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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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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최근연재일 :
2024.09.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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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11.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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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3화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DUMMY

13화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네 녀석은 조선인 출신이니 사정에 밝겠지. 어서 대답해봐라.”


요토의 말에 굴마훈, 조선말로 정명수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슬그머니 눈알을 굴렸다.


‘무슨 의도로 이러는 거지?’


역질이 돈다는 거야 이미 말단 병사라도 알 정도로 알려진 일이다. 그리고 조금 더 소문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자라면 그 시작이 회순왕 경중명의 진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조선인이 이 역질의 시작이긴 할 것이다. 적어도 만주에서 출병할 때는 역질에 걸린 자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조선인이 시작점이긴 하나, 굳이 말하자면 옮겨 들어온 자라는 점에서 한인 병사가 시작점이라 할 수도 있었다.


“어인 말씀이신지 소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정명수는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고민하다가 일단 대답을 회피했다.


‘위험한 위치에 있는 자다. 함부로 엮이면 곤란해.’


지금 눈앞에 사내, 요토는 본래 친왕이었으나 버일러로 강등된 자다.


명목은 대역죄인 망굴타이를 비호했다는 거였으나, 정명수는 그리 단순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힘이 있는 계승자는 언제나 그렇다. 이에는 지금 홍타이지가 가까이에 두는 도르곤이나 호오거도 같으나, 적어도 두 사람은 직접 반기를 들거나 그에 준하는 행동을 보인 적이 없었다.


반면 요토는 계승 서열이 그 둘에 비하면 그리 높다 하기 힘듦에도 항상 제가 하고픈 대로 말하고 움직였다.


일견 이는 남자답게 겉과 속이 같다 소리 들으며 칭송받을 덕목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권력이란 그런 솔직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천한 출신이라고 하나 그런 생리를 잘 알고 있던 정명수로선 굳이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으며 요토의 사람이 될 생각은 없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청에 있어서 그의 입지는 매우 탄탄했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헌데 요토에게 이런 정명수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흐, 뒤늦게 고향을 아끼는 마음이라도 생겼나?”

“제 고향은 만주입니다.”


갑자기 날아든 비꼬는 말에 정명수는 애써 불쾌함을 감추며 딱 잘라 말했다. 이건 진심이었기에 정명수의 대답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진심을 요토는 전혀 알아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심드렁한 얼굴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치지.”

‘밀려난 놈 주제에 자존심은.’


아무리 위에 있고 숙여야 할 대상이라고 하나 이렇게 반응하면 영 좋은 속내를 품기 힘든 게 사람이었다. 하물며 대인과는 거리가 있는 정명수는 금세 속으로 요토를 흉보았다.


그러나 흉보는 것과 별개로 정명수의 머리는 기민하게 돌며 상황을 재었다.


동시에 그의 코는 음모의 냄새를 맡았다.


“다시 묻겠다. 군중에 역질이 돌고 있나?”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사실만을 요구하는 추궁에 정명수의 입에서 순순히 대답이 돌아왔다. 그에 요토는 슬쩍 그를 살피며 다시 물었다.


“그 역질을 옮긴 것들, 조선것들인가?”


그렇게 물은 후 그는 으름장을 놓듯, 말을 덧붙였다.


“조선인 출신이라 감싸려는 생각이라면 관둬라.”

‘감싼다고? 내가? 조선을?’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조선은 그럴 가치가 없는 나라였다.


‘우스운 일이로다.’


정명수는 조선이 싫었다.


천인으로 태어나 광산에서 일하고 그대로 죽을 운명, 그것이 본래 조선에서 나서 자란 그의 운명이었다.


만약 다른 길이 없다면 아마도 그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푸념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며 죽지 못해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서 조선은 흔히들 말하는 애증의 조국이나 고향과는 매우 멀었다.


허니 조선이란 오로지 증오, 증오만이 남아 자신의 발판이 되어주면 족한 그런 보잘것없고 쓰레기 같은 나라에 불과했다.


그러니 요토가 꺼낸 말은 건 정말 하등 쓸데없는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꺼낸 말의 의도는 조금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조선인 탓으로 하고 싶은 건가?’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될 일이다. 지금은 친왕이 아니나 아이신기오로 요토라는 이름에 그 정도 힘은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에게 확인한 후에 움직이고 싶어 한다. 이 점이 음모의 향을 더 진하게 했다.


‘원한다면 그렇게 대답해주지.’


잠시 고민하긴 했으나 이건 그에게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대답이 아니었다.


단, 말함에 있어서 꼬투리가 잡히거나 나중에 책임을 돌려질 일이 없게 해야 했다.


“잘은 모르오나 그렇게 들었사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일개 천것이 어찌 알겠습니까. 허나 조선인은 더럽게 사니 역질을 옮기는 일이야 다반사입니다.”

