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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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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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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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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11.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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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글자
12쪽

4화 불러서 이르다

DUMMY

4화 불러서 이르다


“주상께서 이판 대감을 따로 부르셨답니다.”


이조참판 정온의 말에 김상헌은 두 눈을 감았다.


“아마 저들은 당장의 목숨을 위해 무엇이 중하고 그렇지 않은지 모를 것입니다.”

“사는 것이 중하다고 하나 더 중한 건 어떻게 사는가 이거늘.”


작금의 상황이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의란 본디 어려울수록 지켜야 하는 법이다.


누군가는 그들을 비롯한 척화파에게 현실을 보라고 하나 김상헌이 보기에 현실을 보지 못하는 건 오히려 그들이었다.


저들이 그렇게 말하는 현실이란 눈앞의 돌멩이를 피하고자 거대한 바위가 굴러오는 산길로 뛰어들고자 함과 다름이 없었다.


적어도 김상헌은 그렇게 믿었다.


‘아니지, 아니야.’


그러나 이내에 자신의 믿음이나 현실에 대한 통찰은 이 상황에서 중요치 않다고 여긴 김상헌은 고개를 흔들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현실을 보고 아니 보고는 중요하지 않다. 만약 그걸 긍정할 경우 현실을 보고 지킬 의를 가리는 게 옳다는 게 되어버린다.


의라는 건 그렇게 지키는 게 아니고, 사대부라는 건 그렇게 사는 이들이 아니었다.


“어리석은지고.”


누구를 딱히 칭하여 하는 말은 아니나 정온은 그것이 누구를 향해 하는 말인지 이해했다.


최명길을 비롯한 주화파는 물론이고, 그에 마음이 기우는 주상 역시 싸잡아 이르는 말이었다.


“당장 제 목숨을 구하자고 숙이다니, 나중을 보지 못함에 더해 참으로 줏대 없고 의리 없는 자들이 아닌가.”

‘영의정 대감도 그렇지.’


그 생각을 참지 못하고 말을 덧붙이고 속으로 한 사람을 콕 집어서 불평을 더했다. 그런 김상헌에게 정온이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여니 그를 막듯 바깥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예판 대감, 안에 계십니까.”


영의정 김류를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리니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상을 가까이서 모시는 내관의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아들은 김상헌은 의외라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가 어쩐 일이오?”

“참판께서도 함께셨습니까? 마침 잘 되었군요.”

“잘 되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오니 자신을 보고 반색하는 연유를 알기 어려워 정온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그에 내관은 곧바로 그 의문을 풀어주었다.


“이조참판께도 부르러 사람이 간 참이었습니다. 함께 오시지요.”


부르러 사람이 갔다. 그리고 이곳에 온 내관이 어느 분을 모시는가 생각하니 이 다음에 나올 말이 쉬이 예상되었다.


그리고 내관은 그들의 기대를 버리지 않겠다는 듯, 예상대로의 말을 입에 담았다.


“상께서 부르십니다.”



***



“부르셨다고 하여 왔나이다.”

“두 분 모두 앉으시오.”


부름에 응해 찾아온 두 사람에게 자리를 권한 나는 두 사람의 안색을 살폈다.


이 시대 진성 척화파라고 불러야 할 두 사람, 김상헌과 정온은 모두 한 고집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이제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조금, 아니 많이 들었지만 그게 내가 할 일이니 해야지.


시작은 최명길, 다음으로 설득하여 말할 이가 이 둘이다.


“먼저 말하지. 항복은 하되 하지 않소.”


무슨 뜻인지 잘 알기 어려운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니 두 사람의 얼굴에 궁금함이 서렸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곧장 본론을 꺼냈다.


“아마도 두 사람은 남송의 애산과 같은 일을 바랄지도 모르나 그런 일은 아쉽게도 이곳, 남한산성에서는 불가한 일이오. 이미 전일 병사들이 난동을 부린 일을 기억하고들 있을 거요.”

“......그러합니다.”

“어리석은 이들이 그리하였음을 소신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항전하면 그런 일이 아니라 옛적에 후한 시절 여포와 같은 꼴이나 되겠지. 아니면 옛 신라 시절 대야성과 같을 수도 있고.”

“전하, 그것은......”


김상헌이 입을 떼긴 했으나 차마 부정하지는 못하겠는지 말이 더 나오지 않았다.


이는 정온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말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입을 닫고 있다면 그는 현명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조선은 전에 명에, 상국에 큰 은혜를 입었소. 그것을 갚기 위한 최선을 다하지 않음은 임금이기 전에 사대부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오. 그러니 나는 모든 걸 내어주고 백성을 지키며 의를 세울 생각이오.”

“그것이 항복하되 항복하지 않음입니까? 뜻은 참으로 높고 훌륭하나 어떠한 실효가 있겠습니까.”


