 처벌하지 못했거나, 당시 대량으로 낙향하던 이들 가운데 있어서 벌주거나 캐기를 그만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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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1화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자 하는 자는 실제로 있다 +1 22.11.14 2,020 60 15쪽
31 30화 청으로 가는 사람들 +3 22.11.13 2,106 55 15쪽
30 29화 왕이 품어야 하는 마음 +1 22.11.13 2,143 58 15쪽
29 28화 끝은 시작이다 +1 22.11.12 2,102 59 12쪽
28 27화 상사로 넘길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1 22.11.12 2,107 54 12쪽
27 26화 신상필벌은 중요하다 +1 22.11.11 2,235 57 12쪽
26 25화 사람에게는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1 22.11.11 2,247 58 15쪽
25 24화 보낼 일을 논하다 +1 22.11.10 2,258 59 14쪽
24 23화 어려운 요구를 받다 +1 22.11.10 2,357 58 13쪽
» 22화 소파진에서 대담하다 +2 22.11.09 2,365 59 11쪽
22 21화 그날이 오다 +1 22.11.09 2,389 60 13쪽
21 20화 도의는 모두에게 통용되어야 한다 +4 22.11.08 2,402 63 13쪽
20 19화 사실과 보여지는 건 다를 수 있다 +5 22.11.08 2,431 65 12쪽
19 18화 바깥을 알다 +2 22.11.07 2,525 62 13쪽
18 17화 말의 가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2 22.11.07 2,617 64 13쪽
17 16화 여럿보다 하나가 나을 때도 있다 +2 22.11.06 2,719 77 15쪽
16 15화 믿음을 보내다 22.11.06 2,758 78 13쪽
15 14화 부끄러워하다 +2 22.11.05 2,804 79 13쪽
14 13화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1 22.11.05 2,828 75 12쪽
13 12화 누군가는 안녕을 원하고, 누군가는 그 반대를 원한다 +1 22.11.04 2,945 70 12쪽
12 11화 탐욕은 재앙의 친구다 +1 22.11.04 3,074 81 13쪽
11 10화 화두를 던지다 +4 22.11.03 3,232 81 13쪽
10 9화 보상을 논하다 +2 22.11.03 3,411 86 12쪽
9 8화 사방에 소식을 보내다 +5 22.11.03 3,542 85 15쪽
8 7화 삶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끝난다 +2 22.11.02 3,591 87 12쪽
7 6화 소현세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4 22.11.02 3,816 88 14쪽
6 5화 고민을 안겨주다 +2 22.11.01 3,901 101 13쪽
5 4화 불러서 이르다 +3 22.11.01 4,131 94 12쪽
4 3화 남한산성에 오다. +7 22.11.01 4,488 9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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