정명수는 구태여 자신을 크게 낮춤과 함께 조선인들을 욕하며 그 생각이 옳다 긍정해주었다. 이런 말을 하면 당장 조선인 몇이 분풀이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도 알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깟 조선인, 몇이 아니라 수백 수천이 죽어도 내 알 바 아니지.’


중요한 건 지금 이 기회를 살리는 것, 여기서 무사히 나가서 요토가 물은 것을 알리는 일이었다.


요토가 이렇게 말함을 좋아할, 혹은 이렇게 물음을 듣고 경계할 이가 이곳에 적어도 둘은 있다.


“조선인의 탓이다?”

“출병할 때 역병에 걸린 이는 아무도 없지 않았습니까? 허니 조선인이 옮긴 것이 맞겠지요.”



***



“머저리들 같으니.”


정명수를 내보낸 후 요토는 그리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병은 실로 심각한 문제이며, 초원의 용사들에게 가장 두려워해야 할 천벌이었다.


그런데 그걸 비루한 조선것들이 옮긴다니, 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우리 아래에 있는 것들이거늘, 얼른 청소하면 될 이지 않은가.”


도르곤과 호오거가 한심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있을, 두 사람이 내린 결정을 알 홍타이지도 그리 보였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야 뻔했다. 향후 지배를 염두에 두고 과한 손을 쓰기 꺼리는 게 분명했다.


오죽하면 저 간에도 쓸개에도 붙을 놈조차 뻔히 사실을 알면서 말을 돌리고 돌린 끝에야 대답했다.


이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러했다.


“다들 나약해졌어.”


요토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으니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졌다. 초원의 용사들을 위해, 위대한 만주족을 위해서 하잘것없는 농민을 몇 죽이는 거야 대수로울 거 없었다.


하물며 그것이 아직 완전히 항복하지 않아 거짓으로나마 적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의 백성이라면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었다.



***



“어, 저거 뭐여?”


한 사람의 말에 남한산성에서 나와 포로 신세가 된 병사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 무리의 기병들이 달려 나가는 게 보였다.


“뭐시여, 전쟁은 끝난 거 아녔어?”

“그러게?”


신세가 좀 그렇긴 하지만 배는 곯지 않으니 괜찮다 여기던 그들은 기병이 흉흉한 기세로 달려감에서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막말로 그들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고, 전쟁은 이미 끝났다. 그러니 아무리 적들이 움직인다 한들 무슨 일이 생기겠나 싶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과 달리 몇몇은 무언가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여기며 서로 머리를 맞댔다.


“설마하니 나랏님이 다시 전쟁한다고 하셨나?”

“나랏님이 그러시겠나. 목숨 아끼라고 우리도 내보내셨는데?”

“그리고 그러면 기병이 나가진 않겠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전쟁 기간에는 그리 좋지 않았던 국왕 이종에 대한 평가는 외려 항복을 결정하고 거짓 항전을 하는 지금이 더 높았다.


저가 책임을 지겠다 나선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목숨을 어떻게든 책임져 주었다는 점이 그 평가를 높이는 주된 요인이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척화신들에 대한 여론은 여전했다. 결국 항복도 나랏님이 정해서 그렇게 된 일이니 그들은 한 것도 없이 목소리만 큰 얼간이들이란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다 보니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곧장 그 얼간이들이 무언가 이상한 짓을 벌인 건 아닐까 싶었다.


“어디서 청나라 황제 욕한 선비 나리라도 있었나?”

“아니면 도망쳤다든가?”

“그런 걸로 저렇게 나간다고?”

“끄응.”


아는 게 없는 상태로 머리를 모았으나 본디 아는 게 없는 이들이었으니 무언가 그럴듯한 대답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모르면 더 걱정이 드는 법이던가? 그들은 좀처럼 의문을 놓지 못했다. 그러던 중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세자 저하 옆에 있는 그분이 아니신가?”

“그런 거 같은데, 뭐든 알지 모르니 물어보자고.”

“나으리, 나으리!”


그들의 간절한 부름에 다가오던 이는 이상한 걸 깨달았는지 걸음을 빨리하여 다가왔다. 다가온 그는 곧 그들의 말을 듣더니 얼굴이 굳었다.


‘이거 뭐 큰일이 난 건 아닌가?’

‘별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뭐든 말씀 좀 해주셔요. 가능하면 별일 아니라고 말입니다.’


얼굴이 굳은 상태로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들의 시선을 알아챘는지 평정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다.


“별일이 아닐 테니 그저 눈에 띄이는 짓들 하지 말고 조용히 지내게. 나머진 저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야.”



***



“기병 무리가 나갔다고?”

“그렇습니다, 저하.”


포로로 잡힌 병졸들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매일 나가보게 하던 이가 돌아와 올린 말에 소현세자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을 숙친왕이라 칭한 호오거에게 당분간 조용히 사리며 지낼 것을 권유받은 지 사흘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채비를 하라. 숙친왕에게, 아니 청나라 황제에게 알현을 요청하겠다.”