잠자코 듣기만 하던 정온이 회의적인 얼굴로 물었다. 그에 나는 그를 보며 생각한 바를 입에 담았다.


“분명 이 일은 조선에서 보면 대단한 일도 아니고, 현명한 일도 아니오. 하지만 상국에서 보자면 우리가 의리를 지키는 일이고, 기회를 얻는 일이지.”

“조선을 미끼 삼아 명에서 나서길 바라시는 겁니까?”

“미끼라. 참으로 적절하면서 부끄러운 말이군.”


진짜로 부끄럽다. 고작 이런 거나 해야 한다는 게 진짜로 부끄럽다.


“이미 전쟁이 나고 제법 시일이 흘렀고, 명에서는 항상 청을 주시하고 있다 들었소. 그러니 아마 청나라 황제가 군을 이끌고 조선으로 움직인 일을 그들도 알 것이오. 어떻게든 그들은 한 달이라도 더 붙들어두면 이는 명에 재조지은의 은을 갚았다고 하기에 부족하지 않겠지.”


그 한 달을 통해 기대해볼 변수가 있긴 한데, 그건 계산에서 지웠다.


그건 천운에 의지한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과한 바람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런 일이 제대로 이뤄져서 청이 아주 몰락하는 일도 마냥 좋다고 보긴 힘들었다.


이 시기, 청이 떠오르는 것도 좋지 않으나 반대로 청이 그냥 몰락해도 문제다.


“이러하여 30일의 말미를 저들에게 요청하고, 안심하게 하도록 대부분의 병졸과 신료를 산성 바깥으로 내어 보낼 생각이오.”

“사실상 항복이 아닙니까. 저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위험합니다.”

“말했듯 항복이되 항복이 아니오. 그리고 그런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저들이 우리의 무엇을 믿고 말을 들어주겠소? 말로 얼마든지 보장함도 좋으나 눈에 보이는 것도 있어야 들어줄 생각이 드는 법이오.”


이리 말하니 두 사람이 눈알을 굴리는 것이 이게 나은 길인지 아닌지 고심하는 게 보였다.


“이게 최선인가 물으면 솔직히 나도 모르겠소. 하지만 이만큼 하면 상국에, 명에도 우리가 할 만큼 했노라 말할 수 있겠지.”


말을 덧붙이니 두 사람의 눈빛이 변했다.


“정녕 충분하다고 여기십니까?”

“의에 어찌 충분함이 있겠소. 이게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이기에 할 따름이오.”


내 말에 그제야 받아들일 생각이 든 것인지, 김상헌과 정온이 서로를 곁눈질했다.


“이 일을 소신들에게 이르심은 바라는 것이 있으시다 여깁니다. 소신들이 무엇을 하길 바라시는지요.”


김상헌의 물음에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입을 열었다.


“이곳에 남아 죽을 사람이 되어주시오. 그리고 일이 끝나면 패전의 책임, 항복의 책임을 지고 함께 죽은 사람이 되어주시오.”

“예?”

“전하, 그 무슨 엄한 말씀을 하십니까.”

“혹여 일이 너무 잘 풀리면 청나라 군은 우리에게 분풀이를 할 것이오.”


내 단언에 두 사람은 이것이 그러한 위험이 있는 일임을 아는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는 그런 일이 있는 게 좋은 일인지 아니면 없는 것이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소.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것이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이오. 그러니 설령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할지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소. 세운 기치를 지키기 위해 하는 것이고, 사대부로서 부끄럽지 않게 사는 길이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끝나면......”


막상 말하려니 마지막 이 말은 잘 나오지 않았다. 본능적인 두려움인지 아니면 그저 내 제멋대로인 생각으로 더 이상하게 일을 어지럽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인함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이미 한번 말을 꺼낸 이상 돌이키는 건 할 수 없으니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말을 마저 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지고 갈 것이오. 세자를 위해, 앞으로 살아갈 조선을 위해서.”


이어서 내가 그리는 바를 그들에게 더 말하니 두 사람은 놀란 얼굴이 되었다. 이윽고 몇 마디 더 말이 오간 후 두 사람은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께서 하시는 일에 동참하겠습니다.”

“의를 지키고 사대부로서 부끄럽지 않은 일에 어찌 동참하지 않겠습니까.”

“두 분께 내 진심으로 감사하오.”



***



“하여 그렇게 일을 진행할 생각이오.”

“......상께서 그리 생각하셨다면 소신은 따를 뿐입니다.”


두 사람을 보낸 후 영의정 김류를 불러 앞으로 행할 일을 그에게 일러주었다.


앞선 세 사람과 달리 그는 잠자코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간이 놀라는 모습이 살짝살짝 보이긴 했으나 그뿐, 그는 쉬이 동요하지 않았다. 허나 평온한 것도 거기까지였다.


“또한 후에 증표가 될 것을 그대에게 맡길 생각이오. 나가는 날까지는 내가 써야겠으나, 나갈 때에는 반드시 그대에게 맡기리라.”

“예?”


말뜻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였는지 김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를 보며 무어라 더 말하는 대신 나는 근처에 있던 내관에게 손짓했다.


“그걸 가져와라.”

“......예, 전하.”


내관의 주저함에서 심상치 않음을 알았음인가, 김류의 얼굴에는 긴장이 서렸다.


이윽고 내관이 말한 것을 가져오니 김류의 얼굴에 조금 남아있던 어리둥절함은 물론이고 긴장 역시 밀어내겠다는 기세로 빠르게 당혹감이 깃들었다.


“아직 내용물은 비어있소. 하지만 나갈 때는, 그대가 가지고 갈 때는 들어있을 것이오.”

“저, 정말로 이걸 제게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소.”


내가 주저 없이 말하니 김류는 비단에 쌓여있는 상자를 보며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한참을 그렇게 흔들리는 눈으로 보던 김류는 고개를 숙였다.


“저, 저는 이걸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대가 아니면 부탁할 사람이 없소. 아마도 이로써 저들은 진심이라 여겨 내 요청을 받아들일 것이고, 더불어서 저들에게 일종의 증표가 되어줄 것이오.”

“허나 전하 제가 어찌 감히 이런 일을......”


능력이나 인성과 별개로 인조를 위하는 마음은 진심인지 김류는 좀처럼 받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당장에 맡길 것은 아니나 결국에는 그대가 맡는 것이 순리라 생각하오.”

“......소신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운 짐입니다.”

“그러니 그대에게 맡기는 거요.”


내 단언에 김류는 울고 싶은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맡기기에 가장 적당한 이는 김류라고 여겼기에 뜻을 물릴 생각은 없었다.


나가는 이들 가운데 세자를 제하고 가장 높은 품계에 있고 저들에게 낮은 이라 소리 듣지 않으려면 정승이 제일 나았고, 그 가운데서도 영의정이라 할 김류가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맡아주시오.”

“......뜻을 받들겠습니다.”


재차 권하니 그제야 김류가 무거운 얼굴로 받아들이겠노라 말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그에게 당부를 덧붙였다.


“잘 들으시오. 나중에 나가는 행렬은 세자가 가장 앞일 것이나, 그건 그대가 들고 가야 하오. 그리고 세자에게는 말하지 마시오.”

“어째서입니까?”

“효심도 생각도 깊으니 알아차릴지도 모르니 하는 당부요. 당연히 나중 일에 대해서는 청나라 황제와 만난 후에 이르시오.”

“전하, 소신은......”

“이판에게도 일러두었소. 그와 상의하여 세자를 잘 보필하시오.”


김류가 무어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말을 그만하라는 의미로 손을 드니 열린 입에 도로 닫혔다.


“그대라면 사소한 것이라면 모를까 중요한 일에는 언제고 법도를 어기지 않을 거라 믿고 있소이다.”

“신 김류, 최선을 다해......뜻을 받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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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0화 청으로 가는 사람들 +3 22.11.13 2,106 5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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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화 상사로 넘길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1 22.11.12 2,108 54 12쪽
27 26화 신상필벌은 중요하다 +1 22.11.11 2,236 57 12쪽
26 25화 사람에게는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1 22.11.11 2,248 58 15쪽
25 24화 보낼 일을 논하다 +1 22.11.10 2,259 59 14쪽
24 23화 어려운 요구를 받다 +1 22.11.10 2,358 58 13쪽
23 22화 소파진에서 대담하다 +2 22.11.09 2,365 5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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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9화 사실과 보여지는 건 다를 수 있다 +5 22.11.08 2,432 65 12쪽
19 18화 바깥을 알다 +2 22.11.07 2,526 62 13쪽
18 17화 말의 가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2 22.11.07 2,617 64 13쪽
17 16화 여럿보다 하나가 나을 때도 있다 +2 22.11.06 2,720 77 15쪽
16 15화 믿음을 보내다 22.11.06 2,759 78 13쪽
15 14화 부끄러워하다 +2 22.11.05 2,805 79 13쪽
14 13화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1 22.11.05 2,828 7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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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화 화두를 던지다 +4 22.11.03 3,232 8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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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8화 사방에 소식을 보내다 +5 22.11.03 3,542 85 15쪽
8 7화 삶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끝난다 +2 22.11.02 3,592 87 12쪽
7 6화 소현세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4 22.11.02 3,816 88 14쪽
6 5화 고민을 안겨주다 +2 22.11.01 3,902 101 13쪽
» 4화 불러서 이르다 +3 22.11.01 4,132 94 12쪽
4 3화 남한산성에 오다. +7 22.11.01 4,489 98 12쪽
3 2화 대신할 자를 고르다 +11 22.11.01 4,679 10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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