누군가에게 논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직감은 그에게 그럴 시간이 없다고 빠르게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나 당장에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게 가능한 이는 이곳에서 오직 하나, 청나라 황제뿐이었다.


“서둘러라, 어서!”

“예, 저하.”



***



소현에게는 안타깝게도, 그의 직감은 너무나도 훌륭하게 들어맞았다.


“아악!”

“사, 사람 살려!”

“다, 다들 도망, 커헉!”

“제발, 제발 살려, 끄륵.”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니 소식이 빠른 이들은, 그리고 행동이 늦었던 이들은 그대로 살던 곳에 살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나라, 조선이 오랑캐에게 졌다는 건 참으로 참담했으나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


다들 너나 할 거 없이 다음 해 농사는 잘 될 런지, 혹여 종자나 노동력이 부족할까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청나라 기병들, 팔기는 그야말로 재앙과 다름없었다.


“전부 죽이고 태워라! 조선놈들이 병을 옮기니 가까이하지 말고 화살로 쏘아 죽이고 태워!”


팔기라고는 하지만 그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주변에 있는 마을이나 거주지를 소개하는 건 충분하다 여긴 요토는 그렇게 외치며 시범을 보이듯 달아나는 조선인의 등을 노리고 활을 겨누었다.


피잉-


등을 관통당한 사내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헛숨을 들이키며 쓰러졌다.


“뭐든 할 테니 살려만, 끄릅.”

“종이든 노비든 되, 커헉.”


말에서 도망치는 게 가당치 않다 여긴 이들은 그 자리에 몸을 숙이며 빌었지만 청나라 기병들은 그들에게 접근하지도 않았다.


그저 활을 쏘아 하나씩 확실하게 목숨을 끊을 뿐이었다. 솔직히 그들이라고 이런 일이 내키는 건 아니었다.


초원의 전사가 저항도 하지 않는 이들을 학살하다니, 한번이라도 저항해서 패배한 이들이 상대라면 모를까 목숨을 구걸하며 종이 되어서라도 살기를 간청하는 이들을 죽이는 건 정말로 내키지 않았다.


허나 요토의 말을 들은 그들은 내키지 않는 와중에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이 일은 그들을 위해, 더 나아가서 청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다.


“끄아악!”


화르륵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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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1화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자 하는 자는 실제로 있다 +1 22.11.14 2,020 60 15쪽
31 30화 청으로 가는 사람들 +3 22.11.13 2,106 55 15쪽
30 29화 왕이 품어야 하는 마음 +1 22.11.13 2,143 58 15쪽
29 28화 끝은 시작이다 +1 22.11.12 2,102 59 12쪽
28 27화 상사로 넘길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1 22.11.12 2,108 54 12쪽
27 26화 신상필벌은 중요하다 +1 22.11.11 2,236 57 12쪽
26 25화 사람에게는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1 22.11.11 2,248 58 15쪽
25 24화 보낼 일을 논하다 +1 22.11.10 2,259 59 14쪽
24 23화 어려운 요구를 받다 +1 22.11.10 2,358 58 13쪽
23 22화 소파진에서 대담하다 +2 22.11.09 2,365 59 11쪽
22 21화 그날이 오다 +1 22.11.09 2,389 60 13쪽
21 20화 도의는 모두에게 통용되어야 한다 +4 22.11.08 2,403 63 13쪽
20 19화 사실과 보여지는 건 다를 수 있다 +5 22.11.08 2,432 65 12쪽
19 18화 바깥을 알다 +2 22.11.07 2,526 62 13쪽
18 17화 말의 가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2 22.11.07 2,617 64 13쪽
17 16화 여럿보다 하나가 나을 때도 있다 +2 22.11.06 2,720 77 15쪽
16 15화 믿음을 보내다 22.11.06 2,759 78 13쪽
15 14화 부끄러워하다 +2 22.11.05 2,805 79 13쪽
» 13화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1 22.11.05 2,829 75 12쪽
13 12화 누군가는 안녕을 원하고, 누군가는 그 반대를 원한다 +1 22.11.04 2,946 70 12쪽
12 11화 탐욕은 재앙의 친구다 +1 22.11.04 3,075 81 13쪽
11 10화 화두를 던지다 +4 22.11.03 3,232 81 13쪽
10 9화 보상을 논하다 +2 22.11.03 3,412 86 12쪽
9 8화 사방에 소식을 보내다 +5 22.11.03 3,542 85 15쪽
8 7화 삶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끝난다 +2 22.11.02 3,592 87 12쪽
7 6화 소현세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4 22.11.02 3,817 88 14쪽
6 5화 고민을 안겨주다 +2 22.11.01 3,902 101 13쪽
5 4화 불러서 이르다 +3 22.11.01 4,132 94 12쪽
4 3화 남한산성에 오다. +7 22.11.01 4,489 98 12쪽
3 2화 대신할 자를 고르다 +11 22.11.01 4,679 10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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